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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언어들’과 ‘잘 익은 삶’

“설익고 섣부른 언어들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성숙하고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책방을 결심한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책방의 개념(concept)과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다. 광고 일을 하면서 개념을 잡고, 이름 짓기(branding)가 일상이었는데 정작 내 일에는 모든 것이 어렵고 결정하는 게 힘들었다. 특히 책방 이름 때문에 일주일 넘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 한 줄, 책 한 권을 위해 열심히 책을 찾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나 역시 ‘잘 익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작은 성장들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책방 ‘잘 익은 언어들’도 점점 더 맛있는 열매들을 얻게 되겠지. 동네 책방들이여, 우리 함께 잘 익어가자!

책방 ‘잘 익은 언어들’ 문을 열며

‘잘 익은 언어들’과 ‘잘 익은 삶’

이지선 카피라이터 crejisun@naver.com

‘책방’을 열겠다고 하니, 다들 묻는다.

“월세가 얼만데? 책 팔아서 월세는 나오겠어?”

“하고 싶은 일이란 건 알지만, 신중하게 생각해 봐.”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반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했다.

모든 것이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들이긴 했지만, ‘꿈’과 ‘현실’의 간극을 여전히 모르는 ‘바보’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괜히 서러운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친구들은 나의 책방 창업을 반겼다. 그들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을 내가 해줘서 그랬을까? 아니면 ‘책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지적인 매력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일까? 하여튼 친구들의 응원과 위로 덕분에 힘을 내어 전주시 송천동에 있는 작은 1층 상가를 얻어 책방 문을 열었다.

광고 일도 계속 할 수 있도록 책방 한편에 내 책상도 놓아뒀다. 본업인 광고 카피 쓰는 일을 하면서 그 수익으로 책방 안의 책을 마련하겠다는 계산 때문이다. 책만 팔아서 운영하는 것은 힘든 게 현실이다. 동네 책방들은 거의 다 문화복합 공간의 성격을 갖추고 책방을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한다. 다방면에서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책방 이름 때문에 일주일 넘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방을 결심한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책방의 개념(concept)과 이름을 정하는 것이었다. 광고 일을 하면서 개념을 잡고, 이름 짓기(branding)가 일상이었는데 정작 내 일에는 모든 것이 어렵고 결정하는 게 힘들었다. 특히 책방 이름 때문에 일주일 넘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게를 얻기 전부터 미리 구상한 책방 이름은 ‘지금’, ‘책방 지금’이었다. 지금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책을 만나자는 생각으로 책방 이름으로 점찍어 두었는데 막상 하려고 보니 너무 평범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에게 내가 책방 문을 열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물어보니 나에게서는 ‘유쾌함’, ‘명랑함’이 딱이라며 ‘유쾌한 책방’, ‘명랑책방’이라는 키워드를 던져 주었다. 조언을 듣고 지은 이름은 ‘유쾌한 연금술사’, ‘명랑한 책방지기’도 있었고, 이것들과 정반대로 전라도 사투리인 ‘아고똥’, ‘솔찬히 괜찮은 책방’도 있었다.

이런 단어, 저런 단어들을 조합해서 이름을 지으며 지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돌아온 답은 더 좋은 이름으로 숙성을 시켜 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딱히 감이 오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나 역시 밤에는 완전 마음에 들었다가도 아침이면 별로인 이름들도 많았다. 사람의 마음이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방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여러 번 마음을 비웠다.

“왜 이름을 ‘숙성’시키라고 할까? 단어들이 음식인가? 익고 발효를 하게? 왜 자꾸 숙성시키라고 하지?”

그러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작가들이 밤새 쓴 원고를 아침에 낯부끄러워서 못 본다는 경우도 많지만 진짜 살아 있는 글들은 아침에 보든 대낮에 보든 한 문장, 한 문장이 괜찮을 것 같았다. 또 이런 글들이 들어있는 책이라면 모두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낱말의 숙성에서 ‘잘 익은 언어들’이 나오다”

우연히 본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는 책방 이름을 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책에서 ‘잘 익은 언어’ 등 몇 가지 단어를 보면서 ‘그래,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잘 익은 언어들’이라는 책방 이름을 얻었다. 카피라이터로서의 정체성도 이름 속에 녹아 있는 것 같고, 어떤 책을 가져다 놓을지 이름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아서 내심 기뻤다. 물론 이 이름에 대해서도 호불호(好不好)는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상쾌해지면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됐다.

설익고 섣부른 언어들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성숙하고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잘 익은 언어들’은
그 위대한 언어들의 힘을 알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의
잘 익은 글들을
당신께 전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잘 익은 언어들’의 의미를 풀어보고 나니, 책방을 하는 의도와 어떤 책을 주로 가져다 놓아야 할지 감이 온다. 대형서점이 아니라 동네 책방이기에 가능한 이름인 것 같다. 이제는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 한 줄, 책 한 권을 위해 열심히 책을 찾는 일이 남았다. 그리고 나 역시 ‘잘 익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작은 성장들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책방 ‘잘 익은 언어들’도 점점 더 맛있는 열매들을 얻게 되겠지. 동네 책방들이여, 우리 함께 잘 익어가자!

이지선
광고 회사 코래드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다. 코래드 시절 CJ, 한솔교육, 한국수력원자력 등 굵직한 광고주를 담당했다. 지금도 삼성, LG, 포스코 ,교육부의 홍보영상을 만들고, 다양한 캠페인 광고를 하는 등 18년차 카피라이터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주가 고향으로 전북 전주에서 책방 ‘잘 익은 언어들’을 운영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gicopy, crejisun@naver.com, Instagram : well_books, https://www.facebook.com/creji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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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홈페이지 관리자 계정이다. thepeoplecie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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