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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과 해인사

1951년 9월 18일 해인사 폭격 명령 하루 전날 밤의 일들

해인사로 오르다 보면 일주문에 이르기 전 제법 큰 비석 하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자세히 읽어보면 6.25전쟁 당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폭격하지 않았던 김영한 공군 대령의 공적을 기리는 비문이다. 이미 그날의 일들은 방송이나 언론에 알려져 세간에 잘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날 해인사 스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사진=Pixabay

“그대들이 이곳에 상주(常住)함으로 해서 곧바로 미군은 해인사 폭격을 명령할 것이오. 그러니 제발 이곳에서 오늘 내로 떠나주시오. 종교를 떠나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만약 당신들이 상주함으로 인해 대장경이 불바다가 된다면 우리 후손들을 무슨 얼굴로 대할 것이며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이오.” 사진=Pixabay

6.25전쟁과 해인사

1951년 9월 18일 해인사 폭격 명령 하루 전날 밤의 일들

이경재 시인·동화작가

해인사로 오르다 보면 일주문에 이르기 전 제법 큰 비석 하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자세히 읽어보면 6.25전쟁 당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폭격하지 않았던 김영한 공군 대령의 공적을 기리는 비문이다. 이미 그날의 일들은 방송이나 언론에 알려져 세간에 잘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그날 해인사 스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 당시 해인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은 최범술 해인사 주지스님과 운용 행자님, 그리고 해인사 대중스님, 아이러니하게도 북한군의 이현상 사령관이다. 물론 가장 큰 공이야 직접적인 폭격을 거부한 김영한 대령이지만, 그 전날 스님들과 더불어 해인사에서 철수한 남부군의 현명한 지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기에 기록해본다.

김영한 대령과 해인사 스님의 헌신과 노력

1951년 9월 17일 해인사에서는 오랜 가뭄으로 큰 피해가 지속되자 기우제 명목으로 큰 법회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날에는 합천군의 유지와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은밀하게 지켜보던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도 있었다.

그들은 전날 거창군 가조면 지서를 습격하고 가북면 가야산 북쪽 능선을 타고 이미 백련암을 점령한 뒤였다. 기우제가 끝나면 그 당시 해인사 최범술 주지스님을 압송해 오라는 명령까지 해둔 터였다. 효당 최범술 주지스님은 승려 신분으로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을 지낼 만큼 세상 물정에 밝았고 현대 다도(茶道)의 선구자로도 잘 알려진 분이었다.

남부군의 병력은 500명에 이르렀고 지방 빨치산까지 합세하면 800명에 이르는 대군이었다. 이러한 정보는 곧바로 국군에 보고되었고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의 빌미를 제공한 직접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 한편, 백련암으로 압송된 최범술 주지스님은 남부군 이현상 사령관과 독대를 했고 해인사 폭격을 예감했던지 그 자리에서 해인사를 곧장 떠날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게 된다.

“종교를 떠나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대들이 이곳에 상주(常住)함으로 해서 곧바로 미군은 해인사 폭격을 명령할 것이오. 그러니 제발 이곳에서 오늘 내로 떠나주시오. 종교를 떠나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만약 당신들이 상주함으로 인해 대장경이 불바다가 된다면 우리 후손들을 무슨 얼굴로 대할 것이며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이오.”

다행히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독립 운동가였던 그는 충분히 그 말뜻을 알아들었고 당 간부들을 다급히 모아 투표를 하게 된다. 천운이었을까, 그 결과는 한 표 차이로 퇴각이 결정되었고 그들은 곧바로 가야산을 떠나 덕유산으로 입성하게 된다. 그의 팔뚝에는 충청도 금산의 어머니가 주신 닳고 닳은 염주가 은은한 윤기를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도 무색하게 미군은 사천의 우리 공군에게 출격 명령을 내렸고 편대장은 김영한 대령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을 선견지명으로 직감한 최범술 주지스님은 백련암에서 곧바로 내려와 약수암에서 수행하고 있던 운용 행자를 부르게 한다.

