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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최후 진술을 읽는다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놨다, 20년 내지 25년 앞당겨 놨다, 하는 이 점, 이것은 누구의 뭐하고도 바꿀 수가 없는 자부를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가 만만세가 되도록, 또 10월 26일 민주회복 국민혁명이 만만세가 되도록 저는 기원합니다.”

이 글은 김재규 최후 진술을 담았다. 진술 분량은 25분 59초다. 최후 진술 이후인 1979년 12월 20일 오전 11시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재판부(재판장 김영선 중장, 심판관 유범상·이호봉·오철 소장, 법무사 황종태 대령)는 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관련 피고인 전원에 대해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김재규·김계원·박선호·박흥주·이기주·유성옥·김태원 피고인 등 7명에게 각각 사형을, 사건 후 총기를 숨긴 유석술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구형 5년)을 선고했다.

“재판장님, 그리고 심판관님, 목이 잠겨서 제대로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최후 진술이니까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본인 외에 피고인이 내란죄로 지금 기소가 되고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동안에 합법적으로 수립됐던 민주당 정권이 5.16혁명에 의해 밀려났습니다. 그 다음에 10월 유신은, 말하자면 자기 집 앞마당에 또 한 차례 치르는 혁명이었습니다. 그리 하여 이 혁명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했습니다.”

기획

김재규를 다시 생각한다

1. 김재규의 최후 진술을 읽는다!
2.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나?

김재규 최후 진술을 읽는다

“5.16혁명이나 10월유신에 비해 그야말로 정정당당”

연합뉴스는 2019년 8월 1일, ‘10.26사건’ 이후 군에서 금기시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이 약 40년 만에 일선 부대에 다시 등장했다는 내용을 담은 ‘10.26사태, 김재규 사진 출신부대에 다시 걸렸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연합은 육군 등 군에서 밝힌 바를 바탕으로 김 전 부장 사진이 지난 5월 말부터 그가 지휘관을 지냈던 군부대 역사관 등에서 다시 전시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 전 부장은 육군 18대 3군단장과 15대 6사단장 등을 지냈지만, 1980년 내란죄 혐의로 사형된 후 사진과 이름이 전 부대에서 사라졌다. 이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까닭에 김재규 존재 자체를 금기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합은 김 전 부장 사진이 일선 부대에서 40여 년 만에 부활한 것은 국방부가 지난 4월 역대 지휘관 사진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담은 ‘국방장관 및 장성급 지휘관 사진 게시 규정 등 부대 관리 훈령’ 개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훈령은 역사적 사실을 보존할 목적으로 하는 경우 모든 역대 지휘관 및 부서장 사진을 부대 역사관이나 회의실, 내부 홈페이지 등에 게시할 수 있도록 했다. 국방부는 ‘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취지에서 훈령 개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몇 년 전부터 김 전 부장을 비롯해 ‘10.26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움직임이 빠르게 늘어났다. 10.26사건은 ‘박정희암살사건(朴正煕暗殺事件)’, ‘박정희시해사건(朴正煕弑害事件)’, ‘박정희피격사건(朴正煕被擊事件)’, ‘궁정동사건(宮井洞事件)’, ‘10.26’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선호, 박흥주 등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암살한 사건이다.

그렇다면 10.26사건의 핵심인 김재규는 어떤 사람인가. 이 글은 김재규가 1979년 12월 18일, 1심군사법원(보통군법회의)에서 했던 최후 진술을 담은 것이다. 그가 박정희를 암살한 이유와 배경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진술을 읽기에 앞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키백과 설명에 따르면, 김재규(金載圭, 1926.03.06~1980.05.24)는 군인, 정치인이다. 제9대 국회의원(유신정우회, 전국구),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덕산(德山)이다. 박정희와 동향(경상북도 구미)이며 후배이자 육사(2기) 동기다.

1943년 안동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해군 비행 예과 연습생에 선발돼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고 소위 임관을 앞둔 와중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현재 육군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교해 1946년 12월 졸업했다. 그러나 재직 중 부대 내 사망 사고의 책임을 지고 면직돼 잠시 김천중학교와 대륜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복직했다. 1952년에 육군대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정치학 석사)을 졸업했다.

1954년 육군 제5사단 36연대장을 거쳐 육군 제101연대장을 지냈고, 1956년 육군 준장 진급, 1957년 육군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일시 감금됐으나 박정희 명령으로 풀려나 군사 정부에 적극 협조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군사정권 치하에서 1961년 호남비료 사장, 1963년 육군 제6사단장, 1966년 육군 제6관구사령관, 1968년 육군 보안사령관, 1971년 육군 제3군단장을 역임하고, 1973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육군 제6사단장 시절이던 1964년, 6.3사건 당시 계엄군을 지휘해 박정희에게 더 큰 신임을 받았다.

