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나?
“박근혜는 전두환을 오빠라고 불렀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고, 말도 못하게 아첨을 하면서 육사 시절부터 박정희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썼던 사람이었다.”
사람과사회™
2019 여름·가을 제3권 제2·3호 통권 제10·11호
ISSN 2635-876X 92·93
기획
김재규를 다시 생각한다
1. 김재규의 최후 진술을 읽는다!
2.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나?
‘김재규 평전’ 저자 문영심에게 듣는다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쏘았나?
김재규는 ‘현대사’와 ‘비극’의 주인공인가?
“제대로 된 김재규 평전이 없었다”
“박근혜는 전두환을 오빠라고 불렀다고 하더라”
“박근혜도 박정희를 보러 병원에 가지 않았다”
“박정희 죽음을 슬퍼한 사람은 김재규밖에 없었다”
“서구는 평전을 소설로 인식하는 경향 많다”
“가독성 중요하게 생각해 스토리텔링을 넣는다”
“김재규 외에 이석기·탈북민·간첩 다루는 작업 중”
“식민지부터 해방과 정부 수립 시기까지 관심 많다”
“사색(思索) 하면서 사색(死色) 되는 사회”
최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후 내란죄로 구속된 후 군법회의에서 밝힌 최후 진술을 유튜브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때에 김재규 평전을 쓴 문영심 작가를 페이스북에서 만났다. 문 작가는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시사IN북, 2013)라는 제목으로 김재규 평전을 썼다.
김재규 최후 진술 영상과 문영심 작가를 떠올리면서 김재규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재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만큼 과거와 달리 김재규를 다시 볼 필요성이 커졌고, 그가 박정희를 암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배경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인식이 늘었기 때문이다.
문 작가는 2019년 6월 13일 오전 강원도 양구군에서 만났다. 문 작가는 살고 있는 곳을 ‘귀촌한 작가’와 ‘목수’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귀촌 작가와 목수도 어울리지만, 직접 눈으로 본 풍경은 ‘작가의 방’과 ‘작가의 숲’이라는 표현도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가인 남편 이석화 작가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문 작가는 카페에 나와 남편을 돕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작품 집필 때문에 주로 집에 머물고 있다.
문 작가 인터뷰는 김재규 평전을 쓴 작가로서 그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만났다. 문 작가는 “김재규라는 인물의 특성상 찾아오는 이가 많지 않은 편인데,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받고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김재규는 한국과 한국인에게 있어 ‘문제적 개인’인 셈이다.
‘문제적 개인’은 G. 루카치(György Lukács)가 『소설의 이론』에서 서구 근대 소설의 새로운 인물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쓴 개념이다. ‘현대’와 ‘비극’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인물을 이르는 말이다. 김재규는 ‘현대사’와 ‘비극’의 주인공인 만큼 루카치가 표현한 ‘문제적 개인’으로 표현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나 배경이 있었나?
2012년 박근혜 당선 후, 다른 사람도 그랬겠지만, 나는 ‘멘붕’에 빠졌다. 박정희 시대로 되돌리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사인에서 이 책을 기획한 게 출간 5년 전, 그러니까 2013년 출간한 책인데, 이보다 5년 전에 기획했다. 2013년 10.26을 겨냥하고 책을 기획해 쓰기 시작했다. 그 전에 벌써 이제 박근혜 당선 때문에 충격을 받고 있었을 때에 시사인에서 이 책을 이야기했다.
여러 필자를 섭외하고 출간 계약까지 썼는데, 잘 안 됐다. 약속을 어기거나 하다가 포기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출간이 안 됐다. 김재규장군명예회복추진위원회(2000년 10월 25일 발족)를 이끄는 분이 함세웅 신부인데, 함 신부가 자료를 갖고 있고, 무엇보다 10.26사건을 다시 조명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시사인에 출간을 제안했던 분이고 시사인도 그러자고 했다.
