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현실이란 무엇인가?
경험의 시대, ‘대체현실 게임’을 주목하라...절대 잊지 못할 이야기, ‘미시감 내러티브’
사람과사회™
2019 여름·가을 제3권 제2·3호 통권 제10·11호
ISSN 2635-876X 92·93
기고
대체현실이란 무엇인가?
경험의 시대, ‘대체현실 게임’을 주목하라
절대 잊지 못할 이야기, ‘미시감 내러티브’
송인혁 유니크굿컴퍼니 대표
어떤 남자가 미국으로 출장을 갔다. 업무를 마쳤고 다음날 오전 귀국하기 전까지 저녁 시간이 남았다. 할 일도 없는데 술이나 한 잔 하고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인근의 바(BAR)로 갔다. 그런데 바텐더에게 주문을 하려고 서 있는데 한 여성이 자신에게 눈길을 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 내가 좀 괜찮은 남자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 여자, 곧 남자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말을 건다! “출장오신 것 맞죠? 저도요. 동변상련이라고, 고생이 많으시죠? 제가 술 한 잔 사도 될까요?”라며 술을 대신 주문한다. 와우, 이런 멋진 일이 내게도 생기는구나!
그런데 잠깐, 아무리 내가 괜찮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그것도 모르는 여자가 보자마자 술을 산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자, 여자는 웃으며 “저 꽃뱀 아니에요.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바를 나가 버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앗, 나 혼자 설레발을 친 거군…….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대시라도 해 볼걸! 잠깐, 그런데 나 아직 괜찮은 모양인데? 하하!’ 하며 여자가 사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의식을 잃어 버렸다. 눈을 뜨자, 이 남자, 욕조에 누워 있다. 술을 너무 마셨나……. 그런데, 잉? 자기가 있는 욕조, 얼음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욕조 옆에는 탁자가 있고, 그 탁자 위에 휴대폰과 메모지가 놓여 있다. 메모지에는 ‘절대 움직이지 말고 지금 당장 911로 전화하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뭔지 몰랐지만 갑자기 공포심이 올라왔다. 즉시 휴대폰을 집어 911로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콜센터 요원은 익숙한 듯 차분히 대답했다. “혹시 손을 뻗어 등이나 허리 쪽으로 고무 튜브 같은 게 만져지는 게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제야 배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세상에 배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리고 튜브가 튀어 나와 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요원은 분명하게 또렷하게 “침착하게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세요. 아무래도 귀하는 지금 장기 밀매를 당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참고로 이 이야기는 가장 있을 법한 가짜 이야기 중 하나다. 예시가 다소 이상하더라도 오늘의 주제를 살리기 위한 소재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이야기를 한 번 접하게 되면 기억하려고 전혀 애를 쓰지 않아도 생생하게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고 심지어 그대로 주변에도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눈을 감고 테스트를 해 봐도 좋다. 남자가 어디에 갔는가? 남자는 누구를 만났는가? 남자는 어디에서 눈을 떴을까? 욕조 안에는 무엇이 있었나? 욕조 옆에는? 메모지에는 뭐라고? 남자는 어떤 상황 속에 빠진 건가? 그냥 대충 눈으로 읽었음에도 생생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여행, 바, 술, 여자, 욕조, 얼음물, 튜브…….
모든 것이 머리에 생생하게 떠오르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 전개가 펼쳐진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일까? 많은 경우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사실을 기억하려고 노력해도 돌아서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단 한 번만 듣거나 접해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든다. 비밀은 기억을 일으키는 미시감(未視感)이라는 몰입 감정 때문이다.
미시감은 수력발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수력 발전이 물의 낙차를 이용한 위치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이듯, 감정의 낙차가 생겼을 때 일어나는 감정 에너지가 바로 미시감이다. 즉, 감정을 촉발시킬 때 그 감정의 강도 차이만큼 사람은 놀라거나 흥분하거나 감동하게 되는데, 이런 감정은 고스란히 몰입을 낳고 기억하는 데에 사용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 잘못을 해서 야단을 맞았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이유다. 학창 시절 수능 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려 노력했던 교과서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본 소감을 설명을 할 때면, 감독이나 배우의 디테일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전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미시감과 몰입 세 단계, 그리고 ‘대체현실’
미시감은 그 강도와 확산성에 따라 세 단계의 몰입으로 구분한다. 오감의 자극이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감각적 몰입’이 일어난다. 본능적인 감각이자 반응이다. 다만 이렇게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주변과 공유할 수가 없다. 상대방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감정을 촉발한 대상이나 상황, 목적에 대해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상황이 생기게 되면 생각의 양이 훨씬 늘어나면서 보다 넓은 형태의 몰입 감정이 생기는데 이를 ‘인지적 몰입’이라고 한다. 이른바 정보나 지식의 형태로 공유되기 시작하며 확산이 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마지막으로 대상의 이야기와 배경에 완전히 참여해서 자신의 상황처럼 인지하게 만드는 단계로 ‘정서적 몰입’이라고 부른다. 이는 발전기가 자석이 N극과 S극 사이를 회전하며 일으키는 유도전류처럼 감정의 촉발을 주기적으로 일으키며 감정 에너지가 고조되도록 만드는 것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내러티브라고 부르는, 이른바 공명을 일으키는 방법이다.
