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은행’ 장발장은행 아세요?
장발장은행, 첫 대출 성공하다...장발장위원회서 17명 심사 후 4명 대상 650만원 대출
장발장은행이 처음으로 대출에 성공했다.
장발장은행(은행장 홍세화, 디렉터 서해성)은 출범 후 처음 시작한 대출은 3월 2일 진행한 대출심사위원회를 통해 모두 4명의 벌금 미납자들에 대해 총 650만 원의 대출을 진행했다.
장발장은행은 또 3월 6일, 제2차 대출심사위원회 회의를 통해 1차보다 확대된 규모로 제2차 대출도 진행할 예정이다.
장발장은행은 2일 장발장위원회(운영위원회)와 43,199위원회(대출심사위원회) 연석회의를 열어 대출신청서를 제출한 17명에 대해 대출심사를 진행했다.
이날 심사는 박경서 대한민국 초대 인권대사,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 사회 원로를 비롯해 홍세화 장발장은행 은행장, 서해성 디렉터를 비롯해 법률가, 법학자, 대학교수, 사회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과 대출심사 위원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대출심사 결과 김OO(남, 55년생), 김OO(남, 87년생), 허OO(여, 73년생), 현OO(남, 64년생) 씨 등 4명에 대해 벌금액수에 해당하는 대출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출금 총액은 650만 원이며 이 대출금은 노역을 일당 5만 원으로 환산하면, 130일의 구금 기간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들에게 지급한 대출금은 무이자다.
김OO 씨는 압류딱지를 떼어낸 혐의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이며 치매, 뇌졸중, 뇌종양으로 투병하고 있는 데다 어려운 형편에 자녀 2명을 부양하고 있어 벌금 150만 원에 대해 대출을 받게 됐다.
김 씨는 현재 수입은 없는 상태지만 수급권 급여를 받고 있어 2015년 4월부터 매월 5만원씩 30개월 동안 대출금을 상환하기로 했다.
장발장은행은 김 씨가 투병 중인 상황을 감안해 대출 기준은 6개월 거치 1년 균등상황을 적용하지 않고 대출기간을 30개월로 늘여줬다.
김OO 씨는 가벼운 다툼으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부인과 이혼 후 초등학생 자녀를 혼자 키우며,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벌금 미납으로 인해 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이 많아 200만 원을 대출받게 됐다. 김 씨는 2015년 4월부터 매월 40만 원씩 5개월에 거쳐 대출금을 상환하기로 했다.
허OO 씨는 고용보험법 위반으로 벌금 3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직업은 있으나 저소득으로 벌금 납부가 어려운 상황이다.
허 씨는 200만 원 대출을 신청했고, 신청한 만큼 대출을 받게 됐다. 허 씨는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매월 40만 원씩 5개월에 거쳐 대출금을 상환할 예정이다.
현OO 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신호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직업이 없는 데다 아내와 3명의 자녀를 부양해야 하기에 경제적 형편이 곤란한 상황이다.
장발장은행은 현 씨에게 100만 원을 빌려주고 2015년 4월부터 매달 10만 원씩 10개월에 걸쳐 대출금을 상환하도록 했다.
장발장은행은 3월 6일(금) 저녁에 제2차 대출심사위원회를 진행하여, 곧바로 2차 대출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장발장은행
장발장은행은 벌금 미납으로 교도소에 갇힌 가난한 시민들을 위해 무이자와 무담보로 대출을 해주기 위해 지난 2월 25일 출범한 은행이다.
벌금형을 선고 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이 해마다 4만 명이 넘는 상황이다.
장발장은행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했다. 죄질이 나쁘거나 위험해서가 아니라 오직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되어서 교도소에 갇히는 이 시대의 장발장들을 위해서다.
장발장은행은 시민의 모금으로 운영되며, 모금 계좌는 하나은행(388-910009-23604 장발장은행, 전화 02-2273-9004)이다.
장발장은행은 ‘돈 없는 은행’으로 문을 열었다. 돈을 갖고 있는 은행을 바라지도 않고 이자 놀이를 하지도 않는다.
또 문턱은 없지만 아무나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도 아니다. 장발장들만이 빌릴 수 있는 은행이기 때문이다.
3월 3일 현재 모금액은 총 2878만원 규모다.
자세한 내용은 장발장은행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전화(02-2273-9004)로 문의하면 된다.
