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 갈등을 푸는 방법
2015년 들어서자 언론에서 제일 먼저 거론하는 것이 광복 70주년과 한일협정 50주년이라는 얘기였다. 70이나 50이라는 숫자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끄트머리가 0이 되면 뭔가 ‘마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해서 사람마다 애써 의미를 찾는 것 같다.
그것은 주로 꽉 막혀있는 한·일간의 외교관계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아베 정부는 여러 가지 모양을 갖추며 한일정상회담을 희망해왔다. 일본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정부 역시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일정상은 제대로 된 회담을 하지 못했으며 그것은 한국 측의 완강한 거부태도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일본이 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도 화해를 위한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문제점은 일본군에 의해서 성노예를 강요당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명백하고 확실한 사과와 보상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미 90을 바라보는 고령으로 해마다 몇 분씩 세상을 뜨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분이 53명이다. 치욕으로 얼룩진 삶의 마지막을 가해자 일본이 사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베총리가 진심어린 사과로 이들의 찢어진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보상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질질 끌고 있단 말인가. 일본이 문명국을 자처하고 선진국이라고 훤전(喧傳)하면서도 표리가 부동한 대목이다.
두 번째는 독도영유권 문제다. 이미 17세기, 18세기에 그려진 지도에도 독도는 분명히 한국령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것도 한국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라 해양대국 스페인이나 일본정부의 지시에 의해서 만들어진 지도다.
일본은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은 그 해에 소위 시마네현 고시를 통하여 독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요즘에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차관급 인사까지 참석시켜 대대적으로 치른다. 역사교과서를 날조하여 한국의 실효적지배를 강제침략이라고 가르친다. 한심한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오고 있어 독도를 일본 땅으로 착각하는 것이 머릿속 깊이 굳어지고 있다.
셋째는 혐한(嫌韓)시위다. 제국주의적 영토팽창을 추구하는 극우세력들은 끊임없이 한국을 헐뜯고 일본퇴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엔에서도 이를 인종차별로 규정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정부는 마이동풍이다.
도쿄나 오사카에는 한국의 거리가 조성되어 한류 붐을 뒷받침하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으나 극우세력의 시위와 협박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심지어 한복을 입은 조총련계 여학생들에게는 폭행까지 가한다.
외방인인 한국 관광객들은 쇼핑을 하면서도 불안에 떤다. 한국 상점들은 생활에 심대한 위기를 느끼고 있다. 혐한시위는 산케이를 비롯한 일본 우익신문들과 저질적인 TV방송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실체보다 훨씬 부풀려진 기사를 내보내며 한국을 싫어하게 만든다. 시위대의 규모나 동원된 인원은 사실 별것이 아니지만 한국을 미워하고 증오하게끔 부추기는데 부족함이 없다. 한·일 갈등이 증폭되는 것이 위에서 든 세 가지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표피적으로 느낄 수 있는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한국정부는 지금까지 판에 박은 항의와 사과요구를 반복하고 있다. 고장 난 레코드판 같다. 3·1절 대통령 기념사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정부는 한사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한일협정 때 끝난 문제로 치지도외(置之度外)하려는 심보다. 오히려 우익을 격려하고 옹호함으로서 선거에서도 대승을 거두고 아베의 인기는 50%를 넘는다.
반면에 박근혜정부는 거듭되는 인사쇄신 실패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세가 어느덧 30%대로 곤두박질쳤다. 한·일간 갈등을 무슨 방법으로든지 풀고 싶은데 뾰쪽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고민이다. 이대로 가면 아베는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 미국의 강력한 압력이 있긴 하지만 중국을 의식하는 미국이 일본을 버릴 가능성은 0%다.
일본 내에는 상당수의 양심세력이 일본정부를 비판하며 위안부, 독도, 혐한시위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우익으로부터 만만찮은 협박과 테러 위협에 시달린다. 매국노 소리도 듣고 있지만 오직 학자적 양심과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신념에 따라 양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한·일간의 갈등이 풀려야 된다는 원칙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많지만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데까지는 못 미친다. 일제강점으로 인한 피해의식이 자칫 신친일파로 매도될 것을 겁낸다.
필자는 한국정부가 위안부, 독도를 넘어선 경천동지할 기상천외의 정책전환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베의 입에 발린 사과는 나중에 받아도 된다. 정상회담에서 이를 요구하는 것이 순서다.
일본은 731부대 마루타 실험으로 IS참수보다 더한 만행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피해국이 되었다. 사드배치 문제도 우물쭈물 넘길 게 아니다. 한중미일 간에 줄다리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해서 빚진 것이 없는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며 갈등을 푸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역사가 얽힌 한·일간의 매듭은 알렉산더대왕 식으로 단칼에 베어버려야 끝난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 탓만 하다가는 박근혜는 웃을 날이 없을지 모른다. 대통령은 결단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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