김재규 관련 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권 있다. 김진명이 쓴 소설도 있다.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재판 기록, 군사재판을 녹음한 것, 판결 내용을 풀어서 책 두 권으로 쓴 분도 있다. 지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동아일보 기자를 하다가 대학 교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각주1) 그런 게 있었지만, 제대로 된 김재규 평전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기(강원도, 현재 살고 있는 곳)로 들어와 살면서 쉬고 있는데, 그런 제안(평전 집필)이 들어와서 생각을 했다. 2013년 2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후 함세웅 신부와 강신욱 변호사 등에게 도움을 받았다. 강 변호사는 가장 많은 도움을 줬다. 강 변호사는 당시 김재규를 변호했던 분이다. 그리고 안동일 변호사 등을 만났다. 안 변호사는 당시 군인이었다. 법무관이었는데, 국선으로 변호에 참여했던 분이다. 현재 두 분이 모두 사건에 참여했고 생존해 있다. 강 변호사는 나중에 국회의원도 했다. 강 변호사는 유신 때, 민청학년 때 법정에서 구속된 전력도 있는 분이다. 근거도 없이 학생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을 보고 항의하다 법정에서 구속됐다.
강 변호사는 박선호 당시 의전과장을 변호했는데, 다른 변호인을 썼다가 해임하고 다른 변호인을 선임했는데, 이 과정에서 박 과장을 변호했다. 1심 선고 후에는 거의 매일 남한산성으로 가서 접견을 했다. 접견 기록을 대학 노트에 모두 기록했는데, 인생 전체를 기록한 셈이다. 강 변호사가 노트를 나에게 줬다. 일부 내용은 해독이 어렵거나 잘 맞지 않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직접 강 변호사를 찾아뵙고 이야기를 들었다.
주로 강 변호사를 통해 파악을 많이 했다. 10.26사건이나 김재규 장군에 대한 책이나 자료는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서 봤다. 또 안 변호사도 재판에 참여했던 분이기 때문에 찾아뵙고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그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군(軍)에 대한 입장도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자료를 보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제대로 된 김재규 평전이 없었다”
▲책 출간 후 주변 반응은 어땠나? 소개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초고 완성 후 자문을 구했다. 변호사에게 사실 관계 확인 등 자문을 위해 원고를 보여줬을 때 함세웅 신부, 강신욱·안동일 변호사가 무척 기뻐했다. 함 신부가 밥을 사겠다고 해서 저녁을 함께 했는데, 자료가 충실하고 공정하게 정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시사인북에서 출간을 했는데, 자기네 매체 말고 다른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았다. 출간 후에도 계획을 세울까 싶어서 여론조사 등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40대에서도 김재규나 10.26을 잘 모르고 있었다. 30대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출간 후 생각했던 것보다 책이 잘 팔렸다. 10.26 직전, 그러니까 3~4일 전 즈음 책을 서점에 배포했는데, 10.26 당일 인터넷 서점을 확인해보니 책이 없었다. 품절 상태였다. 출판사(시사인북)가 그만큼 일을 제대로 못했던 거다. (웃음) 책이 팔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1쇄 2,000부는 출간되자마자 모두 팔렸고, 2쇄를 찍지 못하고, 그러니까 10.26을 놓친 것이다. 이후 부랴부랴 책을 찍었고 6쇄까지는 아주 빠른 속도로 판매가 됐다. 현재 12쇄(필자가 친필 서명을 받은 책도 12쇄다)까지 찍었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나가고 그러니까 출판사에서도 좀 놀랐다. 처음에 생각했던 반응에 비해서는 정치사회 책으로는 많이 나갔다(판매가 됐다)고 생각했다. 주류 언론 등에서는 관심을 많이 갖지 않았지만 오마이뉴스를 비롯해 기자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기사를 써줬다. 그리고 장정일(문인, 소설가, 수필가, 작가) 씨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서평을 알아서 써줬고, 그런 영향으로 판매가 잘 된 것 같다.
이런 관심은 박근혜가 집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김재규나 10.26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쨌든 책을 낸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6쇄 이후 잠깐 멈추는 듯하다가 8쇄부터는, 그러니까 촛불집회 시기 때 갑자기 또 빠르게 팔리기 시작했다. 당시 김재규 묘소에 사람들이 꽃을 가져다놓았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검색어에 뜨면서 책이 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쉼터(카페)에 책을 가져다놓았는데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보였다.
