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클리닝을 아세요?”
“당신이 내일, 일주일 뒤, 한 달 뒤, 6개월 뒤 죽는다면 지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데스클리닝, 들어보셨나요?”
정익구 프리랜서 에디터, 라이프 코치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지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일주일 뒤, 한 달 뒤, 6개월 뒤라면······.”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적잖이 당황한다. ‘죽음’이라니, 그 말을 들으면 기분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직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데 지금 굳이 죽음을 들먹여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리고 누구나 다 죽는 거 아니야? 당연한 걸 가지고 웬 호들갑이야.’
12년 전 즈음 겨울, 회사 정기 건강진단 결과를 받아보고 나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폐에 이상이 있으니 전문의 진단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증세를 검색해 보니,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날로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진료를 받을 때까지 거의 한 달 동안 혼자서만 속으로 끙끙 앓았다. 마음이 병을 만든다 했던가. 멀쩡하던 가슴도 쑥쑥 쑤시고 점점 더 아파왔다.
죽음, 준비가 부족하다
그러면서 ‘내가 죽으면 가족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가 가장 큰 자리를 차지했다. 경제적인 것은 물론 혼자서 상실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갈 아내를 생각하니 고통스러웠다. 아이들은 힘들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 그들의 길을 혼자서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물론 아내는 달리 살아가는 방법도 있을 테지만, 그러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상실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약물 치료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이때부터 죽음과 상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족이나 친구, 지인의 죽음을 많이 목격한다. 어떤 사람은 노환으로,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어떤 사람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갑자기 먼 길을 떠난다.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 한 가지 발견한 공통점은 대부분 죽음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병석에 누워 있다가 끝내는 자식들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세상을 뜨거나, 자기 삶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떠난다. 죽기 전에 꼭 남기고 싶은 말이나 듣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어떤 이는 사후에 가족들 사이에 큰 갈등의 불씨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페이스북은 친구 생일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는데, 어느 날인가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전 직장 동료의 생일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어떤 때는 휴대전화에서 죽은 시골 친구의 전화번호를 발견하기도 한다. 곧바로 전화번호를 지우는 것이 어쩌면 무례한 듯 여겨져서 미뤄뒀던 것이었다.
죽기 전 정리할 것은 많다
그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때 나는 죽기 전에 정리해 놓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SNS를 비롯한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하는 모든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일일이 기록해 놓았다.
페이스북은 자기가 죽었을 때 계정을 대신 관리해 줄 사람을 지정하는 서비스도 있다. 물론 나도 믿을 만한 후배 한 사람을 지정했고,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도 알려주었다. 그 외의 것들은 별도로 내 아들들이 나중에 저장된 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해 놓으려고 한다.
한 번은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한참을 지난 뒤에야 동창들이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아무도 부음을 들은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연락을 안 한 것인지, 못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하는 마음에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이처럼 자기 죽음을 알아야 할 사람들도 정리해서 가족에게 미리 알려둘 필요가 있다.
내 어렸을 때만 해도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분들이 입던 옷가지 정도를 태우면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정리해야 될 것이 너무나 많다. 집안에 가지고 있는 물건, 옷가지, 책, 가전제품, 수많은 사진, 사이버 공간에 남긴 흔적들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거나 예고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여기에 대비해 미리 정리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이버 상에는 내 흔적들이 유령처럼 떠돌 것이며, 자신이 남긴 유품을 정리하느라 누군가가 슬픔을 억누르며 시간을 들여 수고해야 한다. 죽은 사람의 뜻과는 무관하게 소중한 물건이 버려지거나 억지로 누군가에게 떠맡겨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 죽음을 준비해서 잘 정리하는 것, 이를 ‘데스클리닝’(Death Cleaning)이라 할 수 있다.
남기고, 버리고, 주고, 가져가는 것
『내가 내일 죽는다면』(The Gentle Art of Swedish Death Cleaning, 시공사, 2017) 저자이자 디자이너, 화가, 작가인 스웨덴 고센버그에서 출생한 마르가레타 망누손은 죽음을 대비해 ‘가진 것들을 점검하고,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청산할지 결정하는 일’을 ‘데스클리닝’이라고 정의한다. 데스클리닝은 단순히 가진 것을 분류해 ‘남기거나, 버리거나, 주거나, 가져가거나’ 하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하찮아 보이는 것들 속에 가려져 있던 행복을 꺼내어 보고 삶의 가치를 음미해 보는 순간인 것이다.
“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느냐?”라는 우문(愚問)에 “그것이 거기 있어서.”라는 현답(賢答)을 남긴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말러리(George Mallory)는 “정상은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 전에는 진정 오른 것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잘 내려와야 한다. 참고로, 말러리는 에베레스트 등정 후 잘 내려오지 못해 사후 75년이 지난 뒤에야 시신을 발견했다.
잘 내려놓기는 잘 내려가는 방법
잘 내려오려면 미리 준비를 잘 해야 한다.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고 한 것처럼, 당장 내일은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죽음을 생각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를 것이다. 먼저 ‘클리닝’ 할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자. 당장 해야 할 것과 천천히 해도 늦지 않을 것을 가려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기피한다. 그러나 죽음은 엄연한 현실이고, 때와 장소를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불가피한 일을 받아들이고 통제한다면 우리 삶에서 선택 폭이 넓어질 수 있다. 나는 가족들에게 내가 죽으면 어떻게 장례를 치르라는 말을 미리 해놓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한다. 많은 옷가지들을 헌옷으로 내놓는다.
‘물건의 위치를 알 수 없다면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망누손의 말을 실감한다. 알고 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해오는 일이 바로 ‘데스클리닝’의 일부였던 것이다. 내려갈 때는 좀 더 홀가분해질 수 있도록 내려놓기의 기쁨을 누려본다면 우리 삶은 영적으로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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