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 비리는 현관과 동업인가
“전관 비리는 현관 비리와 동전의 양면”…現官 없는 前官이 무슨 힘을 쓰겠는가
우리는 맑고 밝은 사회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모든 것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출현한 일이 없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있을 뿐 실현되기는 어렵다.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유사 이래 이를 포기한다고 공식선언하는 바보짓을 하지도 않는다. 온갖 비리가 판치고 못된 일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게 우리의 의무다.
매일처럼 반복되는 수많은 나쁜 사건들이 일시적으로 절망을 불러오지만 그래도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게 우리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소위 ‘묻지마’식 범죄가 판을 친다.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서 나오는 여성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살해되고, 아침 산책에 나선 여성이 수락산에서 피살되었다. 사패산 골짜기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 여성 혐오 범죄라고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무튼 하루가 멀다고 벌어지는 사회불안 요소들이 대부분 오래 동안 계속되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 경제적 양극화 등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특히 권력층에 속하는 인사들의 행태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콤플렉스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어제 발표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 결과는 전 세계를 미증유의 혼란에 빠트렸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주식 값은 하한가로 떨어지고 경제계는 신경을 곤두세워 장차 불똥이 어디까지 튈 것인지 가늠하고 있다. 블렉시트는 경제뿐만 아니라 국제 정치에 끼치는 파문이 상상외로 크다. 일시적이겠지만 한국의 증권시장에서도 외국인 투자가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지만 유로탈퇴는 상당한 시일을 지나며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다시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브렉시트의 여파가 미국의 대선에 미칠 영향력은 큰 관심사다. 부동산 재벌에 불과하던 트럼프가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었고 아직도 민주당의 힐러리에게 뒤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지만 그의 막말 저력은 오히려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변화’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로마시장 선거에서 37세의 신데렐라 여성이 당선되고 필리핀 대선에서도 마구잡이 두트레트가 당선되는 등 이변이 속출한다. 미국 역시 전형적인 주류세력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히스패닉과 아시아계의 대량이민으로 판세는 요동친다.
한국에서도 이미 이회창을 꺾은 노무현이 출현한지 오래다. 노무현은 비록 비극처럼 갔지만 그가 추구하던 ‘변화’를 바라보는 친노파는 아직도 더민주당의 주류를 이루며 내일을 기약한다.
이처럼 세상은 뭔가 새로운 것을 향하여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는데 유독 붙박이가 되어 한 자리에만 늘어 붙어 있는 조직 세력이 있다. 법조계다.
화장품으로 졸부를 이룬 정운호는 주체하기 어려운 재산을 해외도박으로 탕진했다. 부의 재분배나 나눔과 봉사를 모르는 졸부들이 간혹 이런 행태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해외원정 도박은 엄연한 범죄행위다. 영화배우, 탈렌트 가수와 같은 연예인 그리고 야구 축구선수 등이 마카오 등지에서 원정도박을 했다가 패가망신한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해외도박은 큰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정운호는 이로 인하여 구속되었고 최유정이라는 여성 변호사를 선임하여 재판에 대비했다. 변호사 선임비가 자그만치 100억이다. 50억씩 두 번에 나눠 줬다는데 모두 재판장을 상대로 한 로비 자금 명목이다. 막대한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한 정운호는 변호사 접견실에서 최유정을 폭행했다. 이것이 폭행사건으로 고소되면서 사건은 백일하에 드러났으며 최유정, 홍만표 변호사가 구속되고 현직검사의 집이 압수수색되는 등 파장은 커졌다.
우리는 과거부터 돈 많은 이들이 입건되거나 구속되면 반드시 변호사 선임을 둘러싼 설왕설래를 들어왔다. 재판장과 연결된 고리를 찾아 지연 학연 혈연을 철저히 추구한다. 엄청난 선임비가 지출되지만 확실한 효과를 기대한다. 이것을 인간 세상의 흔히 있는 일로 치부하면 미덕으로 둔갑한다.
문제는 사건의 성격이 반사회적인 ‘범죄’라는 데 있다. 결코 가깝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거나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것은 사회정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이런 행태를 죄의식도 없이 자행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를 바로 잡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맑고 밝은 사회를 건설하는 첫걸음이다. 누가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동안 우리는 ‘전관예우’라고만 비판해왔다. 그러나 현관(現官) 없는 전관(前官)이 무슨 힘을 쓰겠는가. 현관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비판을 자제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한 것에 불과하다.
서울법대에서 평생 전 현관을 가르쳐 온 송상현은 현재 유니세프 한국 회장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제형사재판소장으로 근무했다. 그가 어려운 입을 열어 “전관 비리는 현관 비리와 동전의 양면”이라고 갈파했다. 전관과 현관이 재판을 둘러싼 동업을 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새겨들어야 할 법조계 원로의 쓴 소리다. 양식을 가진 법조계 원로들이 앞 다퉈 일어나 현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할 수 있을 때 그나마 법조계 정화의 물결이 넘실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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