▲책을 출간한 후 5년이 지났다. 책의 저자로서 김재규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 시점이나 책을 쓸 당시나 달라진 것은 없다. 책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꼭 풀어야 할 의문이 하나 있었다. 이 의문 때문에 이 책을 쓴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재규는 유신의 핵이었고 박정희의 오른팔이었다. 그런데 박정희를 쏘고 나서 행동이 이상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장군, 쓰리 스타(3성 장군) 출신이고, 군부에 자기 세력도 있었다. 이 사람이, 예를 들어, 쿠데타를 원했다면, 전두환은 아마 김재규에게 졌을 것이다. 그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는데, 중정부장은 보안사령관보다 힘이 셌다. 그런데 김재규는 박정희를 쏘고 나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전두환에게 잡혀가서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몰려 죽었다. 김재규는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까. 그게 풀고 싶은 의문이었다.
“박근혜는 전두환을 오빠라고 불렀다고 하더라”
▲책 중간에 보면 이 의문과 관련해 풀어서 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전지적 작가 시점 형태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인 후) 그 이상의 행동을 하게 되면, 자신도 박정희와 똑같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맞다. 본인(김재규)이 그렇게 술회(述懷)했다. 그런데 내가 바라본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석을 했느냐 하면, 김재규는 박정희를 저격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계속 모시던 사람으로서 박정희에 대한 애정이 계속 있었다. 인간 박정희는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중앙정보부장까지 끌어올려준 사람이고, 그만큼 신뢰와 애정이 있었는데, 그렇지만 결국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갔는데, 박정희를 저격해서 그가 죽었을 때, 김재규의 한 부분도 죽었다고 생각한다.
김재규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정체성은 유신정권의 핵심 권력이고, 박정희의 분신 같은 존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박정희 분신이고, 박정희 권력 자체이고, 박정희 자체다. 박정희 권력의 핵심인데, 박정희를 죽였을 때 남아 있는 게 없었다. 김재규는 그 순간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멘붕’이고, 정서적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그래서 권력을 잡는다는 등 욕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거사를 하기 전에는 혁명위원회를 만든다는 것을 비롯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죽이고 난 후 자기 일부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행동을 하지 못했다. 이게 전두환과 김재규를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불렸던 사람이고 박정희가 보안사령관을 만들어줬다. 박근혜는 전두환을 오빠라고 불렀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고, 말도 못하게 아첨을 하면서 육사 시절부터 박정희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썼던 사람이었다. 전두환은 5.16쿠데타가 났을 때 육사 생도였는데, 5.16을 지지하는 행진을, 교장이 못하도록 했음에도 생도들을 이끌고 했던 사람이다.
전두환은 그때(생도 시절)부터 박정희의 후계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고, 5.16 교본을 손에 들고 언젠가는 권력을 쥐겠다고 늘 벼르고 있던 사람이다. 불행히도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게 됐다. 박정희가 실려간 병원 원장이 전두환에게 정보를 맨 처음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행동은 즉시 자기를 따르는 수하를 모아놓고 권력을 잡기 위한 작전회의를 했다. 10.26 당일 이미 쿠데타가 시작됐고 결국 12.12가 됐다.
