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최고의 사회 통합 프로그램”
"축구는 스포츠 자체, 그러니까 동계올림픽, 하계올림픽을 합친 것, 수영, 육상 등 모든 것을 합친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축구 선수 한 명이 4500만 유로(약 600억 원)에 움직이는 세상이다. 스포츠는 전 종목 다 해봐야 4000억 원이 안 들어간다. 그래서 축구는 다른 종목과 비교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여하튼 축구를 통한 사회적 통합 프로그램을 하는 것과 다른 스포츠를 통해서 사회적 통합을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인터뷰] 안창영 前 천안FC 이사장
“축구는 최고의 사회 통합 프로그램”
안창영 천안FC 전(前) 이사장을 2017년 8월 14일 오후 1시 30분, 충남 천안 리각미술관(태조산길 245, 041-565-3463)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 축구 이야기를 나눴다. 천안FC는 현재 청주시티FC(Cheongju City Football Club)로 바뀌었다. 안 전 이사장은 축구와 함께 살아왔고 축구로 사회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안FC를 설립해 구단주와 이사장을 맡는 등 축구는 물론 천안FC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주인공이다. 그는 천안FC에서 손을 뗀 후 잠시 공백기를 가졌다. 현재는 2017년 5월부터 시작한 광화문시대 대표를 맡고 있다.
▲만나게 돼 반갑다. 축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축구 선수 꿈을 꿨다. 소년체전 대표로 선발됐지만 꿈을 접었다. 그러면서 공부에 전념했다. 성인이 된 후 36세까지 고시 공부를 했다. 막내 동생이 먼저 고시에 합격했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해서 그만 뒀다.
꿈을 꾸다가 접고 나니 아무 것도 할 게 없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허전했다. 그러던 중에 어렸을 때 축구를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친구들이 조기 축구에 나오라 해서 조기 축구를 시작했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이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게 계기가 됐다.
축구 인프라를 비롯해 아무 것도 안 되어 있고, 이런 상태로는 월드컵을 맞이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2000년 초반부터 2002년 월드컵을 시작할 때까지 유소년 축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유소년 축구가 일반적이지만 그때는 유소년 축구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때 국가대표였던 정용환과 인연이 닿았다. 친구인데, 지금은 사망했다. 국가대표 수비수를 12년 동안 했는데, 수비수 중 제일 잘 했다고 평가한다. 홍명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주성도 있다. TV 해설을 하고 ‘야생마’라는 별명이 있는 선수다. 두 사람은 창단식 때 왔다. 지역사회 시·도 의원과 국회의원도 첨석해줬다.
▲유소년 축구를 시작하면서 천안FC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유소년 축구 창단식은 2002 월드컵 전이니까 2000년 초로 기억한다. 유소년을 창단한 후 다른 것을 곧장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보다 구단을 먼저 창단했다. 천안FC다. 2005년 10월에 창단을 했는데, 2007년에 세계축구연맹(FIFA)에 공식 등록한 구단이 됐다. 축구는 K1, K2, K3로 나눠, 그러니까 1부, 2부, 3부, 이런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천안FC)는 K3이었다. K3 리그는 2007년도에 시작한 리그다. 2007년이 K3 원년이다.
K3 원년에 우리가 전국에서 10개 팀으로 시작을 할 때, 10개 팀 중 충청남도 천안을 연고로 하는 팀이 참가하게 된 것이다.
천안FC는 엘리트 구단이다. 생활체육 이런 게 아니고, 대한축구협회 K3리그에 소속된 엘리트 구단이고 FIFA 에 등재된 엘리트 구단이다. FC바로셀로나처럼 똑같다. 천안FC가 정체성을 찾은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2007년에는 전기 리그, 후기 리그로 나눠 두 번씩 경기를 했는데, 후기 리그에서 우승했다. (천안FC로 보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한 것이다. 후기 리그 이후부터는 우승을 한 번도 못했다.
이후 K3는 약 20개 팀으로 늘어났다. 다른 팀은 경쟁력이 좋은 선수, 그러니까 프로 팀에서 은퇴한 선수, 국가대표 출신 선수가 참여해서 우리(천안FC)가 많이 밀렸다. 그래도 꾸준하게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자금 부족으로 천안FC 유지 포기”
▲하지만 지금은 천안FC는 없어지고 청주시티FC로 바뀌었다. 이유가 있었나?
2016년에 연고지가 청주로 바뀌었다. 자금 부족이 원인이다. 게속 유지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면을 보면 다른 지자체처럼 천안FC가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지자체는 굉장히 많이 도와주는데, 보통 3억에서 5억씩 지원을 해주는데 천안시는 그나마 지원하던 5000만원 예산마저도 끊었다. 그래서 결국 연고지 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모든 재산을 털어서 10년 넘도록 운영했는데, 대략 30억 원은 들었을 것 같다. 연간 예산은 보통 5억 규모인데, 공식 구단이 되기 전까지는 살림이 크지 않았다.
