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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속이지 말라”

신흥사 주지 법륜스님, “종교는 물질 풍요로우면 쇠퇴하게 돼 있다”

미국에서 쥐에게 전기 충격 실험을 했다 한다. 충격을 주니 두 마리가 계속 싸웠다. 그런데 충격과 싸움을 받아들인 쥐보다 싸운 쥐가 더 건강했다. 스트레스를 무조건 참는 게 건강에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참을 때도 있다. 그리고 성철스님 말씀처럼 ‘내 자신을 속이지 말라’, ‘내 자신을 속이면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곧 ‘자기를 바로 보자’는 말과 똑같다.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이 ‘내 탓이오’라고 한 것도 자기를 바라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알고 보면 나로 말미암아 모든 갈등이 일어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자기는 생각하지 않고 남으로 인해서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서로 마주치니까 갈등이 일어난다.

천년 고찰 신흥사. 신흥사는 통일신라시대, 강릉 단오제의 주신이기도 한 범일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연꽃밭이 나온다. 곧이어 대웅전 좌우에 옛 모습을 보전하고 있는 설선당(說禪堂)과 심검당(尋劍堂)을 볼 수 있다. 설선당과 심검당은 강원도 문화재 자료 108호다.

신흥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랑나무’인 ‘연리목(連理木)’이다. 백일홍이라 부르는 배롱나무 속으로  소나무 씨가 들어와 함께 자라며 한 몸이 됐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제목처럼 닮은꼴로 바꾸면 ‘소나무를 품은 배롱나무’다. 수령은 대략 200년이다. 천년 고찰에서 200년 넘게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17년 8월 28일(월)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해 삼척에 있는 점심을 앞둔 시간에 신흥사에 도착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양리길 220(동막리 1332, 033-572-3600). 이곳은 ‘한국의 나폴리’로 유명한 장호항에서 15분 거리에 있다. 신흥사 주지인 법륜 스님이 함께 간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신흥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랑나무’인 ‘연리목(連理木)’이다. 백일홍이라 부르는 배롱나무 속으로  소나무 씨가 들어와 함께 자라며 한 몸이 됐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제목처럼 닮은꼴로 바꾸면 ‘소나무를 품은 배롱나무’다. 수령은 대략 200년이다. 천년 고찰에서 200년 넘게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신흥사에는 사람이 많이 찾아오나?

많지는 않다. 오히려 다행이다. 한산한 게 좋으니 너무 많이 오는 것보다 낫다. 그런데 찾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다. 한두 명일지라도 365일 끊인 적은 없다.

▲고적한 사찰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단청(丹靑)을 하지 않은 점도 좋은 느낌이다.

도심에서 오면 좋다. 수수하고 꾸밈이 없다. 화려하지도 않다. 회벽(灰壁)을 안 하고 나무인 송판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송판 켜는 기술이 좋지만, 과거에는 송판 만드는 기술이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신흥사는 규모가 크지도 않고 앞이 탁 트이지도 않았다. 앞에 자연스러운 가림이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든다. 협소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곳이다.

▲연리목 말고도 배롱나무를 몇 곳에서 볼 수 있다.

원래 있던 것에서 씨가 나와 자란 것 같다. 배롱나무는 추우면 잘 자라지 못한다. 이곳이 강원도라 춥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리 춥지 않다.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물다. 낙산사 쪽은 추워서 자라지 않는다. 여기는 태백산맥 뒤편에서 분지 형태로 돼 있는 곳이다.

“범일국사는 학이 키운 비범한 사람”

▲범일국사와 신흥사는 어떤 인연이 있나?

889년은 범일국사가 열반에 든 때다. 범일국사는 탄생 자체도 신비로웠다. 강릉 왕산에 학산(鶴山)이라는 데가 있다. 학산에 가면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불상사지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우물이 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동이로 물을 길었는데, 바가지로 물을 뜨니 계속 감겼다. 물을 계속 떠도 해가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 물을 먹은 후 태기가 생겨 범일을 낳았다.

