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결과 중심주의가 문제다”
“‘교수 되기 위한 연구’나 ‘연구비 타기 위한 연구’ 매몰 현상이 발생도 이런 상황 때문”
인터뷰 김인기 김씨넷 대표
“성과·결과 중심주의가 문제다”
‘문제’는 ‘주도권’이 아니라 ‘내부’에 숨어 있다
‘과학계 불편한 진실’, 시스템 바꿔야 나아진다
‘대형 프로젝트’ 연구 중심주의가 병을 만든다
‘비판 수용하지 못하는 문화’는 부작용 낳는다
김인기 김씨넷 대표는 물리학자다. 인하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대학, 기업 등에서 연구원과 연구교수로 활동했다. 2018년 1월 자동차 부품 관련 무역 회사인 김씨넷(KimCNets)을 설립한 후에는 회사 대표를 맡아 경영인의 길을 걷고 있다. 김 대표는 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났다. 2018년 6월 서울 덕수궁 근처인 전광수커피하우스와 보구여관(1887년 서울에 설립한 한국 최초 여성 전문 병원) 터가 있는 곳에서 만나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은 까닭에 ‘질의응답’ 대신 ‘풀어쓰기’ 형태로 글을 구성했다.
계간 사람과사회™ 통권8·9호
김인기 대표와 나눈 첫 이야기는 물리학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부문에 대한 인식에 대한 것이다. 30여 년이 지나면서 물리학이나 물리학과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가 생겼다.
“87년 포항공대 개교 직후인 88년도에 인하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포항공대는 ‘연구중심대학’을 목적으로 설립한 대학이다. 당시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최고로 알아주던 때라 물리학과를 꿈꾸는 학생들은 서울대를 가지 않더라도 물리학과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당시 포항공대 교수는 전원 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석사 학위 교수가 많던 시절이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국제 저널에 논문을 내는 교수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양(量)보다 질(質)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김 대표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 과학계가 변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다고 말한다. 과학자 개인의 자질은 훌륭하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아쉽다는 것은 변화가 없는 것,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유를 물었다.
“과학계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물리학은 경성제대에서 서울대로 바뀌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본다. 초기에는 박사 학위가 있는 교수가 많지 않았고 사범학교 출신을 물리학 교수로 임명한 적도 있다. 50년대 해외 유학파가 귀국한 60년대에는 박사 교수가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임용하는 게 많았을 것이다. 70년대에는 서울대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대학원 과정이 설립된다. 8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 귀국한 교수가 이제야 은퇴할 시기를 맞았다. 이들에게 배운 제자가 내 세대고 내 후배 세대가 현재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다.”
짧게 한국 물리학 분야의 흐름을 살펴본 셈인데, 김 대표는 학부, 대학원, 교수 임용, 제자 양성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30여 년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크게 볼 때 축적(蓄積)이 없다는 점, 양을 갖춘 수준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사회가 지식이나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이 같은 축적이 없고 인력과 인프라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양적인 면을 이제 채운 상황이어서 아직 질적 성과를 충분히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평가했다.
김 대표 설명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공대를 우대하고 공대를 지향하는 정책이 강했다. 과학기술을 경제 개발 도구로 곧장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위 ‘공학 우선주의’가 중요했다. 공학 분야에 지원하기 위해 관심이 커지면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은 주요한 학문으로 떠올랐다. 화공 부문의 경우 충주비료공장을 설립해 운영했다. 화공 분야는 서울대 화공과 출신이 주목을 받았다. 이를 기반으로 60-70년대에 중화학공업을 키우면서 산업이 발전했다. 이후 70~80년대에 전자공학이 주목을 끌었다. 이 또한 경제 발전을 위한 공학이었고, 80~90년대에는 서울대 전자공학이 주도권을 잡았다. 2000년대인 지금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 학위를 받은 전공자가 혼합돼 있다.
