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에 전략·상상 담아야”
최근 북한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미국·중국 움직임에 관한 단상
임혁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가 28일 페이스북에 ‘최근 북한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미국·중국 움직임에 관한 단상’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임 교수의 허락을 받아 글을 공유한다. 임 교수는 이 글에서 “전략과 상상이 있는 외교정책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편집자 주>
최근 북한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미국·중국 움직임에 관한 단상
“우리는 허쉬만(A. O. Hirschman)이 이야기한 것처럼 감정(passion)보다는 이익(interests)을 위에 두고 우리의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략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에 바탕을 둔 외교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병신년(丙申年) 원단(元旦) 1월 6일에 북한은 수소폭탄을 실험했다고 발표했고 발사의 여진을 중국 국경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한다.
미국과 한국은 수소폭탄이 아니라 원자폭탄이라고 의미를 축소했지만 정규 수소폭탄은 아닐지 몰라도 경량화된(miniaturized) 수소폭탄 또는 원자폭탄 실험이었던 것 같다. 최근 미국이 가장 걱정하는 북핵 부분이 경량화, 소형화(miniaturization)이다. 왜냐하면 소형화된 핵폭탄은 쉽게 이동이 가능해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핵이 미국본토를 위협하기 전까지는 유엔을 통한 제재를 계속하면서 가만히 앉아서 북한독재체제의 붕괴를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계속해 왔다. 그런데 북한이 예고한 핵실험이 이전과는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을 알게 된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저지하기 위해서 2015년 12월 북한 핵실험 며칠 전에 뉴욕에서 북한과 비밀 대화와 협상을 했다.
대화에서 미국과의 평화협정 논의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북한의 제안을 수락하면서까지 비밀협상을 하게 된 것은 미국이 그만큼 다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보수신문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대화에서 북한은 선 평화협정, 북한이 체제안전보장, 후 비핵화를 주장했고, 미국은 선 북한 비핵화, 후 북한과의 평화협정 논의로 응답했다.
북한은 선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이지 않자 회담을 끝내고, 다음 달 6일에 예정대로 핵실험을 감행했다. 자신들이 수소폭탄이라고 부르는 핵실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전략적 인내로 반응하자 북한은 다시 예고한 ‘인공위성’(한국과 미국에서는 long range ballistic missile, 중국은 로켓 발사로 부름)을 발사했고 괘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구정인 춘절에 발사된 북한의 로켓 위성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진 슈퍼볼 경기장 위로 나르고 있었다.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과 중국은 기존의 정책이 북한의 핵 능력을 억제하기는커녕 키워주었다고 자성하고 새로운 북핵 해결책의 모색에 나섰다.
주역은 미국의 케리국무장관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다. 케리와 왕은 2월 12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만나 북핵문제를 논의하였다. 케리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에 적극나서줄 것을 요구하였고 왕은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 회담의 핵은 미중이 북한 제재 강화에 합의한 것이 아니라 6자회담을 재개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데 합의함으로써 다자적 개입(관여, engagement) 정책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었다.
왕이는 뮌헨에서의 케리와의 합의에 이어서, 북핵 문제를 한반도 비핵화와 미북평화협정이라는 투 트랙(two tracks) 협상을 동시에 병행하자는 새로운 관여 정책을 제시했다.
왕이의 투 트랙 협상안은 2월 17일 호주 외상 줄리 비숍과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발표했고, 2월 24일 미국국무장관 존 케리와의 워싱턴 회담에서 케리에게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에 중국이 동참하는데 대한 대가를 투 트랙을 수용하고 한미중 간에 현안이 되고 있는 사드 배치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왕이의 투 트랙에 대해 케리는 북미평화회담을 6자회담의 의제에 올리는 데는 동의하지만 미국 정책의 첫째 우선순위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러나 케리가 왕이의 투 트랙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수용한 것은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의 큰 방향 전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왕이의 방미 중 중국이 더 강력한 제재에 합의한 것은 미국의 사드 배치 위협과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 암묵적 반대에서 수용으로 정책변경이 작동했다고 주장하나, 중국 당국과 왕이는 공식적으로 북한핵개발과 북한을 핵보유국을 인정하는데 대한 중국의 반대는 일관된 것이고, 그것은 중국의 국익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따라서 사드 배치 양보를 미국으로부터 얻어 내기 위해 중국이 북핵 제재에 양보한 것이 아니고, 중국의 북한 제재에 적극적 참여를 얻어내기 위해 미국이 중국의 투 트랙 전략에 합의해 준 측면이 더 강하지 않나 생각된다.
실제로 이번 대북 제재 안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하지만 중국이 민수용 연료와 인도적 지원과 거래 등을 제재 리스트에서 빼놓음으로써 제재가 북한의 체제붕괴나 북핵 개발 중단으로까지 이어질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 6차례 대북 제재가 실시되었지만 북한 제재 기간 중 핵개발을 더 가속화시키는 역설적 결과만 나왔을 뿐 인데 이번도 예외가 될 것 같지 않다.
이번 미국과 중국의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은 제재에 기반을 두어서 북한 정권의 붕괴를 인내 있게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 정책이 두 차례의 북한 핵도발로 파탄을 맞았다고 자인하면서 당분간 제재의 수준을 높이면서 북한을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는 ‘압박을 통한 관여’ (engagement through pressures or offensive engagement) 정책으로 방향 선회를 한 것 같다.
중국은 투 트랙 (한반도 비핵화와 미북평화협정 동시 추진)을 통해서 선 평화협정 후 비핵화를 고집하고 있는 북한과 접점을 찾으면서, 유엔 제재리스트에서 북한의 생존에 필수적인 빼주는 시혜를 베풀면서 북한과 순망치한의 우호관계를 회복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사드 배치 철회를 얻어냄으로써 6자회담 관여정책의 호스트 국가로서의 권위를 확보하고 동북아 평화를 주도하는 데 있어서 이제까지 소극적인 현상유지자에서 적극적 관여를 통해 동북아 평화 만들기의 주도자가 되었다는 평판까지 얻게 된 실익과 명분을 챙겼다. 여기에 더하여 동북아시아의 G2 경쟁에서 미국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 효과까지 거두었다.
물론 비핵화를 북한과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로 해석하고,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로 해석함으로써 아직 인식론상(epystemological)의 간극을 좁히기가 어렵고,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시도하면서도 한국을 배제하려는 통미봉남을 계속 주장할 경우 한국의 반발이 회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물은 북한의 ‘선 한반도 비핵화 후 평화협정’,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와 미북평화협정 병행 추진’, 미국의 ‘선 북한 비핵화, 후 북미평화협정’, 그리고 한국의 ‘선 북한 비핵화 후 남북미중 평화협정’의 간극을 메우면서 다자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문제일 것이다.
최근의 두 차례의 북한의 도발에 이은 강대국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추적하면서 느낀 소감은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국가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이념과 도덕은 이를 정당화해주는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보이지 않고 고려 대상이 충분이 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허쉬만(A. O. Hirschman)이 이야기한 것처럼 감정(passion)보다는 이익(interests)을 위에 두고 우리의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략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고에 바탕을 둔 외교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눈 뜨고도 늑대에게 잡혀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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