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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종과 나비

눈꺼풀 하나를 20만 번 이상 깜박여 쓴 작가와 작품 이야기를 알고 계세요?

삶이 자꾸만 옅어지려고 할 때 왼쪽 눈꺼풀을 깜박거려 써내려간, 15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 눈꺼풀을 깜박거려 완성한, 마지막 생명력을 쏟아 부어 쓴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종과 나비』를 처음 받아들던 그날로부터 하고 많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 <잠수종과 나비>를 읽다가 크게 서너 차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을 테고, 또 서너 번은 울컥해서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책을 읽은 이를 혹여 만나게 된다면 “내가 맹세한다니까!”라든지 “머저리가 하나가 아니라 둘로 보이오!”를 비롯해서 할 얘기들이 너무나 많거나, 아니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애정 깊은 눈으로 서로를 오래도록 응시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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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여름·가을 제3권 제2·3호 통권 제10·11호
ISSN 2635-876X 92·93

서평

잠수종과 나비

눈꺼풀 하나를 20만 번 이상 깜박여 쓴 작가·작품 이야기

신성대 동문선 대표

잠수종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저 / 양영란 역 | 동문선 | 2015년 08월 30일

회고록 『잠수종과 나비』(영어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프랑스어 Le Scaphandre et le Papillon)는 프랑스 패션 전문지 ‘엘르’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Jean-Dominique Bauby)의 감동 실화를 담은 책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보비는 오로지 왼쪽 눈꺼풀만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절망을 딛고 왼쪽 눈꺼풀 움직임만으로 130쪽에 달하는 책을 완성한다. 단어 하나 쓰는데 2분, 한나절을 작업해도 반 쪽 분량밖에 쓸 수가 없을 만큼 느린 작업이다. 신성대 동문선 대표가 『잠수종과 나비』 서평을 보내왔기에 게재한다.
-사람과사회 thepeopleciety@gmail.com

삶이 자꾸만 옅어지려고 할 때 왼쪽 눈꺼풀을 깜박거려 써내려간, 15개월 동안 20만 번 이상 눈꺼풀을 깜박거려 완성한, 마지막 생명력을 쏟아 부어 쓴 장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종과 나비』를 처음 받아들던 그날로부터 하고 많은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전히 처음처럼 읽히고, 또 이 책을 영화화한 동명의 『잠수종과 나비』도 이따금 스크린에 펼쳐지곤 합니다. 블로그에도 ‘독후의 글들’이 끊임없이 오르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각양의 글쓰기로 풀어 놓습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가 ‘자기만의 필법’으로 써내려갔듯이, 살아 온 날들의 분량만큼, 이해의 폭만큼, 쓰라린 아픔만큼, 견뎌온 세월만큼…….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자상한 아버지, 멋진 생활을 사랑했으며, 똑똑한 대식가(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말을 골라 쓰는 유머러스한 멋진 남자! 앞서가는 정신의 소유자로서 누구보다도 자유를 구가하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어느 날 오후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집니다(책 속에서 잠깐 내비친 정황으로 보아 전날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그를 옥죄었던 듯합니다). 3주 후 의식은 회복했으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쪽 눈꺼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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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에서 사용되는 빈도에 따라 철자들을 배열한, 말하자면 글자들의 빌보드 차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순서대로 편집자인 클로드 망드빌이 쉼 없이 “이 에스 에이 아~ㄹ 아이 엔…케이 더블유” 하고 읊조리면 장 도미니크 보비가 해당 철자에서 눈꺼풀을 깜박입니다.

LE SCAPHANDRE ET LE PAPILLON

책의 제목인 위의 스펠링을 쓸라치면 클로드 망드빌은 스물네 번을 읊조려야 하고, 장 도미니크 보비는 눈꺼풀을 깜박여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들처럼 눈꺼풀을 깜박이는 것이 아닙니다. 영상 속의 그의 깜박임은 그조차도 쉽지가 않아 보입니다. 이렇게 왼쪽 눈꺼풀을 깜박거려 써내려간 글이 하루에 반쪽 분량!

클로드 망드빌은 책상 대신으로 쓰는 테이블 위에 큼지막한 노트를 펼쳐 놓고 연신 “이 에스 에이 아~ㄹ 아이 엔……” 하며 보비의 눈가의 움직임을 살핍니다. 그녀의 음성과 미소가, 되물음이, 끈기가 자못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누군가는 이 책 <잠수종과 나비>를 읽다가 크게 서너 차례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을 테고, 또 서너 번은 울컥해서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책을 읽은 이를 혹여 만나게 된다면 “내가 맹세한다니까!”라든지 “머저리가 하나가 아니라 둘로 보이오!”를 비롯해서 할 얘기들이 너무나 많거나, 아니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애정 깊은 눈으로 서로를 오래도록 응시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아니 사랑하는 아이가 내 곁에 있을 때면 우리는 어쩌면 보비가 그토록 간절히 열망했던 몸짓이 생각나 문득문득 아이를 으스러지도록 껴안기도 하고, 머리털을 쓸어 주고, 목덜미를 만져 보겠지요.

“걱정 마, 이 녀석아, 너를 사랑한다!”

‘살아 있는 이 순간이 행복’임을 아프게 마음에 새깁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가, 그러니까 그가 무슨 ‘사명’으로

이렇게까지 힘을 쏟았나를 짐작하기에 이르다 보면 마음 안에서 들끓던 부아도 차츰 사그라지고, 자꾸만 옅어지려고 하던 삶에 대한 애정도 잠잠히 회복되곤 했습니다.

보비가 남긴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에게 나비가 많이 찾아오기를!”

신성대
출판인, 전통무예연구가, 칼럼니스트다. 1954년 경남 창녕 출생. 1976년 한국해양대학 부설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1등기관사로 해외 승선 근무를 한 후 1985년 도서출판 동문선(東文選)을 설립해 인문·예술 전문 서적 분야에서 약 700종을 발간했다. 저서로는 『武德 : 武의 문화, 文의 정신』(동문선, 2007), 『품격경영』(동문선, 2014) 등이 있다. 현재 동문선 대표와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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