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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음’과 ‘이름 붙일 수 없음’

사뮈엘 베케트, “해봤다. 실패했다. 괜찮다. 또 시도해라. 또 실패해라. 더 낫게 실패해라”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 나오는 글을 읽었다. 글을 읽는 순간 ‘나아가야, 나아갈 수, 나아갈’이라는 세 마디가 특별한 이유 없이 ‘과거·현재·미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위키백과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부유한 프로테스탄트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3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전공했고, 졸업 후 벨파스트에서 잠깐 교편 생활을 했다. 1928년에는 파리고등사범학교 강사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게 된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던 끝에 1937년에 파리에 정착했고,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종전(終戰)까지 나치를 피해 은거,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다수의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했다. 1953년 1월 파리에 있는 소극장 ‘테아트르 드 바빌론’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전적으로 예술에 전념하고자 했기 때문에 라디오나 텔레비전 출연, 언론 인터뷰 등 모든 사람의 이목을 차단했다. 1969년 건강 악화로 튀니지에서 요양하던 중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 때에도 수상식에서 대중연설을 하지 않으려고 수상식 참가를 비롯한 일체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1989년 부인이 사망한 지 5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사진=위키백과

베케트의 작품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소설 3부작 『몰로이(Molloy)』, 『말론 죽다(Malone Dies)』, 『이름 붙일 수 없는 자(The Unnamable)』 중 하나며 마지막에 쓴 작품이다. 1952년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출간한 후 1953년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출간했다.

‘이름 없음’과 ‘이름 붙일 수 없음’

-베케트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과거·현재·미래를 읽다

북클럽 오리진’에서 받은 편지를 읽다가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 나오는 글을 읽었다. 글을 읽는 순간 ‘나아가야, 나아갈 수, 나아갈’이라는 세 마디가 특별한 이유 없이 ‘과거·현재·미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다.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You must go on.
I can’t go on.
I’ll go on.

베케트의 작품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소설 3부작 『몰로이(Molloy)』, 『말론 죽다(Malone Dies)』, 『이름 붙일 수 없는 자(The Unnamable)』 중 하나며 마지막에 쓴 작품이다. 1952년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출간한 후 1953년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출간했다.

3부작의 첫 소설 『몰로이』에서는 1부에서 몰로이가 등장하고 2부에서 모랑이 등장한다. 두 번째 소설 『말론 죽다』에서 말론이 나온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이름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없다.

세 소설은 다른 것 같으면서 닮은 면이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똑같이 쓰거나 이름이 없어지는 형태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시선으로 보면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라는 제목은 3부작의 결론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또 작가가 스스로 번역했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베케트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20세부터 프랑스를 오가며 영어와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다. 프랑스어로 쓰면 영어로 바꾸고, 영어로 쓴 것은 프랑스어로 바꿨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또한 프랑스어로 쓴 후 영어로 직접 옮겼다.

그런데 베케트는 원작과 번역작을 ‘똑같이’ 쓰지 않았다. 스스로 번역하면서 작가 스스로 영어와 프랑스어, 프랑스어와 영어를 일치하지 않도록 썼다. 같은 작품인데 제목을 다르게 쓰거나 문장 일부를 빼거나 의미를 다르게 썼다. 작가 스스로 ‘다르게 쓰기’를 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쓰기’라고 말해야 좋을 것 같다.

아울러 ‘더 낫게 실패하라’는 베케트의 말을 다시 베케트에게 해줘도 좋을 것 같다.

“해봤다. 실패했다. 괜찮다. 또 시도해라. 또 실패해라. 더 낫게 실패해라.”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베케트, 『Worstward Ho』(198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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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stward Ho』(1983)
“All of old. Nothing else ever.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Enough. Sudden enough. Sudden all far. No move and sudden all far. All least. Three pins. One pinhole. In dimmost dim. Vasts apart. At bounds of boundless void. Whence no farther. Best worse no farther. Nohow less. Nohow worse. Nohow naught. Nohow on.”

※ 『Worstward Ho』 is a prose piece by Samuel Beckett. Its title is a parody of Charles Kingsley’s 『Westward Ho!

About 김종영™ (914 Articles)
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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