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와 핵 없는 한반도 평화
“필자는 바이든 시대에 북핵 해법을 위해 미국이 빅딜 접근 방식을 선택하지 않길 바란다. 그 이유는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전 행정부의 빅딜 접근법은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전략이다.”
바이든 시대, 핵 없는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이 순탄할까?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새 외교안보팀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특히 창의적인 북핵 해법 모색을 위해 포괄적 대북정책을 검토 중이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향후 대북 정책이 양파 벗기듯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트럼프 전 행정부의 일괄타결(빅딜)식 접근과 북한의 ‘단계적 접근’ 방식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제3의 ‘창의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과거 북미 간 북핵 실무협상의 핵심 쟁점을 검토한 후 바이든 행정부의 새 외교안보 팀이 창의적이고 바람직한 북핵 해법의 새 접근 방식의 선택을 위해 아래 필자의 정책 제언을 제시하니 심각히 고려해주길 바란다.
트럼프 시대,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핵심 쟁점은?
트럼프 전 행정부가 북한과의 북핵 협상에서 실패한 원인을 먼저 평가해보고자 한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트럼프-김정은 북미 정상회동이 있었다. 그 후 3개월 만에 오랜 진통 끝에 스웨덴에서 비건-김명길 간 마지막 북미 실무협상이 2019년 10월 5일에 개최되었다. 그러나 북미 간 상이한 접근과 북핵 해법으로 인해 북미 간 합의에 실패하고 결렬로 끝났다. 현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스웨덴 실무회담에서 논의된 북미 간 상이한 해법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향후 북미 간 실무협상이 재개되면 북미 간 핵심 쟁점부터 합의가 필요하다.
필자는 스웨덴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근본 이유는 북미 간 상이한 제안과 해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북미 간 실무협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무엇이 문제인가를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미국의 제안, 입장 및 해법을 먼저 살펴보자. 첫째로, 북한의 핵무기와 핵 물질을 미국으로 인도하기로 북한이 약속하고 핵시설, 생물 화학 무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관련시설 완전 해체를 미국이 요구하였다. 둘째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완전 폐기하고,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는 ‘영변 플러스(+) 알파’ 이행을 주장하여 미국이 선(先)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고집하였다.
북한이 미국의 두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미국은 아래와 같이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1) 미국은 대북제재 완화 조치로 석탄과 섬유 수출 금지에 대해 일시적으로 유보를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미국이 처음으로 제시한 대북 제재 완화 조치이다. 그리고 유엔제재의 일부를 완화하고 인도적 경제지원도 약속하였다. (2) 미국은 북한 체제 보장의 일환으로 종전선언도 제안하였다. 그리고 (3) 제3차 북미 정상회담도 제안하였다.
한편, 북한은 미국의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였고 대신 5개 조건을 제시했다. (1) 미국의 제재 완화 조건이 과도하다고 불만을 표출하였으며 전면적인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그리고 북한이 자발적으로 대륙간장거리탄도미사일(ICBM) 시험 중단과 핵실험의 중단,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 등 북한이 이미 행한 선제조치에 대한 미국의 선(先) 상응조치를 요구하였다. (2)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였다, (3) 북한은 한반도에 미국의 첨단 전략무기 배치 중단을 요구하였다, (4) 미국이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폭격기 등의 한반도 전개 중단을 요구하였다. (5) 북한은 미국이 먼저 북한의 선제 조치에 대해 단계적인 보상조치를 요구한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트럼프 전 행정부의 마지막 제안의 문제점은 ‘선(先) 북한의 비핵화 조치, 후(後) 미국의 보상’이라는 종래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이런 미국의 해법은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 접근’과 배치되기 때문에 북한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의 새롭고 구체적인 셈법을 요구하였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향후 북미 간 실무협상에서 풀어야 할 과제이다. 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있으려면 미국이 선(先) 비핵화 조치 요구를 고집하지 말고 북한의 동시 행동-단계적 접근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구체적인 셈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북미 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상이한 접근과 해법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북미 간 합의를 도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이든 시대에 북미 양국이 각자의 해법을 고집한다면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모색하지 못할 것이다.
