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남한이 갖고 있는 인식 중 하나는 ‘민주 세력은 북한을 지지하고 있다’는 오해다. 이 오해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그 프레임이 ‘종북 좌파 마법’이다. 이 마법은 그동안 남한 전체에서, 그리고 모든 선거에서 맹위를 떨쳤다. 남한의 민주 세력은 이 마법에서 남한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 다행이 시간이 지난 후 이 마법의 폐해는 많이 줄었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30%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북 좌파 프레임은 민주화와 국가 발전을 크게 방해했고 적폐 세력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북한의 범죄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공범 역할을 한 것과 똑같다.”
[인터뷰] 김상헌 북한인권제3의길 대표
“시대정신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
“북한 인권, 잘못 알고 있다”
“적폐 세력이 반공선전에 북한 인권 악용”
“박정희 반란군 통치 세력은 통일 반대한다”
“‘탈북 동포, 북한 동포’라고 해야 맞다”
“통일 비용 왜곡은 적폐 세력 대표적 범죄”
“햇볕정책으로 개혁·개방 절반 이뤄졌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처럼 가려 한다”
“북한은 세상 보는 눈 어둡다”
“미국 대북 정책은 ‘현상 유지’다”
“북한은 上命下服 잘 안 되는 곳”
“한국 교회는 현실에 무감각하다”
“진보도 보수도 뚜렷한 입장이 없다”
“북한 인권, 국제단체와 함께 해야 한다”
사람과사회 2018년 여름·가을 통권6·7호
김상헌 북한인권제3의길 대표는 인권 활동가다. 1932년 9월 29일 출생했다. 2018년 현재 87세다. 인권 활동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76년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국제사면위원회) 한국 지부에 근무할 때부터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인권 활동은 2018년 현재 21년에 이른다. 인권 활동에 인생을 걸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이유다.
김 대표는 1957년 연세대 사학과(53학번)를 졸업했다. 박정희 반란군 통치 시대이던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걸어온 인권 활동가다. 1957년 영국대사관 등 외국 기관에서 약 17년 동안 근무했다. 이후 1976년부터 약 20년 동안 UN(국제연합) 산하 WFP(세계식량계획, World Food Programme)에서 식량담당관을 맡아 한국,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서 근무했고, 1994년 은퇴했다.
TIME 선정 ‘아시아 영웅’
김 대표는 1976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초대 교육 담당 이사를 맡았는데, 교육 이사 직책은 그가 평생 인권 활동을 하는 계기이자 첫 걸음이 됐다. 특히 1997년부터 중국, 동남아, 구미 등 국제 사회에서 20년 넘게 북한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2003년에는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3년 미국 주간지 TIME이 ‘아시아 영웅’으로 선정했다.
북한 인권을 다룬 책도 출간했다. 『Are They Telling Us the Truth?』(영어·일본어·태국어), 『전거리교화소의 실태』(한국어·영어·일본어), 『북한 지하 교회의 실태』(역서), 『무관심-북한 생체 실험, 인간학대 실태』 등이 있다.
2018년 6월 12일(화) 오전 10시 30분,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날,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성균관대 근처에 있는 이디야커피 혜화동로터리점에서 김 대표를 만나 북한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 대표는 북한 인권에 냉담한 이유와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인터뷰에서 꼭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북한 인권 개선과 북한 인권 침해 청산을 주요 목표로 북한 인권 침해 실태 조사,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운영을 통한 북한 인권 침해 기록 데이터베이스(유) 구축 및 관리, 북한 인권 침해 구제 및 예방, 북한 인권 피해자 보호와 정착 지원 등을 하고 있다.
“북한 인권, 잘못 알고 있다”
김상헌 대표에게 우선 북한 인권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물었다. 그는 몇 년 전 UN이 북한 인권을 인정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4년, UN이 마침내 공인(共認)한 게 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참혹하고 반인륜적인 범죄가 제도적으로, 대규모로, 그리고 지금까지 오랫동안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공인은 남한이나 미국이 관여하지 않고 국제사회가 ‘대법원’과 같은 판결을 한 것과 같다. 북한의 인권 탄압은 이제 진실 여부는 끝난 것이다. 북한 주민은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민족의 비극이다. 그런데 UN이 이를 확인해줬다.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 인권을 잘못 알고 있다.”