범일국사는 경주김씨 왕손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처녀가 애를 낳으면 가문의 수치였지 않았나. 그래서 밤에 몰래 학바위에 아이를 버리고 왔다. 그러다 아이가 궁금해 버린 곳으로 가보니 학이 날갯짓으로 아이를 감싸고 빨간 먹이를 주며 키우고 있었다.

하늘이 내린 자식이라 여기고 집에 데려와 키웠는데, 어릴 때부터 비범했을 뿐만 아니라 두상(頭像)도 특이한 모습이었다. 부처님처럼 육계(肉桂, 부처의 머리 위에 혹과 같이 살(肉)이 올라온 것이나 머리뼈가 튀어 나온 것으로 지혜를 상징)도 있었다. 15세에 출가해 당나라 등 유학을 다녀온 후 백달산에서 수행을 했다. 백달산은 현재 자료상으로는 이름이 없지만, 계룡산 정도로 추측하는 이도 있다. 신라 경문왕, 정강왕, 헌강왕 등 세 임금이 국사(國師)로 모시려 했다. 그러나 국사는 하지 않고 경주김씨 가문이 백달산에 불상사지를 창건해 모셔왔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범일국사를 원효대사보다 더 뛰어났다고 높이 평가했다. 889년, 부산에서 금강산으로 삼존불을 모시고 배를 타고 가다가 덕산항 즈음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 한 줄기 빛이 비추기에 이곳으로 와서 보니 연못이 있고 평안한 곳이었다. 지금 ‘학소루’라고 부르는데, 학 둥지처럼 평안한 보금자리라는 뜻이다. 창건 후 지흥사(池興寺), 광운사(廣雲寺), 운흥사(雲興寺)로 불렀다. 그러다 영조(英祖) 때 소실됐던 것을 순조(純祖) 때 신흥사(新興寺)로 이름을 지었다.

범일국사(梵日國師)
범일(梵日, 810년~889년)은 신라의 승려다. 신라 구산선문 중 사굴산파를 처음 만들었다. 성은 김씨, 경주 출신이며, 품일(品日)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명주도독을 지낸 김술원(金述元)이며, 어머니는 문 씨다. 시호는 통효대사(通曉大師)며, 탑호는 연휘(延徽)다.
15세에 출가했고 20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며, 831년(흥덕왕 6) 왕자 김의종(金義宗)과 함께 당나라로 갔다. 여러 고승들을 찾아 배우던 중 제안(齊安)을 만나 성불(成佛)하는 법을 물었는데, 제안이 “도(道)는 닦는 것이 아니라 더럽히지 않는 것이며, 부처나 보살에 대한 소견을 내지 않는 평상의 마음이 곧 도”라는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제안의 문하에서 6년 동안 머물다가 유엄(惟儼)을 찾아가 선문답(禪問答)을 나누고 인가를 받았으며, 847년 신라에 돌아왔다. 851년까지 백달산에 머무르며 정진하다 명주도독의 청으로 강릉 굴산사(崛山寺)로 옮겨 40여 년 동안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 때 경문왕·헌강왕·정강왕이 차례로 국사(國師)로 받들어 경주로 모시고자 했으나 모두 사양했다. 889년에 입적했다.
범일은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창시자로, 동해 삼화사(三和寺)를 세우고 양양의 낙산사(洛山寺)를 중건했으며 강릉 신복사(神福寺)도 건립했다. 당시 영동 지역의 사찰은 신라 왕실을 비롯해 전통적 신앙이었던 교학불교에서 선학불교로 전환됐다. 그 중심이 바로 범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 왕실이 신앙한 교종과 대립하는 위치에서 범일은 지방 호족 세력과 결합해 영동 지역 정신적 지주가 됐다.
자료=위키백과,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신흥사를 둘러보니 건축 모양새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색이 있는 것 같다.

