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쥐덫’을 보는 즐거움
‘눈 먼 생쥐 세 마리’의 비극… “공포에도 규칙이 있다, 전쟁은 비극을 어떻게 잉태하는가?”
2018년 2월 1일 오후 4시, 조연출을 맡은 정은수 선생 초대로 대학로 SH아트홀에서 연극 ‘쥐덫(The Mousetrap)’을 관람했다. 이 작품은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아가사 크리스티(Dame Agatha Christie, DBE, 1890.09.15~1976.01.12)가 쓴 희곡이다. ‘쥐덫’은 1952년 런던에서 초연 이후 66년이 지난 현재까지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쥐덫’ 홈페이지에 가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도 있다.
‘쥐덫’은 MBC탤런트극단(상임연출 정세호)이 창단 공연으로 선정한 작품이다. 윤철형 MBC탤런트극회 회장이 공연 시작 직전 인사말과 작품 선정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가벼운 작품보다는 작품의 가치를 우선해 창단 작품으로 골랐다. 작품을 각색한 최완규 MBC탤런트극단 상임작가는 공연 중간에 웃음과 놀람을 적절하게 넣음으로써 지루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빼고 관객이 공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윤철형 MBC탤런트극회 회장은 “2017년 10월 30일 MBC탤런트극단을 창단하고 SH아트홀에서 창단 행사를 개최했다”며 “탤런트극회 회장을 맡고 난 후 배우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를 고민하다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극단을 만들어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정세호 대표, 최완규 작가 등에게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하고 극단 창립과 연극 공연을 위한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이번 연극을 시작과 계기로 삼아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생기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공연은 두 번 봤다. 첫 공연과 둘째 공연 모두 탤런트가 배우로 참여한 만큼 연기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4시 공연에 이어 8시 공연을 시작하기 직전 정세호 MBC탤런트극단 대표(상임연출), 김선동 공연 담당 부대표, 정은수 조연출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정세호 대표는 “MBC 탤런트 중 약 10% 가량인 47명이 극단에 참여하고 있다”며 “앞으로 젊은 탤런트가 많이 참여하고 이를 통해 이들을 이끌어 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밝혔다.
공포의 규칙, 그리고 비극을 잉태하는 전쟁
공연은 어둠 속에서 목 조르는 소리, 숨 가쁜 신음 소리, ‘살인이다’ 외치는 소리 등 살인을 암시하는 효과음이 나오고 곧이어 라디오에서 살인사건 보도가 나오는 것에서 출발한다. 무대는 결혼 1년차 신혼인 몰리(임채원)와 자일즈(정예훈) 부부가 개업한 몽크스웰 게스트하우스다. 개업 첫 날은 아무도 오가지 못할 만큼 폭설이 내린 날이다. 몽크스웰에 예약한 숙박 손님은 다섯 사람이 눈 속을 뚫고 입장한다. 크리스토퍼 렌(이호준), 보일 부인(양희경), 메카프 소령(장보규), 케이스 웰(이정화), 그리고 폭설로 여행을 포기하고 예약 없이 찾아온 파라비치니(윤순홍)다.
몰리와 자일스는 손님을, 손님은 다른 손님을 의심하는 대사가 연이어진다. 끊임없는 의심과 의심, 그리고 의심의 연속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은 자신을 형사로 속인 후 복수를 하기 위해 몽크스웰을 찾은 트로터 형사(박형준)의 등장과 비극을 암시하는 역할로 작용한다. 그리고 무대는 트로터의 등장과 함께 의심과 살인, 살인과 의심이 얽히는 상황으로 급변한다.
‘공포에도 규칙이 있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공포’와 ‘규칙’이라는 말은 ‘전쟁’이라는 낱말과 묶을 수 있다. 등장인물이 내뱉는 대사에는 당시 삶과 의심을 낳는 인간의 관계는 전쟁이라는 비극에서 나온다. 탈영병 이야기 등을 비롯해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일이 잦았던 시대적 아픔이 많았고 이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낳은 슬픈 현실이다.
전쟁은 비극을 어떻게 잉태하는가?
연극 ‘쥐덫’은 다른 연극과 비교하면 무대와 조명이 비교적 단조로운 맛과 멋을 갖고 있다. 무대는 게스트하우스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고 있고 조명도 큰 변화가 없다. 단순하다. 그리고 중간에 작가 크리스티가 쓴 ‘눈 먼 생쥐 세 마리(Three Blind Mice)’를 상징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노래가 나온다.
크리스티가 라디오 드라마 작품으로 쓴 ‘눈 먼 생쥐 세 마리’는 ‘쥐덫’을 설명하는 친절한 비유와 상징이다. 세 마리 쥐는 세 남매를 나타내는 것인데, 이들은 트로터 형사, 케이스 웰, 그리고 어린 나이에 사망한 막내다. 몰리와 자일즈 부부가 문을 연 게스트하우스인 몽크스웰은 세 남매와 연결이 되어 있다. 보일 부인은 어린 세 남매를 소개한 사람이고 몰리는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사람이다.
세 남매의 환경은 전쟁이 낳은 비극이고 그 비극은 트로터가 형사로 위장해 몽크스웰을 찾아와 보일 부인을 죽이고 몰리까지 죽이려 했으나 탐정으로 수사에 나선 메카프 소령이 막아 실패로 끝난다. 몽크스웰이라는 공간은 결국 주요 등장인물에게는 과거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추억, 흔적, 고향 같은 의미로 작용한다. ‘전쟁은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가기도 한다’는 몰리의 대사는 전쟁이 비극을 어떻게 잉태하고 어떤 나쁜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트로터 형사는 몰리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때리지 말라’며 온전하지 못한 정신 상태를 보여준다. 관객은 그가 군인이었던 시절,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부분에서 연극은 최고의 감정에 이른다.
