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오와 ‘학보병 사건’
“두 사람을 살해한 순간 나 또한 죽은 지 이미 오래다. 다만 아무리 군대라 해도 인간 이하의 노리개처럼 갖고 노는 잔인함을 향해 나는 총을 쏘았다.”
1962년 7월 7일 저녁, 15사단 무반동총 내무반에서 생긴 소위 ‘학보병 사건’의 주인공인 최영오 일병(당시 서울대 천문기상학과 4학년)이 군사법정에서 한 말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던 군(軍)에 방아쇠를 당긴 사건이다.
당시 서울대 문리과대학 사회학과 3학년생이던 조화유는 추모하는 조시(弔詩)를 쓰기도 했다.
어떤 에필로그
조화유
태초에 실수가 있었다.
천지창조 닷새 동안
신(神)은 과로하였다.
엿새째의 신
피로에 지친 나머지
아무렇게나 인간을 만들어버렸다.
이로부터 영겁에 이르는 인간 희극의 막이 올려졌다.
도대체가 역사는 모두 희극이었다.
전쟁도 희극이고
군대도 희극이었다.
갈라진 민족도 희극이고
그어진 휴전선도 희극이었다.
학도병 최영오!
그에 대한 두 상사(上司)의 희롱도 희극이고
그가 겨눈 분노의 총부리도 희극이었다.
이윽고 그에게 겨우어진 세 개의 총부리
그것도 희극이었다.
도대체가 모두 희극이었다.
어쩔 수 없는 신(神)의 엉터리 각본이었다.
이제 그 희극의 일장(一場)이 끝났다.
인간희극의 숙명이 낳은 또 하나의 인간희극
최영오 희극의 제5막이 내린 것이다.
바보들아 박수를 쳐라.
그리고 울어라!
계면쩍은 신이
헤벌쭉 웃고 있다.
그 사건 이후 52년이 지난 2014년 7월 7일, 사람과사회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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