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하나에 무너지다
정치가 혼탁하고 어른들이 부끄러움을 몰라서 아이들까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이 짙푸른 가을에 어른들의 자리는 없다.
시끄러운 정국이다.
정치가 혼탁하고 어른들이 부끄러움을 몰라서 아이들까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이 짙푸른 가을에 어른들의 자리는 없다.
무엇인가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변화는 시간이 필요하고 적기에 스스로 변하게 되어있다. 낙엽은 바람이 분다고 하릴없이 땅바닥에 주저앉는 것은 아니듯이, 시기가 되어야 바람도 제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월의 마지막에도 덥다고 생각하는 사람, 춥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다수가 춥다고 하여도 소수의 사람은 덥다고 느끼는 것을 탓하기에는 그저 소모적일 따름이다.
가만히,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노인들이 겪었던 일제시대와 전쟁은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세월이었고, 나와 같은 중년들은 유신과 독재시대라는 비정상적인 세월을 힘겹게 파도를 헤치고 살아내었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도 인간의 영혼은 맑고, 정신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국정화 교과서로 배운다고 한들 유시민, 진중권, 노회찬 같은 이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반드시 효과가 있다고는 할 수 없고, 그것으로 배운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제2의 일제시대를 산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한 사회에서 어떤 역경이 닥치면 모든 지성과 역량이 총동원이 되어 그것에 대한 면역력과 방어기제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우린 현재 그것들을 관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야당을, 시민단체를, 지식인을…
격렬한 반대나 싸움도 중요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점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섬세한 감각과 이성들이 이 혼란한 와중에서 숙성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낙엽이 툭 하고 발밑에 떨어지면 고개 들어 꽉 차오른 달을 보게 된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정서를 낙엽 하나가 떨어져 나의 시선을 달을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깊은 밤, 아니 새벽이 끝나가는 시간에 혼절하기 일보 직전의 정서를 마주본다.
나는 살아있지만 혼미한 상태로 가볍지 않는 새벽을 견디고 있다. 아름다웠던 과거와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동시에 생각한다.
바람은 지나가고 나는 혼자 헛헛한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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