10년 동안 운영하면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사비를 들여 감당했다. 4년 동안 연간 5000만 원 정도 받았지만, 이후에는 개인 비용으로 운영하다시피 했다. 공식 구단이 된 이후에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
▲청주로 이전이 된 후, 그러니까 청주시청FC는 프로로 전환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축구단을 새로 맡아 운영하는 분이 프로로 전향하는 것을 바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천안유소년축구로 시작한 축구단이 천안FC가 되고, 천안FC가 사회적협동조합이 되고, 사회적협동조합 자격을 얻어 사회적기업도 되는 것인데, 이런 과정은 천안FC가 계속 발전하는 과정이다. 프로 축구단을 하려는 것도 그런 과정의 하나로 보면 된다.
청주시티FC
청주시티FC는 청주시를 연고로 하는 축구단이며 K3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천안FC(2007~2015) 때 첫 시즌에서 후기 1위, 포스트 시즌 4위 기록했다. 2016년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현주 SMC엔지니어링 대표가 인수한 후 청주시티FC로 이름을 바꾸고 재창단을 하면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K3 리그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2016년 성적은 정규 시즌 3위, 포스트 시즌 준우승, 2017년은 정규 시즌 2위, 포스트 시즌 준우승을 기록했다. 프로 축구단 창단을 목표로 하던 김현주 S대표 주도로 형성된 청주FC사회적협동조합(컨소시엄)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협동조합 운영 방식은 스페인 최고 명문 구단이자 전 세계 최강 축구단인 FC바르셀로나(Futbol Club Barcelona)나와 레알 마드리드CF(Real Madrid Club de Fútbol)가 사용하는 운영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축구단은 새로운 형태로 발전하기를 기대했다. 정식으로 프로 축구단이 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프로 축구단만 만들려고 한 게 아니다. 사회적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아마추어 구단이 함께 있지 않으면 프로 구단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다문화가정이나 탈북민이 참여해 축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축구단 이름을 보면 ‘유소년’ 뒤에 숫자를 붙여 연령을 구분하고 있는데, 어떤 게 있었나?
유소년 축구단에는 15세도 있었다. ‘U-15’라고 표시하는데, U-12, U-15, U-18 등으로 나눈다. U-12는 초등, 15는 중등, 18은 고등학생을 말한다. 초·중·고등학교와 유아부 등에 감독과 코치를 두면 고용할 수 있는 인원이 상당히 늘어난다.
▲감독과 코치가 고용 효과가 크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고용이 제법 되기 때문에 큰 기업이 될 수 있다. 선수로 성장해 좋은 구단으로 이전을 하는 것은 선수에게 좋은 구단으로 가는 기회와 함께 경제적 효과, 즉 돈이 들어온다. 돈이 들어오면 꿈나무를 발굴하는 곳에 쓸 수 있고, 이를 계속 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축가가 내 인생이고 내 인생이 축구였다”
▲선순환 이야기는 유소년 축구를 바탕으로 한 ‘꿈이자 효과’라고 볼 수 있는데, 일부만 진행하고 나머지 꿈은 이루지 못하고 중간에 끝난 상황이 됐다. 축구단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
기억에 특별히 남는 것, 그런 것보다는 축구 자체가 내 인생이었다. 11년 동안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축구만 했다. 내 인생 자체가 축구였다. 아들 셋을 키웠는데, 가족에게는 양말 하나도 제대로 사준 적이 없었다. 당시 나이키 운동복 양말이 4500원이었다. 40여 명의 선수가 1년 동안 쓰는 전체 피복비는 6000만 원이다. 긴 팔, 짧은 팔, 추리닝, 유니폼, 홈 경기, 어웨이 경기 등이다. 돈이 많이 들어갔고 죽어가는 구단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올해(2018) 초에 후원금 문제 때문에 재판을 받는 일도 있었다.
▲자녀에게 원망을 듣지는 않았나?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세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했다. 어쨌든 아내와 자식에게 빵점 아버지였다. 아이들도 고민이 있었고 방황도 많이 했다. 겉으로는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원망이나 아쉬움이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들 셋(28살, 25살, 21살) 중 첫째와 둘째가 3수를 해서 진학했다. 둘째는 최근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할 예정이다.
▲축구 때문에 삶이 힘들었던 게 많았지만 얻은 것도 있었을 것 같다. 축구와 함께 한 삶에 대한 감회, 어떤 생각이 있나?