“박근혜도 박정희를 보러 병원에 가지 않았다”
전두환은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토록 존경한던 박정희가 죽었는데,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하지도 않았다. 병원은 관심이 없고 죽었다는 것에 대해 충격이나 슬픔 등 인간적인 어떠한 게 전혀 없었고 ‘박정희가 죽었다, 이제 권력을 잡아야겠다’, 이런 생각밖에 없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전두환은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박근혜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확인된 사실인가?) 물론이다. 김계원 비서실장 자서전에 모두 나온다. 김 실장이 병원에 갔었다. 이 이야기가 왜 나오느냐 하면, 박정희가 금고에 갖고 있던 돈은 어디로 갔느냐, 스위스 계좌 이야기 나올 때인데, 청와대에 금고가 세 개 있었다, 전두환이 박근혜에게 준 6억, 이 돈은 어디에 있었던 것이냐, 그것은 비서실장 방에 있었다, 집무실에 있었던 박정희 금고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전두환은 박정희 금고를 열었을 때 서류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실장은 박근혜에게 (박정희 금고) 열쇠를 줬다고 했다. 세 개 중 두 개는 전두환이 가져갔고, 박정희 금고는 박근혜에게 줬다는 것이다. 세 개 중 가장 중요한 금고인 박정희 금고는 박근혜에게 줘야 할 것 같아서 줬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정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근혜가 한 말이 ‘전선은 괜찮냐?’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북한은요?’라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김계원이 한 말인데, 좋은 뜻에서 한 말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나라를 걱정하던 사람이었다는 취지로 한 말이라고 본다.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물어봤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김계원이 지어낸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박근혜는 병원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그럼 무엇을 했을까?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은, 최태민을 불러 금고를 열고 그 안에 있던 것을 옮겼다, 이게 사람들의 추측이다.
어쨌든 박정희가 죽었을 때 슬퍼한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김재규밖에 없었다. 김재규는 자신이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죽음에 대해서 너무나 강한 충격과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은 박정희 사후에 권력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자료 조사 과정과 여러 사람의 진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박정희는 정말 안 됐구나, 박정희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조차 없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첨을 하던 차지철은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하던 순간에 화장실로 숨었다. 경호실장은 몸으로 막았어야 하는데, 화장실로 숨었고, 오히려 그 자리에 있던 여자들이 박정희를 부축했다. 그런 정황을 보면 박정희를 진심으로 걱정하거나 좋아한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박정희를 저격했던 김재규는 멘붕에 빠졌고 오랫동안 죄책에 빠졌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자신이 인정하지만, 인간적인 슬픔을 느꼈던 사람이다.
또 하나는 자신이 갖고 있던 도덕적 책임을 인정했다. ‘유신의 핵심 권력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나’, 이 부분을 확실하게 인정했다고 변호사들이 이야기한다. 그 부분은 김재규에 대한 평가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함세웅 신부 같은 분은 안중근 의사를 이야기하면서 ‘의사’, ‘정당방위’라고 말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박정희 죽음을 슬퍼한 사람은 김재규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한 행위, 자기희생을 무릅쓰고 박정희를 죽여서 그 당시 부마항쟁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유혈 행동은 정당할 수 있으나 그 사람이 이전에 했던, 유신 권력의 핵심으로서, 중앙정보부장으로서 했던 반민주적 행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 권력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반인권적 범죄다. 민청학련사건이나 인혁당사건, 물론 인혁당사건은 재임 때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반인권적 행위들, 그런 것까지 그 사람은 책임이 아니다, 의인이다, 이런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나치 권력 핵심이었던 사람이 유태인 몇 명을 살려줬다고 해서 나치 전범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부분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이는 함세웅 신부와 동의하지 않는 유일한 부분이다.