1973년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 소속 9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1973년 중앙정보부 차장, 1974년 건설부장관에 임명됐다. 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 자리를 맡으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빈번한 소요 사건 발생과 긴급조치령 남발에 따른 정치세력 간의 알력과 갈등이 첨예하던 상황 속에서 주도면밀한 정보 수집과 사건 무마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1979년 8월 11일, YH무역 여공 농성 사건, 10월 4일 신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 국회의원 제명 사건, 10월 16일 부마사건 등 정국 불안 사건을 연이어 수습하면서, 유신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국 수습책을 둘러싸고 강경파인 차지철(車智徹) 대통령 경호실장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차지철과 그를 옹호하는 박정희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갖게 됐다. 이 와중에 이상열(李相悅) 주프랑스 공사를 매수해 1979년 10월 7일 김형욱(金炯旭) 전(前) 중앙정보부장을 유인해 살해하도록 유도한다.

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전가옥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과 연회 술자리 중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발터 권총(Walter PPK, Walther Polizeipistole Kriminalmodell)으로 시해, 10.26사건을 일으키고 체포돼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이후 1980년 1월 28일, 육군 고등계엄군법회의에서 ‘내란 목적 살인 및 내란 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980년 5월 24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을 집행했다.

이 글은 김재규 최후 진술을 담았다. 진술 분량은 25분 59초다. 최후 진술 이후인 1979년 12월 20일 오전 11시 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재판부(재판장 김영선 중장, 심판관 유범상·이호봉·오철 소장, 법무사 황종태 대령)는 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관련 피고인 전원에 대해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김재규·김계원·박선호·박흥주·이기주·유성옥·김태원 피고인 등 7명에게 각각 사형을, 사건 후 총기를 숨긴 유석술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구형 5년)을 선고했다.

최후 진술을 읽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당시 상황과 2019년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시기에 상관없이 김재규 최후 진술에 들어 있는 의미를 곱씹어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아울러 ‘10·26사건’을 ‘10·26사태’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이 글에서는 ‘10·26사건’으로 표현했다. 또 글의 뜻과 흐름에 문제가 없는 경우 일부 낱말이나 어구, 어절을 다듬어서 표현했으며, 진술 중간에 있는 제목은 편집자가 진술 주요 내용을 골라 임의로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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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2019 여름·가을 제3권 제2·3호 통권 제10·11호
ISSN 2635-876X 92·93

“10월 26일 혁명이야 말로 역사상 가장 정정당당한 혁명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혁명을 한다는데 무혈혁명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무혈혁명으로서는 혁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적에는 부득이 최소한의 희생은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번에 10월 26일 혁명이야말로 최소한의 희생이 불가피했습니다.”

내란죄

재판장님, 그리고 심판관님, 목이 잠겨서 제대로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최후 진술이니까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본인 외에 피고인이 내란죄로 지금 기소가 되고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동안에 합법적으로 수립됐던 민주당 정권이 5.16혁명에 의해 밀려났습니다. 그 다음에 10월 유신은, 말하자면 자기 집 앞마당에 또 한 차례 치르는 혁명이었습니다. 그리 하여 이 혁명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증명

그리고 금번 10월 26일 혁명은 이 나라의 건국 이념이고 또한 국시이고 6.25를 통해서 전 국민이 수난을 겪고 수업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다치고 지켜온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증명한 것입니다. 이 혁명이 어떻게 하여 내란죄의 지탄을 받아야 되느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또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대한민국 전체 국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3,700만이 다 같이 갈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을 회복시키는 데 어찌 하여 내란죄에 적용되느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또 10월 26일 혁명은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집권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리나 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또, 이 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히 회복이 됐습니다. 또, 그것이 보장이 됐습니다. 최규하 대통령께서 권한 대행 시절에 국민 앞에 공약을 하셨습니다. 또, 최 대통령께서는 지금 현직 대통령의 자리를 임기를 다 마치지 않고 도중에서 그만 두시겠다, 다시 말해서 과도적으로 이 정권을 지키겠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역사상 가장 정정당당한 혁명

그렇다면, 이 과도라고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해가는 과도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은 완전히 달성이 됐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긴급 조치 9호를 해제 결의를 했습니다. 이것 또한, 만일, 10월 26일에 혁명이 없었던들 어떻게 이러한 결의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 또한 이 혁명의 성공을 입증해주는 것입니다.

