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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자 죽어서 왔어요”

"인생을 살면서 별일 없이 평탄하게 지내는 일이 얼마나 신의 축복인가를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生命이 그렇게 허망하고 짧은 줄은 죽은 者도 산 자도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런 운명이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나 무책임하기에 이렇게 평화롭기만 한 어느 날 괜한 시비를 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해1

“이 환자 죽어서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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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가을. 한 남자가 한 여자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그는 눈을 제대로 감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옮기던 중 푸르디푸른 젊은 청춘을 아스팔트길에 시뻘겋게 뿌리며 사라져갔다. 길을 오가는 차들은 절박한 상황의 그들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20여 분이 지나서야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리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병원 응급실로 옮긴 그의 옆에 놓인 자그마한 기계에서는 ‘뚜’ 하는 울음소리와 일직선상으로 그어진 선만을 보여주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녀는 그때까지도 체온이 채 가시지 않은 연인의 발끝을 주물러 대고만 있었다. “이 환자 죽어서 왔어요.”라는 사무적인 말 몇 마디와 함께…….
불과 몇 십 분 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웃음을 보였던 사람의 모습 위로는 하얀색의 천이 덮여졌고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넋을 잃은 그녀를 뿌리치며 어디론가 그를 데리고 갔다. 그녀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듯이 전혀 울지도 않았었고, 그저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목이 메고 가슴이 턱턱 막히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이라는 말을 그녀는 그제야 이해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달려왔고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며칠이 지나 검찰에서는 프로선수였던 그의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부검을 시행했다. 부검 후 검사 결과는 폐를 뚫고 심장에 박힌 커다란 유리조각으로 인한 출혈 과다. 싸움을 말리려다 술 취한 여러 명의 학생들에 둘러싸인 채 뒤에서 찌른 흉기로 인한 사망이었다.
그렇게 두 번 죽임을 당한 그의 시신은 화장을 하지 않고 김포의 어느 차가운 땅속에 그녀가 남긴 하얀 장미꽃 다발과 함께 묻혔다.

“살인자를 죽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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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제까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며 담담하게 말했다.
“애인을 그렇게 죽인 살인자를 죽이고 싶다. 몇 년이 걸리든 몇 십 년이 걸리든 찾아내어 갈기갈기 찢어 서서히 죽이고 싶다.”
그러나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살인범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그 또한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이며 귀한 자식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그를 찾아내어 똑같이 한들 떠나간 사람이 자신의 품에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그래서 체념하듯 용서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나는 그때 그녀의 가슴 끝에서 서럽게 떨어지는 한 맺힌 눈물을 보았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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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의 시간에 대한 그녀의 행적에 대해서는 말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미의 독백만 떠오른다.
“자식 잃은 부모 슬픔 아무도 모른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메아리 퍼지듯 울리던 낮은 절규와 아직도 생생하게 보이는 듯한 넋을 잃은 어미의 표정. 눈물을 흘리고 있진 않았지만 어미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 평생 가슴에 묻어둘 자식의 죽음. 사람들은 그 슬픔이 이해가 간다고, 얼마나 서럽고 슬프시겠느냐고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소중한 아들의 급작스런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한 부모의 찢어지는 심정은 똑같은 일을 겪지 못한 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에…….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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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그 오래된 사건을 기억해 낸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살다 보니 그렇게 즐겁고 재미나게 웃고 떠들던 기억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허무하게도 빈 시간만을 땜질해줬을 뿐 재미나 쾌락은 그 흔하디흔한 감동이나 머릿속으로 환하게 들어오는 작은 깨달음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텅 빈 듯 휭하니 불어오는 지금 인생의 황혼이 드리워지는 나이에나 가질 법한 마음속 기억 한두 가지쯤 여느 사람들처럼 술안주 삼아 한 가지씩 꺼내어 양념처럼 툭툭 뿌려내고 다시 제자리에 앉혀놓는 일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를 살수록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삶이라 생각되었던 착각들이 잔잔한 시야로 바라보면 그 속에 많은 깨달음과 감동을 주고 있음을 잊고 스쳐간다. 내게 생명이 있는 것처럼 길 가에 놓인 돌멩이 하나에도 생명이 있고 살아있는 의미가 있음을 잊을 때가 많다. 때로는 행복감만 지속될 적이 있고, 때로는 슬픔과 절망만이 지속되는 시간의 반복. 그것조차 행복임을 지나고 나서야 항상 깨닫는다.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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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生命)이 그렇게 허망하고 짧은 줄은 죽은 자도 산 자도 전혀 예측할 수 없지만 그저 “운명이다”는 말로 간단하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기에 이렇게 평화롭기만 한 어느 날 괜한 시비를 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가끔 너무나 많은 아픔을 지니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별일 없이 평탄하게 지내는 일이 얼마나 신의 축복인가를 느끼지 못한다. 천 년 만 년을 살아 갈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소중한 지금을 순간의 기쁨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늘 잃어야만 깨닫게 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늘 잊고 사는 인간이기에…….
‘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말, 그 이후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한 후부터는 이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산다. 살아있을 때 내 곁에 웃고 있을 때, 그저 살아서 같은 하늘 아래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해 할 수 있는 시린 가슴들은 오늘도 어디에선가 숨죽여 울고 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내 주위 곳곳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묻어두고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 나에게도 또한 그들에게도 또다시 하루해는 아무 일 없는 듯 저물어만 간다.

2003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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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소운(小雲), 필명은 정유림을 쓴다. 다기(茶器)로 유명한 도예가 이당 선생의 제자다. 이천도자기협회 초대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한국도자관, 일민미술관, 롯데갤러리 등에서 초대전, 기획전 등 도자기 큐레이터, 갤러리 종로아트 아트디렉터 피카소 게르니카전 및 운보 김기창 화백 판화전 초대 큐레이터, 서정아트센터전시기획본부장, 세계일보 조사위원을 지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미술협회전시기획정책분과 위원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리더스포럼 문화예술국장, 월드코리안신문의 칼럼니스트다. 또한 죽염으로 유명한 인산가(仁山家) 해외홍보전략실 팀장, 광주 유니버시아드, 평창 동계올림픽, 평창 패럴올림픽에서 공간 창조 역할을 담당한 서울텐트(주) 기획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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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on “이 환자 죽어서 왔어요”

  1. Shin soowon // 2017-02-06 at 10:44 PM // Reply

    인생이란~~~개개인의 개인적 사유 시리면서 날카롭기도 하는그뒤에 여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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