함세웅 신부는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말한다. 정당방위였기 때문에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그 이전에 했던 김재규 행위는 이제 와서 문제 삼지 않아야 하고 의인으로서 자기희생은 정당하게 평가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김재규 행동은 민주화를 위한 의거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명예 회복이라는 부분에서 전두환이 뒤집어씌웠던 모함, 자기 권력을 잡기 위해, 차지철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서 박정희를 쏘았다는 모함은 반드시 벗겨야 한다,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유신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장으로서 했던 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고 본다. 물론 그의 행위, 인간적인 행위 부분 등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을 확실하게 갖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썼고, 이것을 사람들이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과오와 실수가 있을 수 있으나 과오와 잘못을 인정하고 교정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은 평가해줘야 한다. 이전에 했던 잘못은 분명히 있다는 점, 하지만 스스로를 희생해 박정희라는 권력을 제거함으로써 그 뒤에 더 많이 따라올 수 있는 희생을 막았다, 이렇게 평가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김재규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김재규 때문에 전두환이 집권했고, 5.18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는 매우 잘못된 시각이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한 사건, 10.26은 부마항쟁이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재규는 일주일 전에 부산에 가서 항쟁의 심각함을 알고 이 때문에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차지철이 4.19혁명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 그 당시 10.26이 안 일어났으면 광주 사람 대신 부산이나 마산 사람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김재규가 10.26을 일으켜서 5.18이 일어났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런 논리 역시 전두환이 심은 논리다. 이를 사람들이 아직도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와 같은 이야기나 논리가 정치에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박근혜가 대통령까지 가게 된 배경에는 사람들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나 유신에 대한 역사적 정리 등이 확실하게 안 되기 때문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10.26에서 5.18까지 역사적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기에 이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왜 역사가 왜곡됐는지, 왜 제2의 군사독재가 시작됐는지 등에 대해 뚜렷하게, 확실하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구는 평전을 소설로 인식하는 경향 많다”
▲책을 읽어보니 사실에 바탕을 두고 서술하고 있지만, 저자의 생각이나 감정을 담아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서술한 부분도 있다. 일종의 해설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런 내용이나 평가의 경우 사실인지 의심이나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책 속에 들어 있는, 특히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본 내용은 사실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바람이나 느낌인지 묻고 싶다.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저널리스트·극작가·전기작가)라는 작가를 굉장히 좋아한다.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와 같은 책을 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평전이나 역사서로 생각하지만, 츠바이크는 소설이라 부른다. 유럽에서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츠바이크가 이 소설을 쓴 배경에 대해 스스로 밝힌 게 있다. 뭐냐면, 이 책에서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모두 사실이다, 전부 확인한 것이고 시대사 흐름으로서 프랑스혁명을 모두 취재해 담은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근본적으로 다루고 싶고 담고 싶었던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사람’이다, 그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들, 그리고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고 싶었다고 밝혔다.
츠바이크는 앙투아네트가 어떤 사람인지 작가로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책에 썼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서술은, 인간을 이야기할 때는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게 있느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어떤 경우라 해도, 다큐멘터리라 하더라도 작가의 서술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책이나 다른 것이 나올 수가 없다. 작가의 서술이라는 단계에서 하나의 어떤 언어 선택과 허구가 끼어들 여지는 있다고 밝히고, 소설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서구에서는 평전을 소설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한국은 평전에 대해 사실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한 편이다. 예를 들어, 『전태일 평전』(각주2)을 읽어보면, 두 가지가 있는데, 조영래 변호사가 쓴 부분과 전태일의 수기로 돼 있다. 그러면 수기는 완벽한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태일도 수기를 쓸 때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넣어서 쓸 수 있다. 언어로 기록한 모든 것은 작가의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쓸 때 김재규라는 사람에 대한 묘사,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하는 김재규라는 사람을 쓴 것이다. 그렇게 쓴 것이라서 사람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피소드들은 모두 사실이다. 취재를 통해서, 일에 관련된 사람, 목격한 사람, 연루된 사람이 진술한 것을 토대로 쓴 것이기 때문에, 즉 소설과 다른 점인데, 취재를 통해 근거와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쓴 것이다. 그렇지만 김재규의 심정, 이런 것은 내 생각으로 쓴 것이다. 이 사람은 이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한 치의 가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독성 중요하게 생각해 스토리텔링을 넣는다”
▲방금 해주신 설명은 독자가 이 책을 읽었을 때 조금 더 명확하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는 도움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또 한 가지가 있다. 책을 쓸 때, 특히 정치·사회·역사 분야 책을 쓸 때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가독성(可讀性)이다. 내용이 좋아도 책이 재미가 없고 읽히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 본다. 그런 책을 많이 봤다. 좋은 내용이고 자료로서 가치는 충분히 있지만, 단행본은 대중서적이기 때문에 아무나 보는 책이고, 웬만한 사람은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몇 장을 읽기 힘든 책이 의외로 많다. 방송 종사자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본다.
방송은 진지하지만, 쉬워야 한다. 그래서 책을 쓸 때 가독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스토리텔링을 넣는다. 이야기가 있을 때 사람들은 쉽게 따라간다. 스토리텔링 요소를 넣는 것은 작가로서 전략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가독성을 높이고, 또 지루한 내용일 수 있는 책을 잘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냐?’는 느낌이나 물음이 나올 수 있다. 사실 영상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으로 책을 쓸 때 소설보다는 ‘영화냐?’라며 영화로 생각하고 읽어주기를 더 바란다.
