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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홍의 포르투갈 이야기 03

무심코 보던 TV뉴스 화면에서 그 큰 무역센터건물이 민간 여객기가 가서 부딪치자 무슨 장난감처럼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자 나는 잠시 멍하고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문제보다 그 여객기를 몰고 건물에 부딪쳐 자살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중동과 미국의 현대사에서 답을 찾아보려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마침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해 그 덕분에 여러 정보를 얻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9.11 테러범들에 대한 궁금증은 중동과 미국의 현대사 자료들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까고 또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껍질처럼 중동의 현대사는 오래 전에 영국이 중동 지역에 뿌려놓은 업보들과도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2015년인 지금 미국이 최신 무기와 장비를 가지고도 10년이 지나도록 아프가니스탄서 쉽게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첨단 무기를 가진 강대국이 구식 무기를 가진 약소국을 쉽게 이기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험들은 이미 피터 홉커크의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책에 나오듯이, 19세기를 전후해서 영국이 같은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었던 것이다.

‘그레이트 게임’이란 당시 영국이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남진을 막을 목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배권을 쟁탈하기 위해, 약 한 세기 동안 러시아와 벌인 경쟁을 말한다.

브레진스키가 <거대한 체스판>에서 유라시아대륙 전체를 장기판처럼 보고 공산세력을 포위 압박하는 전략을 이야기 하는데 ‘그레이트 게임’도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되겠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그 후 20세기에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보는 것처럼 영국이 중동 사막에서 정치 공작을 벌여 자신들의 국익을 추구한 결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싹트게 되었다.

그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영국과 미국이 뿌려놓은 씨앗들이 오늘날 서방과 중동,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분쟁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9.11테러도 그런 오래 전의 일들과 연관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이렇게 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역사의 줄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당시 조선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나오기 마련인데, 그런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면 한국 사람인 내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영국이 러시아와 벌인 그레이트 게임과 관련해, 조선에서는 거문도 사건이 일어난다.

러시아란 나라는 유라시아의 동서 양쪽에 땅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영국이 19세기에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추진한 정책은 중앙아시아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극동의 조선 땅에서도 펼쳐졌다.

영국 해군은 1885년에 러시아가 남하하는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고 군사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거문도 사건이다.

거문도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남서쪽 바다에 있는데 해상 교통의 요지다. 지금도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배들이 거문도 앞 바다를 지나간다.

당시 영국 해군은 러시아가 태평양 쪽에서 남하할 수 있는 루트의 길목에 위치한 거문도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보고 1845년 7월에 거문도에 도착해 이 섬의 항구를 자신들의 해군장관 이름을 딴 해밀튼항이라고 불렀다.

당시 러시아의 남진정책은 흑해, 아프가니스탄, 한반도의 3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국은 한편으로는 러시아와 협상을 추진하고 또 한편으로는 동양함대를 극동으로 보내 거문도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한반도 내의 사건들만 기계적으로 알아서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항상 우리를 둘러싼 주변 세계의 움직임과 연동해 역사를 봐야 한다. 국사와 세계사란 분류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에 대해 알아야 한다. 특히 나랏일을 하고 녹봉을 받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지식이다.

조선으로서는 1885년에 거문도 사건으로 불의의 급습을 당했으나 영국 해군에 대항할 수 있는 군사력이 없으니 뚜렷이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장보고도 이순신도 없고 12척의 전함은커녕 1척의 제대로 된 군함도 없는 조선에 무슨 대책이 있었겠는가?

조일전쟁 때는 유성룡이라도 있었지만, 거문도 사건 당시 조선의 국방 태세는 조일전쟁 직전보다도 못했다. 결국 외무대신 김윤식이 조선 주재 각국 공사관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영국은 거문도사건이 일어난 지 16년 후에 극동에서 또 다른 조치를 취했다. 영국 정부는 동양에서 가장 쓸 만한 군사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일본을 러시아의 남진 저지정책에 이용하기 위해 1902년 1월 30일 영일동맹을 체결했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이 1900년 3월에 러시아와 ‘조러 거제도 비밀협약’을 체결해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이자 영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영일동맹을 체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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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홍
1980년대 현대건설에서 근무했다.
90년대 말에는 학생들에게 영문법을 가르쳤다.
이후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일을 10여 년째 해오고 있다.
‘김주홍의 포르투갈 이야기’ 시리즈는 ‘조선의 멸망’이라는 큰 주제의 집을 짓기 위한 첫걸음이다.
김주홍 선생은 ‘주공’이라는 닉네임으로 네이버에서 오랫동안 역사에 대한 글을 써왔다. 특히 세계사 전반을 아우르는 글읽기와 글쓰기, 생각하기 등을 통해 세상을 보다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About 김주홍 (5 Articles)
1980년대 현대건설에서 근무했다. 90년대 말에는 학생들에게 영문법을 가르쳤다. 이후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자료를 읽고 정리하는 일을 10여 년째 해오고 있다. ‘김주홍의 포르투갈 이야기’ 시리즈는 ‘조선의 멸망’이라는 큰 주제의 집을 짓기 위한 첫걸음이다. 김주홍 선생은 ‘주공’이라는 닉네임으로 네이버에서 오랫동안 역사에 대한 글을 써왔다. 특히 세계사 전반을 아우르는 글읽기와 글쓰기, 생각하기 등을 통해 세상을 보다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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