신흥사 건물은 송판을 사용했는데, 이런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다. 또 사찰보다는 민간 건물에 더 가까운 건물이다. 특히 처마가 짧다. 옛 사람은 햇빛이 많이 들게 하기 위해 처마를 짧게 했다고 하는데, 신흥사는 짧다. 대개 절 건물은 처마가 길게 늘어져 있어서 멋스러운데, 이곳은 처마가 짧아 햇빛이 많이 들어오게 했다. 문도 높고 낮음, 크고 작음이 있어 멋이 스며들어 있다. 요즘에는 수평과 수직이 많지만 옛날 사람은 굴곡을 줘서 멋을 살렸다. 높낮이가 모두 달라서 목수 입장에서 보면 일이 많고 불편했을 것이다. 손님이 오면 문구멍으로, 작은 문으로 보기도 하고 유리문으로 보기도 했다. 크고 작은 문도 편리함을 위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이런 것들이 모두 운치가 있다.

▲고전문학을 하신 분이 스님을 소개해 주셨다. ‘사람’과 ‘사회’라는 두 낱말이 갖고 있는 의미를 살려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며 소개했다. 그래서 사람과 사회라는 그 두 낱말 속에서 사람 이야기와 사회 이야기를 하면 현재 우리가 생각하거나 아니면 직면해 있는 현상을 많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2017년 현재, 포괄적인 주제지만, 우리 사회를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되는지 궁금하다.

사실 너무 어려운 주제다. 사회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글쎄, 갈등과 분열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진보가 정권을 잡더니만 또 서로 죽이기에 나서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로 양보하고, 소통을 말로만 하고 소통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상당히 오래 지속됐다.

서로 나의 사상만 옳다고 주장하니 그게 쉽지 않다. 상대의 사상을 좀 포용해야 하는데, 불교적으로 보면 너와 내가 없다. 그런데 너는 너, 나는 나다. 불교 관점에서는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다. 옳다는 생각 자체가 또 그름을 유발한다. 또 사랑과 미움도 불교 관점에서는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상대와 어울릴 수 있다. 이게 중도사상인데, 원효스님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다. 이런 게 된다면 화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너와 내가 없다”

▲맞다. 진보와 보수는 아직 같이 갈 수가 없는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자꾸 심해진다고 보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면도 많아야 할 텐데, 스며들기보다는 서로 물과 기름처럼 어긋난다.

자본주의 구조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있는 사람은 지키려고 하고 또 진보 세력은, 다 아시겠지만, 계획을 해보려고 하는데, 또 그 사람도 정권 잡으면 똑같은 사람이 되더라.

▲스며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불교라든지 원불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들이 화합, 소통, 사랑, 이런 말을 많이 한다. 그게 사실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교는 약간 좀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잘 모르지만, 불교는 행동하는 것이다. 그 행동은 내 스스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부처처럼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것에서 어울림도 만들고 소통도 만들고 눈에 보이는 윤곽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서로 나의 사상만 옳다고 주장하니 그게 쉽지 않다. 상대의 사상을 좀 포용해야 하는데, 불교적으로 보면 너와 내가 없다. 그런데 너는 너, 나는 나다. 불교 관점에서는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다. 옳다는 생각 자체가 또 그름을 유발한다. 또 사랑과 미움도 불교 관점에서는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상대와 어울릴 수 있다. 이게 중도사상인데, 원효스님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다. 이런 게 된다면 화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쟁사상은 ‘화합(和合)’과 ‘조화(調和)’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각 종파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 나은 것을 찾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때 얼마나 (나당전쟁, 삼국통일 등) 전쟁이 많았나. 화쟁(和諍) 같은 어떤 사상이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가정이든 학교든 사회든, 크게 보면 교육할 수 있는 곳은 이 세 곳이 될 텐데, 그 세 곳의 역할이 약했고 이로 인해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종교도 시대에 따라 번성하기도 소멸하기도 한다. 지금은 교회나 성당이나 불교나 점점 쇠퇴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먹고살 만하니까 취미, 문화생활을 먼저 찾는다. 또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점점 종교에 관심이 없어진다.

“종교는 물질 풍요하면 쇠퇴한다”

▲신도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불교뿐만 아니라 종교 전반적인 현상으로 알고 있다.

