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외교, 선택은 대통령의 몫”
대일 외교, 역사와 안보는 분리될 수 없다
[지상중계]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118호
2015.04.21(화)
아베 총리의 美 상하 양원 연설과 역사수정주의
오는 4월 29일 아베 총리가 미국을 국빈 방문하여 일본총리로서는 패전 70년 만에 처음으로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2006년 고이즈미 총리가 부시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가지며 양국 지도자의 우의와 미일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했지만, 아베 총리처럼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담길 내용이다. 그의 연설내용에 주목하는 이유는 향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과 전반적인 태도가 드러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올 가을에 치러질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재신임을 얻게 되면, 특별한 변고가 없는 한 오는 2018년까지 일본총리의 자리에 있게 된다. 따라서 그의 이번 연설 내용은 향후 3년간 한일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에서 과거역사에 대한 사과를 되풀이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해 있지 않은 사과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몇 차례 역사문제에 대해 사과했지만, 지금도 한일합방의 강제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군 위안부의 일본정부 개입사실에 대한 인정도 최근 들어 번복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본인들 중에는 ‘정식으로 사과했으면 됐지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하란 말인가’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과거 일본의 정치인이나 관리들이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몇 차례 사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곧바로 이를 뒤집는 발언을 하곤 했다.
무엇보다 일본정부는 과거사와 관련된 공식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야자와 담화’, ‘고노 담화’, 그리고 ‘무라야마 담화’마저도 훼손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하고 있다.
8월,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과 관련해 미야자와 관방장관은 교과서의 검정 기준으로 한국, 중국 등 근린제국의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인다는 ‘근린제국 조항’을 약속했다. 1993년 8월 발표된 ‘고노 담화‘는 과거 일본정부가 종군위안부 모집에 관여했음을 인정하며 공식 사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95년 8월 일본 패망 50주년을 맞이해 무라야마 총리는 아시아를 향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의 뜻을 밝혔고, 2010년 8월 간 총리는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에 즈음해 한국만을 대상으로 병합과정의 강제성을 우회적으로 시인한 ‘간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미야자와 담화’에서 밝힌 ‘근린제국 조항’은 일찌감치 훼손되어 버렸다. 금년 4월에도 일본정부는 중학교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했다고 기술하고 군 위안부와 같은 부정적 역사를 삭제함으로써 ‘미야자와 담화’를 내던졌다.
최근 들어 아베 총리는 ‘고노 담화’가 사실인지 검증해야 한다며 수정 의사를 밝혔다. ‘간 담화’는 내각회의의 결정에 근거하고 있으며 사과의 대상을 한국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가장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강제병합 불법성 인정, 종군위안부 등 전쟁 피해자 보상, 독도 문제 등이 담화에 포함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4월 22~24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릴 아시아·아프리카정상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렬한 반성’ 대신에 ‘지난 대전(大戰)에 대한 깊은 반성’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 상하 양원 합동회의 연설과 오는 8월로 예정된 ‘아베 담화’에서 식민지 침략역사에 대한 역사수정주의의 입장을 바꾸지 않은 채 단지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만을 강조한다면, 한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미 고위 관료들의 일본 두둔 발언과 전략 환경의 변화
이와 같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에 더해, 최근 들어 미국측의 현직 고위관리들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두둔하는 행태가 눈에 띈다.
지난 2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은 “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발언해 파장을 불러왔다.
4월에는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아베 총리의 ‘위안부는 인신매매 피해자’ 발언은 긍정적 메시지”라고 한 데 이어, 애슈턴 카터 국방부 장관도 “한·미·일 협력의 잠재 이익이 과거의 긴장과 현재의 정치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렇듯 미국 고위관리들이 일본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게 된 것은 4월말 일본총리의 국빈방문과 첫 미 상하양원 연설을 앞두고 분위기를 띄우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한·미·일 3국의 대(對)중국 전략적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자국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국이 한국이 제기한 역사문제보다 당면한 안보문제가 중요하다는 전략적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미국이 새로운 전략적 인식을 갖게 된 데는 일본이 미국을 활용해 한국을 압박해 온 대미 기만외교가 먹혀들어간 측면도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미국을 떠나 중국을 따르려 한다”는 이미종중(離美從中)론을 유포시켜 한미관계를 이간질해 온데 이어,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와 2015년판 <일본외교청서>에 한국에 대해 “자유, 민주주의, 기본적 인권 등의 기본적 가치 및 지역평화와 안정 확보 등의 이익을 공유하는 나라”라는 표현을 삭제하였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자유, 민주주의와 기본적 인권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식으로 역습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고수한 채 미국을 움직여 한·일 안보협력의 수용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국내 정치인과 언론들은 한미동맹을 절대시하는 것도 모자라 신성시하기까지 하지만,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의 자세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마치 미국이 냉전시기에는 한국과 일본을 대등하게 봤다가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 특히 중국의 부상 이후 한국보다 일본을 중시하게 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본이 헌법 제9조에 묶여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안보파트너 역할을 할 수 없었을 때, 한국이 일본의 안보역할 공백을 수행해 메워줌으로써 ‘또 다른 일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주한 미 사령관이 4성 장군인데 비해, 주일 미 사령관이 3성 장군인 점도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서 전수방위 원칙과 경무장 경제우선노선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대외정책은 오로지 경제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만족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아시아판 북대서양동맹(NATO)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민족반공연맹(APACL)을 창설해 미국의 안보 역할을 분담하고자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기꺼이 월남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다. 노무현 정부조차도 비전투병의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라크에 파병했던 것이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끝나고 중국의 급부상에 대항해 일본이 재무장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일본은 전후외교의 총결산을 기치로 내걸며 일찌감치 미사일방어(BMD)에 참여한 데 이어 아베 정권에 들어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고 미일동맹의 활동범위를 확대한 미일가이드라인의 개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헌법 개정만 이루어진다면,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체제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전후외교를 탈피하면서 중국·북한 위협론을 내세워 미국의 안보파트너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그 동안 담당해 왔던 안보역할조차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수평적 정권교체까지 경험한 바 있다.