일괄타결식 접근 vs. 단계적 접근
트럼프 전 행정부의 ‘일괄타결(빅딜)식 접근’과 북한의 ‘단계적 접근’ 방식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관련하여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1월25일 미국의 대북 외교 현황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CRS는 보고서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북핵 협상과 관련해 단계적인 폐기 방식과 일괄타결방식(빅딜) 간의 선택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은 대북 협상이 재개되면 북미 간 실무회담을 통해 첫 번째 선택은 미국이 점차적인 제재 완화에 발맞춰 점진적인 북핵 폐기 목표로 접근할 것인가? 두 번째 선택은 완전한 비핵화가 완전한 제재 완화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빅딜’을 선택할지 이런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팀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빅딜인 리비아 방식이 아닌 단계적 접근인 이란식 해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정책 결정 과정과 협상 절차와 관련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하향식(Top Down) 방식이 아닌 바이든 행정부는 상향식(Bottom Up)으로 북미 간 실무협상을 통해 북핵을 점진적으로 폐기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의 견해이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 백악관 대변인이 첫 기자회견(2021.01.22)에서 북핵과 관련해 동맹과 조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전략이 조만간 발표되길 기대한다.
필자는 바이든 시대에 북핵 해법을 위해 미국이 빅딜 접근 방식을 선택하지 않길 바란다. 그 이유는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전 행정부의 빅딜 접근법은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전략이다. 그래서 북미 양측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진정성을 갖고 상호 양보와 타협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제3의 창의적인 접근방식에 합의하여 돌파구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퓨전(융합) 접근법(fusion approach) 선택이 바람직
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선택해야 할 바람직한 접근법으로 빅딜 해법과 북한의 단계적 해법을 하이브리드(hybrid) 한 “융합 접근법”(fusion approach)을 주장해왔다(필자의 퓨전 접근 제안은 ‘문재인 정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새로운 역할을 기대한다: 퓨전접근 제안’, 통일뉴스 2019.03.25 참고). 이런 제안은 미국이나 북한이 북핵 해결을 위한 상대방의 접근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제3의 창의적인 방식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제8차 노동당대회(2021년 1월 초 개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강조하였다. 북한 시각에서 본질적인 문제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북한체제의 보장 문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대북제재 완화 등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슈들을 먼저 해결하면 다른 비본질적인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당사자가 참여하는 다자 간 남·북·미·중 4자 국제회담을 주장하였다. 필자가 제안한 ‘융합 접근법’ 방식에 따라 다자회담에서 4자 당사국들이 북핵 해법의 입구론과 출구론에 먼저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단계적 로드맵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4자회담을 개최하여 비핵화 문제와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동시에 단계적으로 해결하자는 로드맵 제안이 창의적인 해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구체적 내용은 곽태환,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5단계 로드맵 구상, 통일뉴스, 2019.05.13 참고).
4자회담 틀 속에서 남북, 북미, 미중, 한중 등 여러 형태의 양자회담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 이슈별로 다자 위원회를 구성하여 협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한반도 문제 해결의 직접 당사국으로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단계적 로드맵을 마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미 양 정부는 이미 4.27 판문점 남북정상 공동성명에 합의한 남·북·미·중 4자회담을 개최하자고 합의한 바 있으며 4자회담에서 종전선언, 핵 동결, 부분적으로 대북제재 완화, 핵 관련 일지 공개, 핵 신고, 북미 외교관계의 정상화 협상, 평화체제 구축 등 많은 이슈들을 구체적으로 비핵화 이슈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슈와 병행 추진해 현실적으로 ‘긴장 완화를 위한 점진적 상호주의’(GRIT-Graduated Reciprocation in Tension-reduction) 전략을 적용하여 추진한다면 핵 없는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것이다.
현재 북한은 국내적으로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국경을 폐쇄한 후 북한 인민들은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태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에 태풍과 대홍수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체제의 위기와 함께 북한 지도층은 피포위강박증(Siege Mentality)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번 제8회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에서 나타난 북한지도부의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었다.
김 위원장은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라고 제안하고 최근 몇 년 동안 문재인 정부가 첨단군사장비 반입을 중지하고 더욱이 한미연합훈련을 중지하면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양측이 최소한 북한 지도층이 피포위강박증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 주면 남북·북미 관계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 양측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유인하여 정상국가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협상에 임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따라서 조만간 4자회담을 개최하여 먼저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단계적 로드맵에 합의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북미 양측이 진정성을 갖고 상호 양보와 타협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핵이 없고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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