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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국주의 유산 벗어나야”

"조선은 출판을 국가가 독점했지만, 일본은 대중화 시대를 맞았다. 우리는 오로지 한자를 표준으로 삼아 과거에 매달려 있었지만, 일본은 가나를 공문서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일본은 도자기 기술을 우리한테 배워 도자기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했다. 우리는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만들었지만, 활성화하고 대중화하는 데 실패했다. ‘선비 사회’를 위한 언어 정책과 우민화 정책이 낳은 결과다. 한자를 고집하는 한 출판의 대중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 "

김영환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글이 제국주의 유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경성제대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면서 ‘과학적’ 국어학은 제국주의 유산으로 계속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사상사(思想史)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주자학(朱子學)이라 부르는 성리학(性理學)을 생각해봐야 한다. 성리학은 중화사상(中華思想, Sinocentrism)이고 (화이분별(華夷分別) 또는 화이분별론(華夷分別論)에 따라 우리를 오랑캐로 본다. 오랑캐를 면하려면 중국 문화를 모방해야 한다. 즉, 모화(慕華)가 문화의 이념이었다. 글자에서도 중국을 따라야 한다. 독자적인 문자는 오랑캐의 상징이다. (우리말을 차별하고 천대하는 구조화를 낳게 한 것이다.) 이는 한글 반대파인 최만리 등이 상소문에서 ‘중국과 같은 글자를 써야 한다’는 뜻으로 쓴 ‘동문(同文)’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일본, 여진, 서하(西夏), 토번(吐蕃) 등은 고유 문자를 사용했는데 최만리는 이를 두고 문화 민족인 우리는 이들과 같을 수 없다고 했다. 한글 반대파 입장에서는 한자를 쓰지 않으니 모두 오랑캐다. 그런데 우리가 왜 오랑캐 문자(언어)를 만들어 쓰려 하느냐는 게 이들의 논리다. 그러면서 여자, 어린 아이가 보는 게 언문(言文)이라고 폄하했다. 반면 한문은 성현의 권위 있는 문자(언어)로 인식했다. 중세 유럽의 공동 언어가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듯이 한문은 공통어이고 신성한 문자라고 생각했다. 한문이 언어의 뿌리이고 독점적인 언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한글을 창제했지만 공문서에 한글은 쓰지 않고 오로지 한자만 사용했다. 한글을 외면했다. 사진=구글

“한글, 제국주의 유산에서 벗어나야”

“경성제대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면서 ‘과학적’ 국어학은 제국주의 유산으로 계속 남아 있다.”

김영환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이희승이 대표하는 ‘과학적’ 국어학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김 교수는 “한글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 한문 숭상이 한글과 역사의 실패를 낳았고, 한글에 제국주의 유산이 남아 있게 했다”고 주장한다. 무슨 말인가. 이 주장은 자주 보고 들었던 말, ‘한글을 쓰자’는 간단한 논리나 주장을 훌쩍 뛰어넘는 말이다. 다른 면, 즉 한글과 한국어를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8월 26일,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부산광역시 남구 대연3동 용소로 45)에서 김영환 교수를 만나 한글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나눈 이야기는 국어학자 이희승에 대한 비판, 고대 한국어의 통일성에 관한 언어의 뿌리와 이기문 서울대 교수에 대한 비판, ‘뜻’ 중심으로 낱말 새로 짓기 등이다. 이날 나눈 이야기를 묶으면 ‘한글이 제국주의 유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뼈대로 간추릴 수 있다.

한글은 제국주의 유산과 투쟁 중인가?

사람과사회 한글이 제국주의 유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한글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영환 교수 한글을 생각하면 한자와의 관계에서 보면, 중화사상(中華思想)과 사대주의, 한글철학 등 식민사관을 떠올릴 수 있다. 한글을 표현하는 한국어도 비슷하다. 우리는 한글을 훌륭하다고 말하면서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무척 약하다. 한글만 쓰자고 하면 배타적 민족주의라고 하면서 아직도 한자를 섞어 쓰자는 국어학자도 많다. 우리말과 한글은 창제 당시 한문,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어, 해방 후에는 영어에 치였다. 이제는 제대로 대접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리말글을 우리 스스로 이렇게 대해도 좋은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과사회 한글이 탄생할 때부터 지금까지 수난을 겪고 있다는 의미인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김영환 교수 예나 지금이나 상황이 비슷하다. 우리 지식인은 한문, 일본어, 영어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한글과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쓰는 것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같은 인식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과사회 그렇다면 한글, 한국어 경시 경향의 근원이나 배경은 무엇으로 봐야 하나?

