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일상이고, 삶에 존재한다”
"미술의 대가(大家)는 현실을 고민하고 참여했다. 현실보다 미적인 것이나 철학적인 것을 우선하는 것도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나의 경우는 예쁨 또는 장식 중심의 그림보다 그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더 많이 고민했다."
민중미술 대표 작가 이홍원 작가
“예술은 일상이고, 삶에 존재한다”
이홍원(63) 작가의 그림은 ‘한지’, ‘민화’, ‘풍자와 해학’ 등 세 가지 낱말로 작품(作品)과 작풍(作風)을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마동창작마을(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마동1길 279)을 우연한 기회에 찾았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생각이 같았다.
창작마을은 학교 건물을 구입해 정원, 카페, 전시실, 작업실 등을 꾸몄다. 보이는 곳마다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어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창작마을은 20년 넘게 이홍원 부부의 손길이 닿고 직접 다듬고 가꾼 곳이라 잘 익고 잘 묵은 맛과 멋을 품고 있다. 이 작가는 “창작마을은 다른 곳처럼 편하게 놀고먹고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느끼는 곳이기에 다른 곳과는 결이 다른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 작가를 평가하는 글을 찾아보니 ‘치열함, 날카로움, 한지 채색, 민화적 느낌,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중심으로 ‘토종현대미술’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치열하고 날카로운 작품 세계를 그려왔던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해학성을 이어가면서도 한결 편안해지고 밝아진 한지 부조 작품이 특징이다. 전주 한지에 채색 작업을 해 색감이 빼어나며, 한지를 구겨 주름을 만드는 등 입체적인 표현으로 섬세함을 더했다. 현대적이고 세련되면서도 민화적인 느낌의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그가 강조하는 ‘토종현대미술’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는 미술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전북일보(2015.11.24)
한지·민화·풍자·해학의 만남
이 작가는 우리 시대의 민감한 사회적, 정치적 단면들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작가로 1980년대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했던 ‘민중미술’ 대표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는다. 2014년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2월 3일부터 8일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풍자화’ 논란이 단적인 예다.
이 작가는 풍자화와 관련 “이순(耳順, 60세)이 돼 문득 예술 인생을 돌아보니 그동안의 작품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민중에게 흥을 주는 것도 예술의 중요한 덕목이기에 아이처럼 개구진 즐거움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민중미술은 ‘치열하고 날카로운 작품 세계’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이 작가는 ‘민중미술’ 대표 작가라는 이름에 어울리듯 충북민미협, 충북민예총, 민예총 회장을 역임했다. 1984년 첫 전시를 시작했으니 작품 활동 기간은 올해 33년째다. 중견 작가로, 그리고 지역(청주)을 지키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4월 22일(토) 오후, 마동창작마을에서 이홍원 작가를 만나 ‘창작마을’과 ‘그림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마동창작마을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고자 한다. 마동에는 언제 오셨나?
2005년 봄에 와서 정착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작가 활동을 하다가 내려왔다. 귀향을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다녔다. 그러다 폐교(廢校)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작업을 넓은 곳에서 많은 작품을 하기 위해 폐교가 좋겠다는 생각했다.
폐교에 온 후 본가(本家)는 리모델링을 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황량했다. 이곳에 정착한 후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카페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오면 마땅히 있을 만한 곳이 없어 카페를 만들었다. (카페는 자율 카페로 운영하는데) 큰 (경제적) 도움을 받지는 못한다. 일종의 찾아오는 이를 위한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곳은 외진 곳이어서 먹을거리도 마땅한 게 없어서 찾는 이들이 차를 마시고 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화·한지·아크릴·물감 등 혼합재료 사용”
▲그림을 살펴보면 부조처럼 울퉁불퉁하게 처리한 방식이다. 어떤 작업 방식인가?
캠퍼스에 한지로 부조를 만든 후 입체감을 만든다. 그런 다음 유화, 아크릴, 동양화 물감 등 혼합 재료를 사용해 색을 입혀서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한지 부조로 입체감을 줘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방식은 1985년 즈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재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것을 찾다가 한지를 사용하게 됐다.
▲3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했는데, 그 동안 해온 작품 활동을 간단히 정리해주면 좋겠다.
초기에는 민중미술을 했다. 주로 도시의 어두운 면을 담았다. 그 후에는 숲 풍경을 표현했는데, 숲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민중미술의 어둠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오고 나니 숲속에 삶의 모습이 모두 함축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숲 속의 노래’라는 연작을 기획해 재미 있는 작품 세계를 담기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대작(大作)을 만들기도 했다.
▲작품 주제를 보면 풍자와 해학을 많이 담은 것 같다. 작품의 특성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세 가지 정도로 설명하겠다. 우선 풍자와 해학이 많이 들어 있다. 그리고 걸림이 없고 재미가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풍자와 해학은 시대의 상황을 담는 것이다. 걸림이 없다는 것은 주제를 정했어도 상황이나 느낌, 기분에 따라 그림이 변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하나의 작품이 곧 새로운 창조이자 주제이기 때문이다. 재미는 보는 이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그린 그림을 말한다.