특히 두 가지는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연극‘ 쥐덫’을 기억하는 역할을 한다. 하나는 효과음을 사용하지 않고 실제 화약총을 사용해 깜짝 놀라게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트로터와 케이스 웰이 남매라는 점이다. 남매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가 살인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진 몽크스웰에서 재회한다.
남매는 “아무로 우리를 때리지 않는 곳으로 가자”며 퇴장한다. 때리지 않는 곳을 찾는 남매의 모습은 결국 우리와 우리 사회가 모두 잘못했다는 뜻으로 읽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감추기와 말하기, 그리고 사람과 사회
연극 ‘쥐덫’에서 몰리와 자일즈 부부는 ‘감추기’와 ‘말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과 사회가 직면하는 ‘의심’과 ‘소통’과 ‘이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부부는 서로 감추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음으로써 의심을 하고 속임을 낳는 모습을 드러낸다. 말하지 않기는 곧 의심하기, 속이기를 담은 갈등을 낳고 또 다른 의심과 분노를 낳는다. 다행히 두 사람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관계를 회복한다. 이 같은 부부의 모습은 사람이든 사회든 감추기와 말하기의 선택에 따라 의심과 갈등, 그리고 이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관객에게 묻는 역할을 한다.
게스트하우스라는 일상과 평범함의 공간에서 살인이라는 사건이 발생하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 누구도 살인자의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 살인과 살인의 원인을 알고 난 후에 느끼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상황 등 복잡하게 얽힌 ‘상황’은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몸짓과 대사를 보고 들으며 사건의 결말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하게 만든다. 탐정이 등장하지 않고 등장인물이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집중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MBC 탤런트가 만든 정통 연극
연극 ‘쥐덫’은 전쟁이 잉태한 ‘눈 먼 생쥐 세 마리’의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을 좋아하는 중장년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향수를 맛보게 해준다. 정통 고전 연극을 대학로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무엇보다 여러 명의 MBC 탤런트를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양희경, 임채원, 박형준, 윤슌홍, 장보규, 정예훈, 이정화, 이호준, 정욱, 정성모, 김영석, 조승연, 이시은, 허윤정, 오미연, 석정현, 차용학, 최여름, 서상원, 김옥주, 표은정, 고용화, 박소정 등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난 배우를 가까운 곳에서 보고 만날 수 있다.
양희경(보일)의 진중함, 윤순홍(파라비치니)의 나근나근함, 임채원(몰리)과 정예훈(자일즈)의 희노애락, 서상원(크리스토퍼 렌)의 웃음, 장보규(메카프)의 묵직함, 이정화(케이스 웰)의 춤, 박형준(트로터)의 변신 등 배역에 따라 능숙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MBC 탤런트’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연극 ‘쥐덫’은 비극적 내용이지만 100분 동안 공연을 보고 감상하는 즐거움이 큰 작품이다. MBC 탤런트를 믿는다면 고민하지 말고 정통 정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아쉬움이 크게 남을 수 있다.
‘쥐덫’은 2월 1일(목)부터 3월 25일(일)까지 서울 혜화동 SH아트홀(02-747-2265)에서 공연하며 인터파크(1544-1555)에서 예매할 수 있다. 공연 시간은 화·수 오후 8시, 목·금 오후 4시·8시, 토·일 오후 3시·7시다. 월요일과 2월 15일(목)과 16일(금)은 공연이 없다.
함께 읽기
쥐덫(The Mousetrap)
1947년 BBC 라디오가 영국 왕대비인 테크의 메리(Mary of Teck)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라디오 드라마로 듣고 싶은 작품이 있냐고 묻자 왕대비는 아가사 크리스티라고 대답했다. 크리스티는 왕대비의 주문으로 1주일 만에 라디오 드라마 작품으로 ‘눈 먼 생쥐 세 마리’(Three Blind Mice)를 썼다. 이후 1950년 단편소설로, 1951년 다시 희곡으로 수정했다. 희곡은 1952년 10월 6일 노팅엄로열극장에서 초연 후 11월 25일부터 런던 앰배서더극장에서 60년째 공연을 마쳤고, 1974년 3월 25일 공연 장소를 세인트마틴극장으로 옮겼다. 이 작품은 세계 공연 사상 가장 오랫동안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품이다. 11년 동안 같은 배역을 4575회 맡아 기네스북에 오른 배우인 메트카프 소령 역의 데이비드 레이븐(David Raven)이 있는가 하면 60년 동안 변함없이 무대에 오른 소품 등 수많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57년에는 윈스턴 처칠이, 2002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관람했으며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는 1992년 40주년 파티에 참석해 이 작품에 대해 “영국이 어떤 나라인지, 영국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자료=위키백과
줄거리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부 몰리와 자일즈는 친척에게서 물려받은 집으로 게스트하우스인 몽크스웰을 새로 개업한다. 런던에서 중년 여성이 살해되었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젊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을 비롯해 여러 손님이 차례차례 찾아와 짐을 푼다. 날씨가 점점 악화되어 예정에 없던 손님이 폭설 속에 묵을 곳을 찾아 몽크스웰에 오는 등 게스트하우스는 눈보라로 인해 고립되고 만다. 다음날 오후 몰리는 경찰로부터 그 집에 형사를 보냈다는 전화를 받게 되고, 몽크스웰에 나타난 트로터 형사의 존재에 몰리 부부는 물론 손님들도 불안한 기색을 보인다. 트로터 형사는 손님 중에 런던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료=위키백과
정은수, “도전 없는 젊음은 낭비다”
배우 정은수, 엄홍길과 350km 걷다…평화통일대장정 참여, 16일 동안 155마일 DMZ 완주
http://www.peopleciety.com/archives/3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