김영환 교수 사상사(思想史)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주자학(朱子學)이라 부르는 성리학(性理學)을 생각해봐야 한다. 성리학은 중화사상(中華思想, Sinocentrism)이고 화이분별론(華夷分別論)에 따라 우리를 오랑캐로 본다. 오랑캐를 면하려면 중국 문화를 모방해야 한다. 즉, 모화(慕華)가 문화의 이념이었다. 글자에서도 중국을 따라야 한다. 독자적인 문자는 오랑캐의 상징이다. (우리말을 차별하고 천대하는 구조화를 낳게 한 것이다.) 이는 한글 반대파인 최만리 등이 상소문에서 ‘중국과 같은 글자를 써야 한다’는 뜻으로 쓴 ‘동문(同文)’에서도 나타난다. 당시 일본, 여진, 서하(西夏), 토번(吐蕃) 등은 고유 문자를 사용했는데 최만리는 이를 두고 문화 민족인 우리는 이들과 같을 수 없다고 했다. 한글 반대파 입장에서는 한자를 쓰지 않으니 모두 오랑캐다. 그런데 우리가 왜 오랑캐 문자(언어)를 만들어 쓰려 하느냐는 게 이들의 논리다. 그러면서 여자, 어린 아이가 보는 게 언문(諺文)이라고 폄하했다. 반면 한문은 성현의 권위 있는 문자(언어)로 인식했다. 중세 유럽의 공동 언어가 라틴어였던 것처럼 한문은 공통어이고 한자는 신성한 문자라고 생각했다. 한자는 참글자이고 유일한 문자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한글을 창제했지만 공문서에 한글은 쓰지 않고 오로지 한자만 사용했다. 한글을 외면했다.

주자학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외워 과거제를 통해 모범답안을 쓰게 했던 구조다.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는 한글과 달리 한자는 수십 년을 배워야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었다. 사상을 획일화하고 고착화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통제가 가능했다. 이게 바로 주자학이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의 주자학 숭상은 중국보다 훨씬 심했다. 한자로 된 유교 경전을 읽고 과거 답안지에는 한자로 써야 했다.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은 지배 계급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기에 중국과 한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했다. 강력한 ‘중국·한자중심주의’를 통해 중국과 닮았다는 것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이는 모화(慕華), 즉 모화사상(慕華思想)이다. 그래서 조선의 지식인은 ‘작은 중화’를 유지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그럴수록 한글을 경시했다. 사진=구글

“성리학(주자학)이 한글 경시를 낳았다”

사람과사회 한글 경시, 한문 중시 경향이 사라지지 않은 게 성리학 때문이라는 뜻인가?

김영환 교수 물론이다. 주자학 숭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양명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주자학이 독점했기 때문이다.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해서 철저하게 배제했다. 국가가 공인한 이데올로기만 허용하고 그 외의 다른 것은 인정을 하지도 않았고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이는 과거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제는 신분 세습을 부정하는 능력 본위라는 진보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사실상 국가가 인정하는 표준적인 경전 해석을 강요해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는 작동원리(mechanism)였다.

사람과사회 양명학은 주관적 실천 철학에 속한다. 한문과 한글의 구도를 생각할 때 양명학을 철저히 배제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김영환 교수 주자학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외워 과거제를 통해 모범답안을 쓰게 했던 구조다.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는 한글과 달리 한자는 수십 년을 배워야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었다. 사상을 획일화하고 고착화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통제가 가능했다. 이게 바로 주자학이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의 주자학 숭상은 중국보다 훨씬 심했다. 한자로 된 유교 경전을 읽고 과거 답안지에는 한자로 써야 했다.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은 지배 계급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기에 중국과 한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했다. 강력한 ‘중국·한자중심주의’를 통해 중국과 닮았다는 것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이는 모화(慕華), 즉 모화사상(慕華思想)이다. 그래서 조선의 지식인은 ‘작은 중화’를 유지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그럴수록 한글을 경시했다.

사람과사회 한글을 인식하는 이 같은 상황은 지금도 조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나?