자, 이쯤에서 다시, 남자는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하면 여지없이 당신은 욕조를 떠올릴 것이다. 즉, 개연성 있는 가상의 이야기를 전개하며 감정을 촉발시키는 장치들을 주기적으로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몰입감을 지속시키고 고조시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서적 몰입은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되고 그 결론에 따라서 감동에 몸을 떨거나 아쉬움과 공허함으로 멍해지게 만들기도 하며 심지어 주인공의 상황에 과몰입한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그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개되기를 바라며 그 속에 내가 포함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마치 실존하는 세상처럼 또 다른 세계관을 설정하고 그 속의 다양한 내러티브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세계를 우리는 ‘대체현실(Alternative Reality)’이라고 부른다.
현실 세계와 동화, 그리고 무한 시공간 세계
2019년 4월, 세계는 막 개봉한 마블의 인기 시리즈 ‘어벤저스: 엔드 게임’(Avengers: Endgame) 편의 개봉으로 들끓었다. 한국은 물론 북미를 비롯해 세계 주요 영화 예매 사이트는 티켓을 구매하려는 이들로 서버가 다운되기를 반복했고 불과 6시간 만에 영화사상 최고 예매 성적을 거두었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24시간 기록을 갈아치웠다. 한국 역시 가볍게 천만 관객을 넘으며 역대 성적 1위를 기록했고, 그 열기를 보여주듯 어벤저스 영화의 관람 횟수를 의미하는 N차 관람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재관람 열기가 대단했다.
MIT 공대 건물 지붕이 캡틴 아메리카를 기리는 방패가 설치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끄는 이벤트가 펼쳐질 정도였으니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엔드 게임이 예외적인 경우였을까 그렇지 않다. 전편인 엔드게임 역시 흥행 수익 20억 달러를 넘으며 당대 최고를 찍었고 ‘어벤저스: 인피티니 워’(Avengers: Infinity War)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어벤저스 세계관에서 스핀오프 형태로 다뤄진 블랙팬서와 캡틴 마블 역시 10억 달러를 넘으며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마블 영화의 특징은 현실 세계와의 오버랩이다. 실존하는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제1차, 2차 세계대전 등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과 히어로 세계관을 적절히 결합한 대체현실을 구성해 놓은 형식이라 사실감을 더한다. 이와는 반대로 ‘매트릭스’, ‘스타워즈’, ‘스타트렉’, 그리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되지만, 그 속에서의 연대기를 확립하며 지속적인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품들 역시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압도적인 정서적 몰입감을 일으키며 강력한 바이럴과 흥행 효과를 거두는 대체현실 세계관의 힘, 당연히 자본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월트디즈니는 스타워즈로 유명한 루카스필름(Lucasfilm)을 인수한데 이어 마블 스튜디오, 21세기폭스까지 인수하며 세계관을 가진 이야기를 거침없이 빨아들이고 있다. 월트디즈니는 여전히 ‘백설공주’나 ‘피터팬’, ‘라이언 킹’ 등 고전 동화 애니메이션이나 테마파크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실상 이 회사는 ‘무형의 세계’를 사들이는 과정에 있다.
디즈니는 2006년 ‘토이 스토리’로 익숙한 픽사(Pixar Animation Studios)를 인수했고, 2009년에는 ‘수퍼 히어로’(Superhero) 이야기의 양대 산맥인 DC(DC Comics)와 마블(Marvel Comics) 중에서 마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인디아나 존스’와 ‘스타워즈’의 루카스필름마저 사들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소년 소녀들의 꿈과 모험의 옛날 동화적인 세계에서 현대적인 토이 스토리를 덧붙이고,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 맨, 헐크,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수퍼 히어로가 지구를 지키는 어벤져스를 결성한 것이다. 여기에 이번에 21세기폭스가 가세하면서 ‘아바타’에 ‘혹성탈출’, 게다가 ‘엑스맨’까지 이어지면서 그 세계를 우주 밖으로, 시공간의 경계를 무한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지점까지 넘보게 된 것이다.
