“인간이라는 전제가 없었다면 소설은 태어날 수가 없었다. 소설은 개인이 대량으로 소비할 수 있는 어떤 여흥(餘興), 이야기, 환상의 형식을 추구하는 데서 나왔다. 입장은 달라도 삶의 관계를 다루고,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 인물과 사건이 등장해 결말을 맺는 구성이다. 그런데 박상륭은 다르다. 그는 소설가지만 ‘죽음의 한 연구’나 ‘칠조어론’ 같은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소설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어떤 한 인물이 등장해 익숙하게 느끼는 어떤 사건을 겪고 또 거기에서 일반성, 보편성을 찾는 게 일반적인데, 박상륭 소설에서는 그런 게 없다. 박상륭의 작품은 소설의 형식으로 담을 수 없는 문제적인 것을 소설의 형식으로 담으려고 했다. 어떤 것을 갖고 있으면서 또는 그것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거기에서 벗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예민했던 것 같다. 박상륭 작가는,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소설이라는 근대적 장르 안에서 그 근대를 언제나 초과(超過)하는 것을 추구하고자 했던 작가다. 대단히 역설적이며 또한 그 자체로 대단히 근본적인 작업을 했던 작가다.” 사진=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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