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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을 떠날 때 어떤 기분이었나?”

“원한이나 미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이렇게 속삭이세요. 미안해요, 용서해요.”

그 날. 당신 내 곁을 떠날 때 어떤 기분이었나. 가슴에 품고 있던 여러 가지 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미움보다 그리움이 많았음을 기억해내곤 서러움에 북받쳐 울다가 차라리 잘된 일이라 고개를 흔들어 대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빈 잔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내어 가득 채우고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다가, 취기에 주위를 둘러보곤 한숨 쉬며 이내 당신이 내 곁에 없음을 깨닫고,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다가……. 사진=Pixabay

그 날. 당신 내 곁을 떠날 때 어떤 기분이었나. 가슴에 품고 있던 여러 가지 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미움보다 그리움이 많았음을 기억해내곤 서러움에 북받쳐 울다가 차라리 잘된 일이라 고개를 흔들어 대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빈 잔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내어 가득 채우고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다가, 취기에 주위를 둘러보곤 한숨 쉬며 이내 당신이 내 곁에 없음을 깨닫고,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다가……. 그림=장태묵

바람이 분다. 울창하던 푸른 잎들이 어느새 무너져 내려 이리저리 구르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바스락 거리며 흩어지는 허망함. 대지를 뚫고 새싹으로 태어나 햇볕 담뿍 받고, 비바람을 맞고, 계절을 버티다가 종내 사라지는 무상함. 그림=장태묵

“내 곁을 떠날 때 어떤 기분이었나?”

정유림 큐레이터 art_in@hanmail.net

1

그 날.

당신 내 곁을 떠날 때 어떤 기분이었나. 가슴에 품고 있던 여러 가지 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미움보다 그리움이 많았음을 기억해내곤 서러움에 북받쳐 울다가 차라리 잘된 일이라 고개를 흔들어 대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빈 잔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내어 가득 채우고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다가, 취기에 주위를 둘러보곤 한숨 쉬며 이내 당신이 내 곁에 없음을 깨닫고,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다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시계바늘은 돌아가고 다시 되돌아오고 살아낸 세월만큼 능숙하게 난 당신을 잊었었나. 그날 그대는 카론의 배를 타고 영영 내 곁을 떠난 것 이었나.

꿈꾼 듯 그대 그림자조차 기억나지 않는 오래 전 ‘우리’였던 당신과 나. 땀 냄새 비릿한 살덩어리 부비며 깔깔대며 웃던 기억, 뜨겁게 사랑했던 살뜰한 당신을 잠시나마 미워한 죄. 바람에 흩날려 몸부림치던 꽃잎의 향기조차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에서도 당당하게 낙인찍어 가져가려 할까.

2

80세를 훌쩍 넘겼지만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격을 가진 그는 몇 가지 안 되는 남은 인생의 낙이 사람들을 만나 음식을 먹는 기쁨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좋아하는 먹음직한 오리고기를 앞에 놓고도 수저를 들 수 없었다. 깜빡하고 틀니를 놓고 온 것이다. 그는 가위로 반찬과 고기를 하나하나 잘게 잘라서 돼지죽처럼 섞었다. 그리고 말없이 숟가락으로 퍼 입으로 가져가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측은함보다 그의 지나간 세월에 깊은 설움이 밀려왔다. 언젠가 내게도 소리 없이 다가올…….

3

유리문 밖.

10여 년 전 풋풋한 신혼부부였던 그들은 항상 눈이 마주치면 나와 인사를 했다. 그들의 모습위로는 봄이 왔고, 비가 내리고 꽃잎이 흩날리고, 눈이 내렸다. 그리고 다시 봄이 왔다.

신혼부부 중 여자는 어느 날부터인가 배가 불러왔고, 아기가 태어났고 아기는 유모차를 탔고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다시 그들은 눈인사를 한다. 유리문 안의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세월이 흘러감을 알 수 있다. 몇 해 전 겨울, 붉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하늘로 간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비는 내렸고 꽃잎이 흩날렸으며 또 다시 겨울은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여태껏 그랬듯이 10년 전 신혼이었던 그 부부는 내게 눈인사를 건 낼 것이다.

4

바람이 분다.

울창하던 푸른 잎들이 어느새 무너져 내려 이리저리 구르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바스락 거리며 흩어지는 허망함. 대지를 뚫고 새싹으로 태어나 햇볕 담뿍 받고, 비바람을 맞고, 계절을 버티다가 종내 사라지는 무상함.

화무십일홍, 인불백일호, 세불십년장(花無十日紅 人不百日好, 勢不十年長)이라고 했나. 식물이든 동물이든 자연의 모든 생명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약육강식마저도. 때리면 아프고 즐겁고 슬프고 수많은 그들의 언어로 속삭인다. ‘말 못하는 oo’이 아니다. 결국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고 또한 ‘나’일 뿐이고.

5

A는 항상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작은 일에도 깨닫게 되는 많은 것들이 삶의 기쁨이었고 행복이라 생각했다.

“당신의 일용할 양식과 건강을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해 선의를 베풀었고 노력한 것들인데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K의 잘난 질투심과 허무맹랑한 꿈과 거짓으로 인해 그것도 교활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여러 날 밤을 뒤척이며 피눈물로 범벅되어 처절하게 으깨진 심장과 상처받아 타격심한 간 기능의 손상, 충격으로 인한 대인기피증, 열손가락에 열 발가락을 더해도 모자란 아까운 시간과 눈물겨운 술값에 대한 보상은 대체 누구에게 받아야 하나.”

순간 어떤 스님이 쓴 글이 눈에 들어왔다.

“원한이나 미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이렇게 속삭이세요. 미안해요, 용서해요.”

글을 본 순간 A는 더더욱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때마침 친구가 찾아왔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듣더니 그걸 여태 어떻게 참았느냐고 화병 나서 쓰러질지 모르니 차라리 만나서 속 시원하게 한바탕 하라고 말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밤 한 잔 먹은 A는 K의 집에 찾아가 한바탕 난리를 쳤다. 계단을 내려오는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깨달음과 함께 몇 달 동안 앓던 A의 마음병은 거짓말처럼 모두 다 사라졌단다. 그리곤 후련해진 마음으로 그 집 계단을 내려오며 피식 웃었단다.

살다보면 때론 훌륭한 스님의 말씀이나 좋은 책보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화병을 앓는 그대에겐 보약이 될 수도 있다.

About 정유림 (19 Articles)
호는 소운(小雲), 필명은 정유림을 쓴다. 다기(茶器)로 유명한 도예가 이당 선생의 제자다. 이천도자기협회 초대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한국도자관, 일민미술관, 롯데갤러리 등에서 초대전, 기획전 등을 기획해 도자기 큐레이터, 갤러리 종로아트 아트디렉터 피카소 게르니카전 및 운보 김기창 화백 판화전 초대 큐레이터를 맡았다. 세계일보 조사위원, 2017년 (사)한국미술협회 전시기획정책분과 위원, 대한민국리더스포럼 문화예술국장, 빅이슈코리아, 월드코리안신문 칼럼니스트 등을 지냈다. 현재 서정아트센터 전시기획본부장, 광주유니버시아드, 평창동계올림픽, 평창패럴올림픽등에서 공간 창조 설치를 담당한 서울텐트(주)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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