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 04 생명을 갖고 성장하는 미술품
화랑가에서 100만 원에 매매되는 미술품이 있다고 하자. 화가는 지금까지 500만 원에 팔아왔다고 하면서 계속 500만 원에 사가라고 종용한다. 그러면서 많이 깎아준다. 미술품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스스로 500만 원이 아니라 100만 원을 선택한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
사람과사회™
2019 여름·가을 제3권 제2·3호 통권 제10·11호
ISSN 2635-876X 92·93
연재 박정수,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004
사람과사회™는 박정수 정수화랑 대표(관장)가 쓴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BMK, 2007)를 간추려 연재합니다. 이 책은 ‘미술 재테크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미술과 재테크를 중심으로 쓴 책입니다. 현재 박 관장은 서울시 종로구에서 정수화랑과 현대미술경영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젊은 작가 후원과 지원, 아트 페어 참가, 좋은 작가 초대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과사회 thepeopleciety@gmail.com
생명을 갖고 성장하는 미술품
예측 불허의 시장 논리
화랑을 경영하는 어떤 분이 아주 힘들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을 당한 게 분명했다. 들어보니 어느 기업 경영주 사모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1억원이 조금 부족한 어떤 작품이 있는데 구매하겠노라는 연락이 왔더란다. 그래서 다른 화랑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 작품을 1억원 조금 덜 되는 가격으로 구매하기로 하였단다. 그날 오전까지 구매하겠노라는 의사를 밝혀 의심 없이 작품을 자신의 화랑으로 옮겨 놓았다. 그런데 오후 늦게 되어서야 구매 의사를 철회하겠노라는 연락이 왔다.
화랑 간의 거래에서는 일단 작품 구매 의사를 확정한 후에는 작품을 다시 돌려주지 않는다.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되어 있다. 때문에 1억에 가까운 돈을 자신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어떻게 하든 해결은 하겠지만 신용만 믿고 살 수 없는 곳이 미술시장이다. 이런 경우와 같이 수년 동안 화랑을 운영했던 사람조차도 늘 불안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그분은 그 작품을 어쩔 수 없이 떠안았지만 언젠가는 더 나은 가격으로 팔 수 있다. 하지만 1억이라는 금액이 본인이 원하지 않은 작품에 묶여 다른 좋은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경제 상황이나 시장 논리에 해박하고, 미술품 매매에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러면 미술시장에는 시장 논리가 없는가. 보통의 시장 논리와 마찬가지로 미술계도 시장 논리에 따라 판매가 이뤄지는 구조가 없지 않다. 만일, 기업 경영주 사모가 사고자 했던 미술품이 시장에서 스스로의 생명을 갖고 있지 못한 작품이었다면, 중개하려했던 화랑에서는 그 미술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작품에 관한 한 시장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구매가 가능했다. 생명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거래의 중요한 요소이다.
미술품의 생명력이란 무엇일까. 미술시장의 미술품은 누가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간다. 자신의 생명력 때문이다. 생명력, 한마디로 표현했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요소가 들어 있다. 작품의 가치, 선호도, 유행의 흐름, 시장의 투자 상황 등 온갖 요소가 집약되어 있다. 미술품은 혼자 그것들을 짊어지고 자신의 시장(가격과 거래)을 이끌어간다. 그 온갖 요소들이 미술품을 떠받친 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면서 거대한 흐름을 이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가격을 형성하는 미술품
“오늘 너무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청계천을 지나오는데 내 그림이 80만원에 걸려 있는 것이야. 어떻게 구한 것이냐 물어 봤더니 어떤 사람이 팔고 갔다 그러데. 참 나, 80만원이 뭐야. 그럼 내 작품이 호당 8만원밖에 안 나간단 말이야? 얼른 사버렸지. 여기 봐. 내가 몇 해 전에 판매한 그림인 것 같아. 누구한테 팔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야. 그리고 엊그제는 김포공항을 갔었는데 내 그림하고 똑같은 게 있더군. 누가 내 도록을 보고 베낀 것 같아. 기분이 나빠서 주인한테 그랬지. 그림 내리라고. 뭐라는 줄 알아? 가짜가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거야.”
