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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계절에 맞게 사는 지혜’

아버지께서는 소사나무를 특별하게 좋아하시는데, 그 이유가 소사나무는 ‘인내의 나무’이기 때문이랍니다. 말라 죽은 것 같아도 물만 주면 씩씩하게 살아나서 다시 잎을 내고 천 년을 사는 게 소사나무입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생명을 유지하는 소사나무의 강인함을 통해 아버지 또한 조금씩 강인함을 배웠고 지금까지도 매일 배우신다고 합니다.

내곡동에는 ‘비밀의 숲’이라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분재박물관’이라는 곳입니다. 우면동에서 1975년부터 있었고 2010년도에 내곡동으로 이사하면서 서초구에 자리를 잡은 것도 50년이 되어갑니다. 서초구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지요.

아버지가 나무에게 ‘강인함’을 배우신다면, 저는 나무에게 ‘계절에 맞게 사는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녹음이 시작되는, 무한한 에너지가 쏟아질 것처럼 새 잎이 나오고 성장하는 5월이 10대라면, 씨 뿌리기 가장 좋은 시기임을 알려주는 망종이 있는 6월은 20대, 가지 하나를 잘라도 금방 새로운 가지가 자랄 만큼 성장도 회복도 빠른 7월은 30대, 여름의 연장선에서 가을을 기다리며 겨울을 버틸 수 있을 만큼 가지를 심하게 치지 않는 8월은 40대입니다. 사진=분재박물관

나무가 맺어준 사랑과 나무 가족 이야기

‘나무’와 ‘계절에 맞게 사는 지혜’

김우경 수목디자이너 sunbunjae@gmail.com

내곡동에는 ‘비밀의 숲’이라 부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분재박물관’이라는 곳입니다. 우면동에서 1975년부터 있었고 2010년도에 내곡동으로 이사하면서 서초구에 자리를 잡은 것도 50년이 되어갑니다. 서초구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지요.

사실 이 곳은 김재인 관장님이 평생을 다해서 만든 곳입니다. 저의 아버지이기도 하고요. 전라도 광양이 고향이신 김 관장은 어렸을 때부터 풀과 나무를 좋아하고, 대학도 나무가 마냥 좋아 농대(農大)를 졸업하고, 나무만을 전심으로 사랑해서인지 군대에 가서도 나무를 관리하는 분야에서 근무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75년도에 서초구 우면동에 자리를 잡기 시작해서 나무 수업을 수강하러 오신 분 중에 눈에 가장 띈 아름다운 학생이 있었는데요. 그 분이 지금은 관장님과 함께 분재박물관을 가꾸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저의 어머니죠.

나무를 가르치시다가 배필을 만나신 것이죠. 다시 말해 나무꾼과 선녀가 만나 80년에 결혼식을 올리고 81년에 딸 우경, 83년에 딸 소영을 낳았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분재원 일을 도와줄 일꾼을 간절히 바라시는 마음에 남자 아이를 간절히 원하셔서 정작 딸을 출산했을 때에 깊은 상실감에 병원에 오지 않으셨다고 하네요.

가족이라는 소중한 인연 맺어준 ‘나무’

나무를 심고, 삽으로 흙을 나르고, 거름포대를 옮기고, 마사토 20kg 포대를 적재하는 일은 분재원의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고된 일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효과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간절히 아들을 바라신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때 아버지의 바람은 40년이 지나 두 딸에게서 찾았습니다. 저와 제 동생이 떡두꺼비 같은 건강한 손자들을 안겨드렸어요. 저는 2007년 아버지에게 나무 수업을 들었던 프랑스 사람 소개로 기욤이라는 프랑스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해서 아들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동생은 90년에 나무 수업을 들었던 제자 소개로 만난 사람과 결혼해서 현재 세 아이의 엄마가 됐습니다. 아버지는 나무를 가르치다가 엄마를 만났고, 저와 제 동생은 아버지에게 나무를 배운 분을 통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됐으니 온 가족이 나무를 통해 연결된 인연인 것이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쉬지 않고 매일 나무만 보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끊임없이 일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늘 궁금했습니다. 그 답을 요즘에 와서야 찾았습니다. 매일 나무가 주는 지혜를 배우고 힘차게 뻗어나가는 용기를 배우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소사나무를 특별하게 좋아하시는데, 그 이유가 소사나무는 ‘인내의 나무’이기 때문이랍니다. 말라 죽은 것 같아도 물만 주면 씩씩하게 살아나서 다시 잎을 내고 천 년을 사는 게 소사나무입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생명을 유지하는 소사나무의 강인함을 통해 아버지 또한 조금씩 강인함을 배웠고 지금까지도 매일 배우신다고 합니다.