불교도의 경우 10년 사이에 300만 명이 감소했다. 천주교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10년 사이에 300만이면 대단한 것이다. 물론 노인층이 많이 사망한 것도 있겠지만 새로운 사람을 양성하지 못하고 종교를 믿던 사람이 안 나온다는 것, 그게 문제다. 종교라는 게 물질이 풍요로워지면 점점 쇠퇴하게 돼 있다. 기도도 어떤 절박한 상황이 오지 않으면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불교는 고(苦), 즉 괴로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많을수록 절을 찾고, 기독교는 교회를 찾는 것 같다.

▲신도가 줄어드는 문제의 원인을 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 성직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지금은 정보가 너무 노출되어 있다. 옛날에는 정보가 별로 없었다. 안 좋은 소식도 지금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진다. 정보 전달이 너무 발달돼 있다. 종교에 대한 신빙성을 잃은 경우도 많다. 지금은 종교가 약해졌다. 숫자 면에서 주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그 신도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 내지 종교가 했던 역할, 그리고 종교계에 있는 사람의 문제도 있다.

▲신도 감소는 종교에 대한 믿음 등 여러 여건이 최근 급변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봐야 되지 않나?

그렇다기보다는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수녀와 비구니가 줄고 신부님도 스님도 줄고 있다. 꼭 성직자가 아니어도 밖에서도 얼마든지 체험할 수가 있다. 또 성직자가 꼭 되어야 한다는 필요성도 약해졌다. 지금 시대는 성직자가 옛날처럼 신비한 것, 그런 게 없다. 너무 노출되어 있고 많이 알다 보니 그렇다. 어느 외교관 이야기를 들으니, 미국에도 미국 사람인 신부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사람이 와서 활동을 하는 것이지 미국인 신부 자체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스님이 되려고 입문하려는 사람도 없다. 연령이 옛날에는 40대였지만 지금은 60대까지 늘어났다.

“성직자는 생각보다 자연스럽지 않다”

▲인구 감소도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스님이 될 수 있는 길이 40에서 60으로 늘었지만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것도 그렇지만 요즘 자녀는 대부분 하나나 둘밖에 없다. 성직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넓어지면서 스님, 신부, 목사는 늘었다. 일본은 결혼을 해도 스님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한다. 성직자는 결혼을 해도 생활 자체가 자유롭지 않다. 제약이 있어 자연스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구도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르다. 옷을 입고 나갔을 때는 행동 자체가 편하지 않다. 행위 자체를 제한하는 옷, 속복(束服)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성직자의 삶은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때문에 일반인이 스님을 볼 때는 좋은 풍경과 함께 편안하게 지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속복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처럼 구속(拘束)의 삶, 그런 게 하나의 훈련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밖에 나갔을 때 옷은 행위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가 고삐가 없을 때는 자기 맘대로 곡식도 뜯어먹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고삐가 있으면 행위를 제한해서 틀어지지 않게 한다. 성직자가 입는 옷도 마찬가지다. 옷에 따라 점잖게 되기도 한다. 간소화할수록 행위가 경박스러운 것도 있다. 양복을 입을 때와 한복을 입었을 때 걸음걸이가 다르지 않나. 미얀마 같은 데 가서 체험을 해봤는데, 거기는 가사(袈裟) 하나로 몸 전체를 가린다. 탁발(托鉢)을 나갔을 때 통견(通肩, 앞가슴을 둘러 양어깨를 덮어 입는 부처의 옷차림)을 하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옷이 보자기 형태라서 홀라당 벗겨진다. 그러니깐 발끝만 보고 아주 점잖게 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조금만 잘못 하거나 방심하면 옷이 스르르 풀리게 되어 있다. 속옷을 입는 게 아니라 가사 하나만 있기에 행동이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절에 머물며 경험하는 것, 산사체험(Temple Stay)할 때 필요한 것 같다. 신흥사도 체험을 하나?

