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은 ‘난’ 아닌 ‘국제전’
1592년부터 7년여 동안 벌어진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온 나라가 그렇게 오랫동안 일본인들에게 유린되었는데 그것을 하나의 ‘난’처럼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
김주홍의 포르투갈 이야기 02
조선이 1910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어 망하는 과정을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러면 그 첫 단초에, 포르투갈인들이 의도한 것은 전혀 아니지만, 포르투갈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포르투갈인들이 1592년 임진년에 ‘조일전쟁’이 발발하기 정확히 50년 전인, 1543년에 우연히 큐슈 남단의 섬에 표착했다.
여기서 조일전쟁이 뭐냐고 낯설어 할 사람들을 위해 곁가지 이야기로 잠시 빠져보자.
1592년부터 7년여 동안 벌어진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온 나라가 그렇게 오랫동안 일본인들에게 유린되었는데 그것을 하나의 ‘난’처럼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
1592년에 일어난 전쟁은 분명히 커다란 국제전이었다. 그래서 조선과 일본 사이의 ‘조일전쟁’이 올바른 명칭이다. 이처럼 우리 역사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곳곳에 함정들이 숨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대포 포탄보다 더 많은 포탄이 이 땅위에 떨어졌는데도 그것을 ‘한국전쟁’으로 부르지 않고 하나의 ‘사변’처럼 6.25사변이나 ‘6.25’라고 부르는 것도 똑 같은 것이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이미 이런 주장을 하신 이들이 있어 나도 그 주장을 따르는 것이다. 지금도 TV를 보면 가끔, 그 당시의 시대극이 아닌데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국 학생들에게 군국주의 사상을 심어주기 위해 입혔던 시커먼 학생복을, 특히 유명한 가수 조모 씨 같은 사람이 입고 나오는 것을 보는 데 담당 PD들 머리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하다.
세계 역사를 다 뒤져봐도 어린 중고등학생들에게 총만 들면 군인처럼 보이는 그런 교복과 교모를 입혀서 교육시킨 나라는 일본과 그 식민지 지역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양 선진국 중고등학생들의 자유로운 교복에 비하면 우리가 입던 그 교복은 식민지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인 것이다. 나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교복을 입고 다닌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이가 없다.
1983년부터 시작된 중고등학교 교복의 자율화 후 1995년에 ‘국민학교’란 이름도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라고 하여 ‘초등학교’로 바꾸었지만 그 방송국 사람들 머릿속에는 아직 감각이 없는 듯하다.
모든 것이 잘못된 역사 교육 때문이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1543년에 우연히 큐슈 남단의 섬에 표착한 후 포르투갈에 이어서 스페인,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미국의 차례로 외국인들이 일본에 왔다.
이때는 일본도 쇄국정책을 펼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앞뒤 안 돌아보는 철저한 쇄국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선별적으로 수용해 제한된 루트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융통성 있는 쇄국정책을 폈다.
이 차이가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갈랐다고 본다. 그 결과 일본은 서양문화의 모방을 통해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일본의 역사를 보면 조선과 달리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들을 볼 수 있다. 즉, 그들의 우두머리인 천황을 중국의 황제와 같은 위치에 놓으려 했다.
반면 조선은 육지를 맞대고 있었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어서 조선의 우두머리를 중국의 황제보다 한 단계 아래인 왕으로 스스로 불렀다.
일본은 조선에 대해서는 이 점을 들어 외교적인 서류 등에서도 그들의 천황을 조선 왕보다 위에 두려는 시도를 했다.
좋게 보면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이 일찍 그런 자세를 배웠더라면 그들에게 쉽게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543년에 일본에 온 포르투갈인들이 1640년경에는 일본에서 쫓겨나고 네덜란드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이번에는 일본인들이 그들로부터 배운 서양문화를 ‘난학’이라는 형태로 집대성하여 일본 근대화의 한 자양분으로 삼았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09년부터 일본과 무역을 시작했다. 일본 지도자는 포르투갈인들은 기독교를 포교하려고 하는데 비해 네덜란드인들은 그런 생각 없이 무역만 하기를 원했으므로 체제 불안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인들을 쫓아내고 네덜란드인들하고만 교역을 했다. 이처럼 일본이 근대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미국 등의 서양 각국의 영향이 나온다. 포르투갈은 그 중에서 선두에 있었던 나라다.
나는 평소에 접하던 책들에서 이런 내용을 조금 알게 된 후 포르투갈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얼마 전 포르투갈에 대한 공부를 하는 모임에 나갔다.
그는 남다른 행동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많은 나라들 중에서도 유독 포르투갈에 정이 갔던 모양이다. 그래서 포르투갈 관련 문화와 역사 모임을 주도하고 주한 포르투갈 대사관도 자주 찾아가 교류를 한다고 했다.
지금 현재는 2월 초에 출국해 몇 달간 머물 예정으로 포르투갈의 리스보아, 우리가 흔히 부르는 리스본에 가 있다. 여행과 타국의 문화에 마음이 꽂힌다는 것은 행복한 중독일 것이다.
우리와 다른 문화를 자주 접하면 그만큼 견문도 넓어지고 인생을 보는 눈도 밝아질 것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와는 달리 자주 다니지를 못하고 작년에서야 유럽을 잠간 돌아보고 온 정도이다. 그래서 항상 외국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는 방법이 그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연구를 할 역량은 안 되고 이런 저런 자료들과 관련 서적을 도서관에서 찾아보고 하는 정도였는데, 그런 습관이 들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2001년 미국의 ‘9.11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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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홍
1980년대 현대건설에서 근무했다.
90년대 말에는 학생들에게 영문법을 가르쳤다.
이후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일을 10여 년째 해오고 있다.
‘김주홍의 포르투갈 이야기’ 시리즈는 ‘조선의 멸망’이라는 큰 주제의 집을 짓기 위한 첫걸음이다.
김주홍 선생은 ‘주공’이라는 닉네임으로 네이버에서 오랫동안 역사에 대한 글을 써왔다. 특히 세계사 전반을 아우르는 글읽기와 글쓰기, 생각하기 등을 통해 세상을 보다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의미있는 칼럼 잘 읽었습니다. 국가간의 전쟁을 일컫는 ‘조일전쟁’이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국가명을 칭한 전쟁 이름은 근대 이후에 나타난 지칭으로 여겨집니다. ‘亂’이라는 한자 표기가 ‘난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 한자 자체에 ‘전쟁이나 병란’, ‘위기’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임진왜란’이라는 표현은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임진년(1592년)에 왜구(일본)가 일으킨 전쟁을 고려한다면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의 표기가 그르다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6.25사변을 ‘한국전쟁’이라고 일컫는 건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