“결핍은 부작용을 낳는다”
한국은 그동안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빠르게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이 대세였다. 그런데 선진국만큼 산업 수준이 도달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패스트 팔로워 시스템은 한계를 보이게 된다. 이는 결국 어떤 특정한 사람의 잘못보다 ‘사람’과 ‘시스템’이 동시에 결핍되는 현상을 낳았다, 그러다보니 시스템을 이용해 나쁜 일을 하거나 개인의 영달을 찾는 이가 등장했다. 이른바 연구원의 ‘비리’나 ‘부정행위’가 생기는 현상이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 “정치권도 방향을 잘못 잡았다”며 “그런데도 정치나 정치인은 마케팅용 발언을 하면서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 결국 이런 움직임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고 말한다. 방향이 잘못됐고, 이로 인해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 대표가 예를 들어 설명한 바에 따르면, 4차산업혁명을 강조하지만 과학자 사이에서는 ‘뭔데?’, ‘IT냐?’, ‘반도체냐?’, ‘소프트웨어냐?’는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반응의 원인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 진행한 ‘창조경제’는 ‘베끼기’를 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알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때는 ‘황우석’이 이슈였다. 하지만 특정 개인이 대형 프로젝트를 맡게 하고, ‘연구비 몰아주기’를 진행하면서 결국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는 이런 부작용이 과학 분야는 물론 다른 데서도 똑같이 발생한다는 데에 있다.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돈과 인사가 맞물리면서 문제가 생긴다. 이는 실질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해지는 불가피한 현상을 낳는다. 프로젝트를 하청으로 처리하거나 대형 과제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작은’ 프로젝트, 그리고 ‘작지만 꼭 해야 할’ 분야는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웃으며 하는 소리지만, 작은 프로젝트는 낙수효과나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소위 ‘굶는다’고 말하고, 대형 프로젝트는 ‘살았다, 넉넉하다’고 표현하는 일이 벌어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과학계(科學界)는 물론 정계(政界), 관계(官界)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현상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아직도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과학계와 불편한 진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어떨까. 핵심은 ‘관 주도 과학기술 정책을 멈추라’는 것이다. 산업에 관련된 연구는 민간에 맡기고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책이다. 그런데, 요즘 발표되는 정책을 보면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다. 문제는 ‘주도권’에 있는 게 아니라 ‘내부’에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인력 부족, 프로젝트 선정 및 평가 시스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연구 프로젝트는 분야별로 차이가 크다. 10배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 연간 1개 논문을 준비하는 데 지급하는 비용은 대략 2,000만 원 수준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5,000만 원 정도 지급해줘야 할 프로젝트도 많다. 이런 프로젝트는 연구비를 최대한 지급해줘야 한다. 세금을 제대로 쓰도록 해야 한다. 연구자 중에는 소위 ‘허당’도 많다. 평가 시스템이나 평가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거나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을 과학계는 ‘쉬쉬’ 하며 넘어간다. 일종의 ‘담합’(카르텔, Kartell)이고,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숨기고 감추고 담합하는 것) 것은 빨리 공개해야 한다. 또 이를 ‘문화 시스템’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연구비와 보고서도 공개해야 한다. 저널 게재한 것도 확인하고 이를 평가하는 것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연구 선정 시스템도 공정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 대표는 정부의 연구 성과(보고서)를 ‘힘들게 찾는 노력’을 거쳐서 봐야 하는 형태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분야 보고서나 논문의 경우 전체 내용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요약본이나 뉴스레터로 보는 게 상당히 많다. 국가에서 진행한 연구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관심이 있는 경우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것도 쉽지 않아서 애를 써가며 보고서를 찾아서 읽는 형태는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체적으로 한국은 입법, 사법, 행정 등 세 부문 모두 정보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연구 조작은 생각과 달리 의외로 많다. 실적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연구비 압박도 크게 작용한다. 과대포장도 발생한다. 복합적인 이유와 상황이 작용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과학적 사실’은 ‘발견’하고 ‘적용’하는 사이에 괴리와 시간이 크게 작용한다. 특히 상용화할 수 있을 때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실적’ 내지 ‘결과’라는 압박과 부담을 견뎌야 한다. 이 같은 압박과 부담은 실제에서는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논문 실적 압박의 경우 ‘교수가 되기 위한 연구’나 ‘연구비를 타기 위한 연구’에 매몰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지식과 관계의 구분
과학계의 불편한 진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서 나온 주제는 ‘쓴 소리’다. 쓴 소리를 할 경우, 교과서적 내용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주제다. 좋든 싫든 몸에 좋은 쓴 약은 참고 먹을 수밖에 없다.
