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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세상을 바꾼다”

영국 대학 연구팀, “현상이 달라도 언어가 다르면 보는 눈 달라진다”...언어가 인간의 사고 형성에 미치는 인지과학자 논란에 새로운 계기 마련

“언어에 따라 세상은 다를까, 같을까”

영국 대학 연구팀, “현상이 달라도 언어가 다르면 보는 눈 달라진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 형성에 미치는 인지과학자 논란에 새로운 계기 마련

영국에서 언어와 인간의 사고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외국어를 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나 나와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형성한다는 논란에 새로운 계기를 줄 것으로 보인다.

파노스 아타나소풀로스(Panos Athanasopoulos) 영국 랭카스터대학교 교수(심리언어학) 연구진은 이중 언어 사용자들에게 눈길을 돌려 언어가 인간의 사고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우리는 고전적 논쟁을 반대편에서 접근했다”며 “즉 상이한 언어 사용자들이 상이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보다 이중 언어 사용자에게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아타나소풀로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영어와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에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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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언어 사용자는 사고가 유연한가

연구진에 따르면, 영어의 경우 행동을 시간에 귀속하는 문법 도구를 갖고 있지만 독일어는 없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나는 배를 타고 버뮤다로 가던 도중에 엘비스를 봤다’(I was sailing to Bermuda and I saw Elvis)와 ‘나는 배를 타고 버뮤다로 가서 엘비스를 봤다’(I sailed to Bermuda and I saw Elvis)는 뜻이 다르다는 것이다.

반면 독일어에는 이 같은 문법 도구가 없어 독일어 사용자는 사건의 시작, 경과, 결말을 명시하는 데 반해 영어 사용자는 결말을 생략하고 사람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동일한 사건을 보고서도 독일어 사용자들은 ‘한 남자가 집을 떠나 가게로 걸어간다’고 말하지만 영어 사용자들은 그냥 ‘한 남자가 걸어간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독일어 사용자와 영어 사용자는 동일한 현상을 서술하더라도 초점이 달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예컨대 한 여성이 여행을 하고 있다면, 독일어 사용자는 그녀의 행선지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영어 사용자는 그녀의 여행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에 대해 연구진은 “이중 언어 사용자는 사고가 유연해 두 가지 세계관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지과학자들은 1940년대 이후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형성하는가’의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여 왔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연구는 점점 더 많이 늘었다. 이에 따라 ‘언어는 말하는 사람에게 세상의 특정한 면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고 주장하면서 ‘모국어가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이 다시 등장했다.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영어 사용자들보다 푸른색을 더 잘 구분한다’는 연구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또한 ‘일본어 사용자들은 형태보다는 물질을 기준으로 해서 사물을 분류하는 경향이 있으며, 한국어 사용자들은 사물의 상호 조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회의론자들은 그런 연구결과는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고작해야 (언어와 무관한)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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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선지가 있는 행동’과 ‘행선지가 없는 행동’

파노스 아타나소풀로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영어와 독일어 사용자를 각각 15명씩 모집했다.

연구진은 이들에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거나, 운전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들을 보여줬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각 장면의 결말이 담긴 장면을 보여주면서 한 가지를 골라 보라고 했다.

예컨대 한 여성이 길을 걷는 동영상을 보여줬다면, ‘행선지가 있는 행동’(어느 건물에 들어감)과 ‘행선지가 없는 행동’(그냥 거리를 배회함)이 담긴 장면을 보여주며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를 추측해 보게 한 것이다.

그 결과, 독일어 사용자들은 40%가 ‘행선지가 있는 행동’을 선택한 데 비해 영어 사용자들은 25%가 ‘행선지가 있는 행동’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독일어 사용자들은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영어 사용자들은 행동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중 언어 사용자들은 어떨까? 연구진은 영어와 독일어에 모두 능통한 사람 30명을 모집해 동일한 시험을 진행했다. 실험 후 이중 언어 사용자들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그때그때 관점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진이 언어간섭(Verbal Interference) 기법을 이용해 한 가지 언어를 차단한 결과, 영어를 차단할 경우 참가자들은 전형적인 독일어 사용자처럼 ‘행선지가 있는 행동’을 선택했다.

반면 독일어를 차단한 경우 참가자들은 전형적인 영어 사용자처럼 ‘행선지가 없는 행동’을 선택했다.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인가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제2의 언어가 인간의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연구결과를 정리해 <Psychological Science>(2015년 3월호) 기고했다. 연구진은 “하나의 외국어를 더 배울 경우, 당신은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다”며 “음악을 들을 때 스테레오로 들으면 더욱 풍부한 음량을 느낄 수 있듯이 언어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필립 울프 에모리대학교 교수(인지과학)는 이번 연구에 대해 “인지과학 연구의 커다란 성과이며 ‘이중 언어 사용자가 두 가지 관점을 넘나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언어가 사고를 형성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 결과에 의심을 품고 있다.

바버라 몰트 리하이대학교 교수(인지심리학)는 “실험실에 조성된 인위적 환경으로 인해 참가자들이 일상생활에서보다 더 언어에 의존한 것 같다”고 논평했다.

그는 또 “나는 영어 사용자지만, 실생활에서 행동 자체는 물론 그 결말에도 관심을 가진다”며 “언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는 아니기 때문에 두 가지 관점을 모두 갖기 위해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 이 기사Science & AAAS 웹사이트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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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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