또, 이 혁명은 5.16혁명이나 10월 유신에 비해서 그야말로 정정당당합니다. 허약한 자유민주당 정권을 무력하다는 이유로 밀어 치우는 것, 앞마당에서 자기 마음대로 한바탕 혁명을 더해서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을, 여기 비하면, 서슬이 시퍼렇고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유신 체제를 정면에서 도전해서, 유신 체제를 타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완전히 성공을 했습니다.

따라서 10월 26일 혁명이야 말로 역사상 가장 정정당당한 혁명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혁명을 한다는데 무혈혁명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무혈혁명으로서는 혁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적에는 부득이 최소한의 희생은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번에 10월 26일 혁명이야말로 최소한의 희생이 불가피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희생

이것은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자신의 희생 간을 완전히 숙명 관계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려면 대통령 각하께서 희생하지 아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통령 각하를 잃었다고 하는 것은 매우 마음 아픈 일이고, 그야말로 이 마음 아픔을 어디에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신 이후 지금 7년이 경과가 되었습니다만, 영구히 집권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보장된 오늘날, 20년 내지 25년은 그것은 이승만 박사 수명을 기해서 본 것입니다. 최소한 자유민주주의가 회복 안 된다, 이렇게 볼 때 가슴 아픈 일이고 하지만, 그러나 이 나라 절대 국민들의 희생을 막고 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이 혁명을 아니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들은 모두 감상적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감정이 몹시 앞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례를 판단함에 있어서 감정이 앞서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판단하기 쉽습니다. 다시 말해서, 금번에 저희들이 이 내란죄로서 심판을 받는 것도 나는 그러한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은 감정으로, 또 정치 현실은 현실로서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렇게 해서 법은 엄연한, 위대한 자세로서 귀결돼야 한다, 난 법을 잘 모릅니다만, 때나 경우를 가리지 않고 공정한 법을 적용하기 위해서 판례를 매우 중요시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 스스로가 내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최후 진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대장부로 이 세상에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죽을 수 있는 명분을 하나 발견했다는 것은, 죽음의 복을 잘 타고 난 사람이라 자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오늘 죽어서 영생할 수가 있다, 하는 일에 자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내 생명을 구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죽음의 복을 잘 타고 난 사람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 스스로가 내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최후 진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대장부로 이 세상에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죽을 수 있는 명분을 하나 발견했다는 것은, 죽음의 복을 잘 타고 난 사람이라 자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오늘 죽어서 영생할 수가 있다, 하는 일에 자부가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내 생명을 구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10월 26일 혁명을 그 이념과 정신과 그 성공한 결과를 뚜렷이 해놓기 위해서, 법이 허용하는 한 마지막 날까지는 투쟁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5.16도, 10월 유신도 범법이 아니라면, 자연히 10월 26일 혁명도 범법이 아니다, 이렇게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투쟁을 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내가 하지 않으면 10월 26일 혁명이라는 것은 의미 없는 혁명이 되고 맙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야 한다

여러분,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여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만, 건국의 이념이요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전체 국민이 수난을 당하고 지켜온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이것은 무슨 이유로든지 간에 이것은 말살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71년 유신과 더불어 까닭 없이 말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신 체제는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종신 대통령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제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나는 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그러한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이를 말살할 수 있는 그러한 권한은 누구로부터 받을 수 없고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나라는 모순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특히 체제에 대한 반대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라는 소리가 높아지자, 긴급조치 9호가 75년에 발동이 돼서,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르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계속 탔고 또 번져나갔습니다. 전국에 지금, 팽배한 이러한 상태가 번졌습니다. 제가 정보부장으로서 파악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앞으로 이 유신 체제를 두고 정부와 국민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집니다. 이 공방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됩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과 우리 박정희 대통령 각하를 비교해보면,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그만둘 때 그만둘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각하는 절대 그만두시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방어해냅니다. 많은 희생자가 나와도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본인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유신 체제를 시작하는 한 지주(?)의 한 사람의 역할을 했던 저이지만, 더 이상 국민들이 당하는 불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모순된 사회의 모순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뒤돌아서 가지고는 그 원천을 두들긴 것입니다.

혁명의 목적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가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로는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적화 방지입니다. 네 번째가 혈맹인 우방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입니다.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혈맹의 우방으로서의 관계를 회복해서, 돈독한 서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도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위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적은 10월 26일 혁명 결행 성공과 더불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해결이 보장이 됐습니다.

