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화예술, 어떻게 이해할까?
「그림 읽어주는 여자」에서 「한젬마」는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 화가의 영혼과 인생에 대한 그만의 힘을 느끼는 일”이라고 말한다.
북한 문화예술에 대한 단상
정경화 남북물류포럼 사무국장
북한의 문화예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림 읽어주는 여자」에서 「한젬마」는 “그림을 본다는 것은 그 화가의 영혼과 인생에 대한 그만의 힘을 느끼는 일”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 말을 자신의 인생을 작품 속에 반영하는 힘이 곧 ‘예술’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그렇다면 북한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은 어떨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들도 인간의 축적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일까? 창작에 대한 그들의 근본적인 욕구는 어떻게 어디로 분출되고 있을까?
그 욕구가 저지당한다면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그들만의 지하세계가 존재하고 있을까? 한 때 문학관련 재단에 근무하면서 가졌던 생각이기도 하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문화의 한 부분으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정의 힘을 빌려 의도적인 방향으로 틀어갈 수도 있다. 나치의 선전예술은 물론,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예술도 민족 정체성 말살에 압제되어 서슬 퍼런 검열의 칼에 휘둘러졌다. 창작의 순수성이 지켜지지 못한 채, 오로지 ‘황국신민화정책(皇國臣民化政策)’의 도구였을 뿐이었다.
예술은 속성상 비체제적이다. 예술가는 그래서 집단으로 존재하기 힘들다. 그러나 북한의 문화예술은 체제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성보다는 이념적 사상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투철한 사상성이 가미되고, 체제의 인위적인 개입이 강행되고 있는 곳이다. 문화예술은 아예 체제 정당화의 도구다. 북한의 작가나 예술인들은 사회적으로 비교적 높은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으나, 이는 다름 아닌 예술적 창작성과 자유를 포기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해 봉건·부르주아적 문화를 타파하고, 「프롤레타리아」 이념에 투철하게 한다. 북한의 문화예술을 다루는 남쪽의 글도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획일적·집단적이고, 선동적이며 혁명화된 인간을 만드는 것이 ‘북한의 문화예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1970년대를 기점으로 ‘주체적 문화예술’을 지향하면서 김씨 일가 세습을 위한 정치적 우상화의 수단이 되었다는 것도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가 ‘인간 집단의 생활양식’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북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도 그런 예술로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톨스토이는 「종교예술」을 예술 중 「최고의 예술」이라고 했다. ‘진정한 예술가’는 신과 인간에 대해 우러나오는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켜 인간을 감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예술이 모름지기 종교나 철학과 같이 인성의 가장 깊은 문제와 정신의 가장 높은 진리를 의식시키는 수단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도 그 나름의 문화예술을 창달하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표면적으로 「주체사상」을 통해 전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이라는 이름으로 종교화했으니, 그 자체가 ‘북한 나름의 문화’가 아닐까?
그래서 북한의 문화를 그들 나름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생각은 단지 거기에 그칠 뿐이다. 북한의 예술이 항상 그런 모습으로만 존재하고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사고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술의 궁극적 목적인 인간의 본질을 깨닫게 할 것이라는 생각, 결코 사회의 이념과 사상을 대변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금 북한의 변화에는 적어도 그와 같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확신도 든다.
북한에는 이미 ‘공식문화예술’과 현실적 문화예술인 ‘이면(異面)문화예술’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국가 주도의 공식적 입장의 문화와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 삶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문화예술과의 차이가 나타내고 있다.
공식예술은 당이 지정한 노래만 불러야 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의 혁명사상과 주체사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수많은 가요가 창작되었으나, 국가의 승인을 받지 않은 노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부를 수 없다.
그러나 그 반대편 현실 속에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문화도 있다. 1990년대 들어 밖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외부문화도 한 몫을 한다. 남한과 중국 등 타지의 문화가 북한 주민들의 삶에 공유되고 있다. 공식 노래는 아니지만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삶을 담은 노래들이 불리어진다.
매우 제한적이지만 문화의 자율성이 살아 움직일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다. 북한의 이면문화가 존재하게 된 원인은 정권의 통제권 밖에서 삶의 방식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정권은 경제적 침체를 겪으면서 주민들에 대한 생계보장 문제를 주민들 스스로의 몫으로 넘겼다.
이것이 오히려 통제력의 이완을 가져다주었다고 본다. 문화예술 부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일탈 문화, 외래문화가 국경지역을 기점으로 북한 전역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문화란 고립된 환경일수록 독특하게 형성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고립의 정도가 강할수록 새로운 문화와 접했을 때 배타적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호기심이 적용되는 순간 예상보다 빠른 변화를 보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할수록 북한의 문화예술은 빠른 변화를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선동적인 혁명도구로써 장악되어 있기는 하나, 시간이 갈수록 이면문화의 현실적 영역은 팽창을 거듭할 것이다. 그 변화를 보다 더 강하게 추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남·북한간 문화예술교류일 것이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나 움직이지 않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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