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조스님께 드리는 편지
소설가 정찬주 작가가 설조스님에게 보내는 편지, “스님, 우리와 함께 실존하셔야 합니다”
설조스님께 드리는 편지
소설가인 정찬주 작가가 조계종 문제 해결을 위해 단식을 하는 설조스님을 바라보며 ‘스님, 우리와 함께 실존하셔야 합니다’는 글을 썼습니다. 불교포커스(2018.07.12)에 올린 글을 정 작가의 허락을 받아 사람과사회™에 게재합니다. 조계종 문제가 하루라도 빨리 해결돼 설조스님이 단식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편집자주
“스님, 우리와 함께 실존하셔야 합니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스님이시여.
캄캄한 꼭두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요즘 저의 첫 의식은 스님 안부를 헤아리는 일입니다. 원오 극근선사는 ‘생이란 그 전부를 드러내는 것, 죽음 또한 그 전부를 드러내는 것(生也全機現 死也全機現)’이라고 했지만 제 가슴은 먹먹하기만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먼 산중 산방에서 향 사르고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일뿐입니다. 스님께서는 단식을 시작한 지 벌써 23일이 넘었습니다. 단 하루도 굶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스님의 목숨 건 비원을 헤아리기조차 불가능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한 자루의 초가 눈물처럼 녹아 내려 이제는 마지막 순간으로 치닫는 것 같아 제 마음은 극도로 초조하기만 합니다.
스님과의 인연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불국사 주지이신 스님께서는 <법보신문> 사장이셨고, 저는 성철스님 일대기인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을 신문 한 면에다 매주 1회씩 연재했습니다. 그때의 숨겨진 일화입니다. 담당기자가 주필에게 신문사 사정이 어렵더라도 기존의 정기구독자를 잃지 않으려면 신뢰할 수 있는 필자의 소설을 연재하자고 건의하자, 주필은 즉시 스님께 보고하여 허락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스님의 흔쾌한 재가로 시작한 연재소설 <산은 산 물은 물>은 1998년 상반기에 끝났고, 그해 10월 민음사에서 출간하여 저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독자들의 사랑을 얼마나 받았는지는 지금 이 순간엔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수많은 스님들 중의 스님이시여.
저는 스님과 불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원고를 송고한 뒤 매주 신문사 편집국을 찾아가 교정까지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떤 날은 신문사 편집국에서 사장인 스님과 리영희 고문께서 숙의하시는 진지한 모습을 보고서 신문의 발전과 편집의 균형감각을 위해서 두 분이 의기투합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요.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을 고문으로 영입한 분이 스님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스님이야말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자애로운 수행자임을 제 나름대로 판단하고 더욱 존경하게 됐음을 고백합니다.
이후 스님과의 인연은 그뿐이었습니다. 스님과의 선연(善緣)을 제 마음속에만 깊이 간직해 왔지요. 그런데 한 달 전인가, 미국에 계시던 스님께서 귀국하신다는 얘기를 <산은 산 물은 물> 연재 당시의 담당기자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귀국하시는 이유도 알게 됐지요. 참으로 놀라운 전언이었습니다. 혼탁해진 종단을 위해서 목숨 걸고 단식을 시작하겠다는 것이 전언의 전부였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파사현정의 방편으로 삼으시겠다니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인은 단식을 만류하려고 두 번이나 충언을 드렸지만 스님의 의지가 확고부동하여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실토했습니다. 미리 쓴 스님의 임종게를 보니 눈앞이 흐려집니다.
天中無二日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心中不二意 마음은 두 마음이 아니네
若逢難行時 정법을 행하기 어려울 때를 만나
豈惜幾斤肉 어찌 몇 근의 살덩이를 아끼리
스님께서는 미국에서 귀국한 날 조계사로 가서 바로 단식하려던 의지를 잠시 접고 법주사로 내려가셨는데, 이후 상경하시기 전에 법주사 모든 전각의 부처님을 찾아 절하시며 “이 몸을 바쳐 비(非)비구를 몰아내고 재가와 출가 대중 모두가 교단이 바르게 정립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게으르고 밝지 못해 허송세월을 보내고 어리석은 생활을 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 바르게 불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이 목숨 다할 때까지 단식을 하겠습니다.”라고 고하셨다지요. 뿐만 아니라 “내가 죽더라도 종단이 정상화 때까지 잿봉지를 천막에 남겨 두라.”고 말씀하셨다니 제가 지금 무슨 의견을 드린다는 것은 불경(不敬) 그 자체라는 생각만 듭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먼 곳에서 삼배를 올리고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저의 물음을 스님께 또 다시 전할 수밖에 없으니 참으로 애통합니다.
백척간두에 서 계신 스님이시여.
서른 한 살이었던 제가 봉암사 조실채로 서암스님을 찾아가 뵙고 돌아설 때였습니다. 칠흑 같은 한밤중이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토방 댓돌에 발을 딛으려는 저에게 현전일념(現前一念)하라는 말씀을 주었습니다. 스님, 선가에서는 일념이 만년이라고 합니다. 저의 간절한 일념은 스님께서 어느 곳으로 자리를 옮겨 계시든 반드시 전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스님의 육신은 조계사 옆 천막에 계시지만 스님의 고결한 바람은 천수천안(千手千眼) 천족(千足)의 신통으로 마침내 음습한 처처의 어둠을 끝내 정화시키고 말 것입니다. 스님께서 단식하고 계시는 천막은 풍찬 공간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참배할 수 있는 고원한 마음의 법당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내딛으려는 스님이시여.
저는 스님을 붙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관과 침묵의 공범으로 남는 것이 두려워서 마음으로만 붙들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행하지 못하는 저를 어찌해야 합니까. 당장이라도 스님의 비원이 이루어져 스님들 중에 스님이신 스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실존하셔야만 합니다. 무력한 저는 처절하기만 합니다. 아래 절에서 새벽범종소리가 울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생명이 한 우주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오늘 따라 인과의 칼날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딘지 원통할 뿐입니다. 조주 종심선사는 한 사람의 산 사람을 천 사람의 죽은 사람이 따르고 있다는 벼락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스님이시여, 남도산중에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는 저는 죽은 사람입니까, 산 사람입니까? 차마 뵙지 못한 채 꼭두새벽에 삼배 올리는 중생을 자애롭게 용서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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