조심스러운 행동은 산사체험에서 하고 있다. 산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편안함 속에서도 느끼는 게 있지만 엄격함 속에서 겪는 경험을 하고 나면 보람을 느낀다. 신흥사는 산사체험을 하지 않고 있다. 체험을 운영하려면 필요한 게 많다. 이곳에는 사람도 없어서 하기 어렵다. 산사체험을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 하기 어렵고 투자도 해야 하는 만큼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는 하기 어렵다. 체험을 위해 한 사람이 오든 열 사람이 오든 상관없이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여러 명이 필요하다. 큰 절에서 체험을 하는데, 수익보다 대개 포교를 위해 많이 하는 편이다. 돕는 사람도 그냥 쓸 수가 없다. 잠깐 돕는 것은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종일 매여서 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 사회는 서로 인정도 안 하고 불신한다. 개인의 이기주의가 너무 강한 탓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이다. 처음부터 교육이 잘못됐다. 자본주의 사상 자체가 그렇다. 교육 자체가 과도한 경쟁을 낳았고, 오늘날 서로 죽여야만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대립적인 구조를 깨지 않는다면 계속 반복이 된다. 정치만 봐도 그렇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오로지 1등만이 존재하니 2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쨌든 이기고 보자는 생각뿐이다. 지금은 흑색선전하면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다고 한다지만, 유치원부터 경쟁을 시작하니 아이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겠나.

“이분법적 생각은 피하는 게 좋다”

▲일반 대중이 불교를 어떻게 생각해주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어떤 답변을 하고 싶은가?

우리를 바라볼 때 너무 제한적으로 바라보는데,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고 한다. 옛날부터 갖고 있는 생각에 맞춰 하는 말이다. 스님은 생활하기에 불편한 게 많다. 스님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되고, 산에서 나무를 해서 불을 지피길 바라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바라보는 시점이 옛날이다. 전설 같은 이야기다. 고려시대, 삼국시대 같다. 최첨단으로 살고 있는 시대인데, 우리는 뒤떨어지는 세계에 살아야 한다는 것처럼 말한다. 먹는 것 이야기를 하자면, 먹는 것은 누구나 똑같은 것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피하는 게 좋다. 포교할 때 먹는 것은 탁발로 하게 돼 있다. 담아주는 것은 무조건 먹게 돼 있다. 이는 중국 불교를 한문으로만 번역하면서 도교의 신선사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도교는 파, 마늘, 부추, 달래, 양파 등 나물도 먹지 않고 당연히 고기도 먹지 않는다. 신선사상을 중국 불교가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내용을 율장(律藏)에 넣어 중국식 불교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중국 불교를 받아들여 이를 정설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태국,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나라별로 불교를 나눌 수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나?

소승불교(小乘佛敎)가 있고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있다. 동남아 쪽은 소승불교다. 쉽게 말하면, 소승이 작은 오토바이라면 대승은 큰 트럭이나 열차로 생각하면 된다. 세계를 실어 나르려고 할 때 오토바이는 한두 명밖에 타지 못하지만 트럭이나 열차는 많은 사람을 나를 수 있다. 소승이 각자 원하는 방법으로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것이라면, 대승은 나와 더불어 모든 사람을 성불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소승은 나를 철저하게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대승에서는 내가 조금 죄를 지어도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으면 죄를 지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승과 대승의 개념을 쉽게 잡기 위해 소승은 질(質)에, 대승은 양(量)에 중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대승은 크게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인도할 수 있다면 내가 (죄를 짓더라도) 지옥도 대신 가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원광법사(圓光法師)세속오계(世俗五戒)에서 말한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살생이 안 된다고 했더라면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겠나.

▲우리 사회에 소승불교나 대승불교를 닮은 마음이나 인식이 모두 결여돼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은 물론 집단, 사회, 국가가 탈이 더 많이 나는 것 같다.

현재 우리 사회가 그렇다. 조그마한 것도 약자에게 무시할 수도 없고, 크게 보면 어딘가를 희생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그러니까 양 쪽이 모두 힘들다. 있는 자와 없는 자에 중간에서 소통하려는 노력도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노사정(勞使政)이 있어도 잘 안 된다.

