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서 다시 일어선다는 것의 의미
"나는 오늘 매우 사적인 일상들을 정리하며 네팔인들의 평범한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카트만두 거리에서, 시 외곽과 농촌 지역 들판에서, 그리고 지진 피해자들이 머무는 텐트촌이다. 이곳은 모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 네팔의 모습이다."
네팔에 온 이후로 끊임없이 하는 하나의 사색,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날마다 네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을 본다. 한 자리에 머물러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끔은 본 자리를 다시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날마다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다양한 네팔인들이 서로 각기 다른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고자 몸부림하고 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손잡아 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함께 일어서 보겠다고 다가가 본다. 물론 모자란 역량으로 번번이 그들에 손을 끝까지 붙잡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도전은 가능한 오래도록 그들 곁을 떠나지 않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을 바라보고 한마디 말이라도 건네 일어서는 일을 견인해주는 일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초대받은 행사가 연이어 있었다. 하루는 한국주재 네팔 대사이신 커먼 싱 라마님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는 네팔 타망족 문화협회의 초청이었다. 물론 커먼 싱 라마님과도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오래된 지인 중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네팔 공산당 리더 그룹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행사장에서 알게 되었다. 타망족협회는 한 해 동안 타망족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그 공로를 표창하고 곧 다가오는 새해를 맞는 것이다.
얼마 전 네팔 화가 네 사람이 아프가니스탄화가협회 초청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왔다. 그리고 네팔화단의 새로운 전시 요람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아트 카운실에서 아프가니스탄 기억전을 열었다.
전시회에 참가한 네 사람 중 세 사람이 잘 아는 화가였고 그들이 초청해서 잠시 틈을 냈다. 행사에는 네팔문화부 장관도 참석했고 네팔 화단을 이끄는 기란 머힌드라 전 네팔화가협회 회장도 참석했다.
작품을 먼저 둘러보고 돌아오는데 네팔 화가들의 작품이 보여주는 암울함은 없고, 아프가니스탄의 사막 같은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도 불교적 사색과 따뜻한 기운을 담은 그림들이 이채로웠다. 물론 산악지역에 막힌 네팔과 다르게 그림들이 매우 큰 규모를 보여주는 느낌도 흥미로웠다.
하루는 현 네팔 교과서 편찬위원장인 돌린드라 사르 마(Dolindra Sarma)씨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와는 이미 오랜 친구가 되었고 여러 차례 집을 찾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교과서 편찬위원장이 된 후 될 수 있는 대로 연락을 자제하고 있다.
공직에 일하는 사람에게 혹여 부담스러운 인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며칠 전 페북을 통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서 만나기로 하고 그의 집을 찾았다. 우리는 그의 퇴근 시간보다 먼저 집을 찾아 응접실에서 그를 맞았다. 그는 아침 6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일정 중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라며 우리 부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어제는 생긴 지 오래 되지 않은 네팔예술대학원에 새로 부임한 갸누라다 고르크할리(시타르 연주자, 교수) 대학원장을 만났다. 그녀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내게는 누님처럼 다감하신 분이다. 하지만 내가 결혼해서 1년 네팔에 살다가 한국에서 2년 9개월을 살고 다시 네팔에 돌아온 후 만나지 못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기쁜 소식을 듣고 축하도 하고 내가 주최하는 한 행사에 참석을 부탁하기 위해 만났다. 이제 부임한 지 열흘이 안 되어 모든 것이 낯선 듯 보였다. 겨울 방학 중인 학교에는 교직원 몇몇 그리고 몇몇 학생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틀 전에 찾은 매우 특별한 행사가, 한 갤러리에서 독일인 화가의 도움으로 열리는 어린아이들 워크숍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소식을 듣고 그 어린이들과 학부형 등 30여 명에게 빵과 과자를 전달하기 위해 갤러리를 찾았다.
독일인 까리 꾸펠 씨는 ‘어린이들도 할 수 있다’는 주제로 네팔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자 한다며 행사의 취지를 짧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오늘 매우 사적인 일상들을 정리하며 네팔인들의 평범한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카트만두 거리에서, 시 외곽과 농촌 지역 들판에서, 그리고 지진 피해자들이 머무는 텐트촌이다. 이곳은 모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 네팔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어린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에서 네팔인들의 일어서고자 하는 열의를 보았다. 무너진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 강한 메시지라는 생각에서다. 나는 갤러리 한 귀퉁이에서 붓을 잡은 작은 손을 움직이며 카트만두의 랜드마크였던 빔센 다라하라 탑을 들어 올리듯 그려가는 어린 열망을 보았다. 그것이 지금 네팔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진실이라는 생각이다.
나와 일상에서 만났던 사람들, 아무런 일없이 한 해를 마감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표창하는 사람들, 새로 시작하는 일, 처음 하는 일 모두가 그렇게 강한 열망을 갖고 산다. 오늘도 벅차게 하루를 맞는 네팔 사람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그들에 자립 의지에 작은 힘을 보태기 위해 오늘도 나도 한마음으로 일어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게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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