김 대표는 이어 북한 인권 관련 책과 자료집을 건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무엇보다 북한 인권이 적폐 세력에 의해 왜곡돼 있고, 그래서 우리 국민은 북한 인권에 냉담하고 잘못 알게 됐다고 밝혔다. 북한 인권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목소리 억양도 조금 높아지기 시작했다.
북한 인권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이른바 ‘보수’라고 부르는 적폐 세력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를 ‘적폐 세력’ 또는 ‘반민주 세력’이라는 강한 낱말로 표현했다. 적폐 세력 때문에 북한 인권을 잘못 알고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적폐 세력이 반공선전에 북한 인권 악용”
“소위 보수라고 하는 ‘적폐 세력’ 때문에 우리는 북한 인권을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 과거 보수 세력, 즉 적폐 세력은 민족적 비극을 정권 유지 수단인 ‘반공 선전’으로 이용했다. 뿐만 아니다. 실질적으로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다. 반면 소위 ‘진보’라고 부르는 ‘민주 세력’은 북한 인권 문제를 반공 선전의 연장으로 인식하거나 남북 화해를 위한 자리에서 북한의 약점인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 때문에 묵인하거나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은 결국 북한 인권을 외면하는 남한 정서를 낳은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이다.”
김 대표는 북한 인권을 이야기를 하면 관심을 표시하지도 않고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북한 인권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북한 인권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책과 자료집에 그림을 많이 넣었다.
그런데 북한 인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과 왜곡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서남북을 함께 봐야 하는데, 어느 한 방향만 봤거나, 특정 방향만 보도록 강요하거나, 볼 수밖에 없도록 한 게 문제는 아니었을까. 왜 잘못 알게 되고 왜곡이 생긴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과거 이승만 시절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인권 탄압을 지지했던 세력이 있다. 쉽게 얘기하면 반공 세력이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그러니까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 인권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이들은 자신의 과거, 인권을 탄압하고 국가 안보를 위해 고문을 해도 좋다고 말했던 이들이, 반성 없이 북한 인권 관련해 비난하는 말을 하니까 사람들이 믿지 않게 됐다.”
“박정희 반란군 통치 세력은 통일 반대한다”
김 대표는 과거에 저지른 악행을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권을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나 위안부에 대해 사죄를 하지 않는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인권을 말하려면 과거의 행위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없다. 그러니 순수하지도 않을 뿐더러 ‘북한을 반대한다’는 목적에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반성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 대표는 반성 가능성에 대해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는다. 우선 과거 맹목적인 반공 노선을 그대로 이어와서 북한을 비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뿐이다. 둘째는, 나는 ‘박정희 반란군 통치 세력’이라고 부르는데, 이 세력은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유로 내세우는 게 ‘내가 빨갱이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유일하고 합리적인’ 이유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를 위해 철저하게 반통일적이다. 통일이 되면 정권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처음부터 통일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
김 대표는 ‘박정희 반란군 통치 세력’이 만든 반공 이데올로기와 통일 반대 주장은 은연중에 국민 의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고 설명한다. 사사건건 모든 것에 적용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 북한은 우리 민족이나 우리 땅이 아니기를 바라는 ‘감춰진 정서’ 같은 게 있다는 것이다.
“‘탈북 동포, 북한 동포’라고 해야 맞다”
“동포라는 느낌이 지금은 굉장히 약해졌다. 그래서 나는 계속 ‘북한 동포’라고 부른다. ‘탈북자’, ‘탈북민’이라고 하는데, 북한 동포라고 쓰지 않는 것은 어딘가 우리 동포가 아니라는 정서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왜 ‘탈북 동포’라고 쓰지 않는가. ‘새터민’이나 ‘북한이탈주민’이라고 쓰는데, 나는 ‘탈북 동포, 북한 동포’로 쓰는 게 정확하고 맞는 표현이라고 본다. 그런데도 ‘동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는 그만큼 정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 인권 이야기를 나누며 ‘무관심’, ‘적폐 세력’, ‘모르는 척 하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자 한 가지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략 20년 전 과거로만 돌아가더라도 북한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기이자 모험이었다. 왜 이 현상을 반복되는 것일까.
