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람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왜 노무현의 죽음을 지금까지 아파하고, 문재인에 열광하는가?”
누가 사람인가?
이석삼 언론인, 『기자님 기자새끼』 저자
“퇴임한 노무현의 동영상에는 당신이 실수해서 우는 어린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음료수를 따라주면서 화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취임 1년도 안 된 문재인에게서는 아픈 사람들을 껴안고 우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를 본 국민은 ‘어, 대통령도 나를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해주네?’ 하며 감동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우리 국민은 그동안 권력자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2018년 3월 22일 오후. 법원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서류만으로 진행하던 그 시간, 우리들은 논현동 MB 자택에 다시 섰다.
‘감방 가기 딱 좋은 날’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올라간 나는 잠시 후 선·후배 동료들이 ‘MB 구속’, ‘재산 환수’ 등의 구호를 적은 현수막을 다시 바꿔 잡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동안 깊은 회한에 잠겼다.
가깝게는 지난 겨울, 이 골목에서 체감 온도 영하 20도의 강추위에 장갑도 안 끼고 ‘MB 구속’ 피켓을 들었던 어린 아이, 그리고 MB 정권 시절 ‘우리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죽어간 용산 철거민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특히 쌍용자동차 해고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해고를 겪고 마주앉아 있었던 까닭에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던 터라 마음은 더욱 절절했다.
‘사람이 아닌 사람’과 싸우는 시대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이명박을 내치자’는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내가 존경하는, 우리 교단의 강희남 목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보름도 안 돼 결단을 내린 강 목사는 아마도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민주 정부가 10년 동안 쌓은 민주주의와 남북 화해 분위기가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것을 이명박 집권 2년차에 예상하고 확신한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9년의 시간이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지금 ‘진보와 보수’, ‘정의와 불의’가 싸우는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아닌 사람’과 싸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글에서 ‘사람’이라 표현한 사람은 생물학적인 사람을 말한다.
‘그들’이 보기에 그들과 싸운 나 같은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리라. 용산 철거민, 쌍용차 해고자도 그들이 보기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의 가는 길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말한 MB에게 그들은 단지 소모품이거나, 대(大)를 위해 당연히 희생해야 할 하찮은 소(小)였을 뿐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노무현의 죽음을 지금까지 아파하고, 문재인에 열광하는가? 그 이유는 대단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다. 사람인 노무현, 문재인이 허허벌판에 이름 모를 평범한 잡초(민초)같은 국민을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대했고,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의 의미
퇴임한 노무현의 동영상에는 당신이 실수해서 우는 어린 아이에게 사과를 하고 음료수를 따라주면서 화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취임 1년도 안 된 문재인에게서는 아픈 사람들을 껴안고 우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를 본 국민은 ‘어, 대통령도 나를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해주네?’ 하며 감동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우리 국민은 그동안 권력자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MB 수사 과정에서 MB 측근이 많이 배신했다고 한다. 배신을 논하기 이전에 MB는 자신의 몸종과도 같은 측근을 사람으로 취급을 했을까. MB는 측근을 만나는 순간부터 자신의 입신영달(立身榮達)을 위해 희생해야 할 소모품 정도로 여기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 측근은 지금에 이르러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 것은 아닐까.
“누가 사람인가?”
MB는 마지막 남긴 글에서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그래도’라는 표현이 마치 자신의 기도가 국가와 국민에게 ‘은전(恩典)’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내게 비춰진 것은 왜일까.
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기본은 ‘회개’라고 생각한다. 구치소에서 그동안 잘 흘려보지 않은 눈물을 흘리며 진정으로 회개기도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기본조차 못하고서야 어찌 국가와 국민에게 사죄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나 스스로에게, 또 여당과 야당을 구별할 것 없이, 권력을 가진 자에게 묻는다.
“누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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