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가족 만나게 해 달라”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은 요원한가.
최근 남북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염원이 점차 확대된 가운데 이산가족들의 가족에 대한 간절함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부모,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클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월 13일 사단법인 물망초 인권연구소(이하 물망초)는 조찬 세미나를 통해 현재 남북이산가족들에 대한 상봉 확대 방법과 이를 가로막고 있는 5.24초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했다.
물망초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남북이산가족들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막혀 있는 상봉 행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래는 이 날 세미나에서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 확대와 5·24조치 해제 해법’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5.24조치를 취함으로써 상봉 행사가 흐지부지한 상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4년 2월 20일부터 25일까지 금강산에서 진행됐지만 그것도 고작 2박 3일 간의 짧은 만남으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아픔을 또다시 겪게 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같은 ‘이벤트식’ 상봉 행사라면 다른 모든 생존 이산가족들은 단 한 차례 상봉조차 보장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 수석연구원은 “남북이산가족 문제는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이 가운데 생사와 주소 확인이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원초적 해결 과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이산가족 상봉 규모는 현저히 확대됐었다. 그럼에도 이산가족 생존자 전원에 대한 주소와 생사 확인은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다 ‘5.24조치’로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전면 중단되면서 이들의 생사 확인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이산가족들이 사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4년 12월 기준 이산가족 생존자의 12.6%가 90세 이상이며, 80세 이상만도 55.3%를 차지하고 있어 더욱 사망자는 늘어가는 추세다.
2003년 이후 이산가족 사망자 수는 매년 평균 3,800명에 달한 반면 상봉자 수는 약 1,800명 불과해 연간 2,000여 명이 상봉하지 못한 채 숨지고 있는 것이다.
상봉자 선정 및 상봉 절차, 인원 수 바뀌어야
당국의 현재 남북이산가족 상봉 선정 기준도 문제로 지적됐다. 선정 기준은 어느 정도 고령자를 우선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추첨’ 방식이어서 90세 이상의 고령자가 북한 가족을 만날 가망성이 희박하다는 것.
따라서 정성정 연구원은 현재와 같은 추첨 방식이 아닌 ‘고령자 우선 원칙’이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한번 만나는 이벤트식 상봉은 이들의 그리움과 아픔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형편없는 방법이다.
남북이 명절에 각각 약 100여 명씩의 이산가족 명단을 교환하고 이들을 상봉시키는 방식으로는 전체 이산가족이 생애 한번이라도 상봉할 기회를 갖는 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다.
남북이산가족이 생애 한번이라도 상봉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매년 7,200명이 만남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매달 600명 가량 상봉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 방법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그러나 매일 20여 명씩 상봉을 추진한다면 실현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특히 북쪽에서 상봉 규모를 확대하는 데에 인력과 이산가족 조사 등의 문제를 주장하면, 첫 달에는 여섯 가족, 다음 달에는 여덟 가족, 그 다음에는 열 가족씩 점차 숫자를 늘려가는 방안을 추진하면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사실 매년 7,200명의 상봉은 북한으로써 상당히 큰 경제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산가족상봉을 놓고 매번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듯이 이를 통해 경제적 위기를 일정 부분 극복하려는 속셈이다.
남측, 이산가족 문제 실용적·경제적 접근 필요
남한은 북한의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실용주의적·경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남북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적 성격이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경제력으로 상당히 열세에 있는 북한에게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자들을 평양에 집결시켜 대남 선전용으로 길게는 보름간 사상교육과 남자들에게는 양복을, 여자들에게는 조선저고리를 제공하는 등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잘살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육류 등을 며칠간 섭취하게 함으로 살찌게 하고, 치아가 없는 이들에게는 틀니까지 제공하면서 체제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어 그 비용이 상당하다.
북한의 이런 상봉 준비는 남북한 체제경쟁 관계에 놓여있는데 기인한다. 따라서 이산가족상봉 문제를 단순히 인도적 차원에서만 간주할게 아니라 현실적 복잡성을 극복해야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적 복잡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장 실질적 문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취해진 ‘5.24조치’를 들 수 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보복 조치로 남한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의 명백한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를 해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5.24조치는 북한과의 무역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의 북한 방문, 제3국을 통한 북한 주민과의 접촉,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등 북한과 관련된 모든 경제활동을 제한한다.
