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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경제제재, 어떻게 풀릴까?

"북한은 왜 협상장으로 나왔나? 제재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생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유영구 전 현대사연구소 이사장의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1, 2』가 그것이다. 경인문화사에서 출판한 이 역저는 1, 2권이 각각 700쪽 분량으로 총 1,400여 쪽에 이른다. 한 마디로 북한경제의 이론적 기초와 현실적 과제, 기본 부문과 혁신 부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팩트북이자 백과전서인 셈이다. 저자는 중앙일보 북한 문제 전문기자를 거쳐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을 지낸 언론인이자 『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공저) 등을 쓴 연구자로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모두 활용”해 “사실의 힘에 천착하고자 했”다고 서문에 밝혔고, 실제로 그러하다. 많은 도표와 원문 인용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히면서도 1, 2권 각각 900여 개의 미주가 깨알같이 따라붙어 전문서적으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대북제재 효과 논쟁은 제재가 북한 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여부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부분의 의견은 제재 무용론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안보리 결의안 2270호(2016.3) 이후에는 점차 유용론이 힘을 얻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우선, 과거에는 안보리 제재가 대량살상무기(WMD) 이전 통제에 초점을 둔 스마트 제재였다면, 2270호부터는 북한 경제 일반을 타격하는데 초점을 둔 포괄적 제재로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과거에는 중국이 대북제재의 ‘구멍’으로 작용했지만, 최근에는 그 구멍이 메워졌기 때문이다. 최소한 2321호(2016.11) 이후 중국은 대북제재를 충실히 이행해왔다.
물론 경제적 효과 무용론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시장 물가와 환율이 안정적인 것으로 볼 때 제재가 별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북한은 대외 의존도가 높지 않으므로 제재에도 불구하고 내부 자본을 동원하여 상당기간 버틸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더 우세한 편이다. 우선, 시장 물가가 안정적인 것은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고, 환율이 안정적인 것은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심화로 환율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여타 국가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북한의 생산과 시장이 무역과 직접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성이 점점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제재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생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대북 경제제재: 어떻게 풀릴 수 있을 것인가?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ISSN 2586-3029]

2018-06-08

이 글은 대북제재를 둘러싼 세 가지 논쟁을 소개한다. 첫째, 대북제재의 효과와 관련해서는 대체로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이지만 정책적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후 중국이 경제지원을 약속하자 다시 강경한 태도로 나오는 것을 볼 때 제재의 정책적 효과 또한 있다고 보인다. 둘째, 제재완화의 요건과 관련해서는 제재 유용론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비핵화가 불가역적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는 제재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반면, 제재의 경제적 혹은 정책적 효과 무용론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단계적 비핵화에 따라 ‘행동 對 행동’ 원칙에 따라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본다. 이와 별도로 유엔제재 해제와 5.24 조치 해제를 어떻게 연계해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새로운 쟁점이 형성되고 있다. 셋째, 남북경협 재개의 조건과 관련해서는 현 제재국면에서 남북경협 추진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분야에서 어느 수위로 추진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유엔제재 해제 이후 한반도 신경제구상 추진과 관련하여 미국의 독자 제재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측과 한국의 이니셔티브를 강조하는 측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올해 들어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대북제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세 가지이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완전한 비핵화’의 진정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즉 북한의 태도 변화가 그야말로 ‘전략의 전환’인지, 아니면 제재 효과에 따른 ‘전술적 후퇴’인지 여부이다. 다음으로, 대북제재는 언제, 어떤 조건 하에서 풀릴 수 있는지 여부이다. 즉 미국은 ‘先핵포기, 後보상’이라는 ‘리비아 모델’을 적용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이 말하는 ‘행동 對 행동’(action to action)의 원칙을 수용하여 비핵화 진전의 수준에 따라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것인지 여부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남북경협, 특히 우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추진은 제재 해제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제재 효과 논쟁: 북한은 왜 협상장으로 나왔나?

과거 대북제재 효과 논쟁은 제재가 북한 경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여부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부분의 의견은 제재 무용론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안보리 결의안 2270호(2016.3) 이후에는 점차 유용론이 힘을 얻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우선, 과거에는 안보리 제재가 대량살상무기(WMD) 이전 통제에 초점을 둔 스마트 제재였다면, 2270호부터는 북한 경제 일반을 타격하는데 초점을 둔 포괄적 제재로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과거에는 중국이 대북제재의 ‘구멍’으로 작용했지만, 최근에는 그 구멍이 메워졌기 때문이다. 최소한 2321호(2016.11) 이후 중국은 대북제재를 충실히 이행해왔다.