대체현실을 넘어 대체현실게임으로 진화
대체현실게임(Alternative Reality Game, ARG)은 대체현실 세계 속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가정(假定) 속으로 참여자가 직접 이야기에 참여해 사건을 풀어가는 게임을 일컫는다. 영화나 소설로만 접하는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풀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보다 압도적인 몰입감을 제시하며 참여를 끌어내는 방식의 게임이다. ARG는 방식과 수준에 따라 웹페이지처럼 가상의 공간에 있는 정보나 캠페인에 네티즌이 참여하는 것도 있고, 실제 현실 공간의 지형·지물을 활용해 보물찾기를 하듯 현장에서 단서를 풀어가며 이야기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대체현실게임은 2001년 인공지능을 다룬 SF 영화 ‘AI’를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본격 시도하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AI’ 개봉에 앞서 일부 온라인 뉴스 매체에 AI와 관련해서 ‘에반 챈(Evan Chan)이 살해당했다. 제닌 살라(Jeanine Salla)가 열쇠다. 에반 챈이 누구인가?’ 등에 대한 기사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뉴스지?’라며 들여다보기 시작한 팬들은 영화 포스터 상에 등장하는 독특한 역할의 감각기계치료사(Sentient Machine Therapist)의 제닌을 찾아낸다.
즉시 그녀를 찾아보니 방갈로르세계대학(Bagalore World University)에 근무하고 있고 실제 전화번호까지 공개하고 있어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팬들을 위한 대체현실을 담은 웹페이지였다. 이 사이트를 포함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검색해 실재하는 듯한 영화 ‘AI’의 세계관과 제작 정보를 스스로 낱낱이 탐색하게 만드는 작전이었다.
결국 막대한 광고비를 집행하는 대신 가상의 대체현실게임을 만들어 100만 명 이상이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흥행을 만들어냈다. 2008년 개봉한 ‘다크나이트’ 역시 조커 추종자와 지방검사 하비덴트 추종자가 보물찾기를 하듯 퍼즐을 풀어가며 사전 게임을 벌이는 방식이었다. 대체현실게임을 접목한 프로모션이었는데, 1000만 명 이상의 참여자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대체현실게임은 영화 프로모션에만 적용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제준 연구소’(Jejune Institute)는 샌프란시스코에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개최된 대체현실게임이다. 참가자는 게임 시작 장소인 캘리포니아가 580(580 California Street) 건물의 한 오피스텔 방에서 미리 비치된 영상을 통해 진행하는 게임이다. 사이비 종교집단으로부터 인간의 기, 시간을 저장하는 카메라, 우주를 지배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퍼즐로 채워진 미션 지도를 손에 쥐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시내 전역을 탐색하는 방식이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이 게임은 임무, 즉 퀘스트(Quest)를 통해 지역의 특색 있는 명소와 역사적인 사건을 개연성 있는 세계관에 입혀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관광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혁신적인 경험형 게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필자 역시 ‘리얼월드’(https://realworld.kr/)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체현실게임 플랫폼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현실 공간에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입히고 이를 지도, 퍼즐 등을 담은 아날로그 툴 킷과 AR, 전화, 포토 프레임 등의 기능을 지원하는 디지털 시스템을 활용해 실감나는 대체현실게임을 즐길 수 있는 솔루션이다.
‘태양단의 비밀’은 세계 최초의 금속 활판 인쇄물 ‘직지’와 세계 유일의 자질 문자 시스템 ‘한글’에 숨어 있는 비밀을 파헤치는 국운을 깨우는 보물을 찾는 게임이다. 보물은 서울, 전주, 부산 등 세 지역에 숨겨놓았다. ‘작전명 소원’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군과 스파이를 피해 상해임시정부로 독립 자금을 전달하는 설정을 세계관으로 삼아 정동길 일대를 배경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 게임들은 역사를 소재로 하는 게임인 데다가 2시간 동안 1만 5000보 이상을 걸어야 하는 대규모 공간 게임이라는 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자가 5만 명을 넘었다. 또 만족도와 추천도가 각각 98%를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인 만족감을 기록했다.
