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없이 협상 이룰 수 없다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대화 없이 협상 이룰 수 없다
바이든 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
새해 2021년 1월 20일에 조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가 출범한다. 그의 풍부한 외교 협상 경험과 해박한 국제 문제 지식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와 ‘탑다운(Top Down) 외교정책’을 뛰어넘어 지난 4년간 잘못된 외교정책을 바로 잡고 ‘글로벌다자주의’(Globalism)를 바탕을 둔 동맹 관계를 복원하는 일부터 시작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한반도 문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새로운 시각에서 한미동맹 관계, 북미 관계, 그리고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새로운 셈법을 마련하기까지는 몇 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인물인 토니 블린컨(Tony Blinken) 국무부장관 내정자와 제이크 설리반(Jake Sulliva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두 내정자가 이란의 핵 합의 방식과 군비 통제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란 식 방식은 핵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를 만들 능력까지만 제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란과 달리 북한은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이다. 따라서 이란 식 모델을 한반도 비핵화 모델로 적용하는데 문제점은 없는지, 그리고 군비통제모델이 구체적으로 한반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궁금하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란 핵 합의 모델을 북한에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직까지는 바이든 행정부의 새 외교안보팀들의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구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러나 두 내정자가 창의적인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로드맵 구상을 기대한다.
본 칼럼은 차기 바이든 행정부의 새 외교안보팀에게 한반도 문제(남북 관계, 한미 관계, 북미 관계, 한반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 등) 해법을 위해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3대 핵심이슈를 중심으로 필자는 건설적인 정책 제언을 하고자 한다.
지난 4년 간 미국우선주의를 강조한 현실주의적 입장만 고수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반중(反中) 외교안보 노선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 제도 입장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미중 간 적대 관계의 완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필자는 현 시점에서 당장 풀어야 할 한반도 문제의 3대 핵심 이슈에 대해 논의한다(주1). 첫째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초등 단계에서 한국전쟁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둘째로, 잘 알려지지 않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건부 비핵화’ 제안을 검토한다. 북한의 조건부 비핵화 제안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니 북핵 해법을 모색하는데 진전이 없는 것 같다. 셋째로,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신 반(反)중 나토(NATO)형 안보협의체’ 구상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선택에 대해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구체적으로 남북미 3국 정부가 해야 할 몇 가지 정책을 제언하려고 한다.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선(先) 한국전쟁 종전선언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 공동성명 제3조 3항에 종전선언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중남북 4자가 종전선언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은 2020년 9월 23일 제75주년 유엔총회 영상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전쟁은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지금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종전선언이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간 비핵화 회담의 문을 열고 영구적 한반도 평화 체제로 가는 길을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공감한다. 종전선언을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 로드맵의 첫 단계로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조약(협정)을 체결하기 전에 필요한 조치다. 4.27 판문점 공동성명에서 남과 북은 미중남북이 서명한 종전선언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사항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종전선언을 지지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무관심하다. 미국은 ‘종전선언’이라는 용어 대신 ‘평화선언’(Peace Declaration)을 선호한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평화선언에 서명하는 데 서두르지 않는 것 같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첫째, 미국은 평화선언에 서명하기 전에 북한의 비핵화에 가시적 진전을 요구한다. 둘째, 미국은 종전선언 후에 북한이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를 요구할 것을 우려한다.
필자가 제안한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5단계 로드맵 구상’의 입구에서 북미 양자 간 종전선언보다 더 구속력이 있는 미중남북 4자 간 종전선언과 마지막 출구에서 평화협정보다 평화조약 체결을 제안했다. 즉, 미중남북이 4자 간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먼저 종전선언에 서명할 것을 제안했다.
- 김정은 위원장의 ‘조건부 비핵화’ 제안은?