“나무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

사람도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인품을 완성할 수 있듯이 ‘역경을 잘 이겨낸 생명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나무가 우리의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가 나무에게 ‘강인함’을 배우신다면, 저는 나무에게 ‘계절에 맞게 사는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녹음이 시작되는, 무한한 에너지가 쏟아질 것처럼 새 잎이 나오고 성장하는 5월이 10대라면, 씨 뿌리기 가장 좋은 시기임을 알려주는 망종이 있는 6월은 20대, 가지 하나를 잘라도 금방 새로운 가지가 자랄 만큼 성장도 회복도 빠른 7월은 30대, 여름의 연장선에서 가을을 기다리며 겨울을 버틸 수 있을 만큼 가지를 심하게 치지 않는 8월은 40대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성장을 멈추며 광합성 담당자인 엽록소가 없어지고 그동안 숨어 있던 카로틴, 안토시아닌 같은 색소가 보이기 시작하는 9월은 50대, 그래서 초록빛이 없어지고 뒤에 있던 노란색이 드러내며 마치 댐이 터진 것처럼 샛노란 빛이 뿜어져 단풍 축제가 있는 10월은 60대, 낙엽이 지고 겨울을 바라보는 11월은 70대,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둔 채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제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12월은 80대입니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다가올 계절을 본능적으로 치밀하게 준비합니다. 9월의 이 순간,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단풍을 준비하면서도 잎을 떨어뜨리고 나서 추운 겨울에 대비해 가을거름을 먹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가을이 오려는 지금 이 순간, 나무가 주는 지혜를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도심 속 맑은 공기, 우람찬 나무를 만나러 분재박물관으로 가을바람 따라 날라 오세요.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분재박물관 숲에서 쓰는 편지

기다리다 못해 내가 포기하고 싶었던 희망
힘들고 두려워 다신 시작하지 않으리라 포기했던 사랑
신록의 숲-분재박물관에서 나는 다시 찾고 있네
순결한 웃음으로 멈추지 않는 사랑으로
신과 하나 되고 싶던 초록빛 잎새 하나
어느 날 열매로 익어 떨어질 초록빛 그리움 하나

꽃과 이별한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가며 행복한 나무들의 숨은 힘
뿌리 깊은 외로움을 견디어냈기에
더욱 높이 뻗어가는 눈부신 생명이여

신록의 분재박물관 숲에 오면 우린 모두 말없는
초록의 사람들이 되네

사랑이 깊을수록 침묵하는 이유를 나무에게 물으며
말없음표 가득한 한 장의 편지를
그대에게 쓰고 싶네

어느새 분재박물관으로 따라와
모든 눈물과 어둠을 말려주는 고마운 햇빛이여
잃었던 노래를 다시 찾은 나는
나무 같은 그대의 음성을
나무 옆에서 듣네

꽃에 가려져도 주눅들지 않고
늘 당당한 신록의 잎세들
잎새처럼 싱그러운 사랑을
우리도 마침내
삶의 가지 끝에
피워 올려야 한다고…….

※ 이해인, ‘숲에서 쓰는 편지’ 인용

김우경
분재박물관 수목디자이너다. 나무가 주는 기운과 아름다움을 벗 삼아 프랑스 베노스크 출신인 기욤 씨와 결혼해 살고 있다. 남편, 쌍둥이 아들과 함께 기쁠 때 함께 더 기뻐하고 슬플 때에는 같이 위로하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나무 소녀다. 2017년 5월 『프랑스식 결혼생활』(이야기나무)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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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재박물관 수목디자이너다. 나무가 주는 기운과 아름다움을 벗 삼아 프랑스 베노스크 출신인 기욤 씨와 결혼해 살고 있다. 남편, 쌍둥이 아들과 함께 기쁠 때 함께 더 기뻐하고 슬플 때에는 같이 위로하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나무 소녀다. 2017년 5월 『프랑스식 결혼생활』(이야기나무)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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