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사람과사회 추천 수필]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조교(無給助敎)는 약혼을 한다. 종달새는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니, 모두들 햇빛 속에 고생을 잊어보자.”
조춘(早春, 이른 봄)
내게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계절이 바뀌는 것이요, 희망이 있다면 봄을 다시 보는 것이다. 내게 효과가 있는 다만 하나의 강장제는 따스한 햇빛이요, ‘토닉’이 되는 것은 흙냄새다. 이제는 얼었던 혈관이 풀리고 흐린 피가 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젊음’이 초록빛 ‘슈트케이스’를 마차에 싣고 넓어 보이는 길로 다시 올 것만 같다.
어제 나는 외투를 벗어 버리고 거리에 나갔다가 감기가 들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걸음걸이에 탄력이 오는 것을 느꼈다. 충분한 보상이다. 어려서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겨울이 되어 외투를 입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봄이 되어 외투를 벗는다는 것은 더 기쁜 일이다. 아무리 포근하고 보드라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십년이나 입어 정이 든 외투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말이 ‘조춘(早春)’이라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춘궁(春窮)’이다. ‘빈한(貧寒)’이란 말은 냉랭한 날씨 같이 오히려 좋은 데가 있다. 나는 영어로 ‘빈한’이 아니요, ‘한빈’이라는 말을 안다. 그러나 ‘춘궁’이란 말은 없는 듯하다.
봄이 오면 비둘기 목털에 윤이 나고 봄이 오면 젊은이는 가난을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스물여섯 된 무급조교(無給助敎)는 약혼을 한다. 종달새는 조금 먹고도 창공을 솟아오르니, 모두들 햇빛 속에 고생을 잊어보자. 말아두었던 화폭을 다시 펴 나가듯이 하루하루가 봄을 전개 시키려는 이때…….
-피천득, ‘조춘(早春)’, <인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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