물론 경제적 효과 무용론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시장 물가와 환율이 안정적인 것으로 볼 때 제재가 별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북한은 대외 의존도가 높지 않으므로 제재에도 불구하고 내부 자본을 동원하여 상당기간 버틸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더 우세한 편이다. 우선, 시장 물가가 안정적인 것은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고, 환율이 안정적인 것은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 심화로 환율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여타 국가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 북한의 생산과 시장이 무역과 직접 연관되어 있고 그 연관성이 점점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제재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생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가용한 통계를 통해 살펴보면, 최근 대북제재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2017년 북한의 對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37.3%나 감소한 반면, 수입은 오히려 4.3% 증가하여 상품수지 적자는 3배가량 증가하였다. 수입 역시 상반기까지는 급증하다, 8월부터는 급감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 부진에 따른 외화 수급 부족이 수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다 안보리 결의안 2397호(2017.12)부터는 수출 제재에 더해 정제유, 기계류, 전자기기, 운송기기, 기초금속(base metal) 등의 대북 수출을 금지하는 수입 제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북한이 올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개발 5개년 전략(2016~2020) 2년차를 평가하면서 ‘목표 달성’을 선언할 수 없었던 이유라고 보인다.

최근 대북제재 효과 논쟁의 초점은 이러한 경제적 피해가 북한 지도자의 정책 마인드를 바꿨는지 여부로 옮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회의론이 우세하다.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는 경제 제재와는 무관하게 이미 계획된 것이고, 핵무력(nuclear armed force)이 완성됨에 따라 안보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협상장으로 나왔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 역시 존재한다.

과거 북한의 대외정책 패턴을 살펴보면, 중장기 경제개발 계획이 실패로 귀결될 때면 외부 자본을 유입하기 위해 대외관계 개선을 추구하곤 했다. 현재 대북제재는 북한의 5개년 전략에 차질을 초래한 것이 분명하고, 따라서 외부 자본 유입을 위해 대외관계에서 대화 모드로 전환할 강력한 유인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즉 대북제재가 북한의 대외정책 전환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북제재는 향후 전개될 협상에서 북한의 ‘몸값’을 낮추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이 핵 포기의 대가로 미국의 대남 핵우산(nuclear umbrella) 폐기를 요구하지 않고, 한미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 정도로 요구 수준을 낮춘 점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두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으로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되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시 비타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제재가 북한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준다는 직접적 증거로 볼 수 있다.

제재 완화 논쟁: 제재 완화의 요건은 무엇인가?

제재 효과 논쟁은 제재 완화의 요건을 둘러싼 논쟁과 직결된다. 제재가 효과가 있다는 인식은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역적 수준에 도달하기 이전에는 제재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제재 유용론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태도 변화는 제재에 따른 ‘전술적 후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불가역적 비핵화 이전에 제재가 완화되는 경우 북한은 다시 예전의 비타협적 태도로 되돌아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중국의 지원을 확보한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문제에서 비타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서도 잘 드러난다.

반면, 제재 무용론 혹은 최소한 제재가 정책 전환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입장에서 보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비핵화의 단계별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제재의 경제적 혹은 정책적 무용론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태도 변화는 제재와 무관한 ‘전략의 전환’이기 때문에 단계별 보상이 오히려 북한의 협조적 태도를 이끌어내고 북한 최고지도자의 전략적 결단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북한의 경우 단계별, 동시적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대체로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점진적 비핵화와 그에 따른 단계별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북한이 미국의 보상 수준에 따라 단계적 비핵화를 압축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있지만, ‘행동 대 행동’ 원칙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북한이 바라는 보상에는 당연히 제재 완화 내지는 해제가 포함된다.

반면, 미국은 제재 완화에 대해 엄격한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태도 변화가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의 산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와 보상(제재 완화 포함)의 연계 방식과 관련하여 ‘先핵폐기, 後보상’이라는 리비아 모델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한 핵심 정책 결정자들 스스로 북한에 리비아 모델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여러 차례 확인한 바 있다. 다만, 과거처럼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의 점진적 비핵화에 대해 단계별로 보상을 제공할 생각은 없는 것 역시 분명하다고 판단된다. 즉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핵폐기’(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즉 비핵화가 불가역적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제재를 완화하거나 경제적 유인을 제공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대체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는 자칫하면 북한 비핵화 방식을 둘러싸고 과거의 ‘남방삼각 대 북방삼각’(Southern Triangle vs Northern Triangle)의 대립구도가 재연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또한 한국은 다른 관련국과 달리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병행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는 향후 비핵화와 북미관계가 순항하지 못할 경우 한국 정부에게 딜레마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제재 완화와 관련하여 한국이 직면하게 될 또 다른 쟁점은 유엔제재 완화와 ‘5.24 조치’ 등 한국의 독자제재를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5.24 조치’는 유엔제재와는 별개로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내려진 조치이다. 그런데, 이후 유엔제재가 강화되면서 ‘5.24 조치’의 내용 모두가 안보리 결의안 2270호 이후 유엔제재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비핵화가 진전되어 2270호 이후 제재가 해제되는 경우, ‘5.24 조치’는 자동적으로 해제되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등 별도의 조건이 필요한 것인지 쟁점으로 등장할 소지가 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관련 사과를 요구할 경우 비핵화 및 북미관계 진전과 별개로 남북관계는 경색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 문제는 향후 한국 정부의 상황관리 능력을 테스트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로 등장할 소지가 다분하다.