군인과 혁명가

여기서 한 마디 내가 확실히 말씀해 둘 것은, 결코 저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혁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군인이었고, 혁명가입니다. 군인이나 혁명가가 정치를 하게 되면 독재를 하기 마련입니다. 독재를 마다하고 혁명한 제가 독재의 요인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또, 제가 대통령 각하와 개인의 의리를 청산하고 혁명을 했습니다만, 대통령 각하의 무덤 위에 올라설 정도로 내 도덕관은 그렇게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혁명의 결행은 성공했습니다만, 혁명 과업은 손 데지도 못한 채 언 50여 일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혁명 결행 못지않게 혁명 과업 수행이 필요합니다.

쓰레기 청산

장장 19년 동안, 이 나라에는 많은 쓰레기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거 설거지 안 하고 어떡하시렵니까. 여러분, 보십시오. 증권파동이나 4대 의혹 사건, 이것은 곧 6.3사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당시 난 사단장으로서, 서울에 나와서 사태를 진압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때 상황을 명백하게 기억하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그 의혹 사건은 국민을 우롱한 일입니다. 수없이 많은 돈을 치부를 해놓고 책임지는 놈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때 치부한 돈 한 푼도 정부에서 환수한 일 없습니다. 이래가지고도 이 사회의 정의가 살아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을 설거지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를 출범시켜가지고 이 자유민주주의가 순전하게 가겠습니까.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이 나라가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로는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적화 방지입니다. 네 번째가 혈맹인 우방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입니다.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혈맹의 우방으로서의 관계를 회복해서, 돈독한 서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도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위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적은 10월 26일 혁명 결행 성공과 더불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해결이 보장이 됐습니다.”

혁명 이후에 대한 걱정

또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핵심이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가 돌아가신 이후에 핵심이 빠져버렸습니다. 중심 세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4.19혁명 이후의 사태나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출범하게 되면, 힘센 놈이 와서 밀면 또 넘어갑니다. 악순환이 또 계속됩니다.

이것을 막는 것은 저는 오로지 민주 회복을 기도한 저만이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군의 주요 지휘관들과 같이 협력해서, 자유민주주의 출발시켜 놓고 이것을 보호해내는데 내 역할이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건국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대통령이나 정권이 순리적인 방법으로 오고 갔던 일이 없었습니다.

요번만 해도 그렇습니다만, 지금까지의 경우가 4.19혁명, 5.16혁명, 이런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러한 상태를 언제까지 가져가야 하겠습니까. 나는 군의 수뇌부들과 같이 손을 잡고, 이 나라의 정권이 앞으로는 국민의 뜻에 따라가지고 순리적으로 오고 가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토착화시켜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만들어놓으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는 그다음부터는 대통령이 바뀌던지 정권이 바뀌던지 국민의 뜻에 따라가지고 순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에게

그리고, 나는 지금 최 대통령 각하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자유민주주의가 대문 앞까지 와있는데 문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유민주주의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시키는데 절대로 혼란이 올 리가 만무합니다.

자유당 때 자유민주주의를 해서 혼란이 온 게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아니하고 부정선거를 해서 혼란이 온 겁니다. 공화당 정권이 되고 난 이후에, 국민들을 우롱하는 의혹 사건을 만들어내니까 혼란이 왔지, 자유민주주의를 해서 혼란이 온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나치게 급격하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3~4개월 5~6개월이면 충분하지 이것이 1년 반씩 끌 아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빨리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아니 하고, 인위적으로 자꾸 끊다가는, 내년 3, 4월이면 틀림없이 민주회복운동이 크게 일어납니다.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아까 말씀드렸었지만, 지금 핵이 없습니다. 정부가 통제력이 없고 국민들은 자제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큰일을 당하면 뭐가 될는지 모릅니다. 나는 그래서 이러한 문제가 될 만한 요인을 미리미리 없애라, 이렇게 경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국회에게

내가 대한민국 입법부에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라면, 국민들이 어느 정도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을 한다면, 나는 최소 10월 26일 혁명을 지지·결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빨리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가 회복되었을 적에 대한민국 국회는, 국회의원들은 뭐라고 말을 하겠느냐, 나는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 뭐를 했다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동안에 긴급조치 9호 해제를 결의했지만 지엽적인 일에 불과 한 것입니다. 더 원천적인 일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결의가 더 원천적인 일인 것입니다.

혁명 과업

지금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내 앞일을 모든 것을 총 청산하고 가만히 눈 감고 있을 적에, 가장 염려스러운 것이, 내가 한 혁명이 원인이 되어서, 이 나라에 혼란이 오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기마저 흔들리는 요인이 생길까 봐 몹시 겁이 납니다.