장발장은행은 ‘관계금융’을 실현하려 애를 쓰는 청년연대은행 토닥(이사장 김진회)과 많이 닮았다.
오마이뉴스의 ‘무담보’는 기본, ‘무이자’ 대출까지… 이게 가능? 기사를 보니 토닥을 간략히 소개하는 내용이 있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이 다른 은행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신용’이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매달 출자한 돈으로 공동체 기금을 조성하고 이 돈을 최대 100만 원까지 소액대출 해준다.
급한 생활비뿐만 아니라, 교육비, 여행자금 등을 위한 대출도 가능하다.
가장 많은 대출용도는 생활비와 주거비다.
지난해부터는 ‘결혼격려대출’이 생겨, 결혼 당사자 두 명 모두 조합원일 경우 최대 3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해졌다.
청년연대은행 토닥
여느 은행처럼 대출사업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없는 청년연대은행 토닥.
현재 토닥은 후원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지난해부터 신설된 조합비로 운영되고 있다. 조합비는 반 년 이상의 논의 끝에, 사정이 어려운 회원들을 고려해 1000원부터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비슷비슷한 사정의 청년들이 만든 은행이다 보니 운영비는 늘 빠듯하다. 올해부터는 토닥 사무국 상근도 5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지난해까지 받았던 서울시 청년혁신일자리사업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
앞으로는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등을 통해 수익모델을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토닥 카페
http://cafe.daum.net/ybank1030
청년연대은행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장발장은행으로 착각하신 분들의 전화가 계속해서 걸려오네요, 하하. ^^
장발장은행 전화번호는 02-2273-9004입니다!! ^^
청년연대은행이 공식 명칭인가요?
그러면 토닥은 모임 이름이고 장발장은행은 청년연대은행이 운영하는 은행과 사업을 동시에 이르는 것 같은데, 맞나요?
이에 대해 댓글로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댓글에 대한 댓글 말고 기사에 대해 댓글을 달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청년연대은행 토닥’이 공식 명칭입니다.
‘장발장 은행’과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장발장 은행’은 ‘인권연대’에서 출범한 곳으로 알고 있구요. 잘은 모르지만 인권연대와 별도의 운영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장발장 은행’에 대해서는 저 역시도 이 기사에서 접한 바가 거의 전부이고요. 잘 알지 못합니다.
‘청년연대은행 토닥’은 ‘장발장 은행’과는 관계없이 소개해주신 기사에서처럼,
청년들이 함께 돈을 모으고 그 돈을 가지고 조합원들에게 소액대출을 해주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청년연대은행 토닥’과 ‘장발장 은행’은 서로 관계가 없으며
별도의 조직이며, 전혀 다른 사업을 하는 곳입니다.^^
댓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설명을 잘 해주신 까닭에 이 기사와 댓글을 보신 분들은 토닥과 장발장은행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장발장은행이 네 번째 대출을 진행했다.
장발장은행은 벌금 미납으로 교도소에 갇힐 위기에 놓인 이OO 씨(95년생) 등 13명에게 모두 2021만8000원 대출했다고 23일 밝혔다.
장발장은행은 이번 대출에 앞서 세 차례의 대출을 진행했다. 세 번에 걸쳐 진행한 대출은 47명에게 총 8,278만8,000원 규모다.
장발장은행의 모든 대출은 모두 무이자, 무담보로 진행하며 지금까지 개인, 기관, 단체 등 449명이 8,714만4,412원의 성금을 모았다.
장발장은행은 23일 현재 400여만 원의 잔고가 남아 있다고 밝혔다.
장발장, 그리고 ‘장발장은행’
최권행 /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교수
『레미제라블』이라는 빅토르 위고의 대작을 완독한 사람은 적을지 몰라도, 프랑스 문학 하면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이름 중 하나가 장발장일 것이다.
대혁명으로 모든 것이 붕괴된 사회에서 변전을 거듭하다 마침내 공화국이 확립되는 프랑스 19세기에 삶의 의미와 방향을 지시해주는 역할을 맡은 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고 문학이었으니, 1885년 타계한 빅토르 위고의 장례에 운집한 200만 군중의 애도가 그것을 보여준다.
애도객들은 필경 장발장의 위고를 생각하였으리라. 왕정주의자로 출발한 위고는 자유주의, 공화주의로 그 입장이 바뀌어 가지만, 그를 움직이는 것은 늘 관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구체적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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