북한은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비핵화의 두 가지 조건을 제안했다. (1) 미국의 적대적 정책 철회, (2) 북한 체제의 보장이다. 김 위원장은 두 가지 조건을 달성하지 않고서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김 위원장의 ‘조선반도 비핵화’는 조건부임을 이해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 논객도 김 위원장이 요구하는 두 가지 조건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와 북한 체제의 생존을 보장한다면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그는 현재 안보 환경에서 북한 체제의 생존을 위해 ‘자위’ 조치를 해야 하고 핵 억제력을 최고 수준으로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또한 분명히 강조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조건부 비핵화를 고려하지 않고 국제적인 제재와 압력을 강화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하지만 현재까지 김 위원장을 설득하는데 실패했음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사실은 김 위원장은 북한의 ‘최고 존엄’으로서 두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고 존엄의 약속은 꼭 지킬 것이다. 일부 논객은 김 위원장의 약속을 무슨 근거로 믿을 수 있느냐고 질문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북한 최고 존엄의 약속이고 미국 레이건 전 대통령이 어록에서 ‘믿어라. 그러나 반드시 검증(Trust, but verify)하라’고 말했듯이, 북한 최고 존엄의 말을 일단 믿고 검증하는 기회를 줄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현 시점에서 미국이 두 가지 조건 중 적어도 하나를 성실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필자는 제안한다. 더욱이 국내외 요인으로 인해 김 위원장은 비핵화와 평화 공존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가 북한의 비핵화를 계속하기로 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 김 의원장은 핵무기를 소유하게 되어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미국과의 협상(deal)을 원하고 있다. 그의 두 가지 조건을 미국이 수용하면 그 대가로 핵 포기를 약속했으니 일단 미국도 검증하는 기회를 줄 필요성이 제기된다.
둘째, 북한 경제는 국제 제재와 코로나19(COVID-19) 대유행으로 인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강조해온 인민의 생활 향상과 번영을 위해 핵무장이 경제 성장 및 번영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진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면, 김정은 위원장에게 인센티브(incentives)를 주기 위해 그의 두 가지 조건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정부의 선택은?
미중 간 패권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는 한국 정부가 원치 않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반(反)중 NATO와 유사한 안보네트워크를 구상하고 있다. 미국, 인도, 일본, 호주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안보 동맹협의체인 쿼드(Quad)를 확대 개편해 NATO와 같은 새로운 안보협의체를 형성하려는 구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가 동참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의 코드 플러스(Quad Plus) 계획을 추진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베트남은 이런 구상에 반대했고 이미 대미와 대중 균형 외교를 선언했다.
한국이 반(反) 중국 새로운 안보협의체에 참여할 것인가? 필자의 견해는 과거 한국의 보수 정부도 추구했던 ‘균형외교’를 문재인 정부가 유지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다음과 같은 근거 때문이다.
첫째,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국익 차원에서 이념과 동맹을 뛰어넘어 실용적으로 최고의 선택을 해야 한다. 둘째, 한국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국익 차원에서 중국과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중국의 역할은 미국만큼 중요하다. 한국이 미국이 원하는 데로 미국에 줄 선다고 가정하면, 중국은 한국과 적대적 관계로 전환하게 될 것이며 이는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균형외교는 한국에게 미국이나 중국을 선택하도록 요구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도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이 자신의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해서도 안 된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주도적, 적극적, 역동적 리더십을 발휘해주길 바란다.
- 몇 가지 정책 제안
바이든 행정부의 새 외교안보팀은 과거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 북미 간 핵협상 실무회담의 재개를 위해 무엇보다 북미 간 대화 재개가 급선무다. 대화 없이 협상을 이룰 수는 없다. 그래서 필자는 바이든 행정부가 아래 제안을 신중히 고려해 줄 것을 촉구한다.
첫째, 일부 논객들은 미국과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나 의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전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미국과 북한은 상호 양보와 타협하려는 진실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북미가 상호 양보와 타협을 통해 협상하려는 성실하고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둘째, 북한과 미국은 상호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북한은 핵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계속 중단하고 군사적 도발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 양국은 한반도 주변에서 최신예 전략 자산을 동원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면 먼저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에 대한 합의부터 이뤄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로드맵에 대한 남북미 3자 간 합의도 필요하다.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식 접근’과 미국의 ‘일괄타결식 접근’은 상호보완적이다. 두 접근 방식은 ‘융합접근’(Fusion Approach)이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이다. 그러기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필자의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5단계 로드맵 구상’은 창의적인 방안으로 3개국 외교안보팀들이 한 번 검토해주길 기대한다(필자 칼럼,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5단계 로드맵 구상’ 참조).
마지막으로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키 워드는 신의성실(信義誠実)이다. 북한과 미국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평화구축에 대한 성실한 태도만 공유하면 상호 양보와 타협하려는 의지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여 핵 없는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3대 핵심 이슈를 잘 이해하고 필자의 정책 제언을 심각하게 고려해주기를 기대한다. 한반도에서 절대로 핵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진정성 있는 태도로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는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새로운 북핵 해법과 대북 셈법을 제시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주1) 본 칼럼은 사람과사회™에 게재한 필자의 칼럼(‘조 바이든 제46대 미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 2020.11.09)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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