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감수성 회복이 치유”
"탈선 위험 있는 기차 한쪽 힘은 본궤도 벗어나지 않으려 주변에 격한 마찰과 굉음 만든다"
[김소영 칼럼] 삶과 치유 001
치유는 법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
치유는 현 시기의 트렌드로 빈번하게 사용되나 인류가 아직 그 의미와 필요와 규모를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 할 정도로 내용이 심오하고 규모가 방대하기에, 여러 영역에서 다른 표현을 시도해보는 것은 모두의 이해와 접근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오늘은 법적인 관점에서 치유의 그저 한 각도를 간단히 말해보자면, 치유란 불법에서 합법을 지향해가는 일이다.
우리가 양심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의 본 구조에 부합하는 어떤 기제임을 나는 일찍이 생물적이고 감정적이고 정신적으로 분명하게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그 경험으로나 훗날 내가 공부한 치유의 이론에 의하면, 본디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구조체이다. 그 날은 초등학교 입학 직전이나 초등 저학년이었을 하루, 방에서 여자 아이 둘과 놀 일이 있었는데 주변에 또래 아이가 귀했으면서 여아는 없었던 내 유년의 환경에서는 축제처럼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설명하자면 번거로웠거나 어떤 미묘함에서 나는 설명의 과정을 피하고자 문장을 축약시켰기에, 전부가 거짓은 아니나 거짓말이 될 수도 있을 말을 나는 엄마에게 한 문장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런 적이 없었던 나이기에 편의에 의해 그리 하면서 그 생경한 느낌을 속으로 얼마간 불편해하면서. 그런데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아이들 간 놀이 관련 사소한 일이었던 그 사건으로 나는 엄마로부터,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엄한 사랑은 단호하나 그 또한 친절한 사랑임을 교육받는 혜택을 누리지 못 한 세대인 엄마에게서 나오는 그 말은 자못 냉엄한 기운이었다.
그보다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내 안에서 격렬하게 일던 물리화학적 작용이다.
그것은 낭패감과 억울함에 순결을 잃은 것만 같은 정신적 손상감이면서, 모욕과 수치를 느끼는 감정의 반응이면서, 소화작용이 제대로 되지 않을 합성물질을 삼켰을 때 내장과 폐부에서 이는 매우 생물학적인 반발작용이었다.
그것은 또한 세상에 오직 혼자에 처하는 영적 위기감에 나를 세워두었다. 쓰고 뜨거운 눈물이 누선을 타고 흘러나오던 그 복합적 고통의 순간에, 나는 인간의 본연에 대한 깨달음 속에서 홀로 결의를 세우고 있었다.
아…. 거짓말이란 소량이라도 이토록 생명의 시스템에 역행하는구나…. 이런 불건강을 무릅쓰고서 꾀할 만한 일은 세상에 없는 거야. 난 거짓말로 나를 훼손하는 일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겠어!
그 후 성인이 되기까지 내게 어려움이라면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자각의 기회가 없었던 듯한 모습으로 삶을 운영한다는 것이었다.
법과 규범을 지키지 않고 예법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고 여기서 하는 말과 저기서 하는 말이 달라져 일관성을 잃어버린다. 세상을 속이는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일차적인 문제는 그 자신이 다중인격의 인간이 되면서 자아의 통합성이 흐트러져 결국 힘이 약해지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그 사회의 규범이, 바르게 작동하는 개체들의 생물적 역학과 영적 질서에서 나와 공동체의 작동원리로 연장된 바른 규범이라면, 이것을 따르는 것은 곧 자신의 구조를 지키는 길이 된다.
탈선의 위험이 있는 기차의 한쪽 힘은 본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주변에 격한 마찰을 일으키며 굉음을 만들어낸다.
자연의 법규와 충돌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이런 상태이기에 주변에 소요를 일으키곤 한다. 이 때는 그만, 정직하게 도움을 요청할 위기의 상황인 것이다.
그 자신이 위태롭기에 타인을 도울 수는 없으며 탈선을 막고자 옆면의 풀들을 그러쥐고 바닥의 자갈들에게까지 기대야 할 상황임을 인정하는 시점이다.
간단하게 정리를 하자면 치유는 존재가 본연의 자연성과 유기성을 복구해가는 생물적이고 의료적인 일이면서, 창조의 원리와 원칙을 따르는 법적 감수성을 배양하는 일이면서, 존재 간의 규범과 의례에 대한 존중을 훈련해가는 윤리회복의 과정이다.
여기서 정직성은 중요하다. 우리의 신체와 연동으로 작동하는 정신과 감정과 영혼의 회복을 재정립하고 재청구하는 이 중대한 법적 소송에서 자신의 위태한 요소를 가리고자 정직을 외면하면 혼선을 맞게 된다.
원리는 저항해오는 세력과 싸우지 않으며 다만 언제나 확고하게 존재하고 그 자체의 원칙으로 작동할 뿐이다.
이러한 세상과 불화를 일으키는 개체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인정하길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개체는 타인과의 갈등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불화로 힘을 잃게 된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근원의 원리로부터 근간이 되는 원칙을 과정으로 탄생한 존재들이기에 우리 모두의 내적 힘은 그것의 원리를 존중하고 그 원칙을 따라 살 때 강화되기 때문이다.
치유는 그렇게 자신을 합법성에 순응시켜가는 일이다.
김소영
그림 강사이자 치유 전문가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충북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1990~1997)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현재 제주에서 아이들에게 작가적 그림 그리기를 지도하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수시로 서울에 올라와 어른들을 치유의 길로 안내하는 치유학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자유를 위한 자유로운 교사’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있다.
전화 070-8868-8752
메일 shadowhi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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