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와 나의 세상 통과의례
“해답은 누구에게나 질문하는 만큼 오고, 해방은 누구나 추구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
정신대(위안부)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것은 대학 1학년 때다.
당시 내가 요구한(생각한) 진실의 수준은, 그 정도의 야만을 고작 국가 대 국가 간의 사죄 및 보상 과제로 다루거나 또는 힘의 논리라는 괴물을 사회적 합의로 중재하려는 논의 정도에서 충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족의 비극에 대한 충격은 내게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를 통장 자동이체로 후원하게 했으나, 어떤 해결책도 내게는 미봉책이었다.
정신대를 성범죄가 아니라 전쟁범죄로, ‘개별 좆들의 범죄’가 아니라 ‘국가적 집단의 범죄’로 보는 시각 물론 타당하나 그것으로는 언제까지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일면이다. 같은 패턴의 성범죄는 한국 군인들에 의해 베트남에서 악랄함의 극치로 자행된 건만 있지 않다.
남성들의 정액이 여성들의 성기에 폭력에 의해 뿌려지는 ‘전쟁 통과의례’는, 전 대륙 모든 전쟁의 시작과 중간에서 끝까지, 총알이 남자 병사들의 심장을 뚫는 횟수보다도 많이 일어난다. 이런 일들이, 이성을 잃게 하는 환경으로 미치광이가 되고 말기에 전시에만 일어나는 것이라면 희망은 몇 가닥은 되리라.
그러나 진실은 적나라해서, 인간성에 반하는 성범죄와 성매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 안에서 일상으로 발생한다는 엄연한 사실에서, 나의 뇌와 눈과 가슴은 캄캄해졌다.
이제는 독립된 국가인 이 시대 이 영토 안에서도, 한편에서는 성노예로서의 삶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있을 때 버젓이 백주에 성매매를 하도록 성(性) 소비자들이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눈먼 성욕이 이 모든 문제에 동력으로 인간 안에 넘실거린다는 것이고, 그것은 전쟁이나 정신대 같은 정치사회적 이슈 이전에 인간이라고 하는 종 모두의 집합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였다.
인간 종은, 그중에서도 남자 성은, 왜 이토록 짐승성에 함몰되고 마는 취약한 성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이 ‘영적 비정상’과 ‘생물학적 변태성’은 대체 어떤 근인에서 기인하는가!
이것은 내 청춘을 강타한 가장 고통스런 문제 제기로, 당시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공범 국가와 전 세계가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액을 몇 배로 지급하는 것으로 매듭을 짓고, 전 세계 남성이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고백하고 반성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였다.
종교가 내놓는 ‘무조건 원죄’나 ‘무작정 사탄’의 개념은 일별 거리도 아니고, 진화론과 자연 도태와 적자생존 외에 현대 생물학의 해부학적 이론 역시 내게 답을 주지 못하기로는 원죄설과 지옥설과 같은 수준이다.
나는, 인간은 왜 이토록 추락한 상태로 떨어져 있는가에 대해 낱낱의 해부학적 설명과, 소생으로는 어떤 길이 있는가에 대해, 영혼·정신·감정·신체의 운명을 포괄하는 창조와 구원 차원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었으니…….
이 질문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내 수명은 청춘을 넘기지 못 할 것이었다. 마침내, ‘자유의 가르침’에서 방출하는 인간의 기원과 유전자의 훼손과 가려진 인간의 역사와 정치와 경제를 조종하는 아젠다의 책략과 술수, 그리고 그 모든 상처와 변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은 자신의 생득적 권한으로 제공 받은 지식과 진리에 접속돼,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기법으로 스스로를 치유해갈 수 있음을 발견하고 적용하면서, 나는 살 수 있었다.
우주는 창조의 역학이기에 공평하고, 창조의 질료는 사랑이기에 자애로우며 그런 만큼 응답해오는 생물이다. 해답은 누구에게나 질문하는 만큼 오고, 해방은 누구나 추구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
Leave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