실패를 많이 겪고 나니, 자금 때문에 힘들었던 만큼, 자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 구단, 설령 자금이 어려워도 갈 수 있는 구단. 이런 것을 고민하다 보니 기존의 구단 운영 방식보다는 더 진보한 형태의 구단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사회통합을 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협동조합축구단은 사회통합에 좋은 방법”
▲축구와 사회통합 프로그램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뜻인가?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축구를 비롯해 스포츠나 예술을 통하지 않으면 사회통합은 어렵다고 본다. 통합, 사회통합은 동서통합도 있고, 남북통합도 있고, 남녀노소통합도 있다. 가난한 자와 부자의 통합,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사회적 통합도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도 똑같은 유니폼에 똑같은 공을 갖고 똑같은 운동장에서 뛰어야 된다.
스포츠는 ‘똑같은 것’을 기본으로 한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똑같은 운동장에서 똑같이 뛰어야 되고,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가리지 않는다. 사회통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북에서 내려온 탈북 가족이나 국내 재벌 아들이나 똑같은 운동장에서 똑같이 뛰어야 되기 때문이다.
▲축구가 통합을 이끌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뜻인데, 조합 형태로 축구단을 운영한 것과 무관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통합 프로그램은 축구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는 정치인이 지향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통합을 이루는 것, 이게 처음 출발점이자 마지막 도착점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남북 관계를 생각해보자. 남북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이질적인 집단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북한과 우리가 통합하는 것도 결국 서울과 평양에서 하는 축구, 즉 ‘경평축구’를 지향하는 게 좋다고 본다.
옛날에는 경평축구 출전을 국가대표팀이 했다. 평양 가서 마지막으로 축구할 때 주장은 정용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대표팀이 가서 경평축구를 부활하도록 할 수 있는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우리(천안FC)처럼 사회적협동조합축구단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하나밖에 없고, 아시아에서 하나밖에 없는 축구단이다. 북한도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이 있다. 북한 쪽 협동조합축구단과 우리협동조합축구단이 하나가 돼서 경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야 진정한 사회통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민간 차원의 축구 교류가 더 큰 의미와 성과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인가?
개인적인 생각인데, 대표끼리 하면,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등이 있을 텐데, 그런 경기는 사실 전초전이지 사회적 통합 프로그램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어떻게 보면, 통합의 기준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면도 있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지도자가 얼마나 있느냐는 문제도 있다.
어쨌든 나는 우리 같은 생각을 가져야 사회통합이 되고 남북통일이 된다고 본다. 정치인에게 남북통일은 맡기는 것보다 우리 같은 팀이 나서서 바탕을 깔아야 한다. 우선 사회를 통합하고 나중에 이를 바탕으로 남북을 통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또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서남아시아로 나눠져 있는 아시아를 통합하고, 결국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것,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축구다.
축구를 통한 사회통합 프로그램이 결국 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만들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때가 되면 한국에서 누군가 자연스럽게 FIFA 회장이 되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큰 그림을 그린 셈이다. 사람들은 처음에 들을 때 황당하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나중에 세상이 변한 것을 보더니 가능성이 있겠다는 입장이 늘었다. 이런 큰 그림을 이해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특히 대통령이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18대 대통령 선거 무렵에, 문재인 대통령 후보 측에 말씀을 드렸다. 이게 인연이 돼 체육특보를 맡기도 했다.
“축구 통한 사회통합은 혁신적, 혁명적인 방법”
▲당시 문재인 후보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직접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고 보고서를 만들어서 보냈다. 본 적 없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보고서 피드백은 못 받았나? 19대 대통령 선거 때에도 내용을 전달했나?
그때는 문재인 후보가 지금처럼 준비를 충분히 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후보 참모로 있는 사람이 보고서를 보고 ‘보고서를 보니 이 분을 체육특보로 임명하는 게 좋겠다’라며 체육특보로 추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추측할 뿐이다. 19대 때는 18대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전달했다. 하지만 축구 얘기는 하지 않았다. 19대 때는 체육특보와 관련이 없는 조직특보단을 맡았기 때문이다.
▲조직특보를 맡았지만 축구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을 것 같다.
19대 때는 많은 인재가 구름처럼 몰렸지만, 체육 쪽은 거의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체육 쪽에는 큰 관심을 갖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비서관도 없고, 주위에 축구와 관련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은 관심이 많은 분야다. 규모가 큰 도시 시장이나 도지사 후보가 그랬듯이, 또 대통령 후보들도 사회적기업은 관심의 대상이 됐다.
