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매화나무를 도끼로 찍어내는가?
“아전이란 작자가 말이야, 이제 세금을 걷어 들일 게 없으니까 매화나무에 세금을 매겨 버린 거야. 낼 세금이 없으니 방법이 없지 않나, 세금을 안 내려면 매화나무를 베어버릴 수밖에…”
「작매부(斫梅賦)」를 읽다.
‘작매부’는 매화나무를 도끼로 찍어 잘라내는 노래라는 뜻이다.
소설가인 박덕규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한국국학진흥원 웹진인 『담(談)』 14호(2015.04)에 쓴 ‘흔적 없는 시인’이라는 글에서 처음 접했다.
‘작매부’는 어무적(魚無迹)이라는 시인의 작품인데, 관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들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어무적의 류민탄(流民嘆, 떠돌이 백성들의 탄식)을 인용하며 밝힌 바에 따르면 어무적은 연산군 때 시인이다. 사직(司直)을 지낸 어효량(魚孝良)과 천비(賤婢)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과거 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 하지만 재주가 뛰어나서 후에 천민 신분을 벗고 ‘율려습독관(律呂習讀官)’이라는 말직을 지냈다.
‘작매부’는 당황함이나 황당함에 직면한 백성의 처지를 담고 있다. 매화나무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세금을 내라는 관리의 못된 행동과 이로 인해 화가 치밀어 매화나무를 도끼로 벨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아전이란 작자가 말이야, 이제 세금을 걷어 들일 게 없으니까 매화나무에 세금을 매겨 버린 거야. 낼 세금이 없으니 방법이 없지 않나, 세금을 안 내려면 매화나무를 베어버릴 수밖에…”
박덕규 교수가 글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어무적은 분노와 한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율려습독관이라는 말단 관직이었지만 임금인 연산군에게 백성이 겪는 어려움을 상소로 고해 올렸다가 관아에 끌려가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는 설명 부분에서는 ‘읽는 이’도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한다.
더구나 혼쭐이 난 후로는 글을 쓰는 일을 참았으나 나무에 세금을 부과하는 관리의 못된 짓을 보고 참지 못해 ‘작매부’를 썼으니 당시 백성의 삶,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작품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어무적이 올린 상소에 대한 내용은 역사실록 중 『연산군일기』(연산 40권, 1501)를 보면 ‘율려습독관 어무적이 나라의 근본을 회복하는 등의 제안을 상소했으나 회보하지 않다’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웹사이트에 있는 어무적의 상소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매부’는 또 고려와 조선에서 그랬듯이 글, 그림, 노래, 공연 등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변신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근대와 현대, 특히 최근 들어 인기 많은 작품이나 노래, 공연 등이 각색을 거쳐 새로 태어나는 것과 닮았다.
박덕규 교수는 ‘작매부’ 등 어무적의 대표작은 허균이 엮은 책 등 몇 곳에 실려 오늘까지 전해지며, ‘작매부’는 상상력을 더한 픽션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래는 박덕규 교수가 ‘흔적 없는 시인’에 한글로 옮긴 ‘작매부’ 전문(全文)이다.
세상에 향기가 나는 관리는 없다
뱀이나 호랑이 같은 잔인한 법만 휘두른다
참혹함은 이미 숨어 사는 꿩에 이르고
정치는 뿔 없는 양들에게 더욱 참혹하다
백성이 한 사발 밥에 배부르면
관리는 군침을 흘리며 분노한다
백성이 한 번 솜옷으로 따뜻하면
아전은 팔을 걷어붙이고 살을 벗긴다
내 향기는 들판에 굶어죽은 영혼을 덮고
꽃잎은 떠도는 백성의 백골에 뿌려진다
지금 눈앞이 이러한데 초췌함을 읊은들 무엇하리
어찌 하나,
농부들이 도끼날에 치욕을 당하고 있구나
바람도 매섭고 달빛도 괴로우니
누가 단장의 영혼을 불러주나
황금 같은 열매는 아전의 창고에 흘러넘친다
낱알의 수를 늘려 곱절로 징수하니
반항하면 바로 채찍으로 얻어맞는다
아내는 원망하여 낮에 울부짖고
아이들은 울며 밤을 지새운다
이것이 모두 매실 때문이라니,
매실이 아주 좋은 물건이 되었구나
남산에 가죽나무 북산에 상수리나무
관원도 아전도 돌아보지 않는구나
매화는 도리어 없는 것만도 못하니
어찌 잘라버리지 않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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