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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山童) 오태학 화백 별세

산동(山童) 오태학 화백. 사진=유족 제공

산동(山童) 오태학 화백이 지난 9일 오전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오태학은 홍익대에서 운보 김기창, 청전 이상범, 우향 박래현, 천경자에게 사사했다.

1961년 제10회 국전(國展)에서 대학 재학생 최초로 입상해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며 화단에 데뷔했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국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냈다.

화풍은 여러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아 추상과 구상, 수묵과 채색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인물, 산수, 화조(花鳥), 영모(翎毛) 등 여러 화목에 두루 능했다.

한국미술 원형이 백제, 고구려 등 고분벽화에 있다고 보고 작품에 반영해 벽화기법, 벽화양식을 재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화를 개척했다.

석채(돌가루)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한국화단이 서구 미술 영향으로 혼란을 겪던 때 벽화기법을 이용한 석채화와 수묵화로 새로운 채색화 양식(지본암채화)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8년부터 2003년까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정태(성신여대), 김진관(성신여대), 김선두(중앙대), 조상렬, 고찬규, 이길우(중앙대) 작가 등을 길러냈다.

중앙대 부총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60대 초반에 중풍으로 쓰러져 오른손이 마비되자 왼손으로 작품 활동을 최근까지 해왔다.

저서로 ‘한국어해도’, ‘한국 미술의 회화성’, ‘산동 오태학 화집’ 등이 있다.

빈소는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1522-7000), 발인은 11일 오전 8시다.

장지는 경기도 파주시 크리스찬메모리얼파크(031-957-126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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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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