그나마 개성공단은 이 조치에서 예외로 인정됐으나 신규 투자가 불허되고 입주 업체 관련자들의 체류 및 방북 인원도 제한 하는 등 결국 5.24조치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게 관련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때문에 결국 개성공단의 많은 입주 업체들이 돌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5.24조치 문제점 한두 개 아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5.24조치를 시행, 북한의 대외무역에 있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남북교역을 일시에 단절시켜 북한에게 상당한 압박을 가함으로써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예상은 초기에는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개성에 진출해 있던 우리 기업뿐만 아니라 그동안 20여 년이 넘게 축적되어 온 남북경협의 소중한 자산들마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릴 위기에 처해 오히려 ‘부메랑’으로 남한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만 더욱 높여준 꼴이 됐다.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 모든 경제체제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5.24조치 이후 2010년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중 교역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0년 북·중 무역 규모는 35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년도 대비 약 29%나 증가한 수치다. 이어 2011년에는 양국 무역 규모가 56억 달러에 이르면서 전년도에 비해 무려 63%나 ·껑충 뛰어올랐다.
5.24조치가 발표되기 전 2005~2009년의 경우 연평균 북·중 무역 증가율은 15%에 불과했음을 볼 때, 이후 63%의 수치가 주는 의미는 실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했던 5.24조치는 북한 내부에는 영향을 줬을지 모르나 대외 무역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는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시간이 갈수록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불어 앞으로 남북경협은 물론 남북대화조차 어렵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014년 5월 경실련 통일협회가 5.24조치 4주년을 맞이해 북한 및 통일 분야 전문가 11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24조치는 해제 되거나 완화돼야 한다”는 응답자가 103명 무려 91%에 달했다.
103명의 응답자 가운데 52%는 ‘남한의 피해가 북한의 피해보다 더 크다’라고 응답해 5.24조치가 얼마나 무익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북, 5.24조치 해제 촉구
북한은 그동안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했으나, 최근에는 5.24조치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이 조작해낸 5.24조치를 비롯한 장애물들에 의해 ‘6.15공동선언발표’이후 활발하게 진행되어 오던 북남사이의 통일행사와 력사유적공동발굴, 학술토론회, 사회문화교류사업, 금강산관광 등 북남협력사업이 하루아침에 차단된 것은 물론 흩어진 가족·친지 상봉을 비롯한 가장 절박한 인도주의협력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성장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5.24조치 해제를 ‘천안함 침몰 사과’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와 연계시킬 것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 화해협력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긍정적인 조치, 예를 들어 생존해 있는 남측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약 7만 명 전원의 북한 가족 생사 확인 및 서신교환과 연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정 연구위원은 또 “이제는 정부가 이들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해 직접 나설 때다. 남북이산가족 간 서신 교환 확대와 이를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게 얼마의 경제적 보상을 취한다면 가망성은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더불어 북에 있는 이산가족을 위해 남측 이산가족이 경제적으로 돕고자 하는 것을 당국 간 채널로 활성화 한다면 북한도 이에 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이산가족공동위원회’ 구성 필요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2월 18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앞으로 남북이산가족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어 “상봉을 신청한 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2013년에만 3,800명에 달한다”며 상시적 상봉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박 대통령의 의중처럼 상시적 상봉이 정례화 되려면 남북 간 협의체가 절실해 보인다. 비상설 협의기구인 기존 남북적십자회담으로는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서신 교환 등의 상시 상봉은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번 조찬세미나 참석자들은 상시 상봉 합의를 이행하고, 추진할 수 있는 가칭 ‘ 남북이산가족공동위원회’설립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견해를 밝혔다.
이 위원회는 이산가족의 생사가 확인되면 해당 가족에게 소식을 전달하고 서신 교환 등 모든 상봉 업무를 관장하며, 대북 송금 및 북한의 협조에 상응하는 지원 업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제는 남북이산가족들의 애환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손만 놓고 있을 수 없다. 정부와 관련자들이 직접 나서 필요를 채워주고, 불필요한 요소는 제거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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