“북한 인권과 관련해 남한이 갖고 있는 인식 중 하나는 ‘민주 세력은 북한을 지지하고 있다’는 오해다. 이 오해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그 프레임이 ‘종북 좌파 마법’이다. 이 마법은 그동안 남한 전체에서, 그리고 모든 선거에서 맹위를 떨쳤다. 남한의 민주 세력은 이 마법에서 남한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 다행이 시간이 지난 후 이 마법의 폐해는 많이 줄었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여전히 30%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북 좌파 프레임은 민주화와 국가 발전을 크게 방해했고 적폐 세력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북한의 범죄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공범 역할을 한 것과 똑같다.”
이 마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잘못된 인권을 바로 잡고 적폐 세력의 마법을 풀 수 있는 특효약은 북한 인권 문제를 있는 그대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시민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무관심하거나 엉거주춤하지 않는 게 중요하며, 이는 적폐 세력의 마법을 막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통일 비용 왜곡은 적폐 세력 대표적 범죄”
북한 인권을 보는 인식이나 감정, 정서가 깊이 숨어 있는 문제, 이런 정서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인식을 바꾸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말을 하자 김 대표는 인식과 관련해 설명하기 좋은 예가 ‘통일 비용’이라며 통일 비용의 허구성을 이야기 소재로 꺼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적폐 세력이 저지른 범죄를 알리는 것이다. 그 중 ‘통일 비용’이 있다. 이들은 통일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통일을 해야 하느냐는 말을 한다. ‘통일 안 하면 어때?’, ‘지금 안 하면 어때?’라는 말은 정서적으로 감춰 놓은 게 많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낮추고 통일의 시급성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내가 일제 강점기 때 14년을 살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 통치와 영향을 받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동안 통일 비용의 허구성 이야기에 영향을 받았다.”
통일 비용 허구성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적폐 세력은 통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말로 현혹한다. 그러나 통일 비용 외에 분단 비용이나 통일 후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말하지 않는다. 분단으로 인한 지출도 엄청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이들은 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전체 예산 중 15%가 군비(軍費)로 들어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분단 때문에 사회 발전에 엄청난 지장을 받고 있고, 이 비용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또한 북한은 생각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있는 게 별로 없다. 공장, 도로, 철도, 통신 등 기간시설이 미약해 제대로 돼 있는 게 없다. 통일이 되면 우리가 오랫동안 투자해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이를 지출 비용으로 왜곡하고 통일을 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고 속였다. 이는 통일 방해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출 비용이 아니라 ‘기회비용’이다. 또한 통일이 되면 우리는 매우 큰 국력을 갖게 되고, 경제 측면을 포함해 얻을 수 있는 여러 이익은 매우 크다. 적폐 세력은 긍정적 내용은 감추고, 20년, 그러니까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소위 어용학자를 동원해 방송 등 언론을 통해 부정적인 것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햇볕정책으로 개혁·개방 절반 이뤄졌다”
북한 인권, 통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북한 이야기도 나눴다. 먼저 북한 정권이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김 대표는 북한이 전쟁을 통해 탄생했기 때문에 정권이 오래 갈 수 있다고 봤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북한 정권은 외세를 등 지고 탄생한, 또 전쟁을 통해 권력을 집중한 권력 집단이다. 이 집단이 자기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긴장과 적개심을 이용했다. 긴장과 전쟁과 적개심이 없다면, 20년을 넘을 수 없는 정권이다. 이는 북한은 물론 중동이나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역사적인 원칙이다.”
