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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거부’가 능사인가

"‘국론분열’과 ‘남남갈등’을 운운하는 것도 정부가 여전히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근거로 악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대화’ 중심의 대북정책이 ‘대결’ 위주의 대북정책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정부는 반성은 고사하고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으로 비난하려고 한다."

남북대화와 관계 개선은 정부가 그토록 중시하는 북핵 대응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북한의 핵보유 동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한의 흡수통일 저지이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과 신뢰 구축은 비핵화 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스스로 모든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정부는 남북대화를 통해 비핵화 문제를 거론할 수도 있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더라도, 우리의 우려와 요구를 전달하고 북한의 입장을 청취하는 것 자체가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북한이 ‘대화 모드’로 전환하려고 한다. 불과 사흘 사이에 국방위원회 공개서한(20일),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담화(20일), 인민무력부 대남 통지문(2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 담화(22일) 등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대화 모드’로 전환하려고 한다. 불과 사흘 사이에 국방위원회 공개서한(20일),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담화(20일), 인민무력부 대남 통지문(2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 담화(22일) 등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잇따른 대화 제의, 거부가 능사인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프레시안 편집위원

2016.05.25

북한이 ‘대화 모드’로 전환하려고 한다. 불과 사흘 사이에 국방위원회 공개서한(20일),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담화(20일), 인민무력부 대남 통지문(2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 담화(22일) 등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제7차 당 대회 중앙위원회 사업 총화 보고에서 남북 군사회담 개최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일정 부분 예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대남 관련 기구들과 인사들이 총동원되어 남북대화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의 대화 제의는 군사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군사분계선과 서해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논의하자며, 이를 위해 5월 말에서 6월 초에 남북군사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했다. 또한 군사적 신뢰구축에 진전이 있으면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며 상호 관심사에 대한 “포괄적인 협의”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핵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남측에서 대화 제의에 호응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핵포기와 같은 부당하기 그지없는 전제조건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전제조건을 둘러싼 갈등

바로 이 지점에서 박근혜 정부와 김정은 정권의 극단적인 엇갈림이 확인된다. 정부는 북한이 한편으로는 핵보유국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운운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면서 “비핵화 조치를 행동으로 먼저 보여줘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이러한 전제조건은 부당한 것이라며, 비핵화에만 매달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남북 양측의 이견이야 익숙한 일이지만, 최근 그 간격이 더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 4차 핵실험과 여러 차례의 로켓 발사 시험을 강행했고, 당 규약에는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그만큼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에 맞서 남측 정부는 강력한 대북 제재를 가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최우선되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6자회담이나 평화협정 회담 등 ‘다자’ 회담 관련해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남북’ 대화마저도 비핵화 문제에 철저히 종속시키고 있다. 남북한의 신뢰구축을 통해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허언이었거나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핵문제만 있는 게 아닐진대

북핵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핵‘만’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 이 문제는 장기간의 안목을 가지고 접근할 수밖에 없다. 반면 남북관계에는 북핵 말고도 풀어야 할 숙제가 넘쳐난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품고 있던 비무장지대(DMZ)는 어느 새 남북 양측이 뿌려대는 삐라와 양측에서 틀어대는 확성기로 인해 시끄럽고도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고 있다.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 상태는 언제든 우발적 충돌과 확전을 야기할 수 있다. 폐쇄 100일이 지난 개성공단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도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노령의 이산가족들도 한을 풀지 못하고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통일 대박’을 이룰 수 있다던 남북 경협의 꿈도 ‘분단 쪽박’의 악몽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신성장 동력도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대화 제의가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를 와해하고 우리 내부 국론분열을 조장할 목적”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는 제재와 압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긴장 완화와 대화를 촉구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이 계속 남북대화를 거부하면 오히려 대북 공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대북 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으면서도 대화를 촉구해온 중국과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론분열’과 ‘남남갈등’을 운운하는 것도 정부가 여전히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근거로 악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대화’ 중심의 대북정책이 ‘대결’ 위주의 대북정책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정부는 반성은 고사하고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으로 비난하려고 한다.

남북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

남북대화와 관계 개선은 정부가 그토록 중시하는 북핵 대응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북한의 핵보유 동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남한의 흡수통일 저지이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과 신뢰 구축은 비핵화 환경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스스로 모든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정부는 남북대화를 통해 비핵화 문제를 거론할 수도 있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더라도, 우리의 우려와 요구를 전달하고 북한의 입장을 청취하는 것 자체가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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