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는 동사(動詞)다
"남북이 모두 ‘자존심’과 ‘격’을 앞세우는 상황을 이어갈 경우 장관급 당국회담은 개최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25일 남북한은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에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는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남북한 접촉에서 당국회담의 수석대표는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회담 장소도 서울이나 평양이 아니라 개성으로 결정됐다.
통일부는 당국 회담 수석대표를 장관급이 아닌 차관급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장관급과 차관급이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범위에는 차이가 있어 격(格) 문제에 민감한 정부가 장관급 대신 차관급을 제안했다는 것은 대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남북이 모두 ‘자존심’과 ‘격’을 앞세우는 상황을 이어갈 경우 장관급 당국회담은 개최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은 김양건 대남 비서가 강석주의 와병으로 국제 비서 역할을 하고 있고 남한의 통일부장관과 외교부장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을 보좌하고 있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한은 김양건 비서와 대화를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양건 비서가 대화 의지를 갖고 있다면 직접 나와야 하겠지만, 아직은 미지수다.
격(格) 따지기보다 만남이 더 중요
한국은 또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이 통일부 장관의 상대로는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홍용표 통일부장관의 위상은 김양건 비서의 위상보다는 낮지만 조평통 서기국장이 북한에서 차지하는 위상보다는 높기 때문에 격을 따지는 데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
남북이 정치 체제의 차이로 인해 정확하게 동급의 협상 상대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차관급 당국회담이라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는 장관급과 차관급을 구분하며 격을 따지기보다는 유연성과 포용적 태도가 더 중요하고 더 필요하다.
지금 서로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 문제와 금강산관광 문제일 것이다. 5.24조치와 같이 민감한 것은 다음 회담으로 미룰 수 있고, 관계가 좋아진 후에 다룰 수 있다. 심각한 문제 때문에 시급한 문제를 얻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만남을 이어가면서 고위급 회담을 넘어서는 소위 ‘통 근 회담’도 가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남한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통일부장관, 북한의 총정치국장과 대남 비서가 참가하는 고위급 접촉을 재개해 남측이 희망하는 이산가족 생사 전면 확인과 상봉 정례화 및 북한이 희망하는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 조치 해제를 가지고 빅딜을 추구할 수 있는 보다 대담한 접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접촉·실천 담은 명사·동사(名詞·動詞) 정책 필요
남북한이 회담을 위해 실무 담당자가 만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면서 남북 관계에 파란 불이 들어오는 것 같다는 기대가 크다. 물론 우려(憂慮)와 회의(懷疑)도 있다. 이런 입장은 분위기만 있을 뿐 만족할 만한 만남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경우다. 실질적인 성과가 없고 말만 오가는 회담에서 생긴 우려와 회의다.
현재 남북한 관계는 기대와 회의가 공존하는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남북관계와 통일은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해서는 색에 따라 운전하는 것이다. 이는 운전을 하기 위해 서로 합의한 사회적 약속, 즉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이고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안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실천이다. 그 실천은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는 힘이다.
교통법규는 약속이고 이에 맞춰 운전하는 것은 실천이다. 법규가 명사(名詞)라면 실천은 동사(動詞)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남북관계는 동사(動詞)가 중요하다. 합의나 약속이 있다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면 사고가 나는 교통 시스템처럼 보이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최근 남북 회담을 위한 접촉도 접촉을 넘어 실천을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명사·동사(名詞·動詞) 정책이 절실한 때다.
Leave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