▲시나리오로 바로 전환할 수 있는 책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시, 운문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산문은 글쓴이가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심리 중심인지 시각 중심인지, 크게 보면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눈으로 보는 것이 있고 머리와 가슴으로 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서 행동을 보는 것처럼 그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책을 보면서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책이 빠르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재규 외에 이석기·탈북민·간첩 다루는 작업 중”
▲이곳(문영심 작가의 집이자 작업실)에 오기 전 카페에서 남편인 이석화 작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한참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책이나 영화인가?
영화는 3년 전부터 계속 하고 있는 작업이다. 작가로 참여하고 있어 중요한 것은 감독이 하고 나는 보조적인 역할이다. 막바지 작업이다 보니 작가도 자막 등 여러 가지 작업을 할 게 있다. 『이카로스의 감옥 :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문영심, 도서출판 말, 2016)이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을 다룬 책인데, 경순 감독의 영화 『지록위마』(指鹿爲馬)도 이석기 사건을 다룬 것이다. 감독은 피해자 중심이 아니라 사건 밖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 그러니까 우리는 왜 사건을 쉽게 허용했는가에 맞춘 것이다.
나는, 즉 『이카로스의 감옥』은 ‘이카로스’라는 게 그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으로 썼다. 하지만 감독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러니까 ‘우리는 내란 음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왜 그 사건을 쉽게 허용했지?’라는 관점으로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영화는 계속 진행하는 작업인데, DMZ국제다큐영화제(2019.09.13~20)에서 상영을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될지 안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9월에 하는 영화제인데, 사실 이곳에서 제작비를 받았는데, 감독은 이번에는 상영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상영을 했으면 어떻겠느냐는 문의가 있어서 급하게 후반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경쟁 부문에서 할지, 아니면 초청작으로 낼지, 아니면 상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사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작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정이다.
또 하나는 ‘민들레’라고, 탈북민, 그 중 간첩조작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을 돕는 단체다. 민변 변호인과 인권활동가 중심으로 구성된 임의 단체다. 2018년 의뢰를 받아 아홉 명인가, 그 분들의 인터뷰 자료집을 만들었다. 그런데 단행본으로 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인터뷰집은 고민 중이다. 가독성이 높은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재밌는 것도 있다.
정유정 작가가 쓴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정유정·지승호, 은행나무, 2018)를 봤는데, 엄청 재미있었다. 그 정도가 아니면 일반인 인터뷰는 별로 재미가 없다. 탈북민 이야기 중에는 기가 막히는 것도 많지만, 두서가 없는 것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이를 기반으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서 예닐곱 개의 단편소설 형태로 출간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민들레에서 좋다고 해서 출판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또 다른 책 의뢰가 들어왔다. 뭐냐면, 1980년 11월에 ‘보성가족간천단사건’이라는 게 있었다. 무려 30명이 넘는 일가(一家), 문중(門中) 일가가 잡혀간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7년 동안 징역을 살고 나온 당사자가 생존해 있다. 사건의 피해자다. 그 분이 의뢰한 것인데, 자신의 가족사를 책으로 엮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태백산맥』 같은 이야기다. 내가 볼 때는 ‘태백산맥’이다. 그 분 이야기로는 조정래 선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져다가 썼다고 한다. 그 분의 종가(宗家), 종택(宗宅)이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이 돼 한옥 펜션처럼 쓰고 있다고 한다.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 등 여러 사람이 가족사에 관심을 가졌고 연구도 했다고 하더라.
▲가족사 집필을 의뢰한 분은 누구인가?
정길상 선생이다. 이 분은 지금은, 한겨레에 신문에 이 분 관련 기사(이진순, “아부하고 고개 숙여 정승 판서 나오면 뭐하냐?”, 영광 정(丁)씨 고택 지킴이 정길상, 한겨레 2016.09.23)가 있는 것 같은데, 이진순인가, 이 분이 쓴 글이다. 정 선생 관련 글은 이 기사를 처음 봤다. 이 분은 가족사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바람을 계속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좀, 내가 하는 작업이 다 그렇지만, 엄청 조사를 해야 한다.