방금 말한 것처럼, 축구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과 연결이 되면, 초중고 학생을 위한 역할은 물론 여성을 위한 역할 등을 축구단이 대신해줄 수 있게 된다. 나라를 대신해서 하는 것이고, 나라는 지원을 해주면 되는 시스템이다. 지원금을 받아 적절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인데, 이런 시스템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 혁신적이었고, 혁명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종목과 달리 축구가 사회통합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축구는 스포츠 자체, 그러니까 동계올림픽, 하계올림픽을 합친 것, 수영, 육상 등 모든 것을 합친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축구 선수 한 명이 4500만 유로(약 600억 원)에 움직이는 세상이다. 스포츠는 전 종목 다 해봐야 4000억 원이 안 들어간다. 그래서 축구는 다른 종목과 비교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여하튼 축구를 통한 사회적 통합 프로그램을 하는 것과 다른 스포츠를 통해서 사회적 통합을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세계는 6대륙이다. 축구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북미 등 전 세계가 축구를 한다. 인기가 많다는 야구도 유럽 몇 개 국가만 한다. 네덜란드, 미국, 남미가 많이 하는 종목이다. 아시아에서는 대만, 한국, 중국, 일본 등 네 나라가 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축구는 전쟁을 대신하는 것”
▲축구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데 그게 어떤 문화든, 경제적인 측면이든, 때로는 정치적인 것도 포함이 될 수 있겠지만, 축구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봐야 하나?
축구는 전쟁을 대신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옛날부터 전투 욕구가 있었다. 전쟁을 하면서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다른 부족을 정복하고, 내 땅을 넓히고, 내 영역을 넓혀왔다.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2차 대전까지 거치면서 우리가 전쟁을 해왔다.
스포츠는 전쟁을 대신해서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승부가 분명히 있어야 된다. 다른 것은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스포츠는 그렇지 않다. 특히 축구는 이겨도 상대방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니다. 축구를 통해 사회를 오히려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전쟁과 축구를 생각하면, 전쟁은 사람을 축이고 민족 간, 국가 간 갈등이 일어나지만 축구는 축구를 통해서 나라가 하나가 되고, 아시아가 하나가 되고,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다 똑같다.
과거에는, 남성 축구만 있었을 때는, 축구가 남성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성 축구도 있고 또 장애인 축구도 있다. 다양화됐다. 그러니깐 오히려 축구가 하는 역할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특히 우리처럼 남북이 특수한 상황에 있을 때는 축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축구는 국경, 세대, 민족, 종교 이런 것을 모두 다 초월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축구가 갖는 엄청 큰 장점이다. 축구공은 둥글다. 둥글다는 게 앞으로도 갈 수 있고, 뒤로도 갈 수 있고, 옆으로도 갈 수 있고 또 위로도 갈 수 있다. 축구공이 가진 방향성, 축구가 가진 확장성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통합, 전전세대와 전후세대의 통합, 주로 정치를 통해 표출하는 이런 갈등을 우리가 효과적으로 잠재우고 극복해낼 수 있는 게 바로 축구다.
비무장지대에 생태공원을 짓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능라도축구장이나 상암경기장보다 몇 배 큰 경기장을 짓는 것도 좋다. 12만 명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을 만들어 평상시에는 남북이 각각 6만 명이 입장하는 경기를 치르면 좋지 않은가. 운동장도 둥근 모양이다. 둥글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이고, 어느 한군데에 모난 곳이 없다는 개념이다.
4500만 유로 이야기
※ 세계적인 축구스타이자 FC바르셀로나 소속 네이마르 선수가 2017년 8월 프랑스파리생제르맹(PSG)과 5년 계약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PSG는 5년 동안 네이마르에게 연봉 3,000억 원, 이적료 2억2,0000만 유로(약 2,966억원) 등 총 6000억 원 규모를 써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사회통합과 남북통합을 이루려면 물리적 통합보다 인식론 차원의 변화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남북한 협동조합축구단으로 남북통합 희망”
축구 또 축구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도 생각은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데는 미약한 것 같다. 그런데 축구를 통한 사회통합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다른 나라는 남북한 긴장 관계나 이념 대립 상황이 없기 때문에 스포츠로 사회통합을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는 남북이 통합이 돼야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이념 문제라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이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전쟁세대 때문이라는 이야기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전쟁의 상흔과 아픔만 말할 게 아니라 통합을 말해야 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내가 꿈꿨던 축구를 통한 사회적 통합 프로그램, 그 많은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를 말했는데, 축구를 단순히 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통합을 이뤄내겠다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정치, 그리고 지도자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통합 프로그램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길 기대한다.
또 우리 사회는 물론 남북한이 통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동조합축구단이 생겼으면 좋겠다. 개성협동조합축구단과 천안FC협동조합축구단이 게임을 하고, 부산FC협동조합축구단과 신의주FC협동조합축구단이 게임을 하는 순간이 와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회통합이 되고 민족이념이 통합되지 않겠는가. 그런 날이 오는 것이 꿈이다.
안창영
1962년 10월 22일 충남 천안 출생. 천안바보주막 이사장, 천안FC 구단주·이사장과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를 지냈다. 현재 광화문시대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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