김 대표는 북한 정권 관련 물음에 “그동안 남한과 미국은 북한이 생존에 필요한 긴장 조건을 충실히 갖다 바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제는 변했고, 북한 입장으로서는 ‘개혁·개방망으로 가는 관문(Gateway)’이 열리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 동남아 등에서 오래 활동했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 이 정책은 1/3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국내에서 반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때 북한은 이미 절반은 망했었다. 만약 그때 절대적인 국민 지지만 있었다면, 북한 정권은 벌써 망했을 정권이었다. 북한 집권층이 가장 원하는 것, 가장 큰 관심과 희망은 자신들이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조건은 자신이 살아남기 어려운 조건으로 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소련이 망했지만 러시아가 됐고, 중공도 망했지만 중국이 됐듯이, 북한도 그런 식으로 가려고 한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처럼 가려 한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길로 가려고 한다는 말은 전에 들은 적이 있다. 김 대표에게 같은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흥미가 커졌다. 겉모습을 보면 중국은 자본주의에 가깝고, 러시아는 민주주의에 가까운 형태를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까닭에 북한이 보는 중국과 러시아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중국은 국가 자본주의 형태인데, 국가 경제이기 때문에 내부 경제가 없는 나라다. 그런데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많다. 선거 문제 등 내부적으로 분열 조짐이 있다. 인류 역사는 강력한 정치 집단이 오래 가기 어렵게 돼 있다. 스탈린, 히틀러, 아베, 푸틴 등도 장기 집권을 하려 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중국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국이 현재 어느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냐 하면,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감시해야 할 사람이 수십만 명이다.”
김 대표가 밝힌 화장실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중국 정치는 물론 주요 정치인과 친분이 많은 중국인 지인에게 물어보니 “오랫동안 전쟁을 겪으면서 사회 불안이 계속되면서 물자도 빈곤해지고 50년 전 문화대혁명으로 10년 동안 화장실에서 자살한 사람이 너무 많아 문을 낮게 만들게 됐고 공중화장실은 아예 문을 없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적 불안정이 낳은 현상이고, 최근에는 화장실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중국 내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북한이 궁금했다. 북한은 어떨까? 김 대표는 ‘북한은 바보다(답답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세상 보는 눈 어둡다”
“나는 외국에 많이 있었는데, 휴가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다시 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외국에 있을 때 그만큼 북한 사람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사람에 대해서는 속내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어 나름 자신감을 갖고 있다. 북한은 체제 보장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70년 동안 미국이 공격한 게 없다. 북한은 내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때문에 경제 파탄을 겪은 것이다. UN 등 경제 제재하고는 거리가 멀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북한을 점령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니 세상을 보는 눈이 어둡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핵무기 개발 발상 자체가 한심스럽다. 핵은 좁은 방에서 수류탄을 만든 것과 같다. 한반도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 쏠 수 있겠는가? 쏠 데도, 쏠 수도 없다. 북한 지도부는 자살 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 대표는 북한 상황을 말하면서 적폐 세력과 북한 핵무기를 이야기 소재로 끌어들였다.
“핵무기를 쏠 수도 없는데, 국내 언론이나 과거 적폐 세력이 북한은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고 조직이 잘 돼 있는 집단으로 포장해준다. 북한을 왜 그런 나라인 것처럼 선전해주고 지켜주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프리카에 있었을 때 이야기다. 이디 아민(Idi Amin)이라는 정치인이 있는데, 당시 최악의 독재자였다. 아민은 측근으로 둔 젊은 여자가 10여 명 있었는데, 아내에게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밍크코트를 입도록 했다. 할리우드 최고 스타가 입는 옷인데, 우간다는 더워서 샤워를 해도 금세 땀이 나는 곳이다. 용도가 없는 옷인데, 이것만 봐도 아민이 얼마나 무모한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나. 북한 핵무기는 아민이 아내에게 준 밍크코드와 같은 것이다.”
이디 아민
이디 아민(Idi Amin Dada Oumee)은 우간다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1971년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1962년 우간다가 독립하고, 1964년 대령이 됐으며, 1966년 밀턴 오보테(Apollo Milton Opeto Obote)와 함께 당시 대통령인 무테사 2세(Mutesa II) 제거에 동참한다. 1967년에는 군 통수권자가 됐다가 콩고 반란군 원조 문제에 연루돼 좌천당했다. 1971년 1월 25일 오보테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그는 8년 집권 기간 동안 450만여 명의 우간다 인구 중 75만여 명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해 극악무도한 독재자라는 악평을 남겼다.