남북경협 재개 조건 논쟁: 제재 완화와 남북경협은 어떻게 연계되어야 하는가?

대북제재와 관련하여 현재 한국 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논쟁은 남북경협 재개의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 이 논쟁은 두 개의 층위를 갖고 있다. 우선, 현 제재국면에서 추진할 수 있는 남북경협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적극적 입장과 소극적 입장이 갈린다. 둘째, 정부의 남북경협 청사진인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언제 어떤 조건 하에서 추진되어야 하는가 라는 점이다. 이는 유엔제재만이 아니라 미국의 독자제재와도 연계되어 있어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우선, 첫 번째 쟁점과 관련하여 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 제재국면에서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남북경협 사업이 사실상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기존의 남북경협, 즉 일반교역, 위탁가공교역, 경제협력사업(개성공단, 금강산관광, 기타 투자사업)은 모두 유엔 대북제재 위반이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남북관계는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에 국제법인 유엔제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유엔 제재위원회에 남북경협 재개를 신청할 경우, 현 남북관계 진전 국면을 감안할 때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경협 재개가 승인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유엔제재의 ‘취지’를 고려할 때 한국 단독의 남북경협 추진은 오히려 소탐대실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관련하여 또 하나의 쟁점은 유엔제재 대상이 아닌 교류협력, 예컨대 인도적 지원의 경우 한국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여부이다. 이에 대해 민간 대북 지원단체를 포함한 옹호론자들은 非제재 대상은 한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인도적 지원의 경우도 유엔제재의 취지상 대규모 물자 지원은 어렵고, 소규모로 추진해야 하며, 그 경우에도 한국 단독방식보다는 다자간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다음으로, 한반도 신경제구상 추진 여건과 관련해서는 상당수 전문가들이 2270호 이후 제재가 해제되면 즉각 시행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대북 독자제재와 국제 전략물자 반출규정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후자의 견해가 더 사실에 부합한다고 보인다.

현재 미국의 수출관리법과 그 시행령인 수출관리령(EAR)은 안보위협국, 테러지원국, WMD 확산국, 비시장경제로의 이중용도품목(dual use item) 반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는 미국 기업만이 아니라 미국산 부품/기술이 10% 이상 포함된 제품의 경우 제3국의 반출에도 적용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제3국 기업은 미국의 제재를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신경제구상의 핵심인 3대 벨트 사업과 같은 대북 개발사업은 이중용도품목의 대북 반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추진되기 어렵다. 문제는 유엔제재상 이중용도품목 반출 제재는 관련국들의 합의로 새로운 안보리 결의안을 채택해 해제할 수 있지만, 미국의 수출관리령 제재는 미국 행정부의 의지만이 아니라 미국 의회를 설득해야 한다는데 있다. 즉 북한의 비핵화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진전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경우 신경제구상과 같은 대북 개발협력사업은 추진이 어려운 것이 현실인 것이다.

미국의 수출관리령 제재가 완화되어 대북 개발사업 추진이 가능해지는 경우 또 하나의 문제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즉 대북 개발사업의 경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데 이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제금융기구의 대북원조를 보증금으로 삼아 관련국의 정부자금과 민간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 표준적 방안으로 거론되어 왔다. 하지만 이 역시 미국의 대북제재를 고려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미국의 대북제재에 따르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성취되더라도 비시장경제 제재는 유지된다. 그런데 미국은 비시장경제에 대해서는 국제금융기구의 원조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비핵화와 함께 본격적 개혁개방을 추진하지 않는 이상 대북 개발사업과 국제금융기구의 원조 개시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관련국 정부들이 다자간 신탁기금을 조성해 북한 개발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이것이 가장 현실적 방안이라고 판단된다. 다만, 다자간 신탁기금이 조성되면 중국, 일본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북한경제에 이권을 가지게 되어 향후 남북한 경제통합에 장애로 등장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향후 대북 개발에서 한국의 주도권과 국제사회의 참여를 어떻게 조화시키는지가 한국 정부가 남북경협에서 직면할 가장 큰 쟁점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동아시아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임수호

임수호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 소속 책임연구위원으로 북한경제, 남북경협, 제재 등의 핵 비확산 문제 등을 연구한다. 그는 2007년 서울대학교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북한 전문가로써 통일부, 외교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의 정부 부처와 같이 일하였고, 또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북한팀 팀장을 지냈다. 임수호의 주요 저서로는 The Rise of Markets within a Planned Economy: A Forecast for North Korea’s Economic Reform and System Change (2009), U.S-DPRK Confrontation: Cold War Confrontation within the Post-Cold War Era (2011), Understanding North Korea: Indigenous Perspectives (2013) 등이 있다.

※ 이 글은 동아시아재단임수호 박사에게 허락을 받아 사람과사회™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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