“식민지부터 해방과 정부 수립 시기까지 관심 많다”
▲작업하는 대상을 보면 김재규, 이석기, 간첩 등 민감한 주제가 많다.
주변에서는 왜 자꾸 민감한 것을 하느냐고 말하는데, 사건은 80년대에 일어났지만, 중요한 것은, 전후 아니 해방 이후,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해방공간’, 1945년에서 1948년 사이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나의 오랜 관심사였다. 식민지부터 해방과 정부 수립 시기까지, 한국인이 처했던 상황, 특히 지식인의 상황, 이런 게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막상 이런 것을 다루려고 하니 굉장히 공부를 해야 하는, 어디부터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보면, 일제 말 때, 한일강제병합이나 동학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보니 항일운동과 그 이후에 이어진 공산주의나 자유주의는 동학과 서로 다르지만, 연관이 돼 있었다. 이런 것은 『토지』(박경리, 솔 1979·1993), 나남 2002, 마로니에북스 2012)에도 나온다,
이것을 모두 공부하려면, 보통 작업이 아니다. 한 가족사를 다룬다고 해도 사이즈가 아주 큰 것이다. 더구나 나름 뚜렷한 역사관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작업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고민을 계속 했고, 지금은 하는 쪽으로 결정을 한 상태다. 이 분은 죽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은, 크게 보면 세 가지 일, 영화 『지록위마』를 마무리하는 것, 탈북민 인터뷰, 정길상 씨 이야기 등이고 이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영화는 작업을 끝냈어야 하는데 늦어져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2014년 12월 19일)한 날짜인 12월 19일에 맞추려 했는데, 맞추지 못했다. 경순 감독이 부담을 갖고 있다. 출판사나 배급사 섭외가 어렵고 내용도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차례 뒤엎고 편집도 여러 번 했다.
그러다 이번에 DMZ영화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제는 그냥 올해 안에 마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책은, 영화에 담지 못한 게 많은 만큼, 후속 이야기 형태로 출간할 예정이다. 책은 출간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사색(思索)하면서 사색(死色)이 되는 사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사람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양구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강의 이름이 ‘인문독서아카데미’다. 사람도 많지 않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인문학 위기는 1970년대에도, 내가 대학 가려 할 때에도, 철학과를 가겠다고 하면 미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인문학 강의를 왜 듣나, 이런 부분이 책도 안 팔리고 안 읽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실용성이 아니면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원인이다.
물론 그렇게 살아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 철학과를 뭐 하러 가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도 된다. 하지만 남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질밖에 없다. 그런데 물질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태를 과연 좋게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질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려면 필요한 게 책이고 인문학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시간 강의한 후 수강생에게 어떤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냐고 물었다. ‘요즘 나는 사색은 하지 않고 검색만 하며 살아요’라는 말을 딸에게 들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게 큰 문제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고 자신도 뭔가 늘 찾지만 생각은 하지 않는다, 또 ‘사색(思索)이라는 말조차 고어(古語)처럼 사람들이 다 잊어버렸다, 그러면서 사색(思索)을 하면서 사색(死色)이 된다’는 농담도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하더라. 자꾸 찾아보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 그것은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고 몰라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찾아보면 된다는 생각이다. 위키백과, 네이버 등이 모두 완벽한 사실을 담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문영심
27년 동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썼다. 수백 편의 방송 원고 중 2006년에서 2011년까지 매달렸던 다큐멘터리 『물은 생명이다』(SBS)를 대표작으로 여긴다. 유신 말기에 청춘을 보낸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렇듯이 유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을 괴로워한다.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소설적 재미를 결합해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을 썼다. 『간첩의 탄생』을 쓰면서 민주주의는 ‘법치’가 제대로 돼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했고, 이 책을 통해 상식을 배반하고 법치를 무시하는 ‘공안권력’을 고발했다. 강원도 양구로 귀촌한 후에는 야생화 탐사에 재미를 붙이며 살았다. 하지만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예민한 주제의 책을 연이어 쓰게 됐다. 저서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돌』(가즈토이(God’s toy), 2010),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2013), 『간첩의 탄생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 작 사건의 진실』(시사인북, 2014), 『이카로스의 감옥 :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진실』(말, 2016), 『세상 밖으로 부는 바람』(말, 2017) 등이 있다.
