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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정치의 법치화, 정치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정화가 필요한데, 이러한 정화 과정을 완력으로 하면 그건 나쁜 혁명이다. 정치권의 정화를 위해서는 정당의 민주화, 선거의 민주화, 주민자치의 민주화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치제도의 선진화와 정치절차의 민주화가 합성(혼융)될 때 정치권의 온전한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정치(政治)’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썩은 ‘선비정신’과 다시 도지는 된장독 종복 근성

신성대 한국무예신문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5-04-25

예전에 케이블TV CHING 채널에 중국 사극 프로그램 『공자(孔子)』가 방영된 적이 있다. 5회 편에 보면 어린 시절 공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부, 오(吳)나라의 왕위계승권자임에도 왕 되기가 싫어 노(魯)나라에 주재하는 사신 역을 자청하여 공자의 집에 하숙하고 있던 계찰(季札)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소년 공자에게 식견을 높여주고자 성인식 관례(冠禮)를 치러준 후 함께 중국 고대사의 주요 사적지를 소오(笑傲) 주유(周遊)하며 ‘선비(士)’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듯 제후국가의 가신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선비’가 아니고, 요 임금, 순 임금, 우 임금을 원조 ‘선비’라고 가르치고 있다.

문과 급제하여 입신양명코자 글 읽던 조선 선비가 아닌 수십 년 황하 치수 작업으로 다리의 털이 모두 없어져버린 우(禹) 임금처럼 국민을 위해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의 국가지도자가 오리지널 ‘선비’인 것이다.

조선에서의 사(士)란 곧 문사(文士)를 일컫지만 일본이나 유럽은 무사(武士), 즉 기사(騎士)를 이르는 말이다. 기실 중국도 한(漢)나라 이전에는 문무(文武)의 구별이 없었다(TV 장면에서 공자는 수시로 칼을 차고 다닌다). 문사(文士)는 원래 사(士)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 시절의 사(士)란 곧 무사(武士)를 의미했었다. 당연히 벼슬은 군공(軍功)으로 나누었었다.

신라의 화랑, 서양의 기사, 일본의 사무라이는 문무겸전의 완성적인 인격체였다. 허나 중국과 한국은 과거제도를 시행하면서 문무(文武)가 구별되고 그에 따라 편향된 인격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편협하고 고집스럽고 배려심 없는 인성과 반쪽짜리 세계관은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상무숭덕(尙武崇德)의 무인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선비정신이다.

한중일 민족성과 씨름판

일본의 스모(相撲)는 둥그런 원탁처럼 생긴 씨름판에서 겨루는데, 상대를 바닥에 자빠트리거나 바깥으로 밀어내면 이긴다. 그러고 보면 판이 꼭 섬처럼 생겼다. 섬 밖으로 밀리면 바다에 빠져죽으니 진 것으로 치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이나 몽고와 같은 대륙의 씨름판은 특별한 경계가 없으며, 밀어내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지 않고 레슬링처럼 상대를 확실하게 제압시켜야 승부가 난다. 그 중간 쯤 되는 것이 한국의 씨름이다.

섬나라 민족들은 외적이 생기면 서로 뭉쳐 단결한다. 섬에서 밀려나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저항한다. 반대로 대륙 민족은 외침을 당하면 모조리 사방으로 흩어진다. 땅이 넓어 얼마든지 안전한 곳을 찾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후일을 도모할 수도 있고, 영원히 다른 곳에 자리 잡아 살아갈 수도 있다. 하여 굳이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외침을 당하면 쪼개지고 찢어져 분열한다. 싸울 것이냐 말 것이냐? 네 책임이냐 내 책임이냐? 지난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근자의 천안함 폭침을 두고 벌이는 논쟁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이 가겠다.

남북, 동서, 좌우로 쪼개져 서로 샅바싸움, 멱살잡이, 상투잡이에 몰두하다보니 이제는 외침이 아니라 세월호와 같은 내부의 사건 사고를 가지고도 찢어지지 못해 안달을 한다.