김영환 대령의 38호기 무스탕 비행기에는 500파운드 폭탄 2기, 5촌 로켓탄 6기와 캬리바 50기, 기관총 1800발을 장착하고 있었다. 또한 편대장만이 보유한 750파운드짜리 네이팜탄까지 무장하고 있었다. 사진=Pixabay

최범술 주지, “글자 ‘HAEIN TEMPLE’ 써서 구광루 덮으라”

운용 행자는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의 조카로 어린 시절부터 상해 임시정부에 몸담기도 했다. 운용 행자는 어린 시절 군자금을 복대에 감추고 서해를 오가는 배를 탔을 만큼 당찬 소녀이기도 했다. 이후 성장하여 북경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통역원으로 임시정부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조국이 해방되어 귀국하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로 피난을 오게 되었고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약수암으로 입산을 결심한 그녀였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효당 최범술 주지스님은 운용 행자를 불러 구광루 지붕을 덮을 만큼 큰 광목천을 만들어 크게 영문 글자를 쓰도록 부탁하게 되는데, 바로 ‘HAEIN TEMPLE’이었다. 미군의 폭격기라면 하늘에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글자로 구광루 지붕을 덮게 한 것이다.

운용 행자도 그 뜻을 잘 알아들었고 밤을 새워 먹을 갈아 광목천에 글자를 새겨 기본 테두리를 만들었다. 이에 뒤질세라 해인사 대중 스님들은 울력으로 함께 뜻을 모아 운용 행자를 도왔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마침내 구광루 지붕은 ‘HAEIN TEMPLE’이라는 큰 글자로 덮이게 되었고, 최범술 주지스님은 커다란 태극기를 만들어 더불어 게양하게 했다.

해인사 대중 스님, 울력으로 함께 뜻을 모으다

이날 새벽 6시 예상했던 것처럼 사천 비행장에서는 출격 명령이 하달됐고, 그들은 공군 제10 전투비행단이었다. 단장으로는 김영환 대령과 2번기 강호륜, 3번기 박희동, 4번기 서상순 소령이었다.

편대는 우선 남강을 거슬러 오르다 가야산으로 출격하라는 미군의 명령을 받고 합천 상공에서 미군의 모스키토 정찰기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모스키토의 명령에 따라 해인사 상공으로 이동한다. 모스키토 미군 정찰기는 해인사 상공을 한 번 선회한 뒤 주저하지 않고 대적광전 앞마당에 연막탄을 투하한다. 김영한 대령에게 그곳에 포탄을 투하할 것을 명령한 것이었다.

김영환 대령의 38호기 무스탕 비행기에는 500파운드 폭탄 2기, 5촌 로켓탄 6기와 캬리바 50기, 기관총 1800발을 장착하고 있었다. 또한 편대장만이 보유한 750파운드짜리 네이팜탄까지 무장하고 있었다.

무스탕 편대의 지휘자였던 김영한 대령은 모스키토를 따라 해인사 상공을 비행하다 ‘HAEIN TEMPLE’이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고 마음 속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곧바로 미군의 모스키토에서는 수차례 폭격 명령이 반복해 들려왔다.

이등병 강등 감수하고 폭탄 투하 명령 거부한 김영한 대령

하지만 결국 그는 해인사 상공을 두 번 선회한 뒤 모스키토의 명령을 거부하고 고운동 계곡으로 방경 100m가 불바다가 되는 네이팜탄을 투하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명령 불복종으로 이등병으로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고 만다.

이렇듯 1951년 9월 18일 해인사 폭격 명령 하루 전날의 해인사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우리 해인사 스님들도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가야산이 흰 구름 지니고 살듯 팔만대장경의 호국 사상은 오랜 역사 흐름 속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자연스럽게 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경재
시인이자 동화작가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전주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MBC 창작동화대상, 임수경통일문학상(시), 청년통일문학상(시)을 받았으며, 장편동화 『내가 살던 고향은』과 시집 『시방세』, 『원기마을 이야기』를 냈다. 2005년에는 송흥록, 송우룡, 송만갑 3대로 이어진 동편 판소리를 연구하다 명창 이야기를 묶어 『판소리와 놀자』(창작과비평)를 출간했다. 고향에 살면서 15년 넘게 신문배달을 하며 덕유산 주위의 이야기를 엮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 이 글은 해인사에서 발행하는 月刊 『海印』 409호(2016년 3월)에 있는 것을 필자와 『해인』 허락을 받아 사람과사회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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