함께 읽기
▲김재규를 다룬 책
안동일,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 170일 간의 재판 기록으로 밝힌 10·26의 진실』, 김영사, 2017
송용만, 『김재규의 후예들』, 북랩, 2016
김대곤, 『김재규의 혁명 : 역사가 감추려 한 진실을 쫓다』, 필요한책, 2016
김연철·함규진·최용범,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페이퍼로드, 2015
문영심,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시사IN북, 2013
김진명, 『한반도 1』, 『한반도 2』, 해냄, 2008
민청학련사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事件)은 1974년 4월 발생한 시국 사건이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의 관련자 180여 명이 불온 세력의 조종을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한 사건이다. 2009년 9월 재판부는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자료 : 위키백과
최태민
경찰, 승려,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사이비 교주 등 다양한 이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박근혜가 영애였던 시절부터 박근혜와 친분이 두터웠다는 사실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알려진 최순실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박근혜와의 친분과 관련해서는 친분 관계를 이용해 부정 축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도원(崔道源), 최상훈(崔尙勳), 최퇴운(崔退雲), 공해남(孔亥南) 등의 이름을 사용했으며, 1977년 3월 9일부터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생전 총 6명의 배우자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 최순실을 출생한 다섯 번째 배우자 이름은 임선이(林先伊)다. 한편 최태민과 박근혜가 내연 관계로서 동거하고 있다는 내용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보고서가 1989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이는 2016년 11월 4일 조선일보 공개로 알려지게 됐다. 1975년 3월 6일 박근혜와 만난 뒤, 같은 해 4월 29일 대한구국선교회(大韓救國宣敎會)를 조직했고, 자신은 총재가 됐다. 대한구국선교회는 1976년 12월 10일 구국봉사단(救國奉仕團), 1979년 5월 1일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최태민의 재산에 대해 조사가 이뤄졌으나 최태민은 자신의 재산을 축적한 모든 경위가 박근혜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증언해 수사에서 벗어났다. 자료 : 위키백과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
오스트리아 출신의 시인·소설가이자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하나인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가 1932년 발표한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평전이다. 한국어판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이유의 장미』(박광자·전영애, 청미래, 2005)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가독성(可讀性)
현대 시학에서, 특정 서사 텍스트가 지닌 읽을 만한 가치나 효용에 대한 독자의 총체적 판단 결과를 이르는 말이다. 책 디자인에서 말하는 가독성은 독자가 책 읽는 게 얼마나 좋은지를 뜻한다. 서체, 레이아웃, 자간, 행간, 여백 등에 따라 결정된다.
토지
소설가 박경리의 소설이다. 총 5부 25편으로 이뤄져 있다. 박경리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 간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호평을 받았다. 1979년과 1987년에 각각 한국방송공사에서, 2004년에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했다. 박경리가 1980년부터 1994년 8월 15일까지 원주시 옛집에서 『토지』를 지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토지문학공원을 조성했고,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있는 토지문화관에서 집필생활을 했다. 또한 『토지』를 기념하고 소설의 무대가 된 경남 하동군 평사리에 소설 속 최참판댁을 구현해 2001년 준공 후 일반인에게 공개했는데, 이곳 최참판댁에서는 소설 『토지』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 행사 및 각종 문학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료=위키백과
각주1
문영심 작가가 말한 저자는 『김재규의 혁명』을 쓴 김대곤 선생이다. 저자 김대곤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서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에 입사, 20여 년 동안 『신동아』 부장, 『주간동아』 부장, 편집위원 등으로 근무했다.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춘추관 관장,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국무총리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우석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와 원광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각주2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은 2009년 아름다운전태일에서 출간한 것과 2001년 돌베개에서 출간한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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