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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좌표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가장 당신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안에 사랑이나 연민 등의 감정은 얼마만큼 거기에 관여하고 있는가.

“나는 그 소년에게 현실을 돌려줄 수 있소. 현실의 정상적인 삶, 똑같은 생각들. 심지어 정상이란 말 자체까지 그에게 줄 수 있소. 하지만 모든 이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고 그것은 기계의 부속에 불과한, 난 도저히 그가 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지 모르겠소.”
인간의 근원적 원시성인 성(性)과 타성에 젖은 윤리와 종교, 그리고 존재론적인 질문. 의사 다이사트가 소년 알런에게 정상적인 삶을 돌려주며 고뇌하는 이 장면이, 현재의 삶을 사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과연 당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신성(神性)과 욕망(欲望)과 당면과제(當面課題)의 삼각형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신성(神性)의 자리에 가치관이랄지, 윤리•도덕, 관습을 넣어도 좋겠다.

인간의 근원적 원시성인 성(性)과 타성에 젖은 윤리와 종교, 그리고 존재론적인 질문. 의사 다이사트가 소년 알런에게 정상적인 삶을 돌려주며 고뇌하는 이 장면이, 현재의 삶을 사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과연 당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신성(神性)과 욕망(欲望)과 당면과제(當面課題)의 삼각형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신성(神性)의 자리에 가치관이랄지, 윤리•도덕, 관습을 넣어도 좋겠다.

당신의 좌표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가장 당신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안에 사랑이나 연민 등의 감정은 얼마만큼 관여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

당신의 좌표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당신이 서 있는 곳에서 가장 당신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안에 사랑이나 연민 등의 감정은 얼마만큼 관여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디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

‘에쿠우스(ECUUS)’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는 우리나라에서 1975년 초연된 이후 강태기를 비롯해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배출했다. 내가 1991년에 본 연극 ‘에쿠우스’는 김아라가 연출한 작품으로 조재현이 주인공을 맡았다.

판사 헤스터는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에게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찔러 기소된 알런을 치료해 달라고 의뢰한다. 끊임 없이 ‘에쿠…’,’에쿠…’ 신음소리를 내는 17세 소년 알런.

약간은 무기력하면서도 권위적인 아버지와 광신도에 가까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알런의 어린 시절에 두 가지 주목할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벽에 붙어 있던 골고다에 오르는 예수 사진을 떼어 내고 거기에 ‘정면을 응시하는 말’의 사진을 붙인 것, 또 하나는 말을 타고 있는 어린 알런을 보고 아버지가 기수(騎手)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알런을 내리게 한 것이다.

다이사트는 알런의 내면에 서로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부모가 있음을 알게 되면서부터, 사랑없는 결혼 생활을 하는 자신이 과연 이 아이를 치료해낼 수 있을까 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그 갈등은 다이사트가 알런의 내면을 집요하게 끌어내면서 다이사트 자신이 제사장이 되어 악몽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난다.

알런에게 ‘말(馬)’은 순수, 생명력, 원시적 자아와 같은 존재이고 한편으로는 예수를 대신할 만큼 신성시 여기는 대상이다.

알런이 여자친구 질의 소개로 마굿간에서 일 하면서부터, 밤마다 자신이 애지중지 돌보는 말 너제트를 타고 해변을 도는 것은 알런의 은밀한 기쁨이었다.

말의 눈에 꼬챙이를 찌른 그 날, 알런은 질과 마굿간에서 섹스를 하면서 죄책감과 광기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알몸을 자신이 신성시 여기는 말들이 보았기 때문이다.

알런은 자신의 입에 스스로 재갈을 물리고 너제트 등에 올라 “아멘”이라고 외친다.

이 장면은 알런 개인만의, 일종의 속죄행위라 할 수 있다.

에쿠우스(ECUUS)는 라틴어로 ‘말(馬)’을 뜻한다.

의사 다이사트의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다.

“나는 그 소년에게 현실을 돌려줄 수 있소. 현실의 정상적인 삶, 똑같은 생각들, 심지어 정상이란 말 자체까지 그에게 줄 수 있소. 하지만 모든 이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계의 부속에 불과한 것이요. 난 도대체 그가 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지 모르겠소.”

소년 알런은 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것인지 모르나, 그에게는 순수와 열정이 있었다.

다이사트는 알런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말 대신 스쿠터를 타고, 돈을 벌기 위해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유령과 무엇이 다른가 하고 묻는다.

다이사트가 소년 알런에게 정상적인 삶을 돌려주며 고뇌하는 이 장면은, 인간의 근원적 원시성인 성(性)과 타성에 젖은 윤리와 종교,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신성(神性)과 욕망(慾望)과 당면과제(當面課題)의 삼각형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신성(神性)의 자리에 가치관이랄지, 윤리.도덕, 관습을 넣어도 좋겠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당신을 가장 당신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한 열정을 쏟으며 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아가다 보면,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가 보일 듯 하다.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연극 에쿠우스가 상연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1991년 이 연극에 빠져 전율하며 추스리기 힘든 매혹 속에서, ‘불안한 본성’이라는 시를 썼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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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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