김영환 교수 극단성, 획일성, 교조성(敎條性) 측면에서 보면 조선과 지금도 거의 닮았다. 조선과 지금의 한미·한중 관계가 닮았고, 경제력 10위권 규모인데도 전시작전권은 남이 갖고 있다. 분단과 미국식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를 절대시하며 받아들이면서 사상의 획일성이 생겼다. 조금만 달라도 인정하지 않으려던 주자학의 태도인 사문난적과 매우 닮았다. 불교와 양명학이 그랬고 동학이 그랬다. 이 같은 획일화와 교조주의(敎條主義)가 많은 부작용을 계속 낳고 있다.

“변하지 않는 편협함과 획일화에서 벗어나야”

사람과사회 언어와 사회의 관계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김영환 교수 분단 이전에 우리는 ‘동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자주 사용했다. 그런데 분단 후 북한이 ‘동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동무라는 낱말은 사실상 사라지고 없다. 편 가르기가 체질회돼 있어 우리 생각과 말은 여전히 편협하고 획일화됐다. 언어를 잘못 사용하면 편협과 대결을 낳는다.

사람과사회 언어와 사회의 관계, ‘동무’를 예로 든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한문과 한글을 배우고 사용하는 문제도 생각해볼 주제다. 특히 이희승 선생과 서울대, 제국주의 유산 관련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선 한자 문제, 어떤 입장인가?

김영환 교수 한자를 배우지 말자는 게 아니다. 한자어가 많은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불편한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언제 얼마만큼 배워야 하느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글을 비롯해 언어 체계의 특성상 조기 교육 등 시행 시기는 초등학교보다 중학교 이상이면 좋겠다. 교육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현실에 적응하는 것에 많은 가치와 의미를 두면 교육이 인습의 온상이 될 것이다. 교육은 현실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한자를 비롯해 외국어는 학자나 연구자인 경우 확실하게 배워야 한다. 한자를 아느냐, 모르느냐를 따지는 귀족주의나 봉건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밑바탕에 갖고 있는 인식을 생각해야 한다. 한자 문화는 봉건주의와 귀족주의, 우민화 정책 등 부정적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런 것은 없애야 한다는 의미다.

이희승 등이 말한 ‘과학적’ 국어학은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에서 이희승과 이숭녕을 중심으로 서울대로 전달된 국어 연구 경향을 말한다. 유럽의 역사비교언어학, 소쉬르 언어학을 경성제대의 일본인 교수들이 소개한 것이 그 내용이다. 그들은 국어학계의 주류인데, 패권을 쥐고 고대 한국어가 하나임을 부정하고, 최만리를 옹호하면서 일본식 한자 혼용, 말다듬기(국어순화) 반대, 초등학교 한자 교육을 주장했다. 일본을 본떠 국립국어연구원을 만들었고, 주시경과 조선어학회와 대결하면서 한자말 투성이의 『국어대사전』을 조작했다. 그들은 주시경을 따르는 사람들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뿐이어서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이다.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또 조선 왕조를 지배한 극단적 한문 숭상과 모화사상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눈을 뜨지 못했다. (결국 한글과 한국어를 역사적으로 볼 때) 이희승의 ‘과학적’ 국어학이 경성제대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면서 ‘제국주의 유산’이 되었다. 사실상 모화사상에 억눌려 있던 한글문화도 계속 억눌리게 되었다. 억압 때문에 억눌려 있던, 숨어 있던 모화사상이 근대 이후 서울대를 매개로 성장한 것이다. 중화사상도 일종의 문화적 제국주의다. 사진=Pixabay

“이희승 국어학이 서울대서 ‘제국주의 유산’ 됐다”

사람과사회 이희승의 국어학은 친일국어학이라며 제국주의 유산이라고 비판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김영환 교수 제국주의 유산 문제는 이희승(李熙昇)의 ‘과학적’ 국어학과 관련이 있다. 이희승은 주시경(周時經)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와 대립 관계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못 알고 있다.

사람과사회 대립 관계, 무슨 뜻인가?