일본 아베 정권이 굳이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며 갈등을 조장시키는 건 내부 단결과 야성회복에 목적이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한국이 과거사 문제로 일본을 압박하는 건 기실 도와주는 것이다.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아베 총리와 악수를 한 것도 어쩌면 이런 섬나라 근성을 이해했기 때문은 아닌지? 갈등 조장을 통해 두 권력자가 목적한 바를 이뤘기 때문은 아닌지?

그렇다면 한국은 뭘 얻었는가?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누천년 동안 수없이 많은 오랑캐 민족을 다루어본 중국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이다. 그들이 한국을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는 어쩌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일본과 중국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민족이 한국인들이다. 몰라서 용감한 건지 너무 잘 알아서 무시하는 건지? 두려움과 치욕을 애써 감추고자 한풀이에 매달리는 건 아닌지?

선비정신은 칼에서 나온다

문(文)은 쪼개지는 성질이 강한 반면, 무(武)는 하나로 합치려는 성질이 강하다. 고려 무신정권은 하나됨을 위해 투쟁했지만, 조선 사대부들은 쪼개지기 위해 싸웠다.

진정한 하나됨, 화합, 통일은 개개인의 문무겸전, 즉 완성된 인격체다. 그런 나라 국민들은 굳이 화합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는다. 문민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 땅의 수많은 문사(文士)들이 갈등 치유와 화합을 부르짖고 있지만 기실 다 헛소리다.

속을 들여다보면 그 반대. 갖은 명분을 내걸고 좁쌀 하나라도 쪼개서 자기 몫(영역)을 챙기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레 미제라블 코리아! 결국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니 동서화합, 남북통일 운운하기 전에 문무통일부터 해서 쪼개기 좋아하는 국민성부터 바꿔야 한다. 단언컨대 문(文)이 화합한 적은 인류사에 단 한 번도 없다. 문명은 언제나 입으로 갈라서고 칼로 봉합해왔다.

당연히 혁명이나 창업은 무사 혹은 무사적 기질을 가진 자의 몫. 개화기 일본의 하급 사무라이들이 상업과 무역에 뛰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젊은 사무라이들이 서구 선진문명을 배워와 개혁을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저항하는 기존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해 결국은 유신을 성공시켰다.

반면 조선은 글 읽던 샌님들을 유람단으로 보내는 바람에 실패했다. 여행기를 남기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용기를 내어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뒷감당도 못하고 사흘 만에 제 한 목숨 건지고자 줄행랑쳐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반도의 민족은 영원히 분열의 굴레를 숙명으로 살아야 하는가? 아니다. 지난날 통일신라가 그랬고, 로마제국과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가 그랬듯 반도국가도 최고의 번영을 구가할 때가 있었다.

말처럼 내지르고 내달리는 성질이 바로 반도 민족의 근성. 밖으로 내달릴 때는 번성하고, 안으로 움츠릴 땐 쇠락했다. 반도굴기(半島崛起)! 글로벌적 시각으로 세계와 소통해야 하는 이유다.

주인은 떼 짓지 않는다

나라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썩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푹푹 꺼지는 씽크홀처럼!

그다지 유능해보이지 않으면서도 만기친람(萬機親覽) 하는 대통령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그저 일 하는 척, 제 이익만 좇고 있는 벼슬아치들. 어부지리 기회만 엿보는 정치인들. 매사에 떼거리, 멱살잡이로 갈 데까지 가야하는 시민운동가들.

민주(民主)주의 아닌 민중(民衆)주의!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종복근성. 말 그대로 “민나도로보데쓰!”, ‘아큐(阿Q)’들이다.

숭문(崇文)만으로는 주인의식 못 가진다. 진정한 주인의식은 상무(尙武)에서 나온다. 아무렴 옛것에 집착해서 새것을 못 받아들이면 굴욕을 피할 수 없음이 역사의 대명제. 혁신 없는 전통은 박제일 뿐, 아름답질 못하다.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혁신! 혁신 그 자체를 전통으로 삼아야 글로벌 시대를 선도해나갈 수 있다. 무혼(武魂) 없이는 개혁도 없다. 통일도 없다.

‘선비’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정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고개를 밖으로 돌려야 나라가 산다.

* 이 칼럼은 필자와 한국무예신문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기사(원문 읽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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