▲잠깐 밖을 보니 잠자리가 많이 날고 있다. 그런데 잠자리가 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 같다. 갈 방향을 잡고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서(處暑)가 지나고 있다. 처서(일 년 중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 우리는 절기(節氣)가 있어 참 멋지다. 처서가 지나면 더위가 끝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떤 기운, 그러니까 나름대로 바람과 햇빛이 이 절의 구조와 위치에 맞춰 방향을 잡고 있으니 잠자리도 그 기운을 느껴 자기가 날기 좋은 방향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편안하고 예쁘다. 처서, 더위의 끝자락인 처서가 되면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절기, 24절기는 옛 사람이 표현을 참 멋있게 잘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이 떴는지, 별이 많은지 알고 있나”

▲소승불교, 대승불교 이야기는 참 좋다. 두 가지를 생각하면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잘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그러나 희한하게 잘 안 된다. 잘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 사회는 서로 인정도 안 하고 불신한다. 개인의 이기주의가 너무 강한 탓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이다. 처음부터 교육이 잘못됐다. 자본주의 사상 자체가 그렇다. 교육 자체가 과도한 경쟁을 낳았고, 오늘날 서로 죽여야만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대립적인 구조를 깨지 않는다면 계속 반복이 된다. 정치만 봐도 그렇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오로지 1등만이 존재하니 2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쨌든 이기고 보자는 생각뿐이다. 지금은 흑색선전하면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다고 한다지만, 유치원부터 경쟁을 시작하니 아이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겠나. 우리가 어렸을 때는 아름다운 별과 달빛을 무수히 보며 자랐다. 요즘 아이들은 동심의 마음으로 달이 떴는지, 별이 많은지 알고 있나. 너무 삭막한 세상이 됐다. 한두 명만 낳으니까, 너무 귀하고 곱게 자란다. 유치원을 운영할 때 보니, 1분을 못 걷게 한다. 주차장에서 5분도 안 걸리지만 2분 거리까지 승용차를 가져온다. 그야말로 도깨비 시장이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최근 조계종이 시끄럽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여쭤도 되나?

괜찮다. 첫째는 좋지 않은 것을 개혁해야 한다. 어떤 집단 무리에 탁한 사람들이 뭉쳐서 소수를 짓밟는 것은 좋지 않다. 의식 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또 거기에 동요하는 세력도 똑같다. 직선제로 가야 하는데 간선제로 하다 보니 어떤 정책도 없고 청렴도도 떨어진다. 이건 안 된다. 대중의 심판을 받아야 청렴도도 생기고 수행력을 비롯해 여러 가지 변화가 올 텐데, 그런 모습이 없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뜻을 모아서 뽑았는데 요즘에는 이를 수용하지 않으니 중심을 잃고 안 좋은 일이 생긴다. 어른들은 어른 나름대로 이야기를 안 들어주니 의견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어른이 말씀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세, 똑같이 세금을 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혐오한다는 것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종교인이, 불교인이 불교 역할을 못했고, 또 종교를 혐오스럽게 보는 사람도 자신이 뭔가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복하지도 않고 이 사회에 대한 어떤 감정이 많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각성해야 된다. 크게 보면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종교세, 똑같이 세금 내야 한다”

▲정치권을 보는 시선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나?

이른바 ‘당한 사람’은 그들 입장을 적절하게 보상도 해주고 명분을 세워주고 때로는 포용해서 나아가야 사회를 통합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우선순위 면에서 생각하면 현재 적폐를 보는 눈을 조금 더 크게 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많고 경제도 어렵다. 적폐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면 사회가 또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갈등을 깨끗하게 청산할 수 있겠나. 일상 자체가 도(道)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가 심산유곡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성과 속이 둘이 아니고, 중생과 부처도 둘이 아니며, 선과 악도 둘이 아니다. 알고 보면 아름다움에는 미움도 존재하고 영원한 아름다움도 없다. 그런데도 대립적인 것으로만 본다면, 다시 말하면 오로지 분별심(分別心)으로만 보려고 하면, 이 세상의 갈등은 치유할 수가 없다.