대체현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바야흐로 세계는 이제 ‘정보(?)의 시대’에서 해시태그로 대변되는 ‘관심(#)의 시대’로, 그리고 나아가 ‘경험(!) 시대’로의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상 최악의 경기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고 연일 부정적인 경제 기사가 보도되고 있지만 만나고 대화하고 경험하는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공항은 이제 출국자가 출입자의 두 배에 달하고, 전국 주요 도시가 천만 관광객의 시대가 되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매일 커피를 마셨고,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씀씀이를 줄여도 통신과 관련된 비용은 줄이기가 어려워하고 있다. 과거에는 ‘뭐가 있지?’ 하는 정보가 중요한 시대였다면 최근에는 ‘뭐가 있지?’, ‘어디 가지?’를 궁금해 하는 ‘관심의 시대’가 되었고, 마침내 ‘뭐하지?’라는 ‘경험을 묻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다른 유관 산업들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경험과 관련한 것들은 계속해서 성장을 하고 있다.
전 세계 1억 건이 넘는 숙박 공유 서비스의 에어비앤비(Airbnb)는 2017년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을 ‘숙박’에서 ‘트립’, 즉 ‘경험’으로 바꾸겠노라고 선언했다. ‘야놀자’, ‘여기어때’ 같은 국내 숙박 서비스도 요즘엔 ‘액티비티’(Activity)라는 이름으로 ‘거기 가서 뭐하고 놀건데?’를 제시하는 형태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 등 주요 관광 선진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오면 가 봐야 할, 먹어봐야 할 장소 100선을 홍보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당신이 이곳에서 겪어보기를 추천하는 ‘경험 100선’ 방식의 트립을 소개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 1시간 안에 제한 공간을 탈출해야 하는 방 탈출 카페부터 야외, 지역 공간을 이동하며 과제를 해결하는 야외형 챌린지 프로그램들이 전년 대비 10배 이상 성장하고 있다.
멀리 보지 않더라도, 근래 국내 케이블 방송 다수의 프로그램도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퍼즐챌린지가 주제인 경우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도 구글과 애플은 AR 기술을 OS에 내재화해 사용자의 현실 경험을 더 강화시키는 사업에 엄청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트코인으로 유명해진 그래픽카드 회사 엔비디아 CEO 젠슨 황(Jensen Huang)도 그들의 비전은 1조 개가 넘는 현실 공간의 사물을 연결해 사용자와 상호작용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콘텐츠 분야의 제왕 월트디즈니 역시 마블에 이어 21세기폭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인수했던 것도 ‘세계관을 가진 이야기의 흡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테마파크, TV 프로그램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다.
세계는 이제 하루 종일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다. 즉, 의식이 연결되어 흥미로운 감정을 일으키는 미시감이 흘러 다니고 있다. 정보 대신 내러티브(Narrative)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때문에 이제 다시 필요한 것은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의 ‘스토리’다. 그저 책이나 스크린으로 보는 용도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형태를 갖춘 이야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경험해야 할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함께 공유하고 회자시킬 만한 내러티브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스팟 성격의 방문이 아니라 여정을 경험하고, 관람이 아니라 참여하며, 기록이 아니라 기억할 수 있는 형태로 변모할 것이다. 정보가 연결되는 디지털의 시대에서 이제 사람들의 관심이 연결되고 광장으로 함께 걸어 나와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새롭게 열리는 경험의 시대, 우리는 현재 어디에 서 있는가. 대체현실을 주제로 지금의 변화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송인혁
유니크굿컴퍼니 대표다. KAIST 전산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SW 기획자이자 개발자로 일했다. 트위터와 협업도구를 사용해 186명의 집단지성을 모아 소셜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대중의 변화에 관한 통찰을 담은 『모두가 광장에 모이다』를 출간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소셜미디어의 힘을 입증했다. 몰입형 대체현실 게임인 ‘리얼월드’(2017)와 10억 명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열린더빙시스템인 ‘헬렌’(2018)을 개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컨텐츠 큐레이터로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TED 지역 이벤트 ‘20×20’ 등에도 참여했다. 서울관광스타트업 대상(2019, 리얼월드), 한국관광공사 올해의관광벤처 최우수상(2018, 리얼월드), 하나금융 하나파워챌린지 대상(2018, 헬렌)을 받았다. 저서로는 『유니크굿컴퍼니 : 선택이 일어나는 시장의 비밀』(2019), 『퍼펙트스톰 : 거대한 변화와 다가올 미래 그리고 기회』(2017), 『스파크 : 내 안에 숨겨진 생각의 불꽃을 터뜨려라』(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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