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사회™ 뉴스

인생과 겨울나기

"인생의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겨울의 끝을 생각하면, 이 겨울이 더 춥고 쓸쓸하고 어둡게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끝이 두렵지 않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내 나약함은 죽음 앞에서 언제든지 나를 배신할 것이기 때문에……."

겨울 숲처럼 우리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비우는 일이다. 거기에 사랑과 용서와 화해와 나눔의 꽃을 새롭게 피운다면 비록 겨울이지만 마음의 밭에서 아름다운 인생의 봄을 즐길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의 겨울을 나는 ‘행복한 삶’(well-being)의 방법이고 ‘좋은 죽음’(well-dying)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이홍원

읽으며 생각하며 산책하며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도 행진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외치며 채찍을 휘두르게 했다. 만약 정상에 있다가 추락한 사람들이 이 말을 조금이라도 새겨들었다면 더 잘 내려왔을 것이다. 사진=Pixabay

인생과 겨울나기

정익구 프리랜서 에디터·라이프 코치

“겨울이다.”

겨울에 이렇게 말하려니 참으로 싱겁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겨울’이라고 되뇌며 첫 발을 떼 보려 한다. 인생을 대략 80년으로 잡고 사계절로 나눠보면 내 나이는 이제 막 겨울로 접어들었다. 지금부터는 봄에도 겨울이고, 여름에도 겨울인 셈이다.

“인생의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인생의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겨울의 끝을 생각하면, 이 겨울이 더 춥고 쓸쓸하고 어둡게 느껴지기도 한다. 언제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끝이 두렵지 않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내 나약함은 죽음 앞에서 언제든지 나를 배신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평균 수명을 산다고 치면 앞으로 20년은 더 살 테니, 지금 죽음을 말하기에 이른 느낌도 있다. 나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죽음이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과 미리 죽음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을 맞은 지금 그러한 생각은 더욱 뚜렷해졌다.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말러리(George Mallory)는 “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느냐?”는 우문(愚問)에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는 현답(賢答)을 남겼다. 말러리는 “정상은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 전에는 진정 오른 것이 아니다”는 말도 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잘 내려와야 진정한 자기 삶을 완성할 수 있다.

정상에서 잘 내려오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돈과 권력과 명예에 취해 있다가 내려올 기회를 잃거나 추락해 버린다. 살아 있을 때 아무리 화려했더라도 죽을 때 불행하다면 그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죽음을 기억하라!”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도 행진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외치며 채찍을 휘두르게 했다. 만약 정상에 있다가 추락한 사람들이 이 말을 조금이라도 새겨들었다면 더 잘 내려왔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불변의 진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상에서 영원히 머무를 것처럼 살아간다. 인간만이 죽음을 인식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잊고 지내거나, 애써 외면하려 한다. 죽음을 말하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이런 말을 꺼내는 사람은 좌중의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어 술맛을 떨어뜨리게 한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생의 겨울을 맞는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겨울은 그다지 우울한 계절도 아니다. 오히려 지난날을 되새겨 보고 삶을 깊이 음미하면 봄날과도 같은 계절을 누릴 수 있다. 겨울엔 겨울만이 갖고 있는 맛과 멋이 있다.

겨울엔 여름날 우거진 숲에서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나 보인다. 구부정한 산등성이와 그 아래로 흘러내리는 주름진 계곡, 상수리나무의 거친 피부……. 첫서리 때까지도 남아 있던 쑥부쟁이와 구절초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 얼룩과 상처가 보이기도 한다. 화려함은 없지만 세월을 견딘 의연함이 남아 있다. 모두 비우고 내려놓은 모습이다. 숲은 채워서 나누고 비우기를 반복한다.

“겨울도 맛과 멋이 있다”

지금 고개 마루턱에서 보니 올라온 길이 뚜렷하고, 내려갈 길이 정해져 있다. 잘 보이고, 잘 볼 수 있으니 축복이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온 꾸밈없는 자기 모습을 다른 어느 때보다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이제 저 겨울 숲을 닮는다면 굳이 채우려 하지 않고, 화려함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육신도 노화되니 몸으로 살지 않고 마음으로 살 때가 되었다. 인생의 봄은 다시 없겠지만, ‘마음의 밭’에 봄을 들일 수는 있겠다.

며칠 전 송년 모임에서,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으냐는 물음이 있었다. 누구는 그냥 지금이 좋다고 했고, 누구는 아내를 고생시키기 전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와 또 한 사람은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저마다 삶을 되돌아보면서 아쉬웠던 일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의미 있는 대답이었다. 나는 이런 바람을 말하는 것이 전혀 부질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비록 그 시절로 돌아가진 못하지만, 지금 그와 같은 바람을 마음의 밭에서 새롭게 피워낼 수는 있다.

‘마음의 밭’에 봄을 들이자

어린 시절에는 아무런 욕심도 경쟁심도 분노도 미움도 없었다. 아무 두려움 없이 용기도 낼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마음에는 세상 땟물이 스며들었다. 마음의 밭을 가꾸는 일은 이런 삶의 땟물을 지우는 일이다.

겨울 숲처럼 우리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비우는 일이다. 거기에 사랑과 용서와 화해와 나눔의 꽃을 새롭게 피운다면 비록 겨울이지만 마음의 밭에서 아름다운 인생의 봄을 즐길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의 겨울을 나는 ‘행복한 삶’(well-being)의 방법이고 ‘좋은 죽음’(well-dying)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UCLA 정신의학 임상 교수이자 『감성의 자유』(Emotional Freedom), 『긍정의 에너지』(Positive Energy)를 집필한 주디스 오를로프(Judith Orloff)는 『내려놓기의 즐거움』(The Ecstasy of surrender: 12 Surprising Ways Letting Go Can Empower Your Life)에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담았다.

평안의 기도

하느님,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소서
변화시킬 수 없다면 받아들이게 하소서
할 수 있다면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나도 기도할 때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한다. 내가 변화를 끌어낼 수 없는 것이라면 내려놓고, 받아들인다. 마음의 밭에 봄을 꽃 피우는 것처럼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면, 인생의 겨울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익구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하는 1960년에 출생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20여 년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서 사업전략과 마케팅 분야를 담당했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개발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심리상담 회사에서 일했다. 인생 후반기 목표를 사람과 자연과 세상과 어울려 영혼을 살찌게 하는 삶에 두고 있다. 현재 프리랜서 에디터(교정교열) 일과 (사)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로서 라이프코칭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문 분야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010-2237-2099, severino.jeong@gmail.com

About 정익구 (4 Articles)
사람과 세상과 자연과 더불어 영혼을 살찌우는 탐구자. 프리랜서 에디터. 라이프 코치. ‘베이비부머’ 세대에 해당하는 1960년에 출생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후 20여 년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서 사업전략과 마케팅 분야를 담당했다. 모바일 앱 개발 회사를 운영했으며, 최근에는 심리 상담 회사에서 일했다. 인생 후반기 목표를 사람과 자연과 세상과 어울려 영혼을 살찌게 하는 삶에 두고 있다. 현재 프리랜서 에디터(교정·교열), (사)한국코치협회 라이프 코칭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인문 분야를 중심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면서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