원로 여성화가가 어느 날 흥분해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나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몇 분되지 않은 여성 화가중의 한 분이셨는데, 지금은 작품 거래가 거의 없는 분이다. 이렇게 미술품이 화가의 손을 떠나 미술시장에 떠다니며 스스로의 가격을 형성한다. 작가가 아무리 호당 50만원에 판매했다 해도 구매한 사람이 미술시장에 호당 5만원에 팔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오히려 호당 5만원에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면 그것이 더 반가운 일이다. 싸게 나왔다고 본인이 구매해 버리면 시장의 흐름을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화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지금 작품가를 내릴 순 없지. 지금까지 내 작품을 사간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
화가들은 자신의 미술품을 팔면서 ‘자식 시집장가 보내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자식들이 너무 많다. 시집장가 보냈으면 그네들 스스로 살게 놔두어야 한다. 그 많은 자식들을 언제까지 끼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들의 생명력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500만원에 판 자신의 작품이 화랑 가에서 100만원에 거래가 된다고 해서 화가가 이를 막을 수 없다. 막아서도 안 된다. 자신의 자식들이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화랑가에서 100만원에 매매되는 미술품이 있다고 하자. 화가는 지금까지 500만원에 팔아왔다고 하면서 계속 500만원에 사가라고 종용한다. 그러면서 많이 깎아준다. 미술품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스스로 500만원이 아니라 100만원을 선택한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거래
화랑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 미술품을 사고자 한다면 일정 정도의 계약금을 지불해야한다. 처음 하는 분들은 변심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단골 고객일 경우에는 계약서보다 안면으로 거래를 성사시킨다. 그래도 미술품이 살아 있기 때문에 시장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사람 관계를 튼튼히 해놓아야 하고, 미술에 대한 지식도 끊임없이 쌓아야 하고, 손해를 덜 볼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팔고 얼마나 차익을 챙겼는가는 다음 일이다. 좋은 작품을 선정하고, 각기 다른 미술품을 좋아하는 불특정 다수의 분들에게 적절한 소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화랑주들이 갖춰야 할 기본 개념이 아닌가 싶다.
화랑이나 대형 미술 전시장에서 작품에 대한 구매 의사는 누구나 밝힐 수 있다. 사고 싶으면 가격을 물어보고 사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된다. 그러나 고액의 거래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계약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판매 가능성은 90% 이하로 내려간다. 미술 구매에는 충동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 갈 때는 어떤 물건을 사야겠다는 목적이 있어서 가지만 미술품의 경우에는 어떤 것을 사겠다는 목적을 미리 정할 수 없다. 거래가 안정된 수천만원짜리 미술품들이야 작품 이미지 자체가 공개되어 있고 가격까지 정해진 것이라 관계없지만, 신생 미술품은 미리 볼 수 있는 샘플도 없고, 남의 집에 가서 훔쳐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미리 마음을 결정하기가 어렵다.
설혹 친구 집에서 어떤 화가의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 그 작가의 전시장을 방문했다 하더라도 친구 집에서 보았던 그림과는 감흥이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만나기 쉽다. 작품은 이렇게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독립된 개성을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화가나 이를 유통시키는 화랑이나 이를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이나, 그 누구도 작품 판매에 책임지지 않는다. 판매가 이뤄지게 되는 기본 요인은 작품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 화가가 나선다고 해서 또는 화랑이나 구매자가 나선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작품이 판매되는 이유는 오로지 작품 자신 때문이다. 작품 자체가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화가의 가슴과 손에서 탄생된 작품이라도 탄생되는 순간부터 독립된 개체로서 활동이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작품을 사겠다고 말했다 할지라도 집으로 돌아가면서 마음이 달라진다. 작품 가격이 높을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반면에 작품 가격이 아주 높다면 작품 스스로의 자생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변심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작품은 가격이 높다.
티핑 포인트
1. 미술시장의 미술품은 누가 간섭하지 않아도 시장 구성 요소라는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살아간다.
2. 미술품 구매에는 충동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계약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판매 가능성은 90% 이하로 내려간다.
3. 작품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작품이 판매되는 이유는 오로지 작품 자신 때문이며, 작품 자체가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생명체이다.
박정수
세종대학교 회화과,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롯데화랑 큐레이터, (주)종로아트 관장, 갤러리가이드 편집부장, 베네주엘라 피아 국제 아트페어 한국관 커미셔너, 제38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 미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 『미술·투자·감상』, 『그림 파는 남자의 발칙한 마케팅』, 『아트 앤 더 마켓』, 『미술 읽어주는 남자: 독화(讀畵) 또는 감상(鑑賞)』, 『고흐, 공자를 보다』 등이 있다. 현재 한남대학교 겸임 교수, 정수화랑 대표, 미술 창작 스튜디오 ‘창작공간 광명’ 대표, (사)한국미술협회 전시기획정책위원장, 광명예술협동조합 이사,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미술평론 위원, 미술 전문 잡지 『아트앤피플』(Art & People)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아트컨설팅, 아트마케팅, 아트페어 참가, 기업 및 대학 강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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