“과거 경험과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언론 보도와 함께 나오는 인물을 보면 ‘응, 뭐지? 뭐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나쁘다(bad)고 말하거나, 비난하거나(blame), 비판하는(critical) 게 뒤섞여 있다. 그런데 한국 분위기나 상황을 생각하면 화가 나는 경우가 많다.”
김 대표가 말한 ‘나쁨, 비난, 흠’이라는 낱말과 ‘화가 난다’는 표현은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가 설명을 요청했다. 추가 설명에는 스승과 제자의 문제, 교육과 정의의 문제, 학문의 구분 문제 등이 함께 들어 있었다.
“비판이나 비평은 긍정과 부정을 함께 포함한다. 그런데 ‘스승의 그림자’라는 게 일상의 문화다. 스승을 비판(비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이비 과학(계) 등 일부 경우에는 중고등학교 수준에서도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과학(?)인데, 이를 ‘크리티컬’하게 이야기를 해도 ‘블레임’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런 상황을 보면 지식과 관계를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도 못하고 있다. 과학계에서, 아마 다른 분야나 다른 학문에서도 많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연구 주제나 관련 내용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 것은, 생각과 입장을 나누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이를 비난(blame)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는 비판적 대화나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어떤 이야기에 이른바 ‘팔랑귀’처럼 쉽게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비판적 사고는 권위를 떨어뜨리는 게 아니다. 비판적 사고는 객관적 사실을 더 탄탄하게 해주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를 수용하지 않거나 수용하지 못하는 문화는 교육이든 문화든 부작용을 낳는다.”
“김씨넷은 톱니바퀴 역할”
김 대표가 2018년 1월에 설립한 김씨넷(KimCNets)은 자동차 부품 관련 무역 회사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와 제휴해 수입과 수출을 하는 형태다. 회사 설립 초기 단계여서 현재는 유통망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무역과 유통이 섞인 형태로 비즈니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김씨넷은 제조업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톱니바퀴’ 역할을 한다.
“회사 역할을 톱니바퀴로 비유했는데, 나사가 잘 맞지 않으면 일이 안 된다. 나사 맞추기는 주고받는 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업을 시작한 후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 비즈니스에 어울리는 대화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학문이나 학자에 맞춰 말하는 습관이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톱니바퀴는 앞과 뒤가 모두 잘 맞아야 잘 돌아간다.”
김 대표는 회사와 비즈니스는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물음에 “아직 힘들고 넉넉하지 않다”며 “하지만 대박이 나오면 성공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박에는 구멍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박 속에는 나쁜 점이나 실패, 위기가 늘 따라다니기 때문에 대박만 생각할 게 아니라 느릴지라도 정상적으로 길을 가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공정한 사회를 희망한다. 공정한 사회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더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일한 만큼 벌고 자식 잘 키우는 보통의 삶이 가능한 게 좋은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일을 열심히 했는데, 보상은 없고 엉뚱한 사람이 가져가는 것은 나쁜 것이다. 공정한 시장 경제가 필요하다.”
김인기
인하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전산물리학, 이론물리학, 응집물리물리학을 공부했다. 인하대 강사를 거쳐 포항공대에서 연구원, 노스웨스턴대(Northwestern University) 연구원, 포항공대 연구교수, 뉴멕시코 콘소시엄(New Mexico Consortium) 연구원, 랩021(Lab021) 연구원,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등으로 근무했다. 한국자기학회 우수논문상(2012) 및 SCI 논문 인용상(2010), 인하대학교 총장상(대통령상, 2003)을 받았다. 현재 김씨넷(KimCNets)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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