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의 文化는 同床異夢이자 同床同夢”
문화 수준 높을수록 다른 문화 수용과 교류에 더 적극적
“한국과 중국의 문화는 동상이몽과 동상동몽이다.”
한중(韓中)은 문화는 같은 꿈이면서 다른 꿈이다. 같은 것과 다른 것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한중은 언어와 종교, 의식주, 사상과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에 이르는 여러 가지가 많이 닮았다. 결합쌍둥이(Siamese Twins)나 일란성쌍둥이라 하기는 어려울 수 있을지 몰라도 이란성쌍둥이라는 비유는 적절하거나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또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일 3국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래서 사회문화적으로 많이 ‘닮은 꼴’이다. 동북아시아라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닮음이 생겼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는 역사다. 이 역사는 대화와 소통이다.
유럽의 역사에 나타난 서구의 문화가 서로 닮음을 갖고 있듯이 동양, 특히 동북아시아 한중일 3국의 문화는 다른 어떤 지역 못잖게 밀접한 소통과 대화의 장을 끊임없이 이어온 문화권을 형성했다.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침략을 하기도 하면서 울고 웃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한중일, 특히 한중의 역사는 수천 년에 이른다. 한국은 문화를 새롭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에 대한 자존 의식이 강하지만 일정한 수준까지는 외래문화에 개방적이다. 그래서 외래문화를 토착문화와 연결해 새로운 멋과 맛을 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중국은 동북부 대륙이라는 지형적 특성상 여러 나라와 오랫동안 경제·문화·사회 차원에서 교류가 활발했다. 인도의 불교문화의 수용은 한(漢)과 당(唐) 시대의 거대한 문화적 사건이다. 불교는 중국의 철학과 문학예술에 매우 큰 영향을 줬다.
그런데 문화의 교류는 문화의 수준이 높을수록 다른 문화를 수용하거나 교류하는 데 더 적극적인 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이 불교를 수용하던 시기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를 누리던 때다. 그러나 중국은 이후 ‘중체서용’이 강했다.
이는 ‘중학위체(中学为体), 서학위용(西学为用)’의 약칭이다. 중국의 학문인 유교를 중시하고 서양의 과학·기술·정치·제도·사상 등은 천천히 일부만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서양문화에 대한 중국의 핵심 대응 논리였다.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하던 중국은 1966년 문화대혁명을 시작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중국 전체가 ‘새로운 문화’에 빠져들면서 서양의 문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그 속도와 너무 빨라 중국 당국은 자국의 문화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 상품 도입 제한 등의 움직임이 생겼을 정도다.
그러나 문화는 제한을 한다고 해서 차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넘나듦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닮음’에서 기업을 구한 사례도 있다. 앤 멀케이(Anne M. Mulcahy)는 제록스 최고경영자(CEO)가 된 후 제록스를 ‘복사기 제조업체’에서 ‘종합 문서 솔루션 회사’로 바꾸는 환골탈태(換骨奪胎)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멀케이는 다른 우수한 기업의 뛰어난 경영 전략이나 모델을 연구해 ‘모방을 통한 재창조’를 이용해 제록스만의 위기 극복과 성공 전략을 만들어 제록스를 살려냈다. 닮음과 모방을 통한 제록스 구하기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문화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와 현재가 늘 대화한다. 또한 나의 문화는 다른 문화와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이어왔다.
한중의 문화예술교류는 역사가 깊은 만큼 한중의 대화와 소통이 깊어질수록 문화와 예술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1일 한중은 FTA에 공식 서명했다. 앞으로 교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중 간 대화와 소통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Leave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