나는 최규하 대통령 각하에게 지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감상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정치라는 것은 현실이고 냉혹한 것이니, 내가 아무리 밉더라도 밉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끌어내는 나와 같이 혁명 과업을 수행합시다, 그렇게 해서, 핵을 만들고 중심 세력을 만듭시다, 그렇게 해서, 국가의 모든 장래를 반석 위에 올려놓읍시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얘기가 현실 분위기 봐서 받아들여질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감정을 초월해서, 이성으로 돌아가서, 정치 현실을 냉혹하게 보고, 정치의 전망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일시적인 감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국사를 그르치면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대한민국 입법부에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라면, 국민들이 어느 정도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을 한다면, 나는 최소 10월 26일 혁명을 지지·결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빨리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웃으며

심판장님, 심판관님, 여러 날 계속되는 재판에 매우 피곤하시겠습니다. 또 오늘, 지가 이 장황한 얘기를 하는 것을 경청해 주시니, 마지막 이 세상을 하직하고 가더라도 여러분에 대한 고마움은 내가 간직하고 가겠습니다.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놨다, 20년 내지 25년 앞당겨 놨다, 하는 이 점, 이것은 누구의 뭐하고도 바꿀 수가 없는 자부를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가 만만세가 되도록, 또 10월 26일 민주회복 국민혁명이 만만세가 되도록 저는 기원합니다. 다만, 내가 이 세상을 빨리 하직하게 됨으로써, 자유민주주가 이 나라에 만발할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그 유한이, 한량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기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못 봤다 뿐이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나는 웃으면서 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심판장님께서는 소신껏 심판을 해서 저에게 알맞은 형벌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부하를 생각하다

끝으로 제가 심판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아까 모두 나와서 최후 진술했습니다만, 양과 같이 착하고 순합니다. 너무 착하고 순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사람 명령에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복종을 해가지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볼 적에는 확실히 죄를 저질렀습니다. 제 입장에서 볼 때는 혁명을 했지만은,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까 최후 진술에서 나왔습니다만,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원천이 저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다고 해서 반드시 나는 법의 효과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하나가, 이 나라의 중앙정보부장까지 지냈던 사람이, 이 사람 하나가 총 책임을 지고 희생됨으로써 충분히 난 그 값어치를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극형을 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대해가지고는 극형만은 면해 주시도록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저 저번에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박흥주 대령은 현역이기 때문에 단심(단심제)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판장님의 판결이 곧 저 박 대령에 대한 마지막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매우 착실한 사람이었고 가정적으로도 그렇고 매우 모범적이고 결백했던 사람입니다. 청운의 꿈을 가지고 사관학교에 지망했던, 지금 1선발로 올라오는 대령입니다. 물론 군에서는 더 봉사할 수 없겠지만, 여생을 사회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극형만은 면해 주시도록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두서없는 얘기를 장황하게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이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bout 김종영 (881 Articles)
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2 Comments on 김재규 최후 진술을 읽는다

  1. 박증히 // 2020-08-19 at 11:20 AM // Reply

    시간이 흘러 보안사령관이란 노믄 유혈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했다. 국민은 무력으로 쿡민을 조용하게 만드는 민정당을 지지해서 감히 보안사령관이 체육관 선거로 대똥령이 되었지.그때 전두하이만 아니었다면 우디의 민주화는 빨리 진쟁되었을건데…전소장때 경제가 좋았다고 그때를 그리워한다 그때 제부모자식이 죽고 병신이 되었어도 그러겠나?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박전노소장. 우리의 민주주의를 망치고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던 이런 노믈 대통령이었다고 국립묘지 (?)이건 아닌데 .박증히와는 비교할수 없게 나라에 충성한 사람 못헬정도로 많다. 과연 국립묘지에 묻힐만한 일을했나 생각해보자.왕이었지.감히 18년5개월을 연산군보다 더했으니. 연세드신분은 박소장을 존경한단다 초딩생들 젤 존경한단다 이런데 일본보코 역사왜곡 말할자격되나? 아무리 샘각해도그는 잘죽었다 우리나라에 겨레에 얼마라 고통을 주었나? 숨쉬는것도 허락을 받아야했다. 죽었을때 이제 새시대가 왔다고 언론에서 그렇게 떠들었는데.,, 믿읃노옴없네 묘파서 구미로 옮겨라 역사왜곡.우리부터 하지마라

  2. 내용을 보충할 수 있는 댓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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