이희승 등이 말한 ‘과학적’ 국어학은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에서 이희승과 이숭녕을 중심으로 서울대로 전달된 국어 연구 경향을 말한다. 유럽의 역사비교언어학, 소쉬르 언어학을 경성제대의 일본인 교수들이 소개한 것이 그 내용이다. 그들은 국어학계의 주류인데, 패권을 쥐고 고대 한국어가 하나임을 부정하고, 최만리를 옹호하면서 일본식 한자 혼용, 말다듬기(국어순화) 반대, 초등학교 한자 교육을 주장했다. 일본을 본떠 국립국어연구원을 만들었고, 주시경과 조선어학회와 대결하면서 한자말 투성이의 『국어대사전』을 조작했다. 그들은 주시경을 따르는 사람들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할 뿐이어서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이다.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또 조선 왕조를 지배한 극단적 한문 숭상과 모화사상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눈을 뜨지 못했다. (결국 한글과 한국어를 역사적으로 볼 때) 이희승의 ‘과학적’ 국어학이 경성제대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면서 ‘제국주의 유산’이 되었다. 사실상 모화사상에 억눌려 있던 한글문화도 계속 억눌리게 되었다. 억압 때문에 억눌려 있던, 숨어 있던 모화사상이 근대 이후 서울대를 매개로 성장한 것이다. 중화사상도 일종의 문화적 제국주의다.

사람과사회 조금 더 설명해주면 좋겠다.

김영환 교수 이희승이 말하는 ‘과학적’ 국어학은 비과학적이고 독단적 주장이다. 한자혼용론(漢字混用論)은 경성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식민지 유산인 만큼 청산해야 했지만 지금도 남아 있다. 그들이 아직도 국어학계의 주류다. 이희승의 국어학이 서울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자 섞어 쓰기에 들어 있는 모화 이데올로기와 상류층 중심의 정보 독점 욕망을 바로 보아야 한다. 한자 폐지 문제를 비롯해 언어 문제는 중요하다. 자주성, 친일 청산, 전통 문화, (초등 교육,) 분단과 통일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에 걸치는 (국어학계를 훌쩍 뛰어넘는) 큰 주제의 문제다.

“우수한 한글·목판기술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사람과사회 한글 문화가 억압을 당했다는 것인데, 그럼 이희승의 과학적 국어학은 언어와 사회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하나?

김영환 교수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출판물을 예로 들겠다. 우리 출판 문화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후진적이다. 서점이 나타나지 않았고 개화기 이전에는 책방에서 방각본(坊刻本)이 유통되는 정도였다. ‘책쾌’(冊儈)라고 부르는 방문 판매가 잦았던 때인데, 당시 일본은 출판이 성황을 이루던 시기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민화 정책이 그대로 먹혀들었다. 반면 일본은 우민화가 없었다. 조선은 출판을 국가가 독점했지만, 일본은 대중화 시대를 맞았다. 우리는 오로지 한자를 표준으로 삼아 과거에 매달려 있었지만, 일본은 가나를 공문서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일본은 도자기 기술을 우리한테 배워 도자기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했다. 우리는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만들었지만, 활성화하고 대중화하는 데 실패했다. ‘선비 사회’를 위한 언어 정책과 우민화 정책이 낳은 결과다. 한자를 고집하는 한 출판의 대중화를 기대할 수 없었다. ※ 방각본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인 영조·정조 시대인 17세기에 상업적 이윤을 목표로 출간한 서적(소설)을 말하며, 한글 대중화에 기여했다. 일반 민중의 문학적 욕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형태로 군담소설이나 애정소설이 많다.

사람과사회 출판물 관련 이야기는 책과 지식의 역사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많은 것 같다. 끝으로 하실 말씀은?  

김영환 교수 무엇보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무심하면 안 된다. 친일파 청산 실패는 정치나 경제의 영역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냉정하게 따지고 편견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주시경과 조선어학회가 준 전통은 값진 것이다. 다시 주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박이말을 사용하는 것부터 더 큰 것에 이르기까지 생각이나 인식을 바꿀 필요가 크다. 중국이나 일본은 지명(地名), 인명(人名), 사명(社名) 등에 토박이말을 많이 쓴다. 한자를 써도 훈독이 많다. 낱말에 있는 뜻을 그대로 사용하고 발음도 그대로 쓰는 예가 많은데, 그 같은 인식과 태도가 문화로 정착돼 있다. 우리는 외국어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오늘 비판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감정 때문이 아니다. 있는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다.

사람과사회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김영환
부경대 인문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 언론사, 언어철학을 담당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글철학』(한국학술정보. 2012)이 있다. 한겨레, 경향신문, 교수신문 등 신문과 잡지에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겨레 역사가 실패와 좌절을 겪는 뿌리를 한글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 한문 숭상에서 찾고 있다(으려 애쓰고 있다.) ‘과학적’ 국어학이 경성제대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면서 ‘제국주의 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About 김종영™ (915 Articles)
사람과사회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글은 사람과 사회며, 좋은 비판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좋아한다. weeklypeo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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