▲요즘 화두로 떠오른 종교세 논란은 어떻게 보나? 또 요즘 종교가 싫다는 수준을 넘어 혐오 감정을 갖는 경우도 늘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종교세, 똑같이 세금을 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혐오한다는 것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종교인이, 불교인이 불교 역할을 못했고, 또 종교를 혐오스럽게 보는 사람도 자신이 뭔가 불만족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행복하지도 않고 이 사회에 대한 어떤 감정이 많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각성해야 된다. 크게 보면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미국에서 쥐에게 전기 충격 실험을 했다 한다. 충격을 주니 두 마리가 계속 싸웠다. 그런데 충격과 싸움을 받아들인 쥐보다 싸운 쥐가 더 건강했다. 스트레스를 무조건 참는 게 건강에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화를 내고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참을 때도 있다. 그리고 성철스님 말씀처럼 ‘내 자신을 속이지 말라’, ‘내 자신을 속이면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곧 ‘자기를 바로 보자’는 말과 똑같다.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이 ‘내 탓이오’라고 한 것도 자기를 바라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알고 보면 나로 말미암아 모든 갈등이 일어나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자기는 생각하지 않고 남으로 인해서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서로 마주치니까 갈등이 일어난다.

신흥사는 신라 민애왕 원년(838) 혹은 진성여왕 3년(892)에 범일국사가 현재 동해시 관내인 지흥동에 지흥사(池興寺)라는 절을 짓고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건·중수를 거듭해 오다가 조선 현종 15년(1674)에 현 위치로 이전해 광운사(廣雲寺)라 했으며, 후에 다시 운흥사(雲興寺)로 고쳐 불렀다.

신흥사
신흥사는 신라 민애왕 원년(838) 혹은 진성여왕 3년(892)에 범일국사가 현재 동해시 관내인 지흥동에 지흥사(池興寺)라는 절을 짓고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건·중수를 거듭해 오다가 조선 현종 15년(1674)에 현 위치로 이전해 광운사(廣雲寺)라 했으며, 후에 다시 운흥사(雲興寺)로 고쳐 불렀다.
영조 46년(1770)에 화재로 인하여 모든 전우(殿宇)가 소실되어 다음해 영담대사가 중건했으며, 순조 21년(1821) 부사 이규헌의 지원을 받고 신흥사로 개명했다. 그 뒤 철종 14년(1863)에 중수했으며, 이때 부사 이규헌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은중각(恩重閣)이라는 사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현재 신흥사 대부분의 건물들은 이때 중수한 것이며, 1983년 주지 재황스님이 학소루를 건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의 현존 건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심검당·설선당·학소루·일주문·요사채 등이 있고, 부도군과 비·삼존불상·정화 등의 유물이 남아 있으며, 산내 암자로는 청련암과 반야암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으로 최근에 개수했으며, 삼성각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겹처마 맞배기와지붕이며, 최근에 건립했다.
설선당과 심검당은 문화재 자료 제108호로 심검당은 진영각이라 불리기도 한다. 은중각은 1863년 부사 이규헌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나 현재 이 건물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삼성각을 세웠다. 진영각 내부에 10점의 고승 진영을 보관하고 있고, 삼존 불상은 대웅전 내부에 봉안돼 있다. 석가여래와 문수보살, 보현보살로 구성되어 있고, 조선 후기 불상이다.
대웅전 안에 6점의 정화가 있는데 건륭년간(1736-1795년)에 그린 것이 5점, 철종 12년(1861)의 작품이 1점으로 모두 신흥사라 기록되어 있으며, 설선당 건물 내부에도 1875년, 1796년에 각각 조성한 탱화 2점이 있다. 사찰 입구 좌측의 부도밭에는 4기의 부도와 비석 5기가 일렬로 나란히 서 있다. 이외에 영담대사가 창건한 청연암, 반약암이 있다.
자료=삼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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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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