작품은 심오한 것도 필요하지만 예술은 일상이고 삶이다. 예술은 삶에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쉽고 재미가 있는 작품도 중요하다. 인간의 원초적 본성, 그리고 본성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현실의 삶과 조화가 있느냐와 연결이 된다. 재미는 이와 같은 삶에 대한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예술은 답이 없다”
▲예술 이야기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통과의례(通過儀禮)처럼 뺄 수 없는 것 같다. 예술을 무엇인가?
시와 시인, 음악과 음악가, 그림과 화가처럼 예술과 예술가가 무엇이냐고 자주 묻지만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답이 없다. 예술과 예술가는 늘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계속 하는 것’이다. 답이 있다면 찾겠지만, 예술은 답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아름다운 것, 미(美)를 추구하는 것이고, 이 중 그림은 현실에 참여해 현실 이야기를 담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작가와 비교하면 미적 추구와 함께 현실을 담으려는 의지가 큰 편이다.
▲현실을 고민하고 현실을 담는 예술이 왜 필요한가?
미술의 대가(大家)는 현실을 고민하고 참여했다. 현실보다 미적인 것이나 철학적인 것을 우선하는 것도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나의 경우는 예쁨 또는 장식 중심의 그림보다 그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 더 많이 고민했다.
▲현실 참여와 생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것 자체가 또 하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현실에 참여하는 작품보다는 예쁜 것을 담은 그림이 판매하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과 예술가, 그리고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면 현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80년대 이후 군사정권 시절에는 억압이 일상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예술을 지원하는 것부터 판매하는 것까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방해했다. 예술 활동을 정부가 방해한 것인데, 이는 코미디다. 예술이 이런 현실에 눈을 감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화가는 그림으로 참여해야 한다.
“상업화는 오래 못 간다”
▲미술계에도 ‘큰손’과 ‘주도권’이 있다고 봐야 할 텐데, 지금도 여전하겠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나?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30년 전과 비교한다면 특별한 차이가 있는가?
큰손에 의해 조정이 되는 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시대나 권력, 경제 등이 예술을 이끌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림을 구입하는 것은 순수한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림 자체가 상품 역할을 한다. 예술가는 대형 화랑 등과 맞물려 그림 공장 산업에 참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림이 산업이 되면서 조작하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유명세에 따라 그림을 사고파는 행위가 일상이 되면서 유명하지 않은 나머지 예술가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자본주의 시대의 맹점이다. 그림의 상업화(商業化), 작가의 상업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럼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작가가 열심히 작업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다. 열심히 작업을 하면, 그러면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다. 무엇이가를 따지고 계산을 하면서 작업하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또 예술 자체는 경기에 민감하다. 예전에는 작품으로 생활이 됐지만 요즘에는 어렵다. 경기도 안 좋지만 블랙리스트 문제로 더 안 좋다. 하지만 아직까지 밥은 굶지 않고 살고 있다. (웃음)
그리고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작(多作) 속에 명작(名作)이 나온다. 작가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부지런히 해야 한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1년에 100여 점을 그려야 전업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多作이 名作 만든다”
▲특별히 아끼는 작품이 있나?
88년에 화재가 난 적이 있다. 그래서 88년 이전의 작품이 거의 없다. 판매한 작품 외에는 갖고 있는 게 거의 없다. 젊은 시절인 만큼 작품에 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작품도 있는데, 150여 점을 화재로 잃었다. 남아 있는 게 없어 아쉽다.
▲그림을 그리려는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그림, 안 했으면 좋겠다. 힘든 일인 까닭이다. 예쁜 그림, 장식을 위한 그림을 할 경우라면 쉬울 수도 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을 찾고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면 힘든 일이다. 먹고 사는 게 힘들다. 재료비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작가가 버는 수입은 1/3 수준도 어렵다. 후회는 없지만, 정말 힘든 길이다. 그렇지만 그림, 아니 예술은 마력이 있다.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게 된다. 그 마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형상화해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마력을 갖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최근 5년 동안 개인전을 연속으로 진행했던 터라 전시는 잠시 쉴 생각이다.
이홍원
1955년에 출생했다. 동국대와 동국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충북민미협 회장, 충북민예총 회장, 민예총 회장(2010)을 역임했다. 1984년 서울 관음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전시를 시작한 후 최근에 진행한 바이오블리츠전(청주예술의전당, 2012), 서울민예총전(서울, 아라아트센터, 2013), 한국일본중국명작전(중국, 상해박물관, 2014), 고려대110주년특별기념전(2015) 등을 비롯해 지금까지 개인전 28회, 그룹전 180회와 중국(상해), 미국(LA·뉴욕), 일본, 사라예보, 페루 등 해외 전시도 여러 번 진행했다. 올해의좋은작가상(무심갤러리, 2013)을 받았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을 소장(2006)하고 있다. 또 단재 신채호 영정을 제작(단재사당, 2004)하기도 했다. 현재 마동창작마을 대표이며 창작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시간 있을 때마다 창작마을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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