여기에다 한·중 관계가 경제협력을 넘어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안보협력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과거와 달리, 한국은 대미 안보협력을 결정하는 데서 민주주의적인 국내절차와 긴밀해진 한·중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일 ‘역사·안보’ 딜레마 해법은 남북관계 개선
이처럼 일본의 외교적 반격이 거세지고 동아시아 전략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미국조차 일본을 두둔하며 한국정부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한 우리 정부의 전략은 보이지 않고 국내여론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본의 잘못된 역사인식은 그대로인데도, 한일관계의 현실은 일본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만든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식민지배의 피해자라는 역사문제를 내세워 대일 외교의 현안문제들에서 도덕적 우위를 지켜왔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의 피해의식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에 대한 엄청난 무역흑자라는 실리를 누리면서 이른바 조용한 ‘전후외교’를 수용해 왔다.
하지만 이제 일본은 역사수정주의를 고수하면서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미사일위협에 대응한 한·일 내지 한·미·일 전략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역사문제와 분리해 안보문제에서는 협력하자는 ‘역사-안보’ 분리대응론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한일관계를 감정이 아닌 이해득실로 따져야 한다”든가, “안보를 위해 악마와 춤추기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면서, 역사문제를 국민감정의 문제로 폄하하거나 ‘안보를 위해 역사문제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어놔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역사-안보’ 분리대응론은 바로 왜곡된 역사인식을 시정하지 않고 당면한 안보협력을 이끌어내려는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역사와 안보를 분리한다면, 당장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체결하지 못하겠다고 할 이유가 사라진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독도를 한국이 무단 점유했다고 우겨도, 한국해군과 일본해상자위대가 동해바다에서 합동군사훈련을 못할 이유가 없다.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한국 안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이를 지지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일양국의 당면 현안들이 안보 우선의 깃발에 밀려 우리의 포괄적인 국가이익을 제대로 챙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안보 분리대응’ 논리가 지칭하는 안보위협의 대상은 어느 나라인가?
중국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앞으로도 엄청난 경제적, 외교적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도 공공연하게 중국을 겨냥해 안보협력을 하자는 말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안보협력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역사-안보’ 분리대응 논리가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남북관계의 악화라는 토양이다.
남북관계가 현재와 같이 적대적인 환경에서는 언제라도 ‘역사-안보’ 분리론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때로는 힘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에 대한 ‘역사-안보’ 연계론이 만능의 보검이란 뜻은 아니다. 우리가 ‘역사-안보’를 연계하려 한다고 해서 일본이 이에 굴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자칫 한일관계의 냉각만 장기화될 수 있다.
나아가 한일관계의 파탄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구도를 흔들게 되어 한미동맹의 근간까지도 훼손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내세워 ‘역사문제는 뒤로 한 채’ 안보협력을 강화하자는 전략적 요구의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이미 작년 12월 한·미·일 군사정보보호약정(MOU)까지 체결했고, 이것이 언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으로 발전할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역사문제를 내세워 미국과 일본의 요구를 회피해 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달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대응방안은 생각보다 간단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국제공조로 관리되어 외교적 방법으로 해결이 모색된다면, 우리나라가 굳이 ‘악마’와 춤추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아가 일본의 역사인식문제를 바로잡을 큰 동력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정부가 대일 외교에서 겪고 있는 ‘역사-안보’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고 좀 더 당당할 수 있게 된다.
이제 그 선택은 박근혜 대통령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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