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싸움 그만하고 평화에 매진하자
북미는 기 싸움 그만하고 평화프로세스에 매진하자
곽태환 前 통일연구원 원장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김정은 북한 간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북한식 ‘전략적 인내심’이 소진된 것 같아 북미 간 적대적 관계가 고조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북한은 지난 3월 21일 서해상으로 2발의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이어서 3월 25일 동해상으로 2발의 신형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했다. 이번 발사는 유엔 결의 위반임을 알면서도 강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해 바이든 미 대통령은 북한이 예상한데로 기자회견(3.25)에서 북한의 시험발사는 유엔결의 1718 위반(2006)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들(북한)이 긴장 고조를 선택한다면 대응이 있을 것이다. 상응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외교적 수단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등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살벌하였다. 신형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를 지도한 군부 서열 2인자인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비서는 담화(3.26)를 통해 “이번에 진행된 신형 전술유도탄 시험발사는 우리 당과 정부가 국가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제시한 국방과학정책 목표들을 관철해 나가는 데서 거친 하나의 공정으로서 주권국가의 당당한 자위권에 속하는 행동”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리병철은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해 “우리 국가의 자위권에 속하는 정상적인 무기시험을 두고 미국의 집권자가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걸고 들며 극도로 체질화된 대조선 적대감을 숨김없이 드러낸 데 대하여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리병철 비서는 또한 “나는 미국의 새 정권이 분명 첫 시작을 잘못 떼였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앞뒤 계산도 못하고 아무런 말이나 계속 망탕(마구잡이로 하는)하는 경우 미국은 좋지 못한 일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우리는 계속하여 가장 철저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미국은 핵전략 자산들을 때 없이 조선반도에 들이밀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려도 되지만 교전 상대인 우리는 전술무기시험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강도적 논리”라며 “미국이 대양 건너 교전 일방의 앞마당에서 벌려 놓는 전쟁연습이 ‘방어적’인 것이라면 우리도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미국 본토에서 제압할 수 있는 당당한 자위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북한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결의의 대상자이기 때문에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며 유엔결의를 존중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리병철이 군부 서열 2인자임을 고려할 때 그의 담화(3.26)는 사실상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번 담화는 최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3.15),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3.17) 담화 내용보다 강하다. 김여정-최선희 담화는 미국의 ‘강압적인 자세’에 불만을 표하면서도 미국의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필자의 통일뉴스 2021년 3월 20일자 칼럼 ‘김여정·최선희 담화의 핵심 메시지는?’ 참조).
그러나 리병철 부위원장의 담화 내용은 바이든 대통령의 ‘유엔결의 1718호 위반’ 발언에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국가 국방력 강화를 위해 미사일 시험발사는 주권 국가의 자위권 행위라고 정당화하면서 향후 발사를 계속하겠다고 경고하는 등 북미관계가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군은 최소 매년 20여 차례 이상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전 JTBC가 국방과학연구소의 미사일 시험발사 내역을 토대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한국군이 충남 태안의 안흥시험장에서 최소 54차례 이상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북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하는 전술지대지유도미사일, 장거리지대공미사일, 한미미사일지침에 따라 사거리를 800km로 제한한 단거리탄도미사일 ‘현무’도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번 신형 유도탄 시험발사와 관련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면서 한국은 미사일 시험 발사해도 괜찮고 북한은 하면 안 된다는 논리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일각에서 문제제기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북한은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당사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싶다. 그러므로 북한은 책임 있는 유엔 회원국으로 유엔결의를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자 한다.
리병철 당 비서의 담화의 메시지는 심각하다. 북한은 국가 국방력 강화를 위해 향후 계속해서 미사일 발사를 암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북한은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의 의미를 재강조했다.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남한이 신 전략적 첨단무기 도입 중지를 강조했다. 리병철은 한미 양측이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할 생각이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통일뉴스 칼럼을 통해 반복적으로 김정은 당 총비서가 제안한 한반도 비핵화의 2개 전제조건을 한미 양측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복원, 대화,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2020년 9월 1일자 칼럼 북한이 핵무기보유를 포기할까? 참고).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 전략을 곧 발표한다고 알려졌다. 새로운 대북 전략의 실체가 무엇인지가 우리의 최대 관심사다. 미국은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 간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북한에게 북한이 원하는 새로운 ‘셈법’을 제안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면서 약간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별 관심이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소극적 태도로 북핵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할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다.
과연 북미 간 실무협상이 이뤄질까? 미국이 어떤 양보를 할까? 이에 대해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가장 주요한 질문은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미중패권시대에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과연 미국이 원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이 조만간 나타나길 바란다.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북한이 이번 시험발사를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정한 바이든 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분노와 불만을 토로하는 등 북미 간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판단된다. 북한은 ‘강대강·선대선’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고 있지만, 미국도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응’을 경고하고 있어 향후 북미 간 대화가 잘 이뤄질지도 의심스럽다.
여기에는 단순히 이번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대응뿐 아니라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 결의안 참여와 토니 블린컨(Tony Blinken) 국무부장관의 방한 기간 북한인권 비판 등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모든 북미 간 적대적 상호작용은 향후 기대되는 북미 간 건설적인 대화나 협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불안하기만 하다.
며칠 전 김여정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 또 막말을 했다. 이번에는 지난 3월 26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를 문제 삼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입에 담기 힘든 막말을 하여 대한민국의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저는 북의 이번 미사일 발사에 국민 여러분 모두의 우려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남, 북, 미 모두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대화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언급한 말을 문제 삼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여정 부부장의 입을 빌려 대한민국의 국가수반을 모독하는 막말을 퍼부었다. 김여정은 “이처럼 비논리적이고 후안무치한 행태는 우리의 자위권을 유엔결의 위반이니,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이니 하고 걸고 드는 미국의 강도적인 주장을 덜함도 더함도 없이 신통하게 빼 닮은 꼴이다. 미국산 앵무새라고 칭찬해주어도 노여울 것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문 대통령을 이렇게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김 부부장의 막말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자성이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북한과 미국의 두 정상에게 호소한다. 항구적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원한다면 대화 분위기 조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북미 간 막말하는 기 싸움을 중단하기 바란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큰 틀에서 상호 양보와 타협의 자세로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의 장에 나와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도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단계적 로드맵을 준비하여 북미 양측을 설득할 수 있도록 한반도 문제 당사자 역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한다.
※ 이 글은 통일뉴스에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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