“미국 대북 정책은 ‘현상 유지’다”
북한 핵무기를 이디 아민의 밍크코트와 비유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한 가지 궁금증이 떠올랐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이다. 미국은 과연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입장인지 알고 싶었다. 이 물음에 김 대표는 ‘현상 유지’, ‘분단 유지’ 등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며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1945년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함이 없다. 입장이 뭐냐면, ‘현상 유지’(Status Quo)다. 라틴어인데, 현상 유지가 미국의 공식적인 외교 정책이다. 다시 말하면, 한반도를 분단 상태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북한이 망하려 한다면, 망하지 않도록 받쳐주겠다는 뜻까지 내포(內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분단을 유지해야 하는데, 북한이 망하면 분단 유지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보다 긴장 유지가 국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잠시 앞에서 잠깐 나온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김 대표에게 다시 묻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상명하복(上命下服) 등 지휘 계통이 철저하지 않은 곳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일부에서는 북한의 조직 체계가 잘 돼 있어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많다는 말을 끄집어냈다. 이런 이야기는 사석(私席)에서 이야깃거리로 자주 등장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이도 없고, 우리 사회에서는 충분히 수긍할 만한 말을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上命下服 잘 안 되는 곳”
“북한은 상하 계통, 상명하복 등이 잘 되고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곳이 아니다. 왜냐면,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중국이다. 세계 모든 나라를 갔다 온 것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남니, 동남아 등을 직접 다니고 생활하면서 겪은 것을 보면 북한이 가장 부패한 곳이다. 장마당에서 이뤄지는 부패도 민간은 물론 관도 포함한다. 요즘 중간 관료가 자주 쓰는 말은 ‘예, 알겠습니다’, ‘주체적으로 해결하겠습니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이라고 하는데, 사실 주체적으로 하겠다는 말에는 ‘또 다른 뜻’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시간이 제법 지났다. 인터뷰 중심 내용인 북한 인권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북한인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많다. 한쪽은 반대, 다른 한쪽은 반대다. 의견이 다르게 나오는데, 인터뷰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북한과 인권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다는 연장선에서 봐야 할 것 같다는 말에 인권법 제정을 반대했던 사람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나는 북한인권법 제정을 반대했다. 인권법을 주장했던 사람은 과거 적폐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목적이 북한 인권에 있는 게 아니었고 자신이 있는 단체에 필요한 돈 때문이었다. 동기가 불순했다. 북한인권법 초안을 보면 10여 개가 있는데, 가령 탈북 동포를 지원해야 한다는 항목이 들어가자 브로커 사이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그런 식으로 돈 장난을 위한, 적폐 세력과 반공을 위한 업자(業者)를 위한 돈 장난이 목적이었다.”
김 대표 입장과 설명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기 쉬운 면이 있다. 물론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이의 목소리를 알리고 듣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아주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는 왜 이처럼 ‘껄끄러운 이야기’를 꾸준히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한국 교회는 현실에 무감각하다”
“내가 나이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나 직장, 단체 등과 연결돼 있는 게 없다. 그렇기에 소신과 사명을 갖고 이야기하고 활동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알리고 싶다. 내 의견을 사회에 남기고 싶은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해야 할 말을 하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강연을 하면 두 번 이상 초청하는 곳이 거의 없다.”
김 대표는 이어 기독교와 북한 선교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독교가, 그러니까 북한 선교는 순수성이 매우 빈약하다. 한국 교회가 적폐 세력화돼 있어 안타깝다. 북한 인권을 설명하면, 어린 아이가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다면, 기도해야 하나 아니면 누구의 자식인지 확인해야 하나. 무조건 뛰어들어 건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현실에 무감각하다. 이는 결국 기독교가 아니라는 선언과 똑같다. 최고의 사명은 이웃 사랑이다. 단체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종교 단체가 아니라 기득권 종교 단체인 경우가 매우 많다.”
북한 인권, 이 문제와 관련해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국제 사회에 알리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인권 문제는 국제 문제이므로 정부는 개입하지 말고 우리 활동가가 국제 사회와 연대해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남북한이 겪은 분단의 고통을 국제 사회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대정신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
“외국 사람은 가정과 국가의 분단이라는 아픔과 고통을 잘 모른다. 그래서 외세와 우리 통일 문제를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 국민조차도 제대로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외부, 즉 해외 인권 단체는 한국 정부를 굉장히 비난한다. 우리의 아픔, 통일의 필요성 등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이 국제 사회에서는 잘 먹힌다. 요즘은 인권을 최고로 생각하는 인권 지상주의 시대이고 국제화 시대이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가 한 말이 있는데, 그는 ‘시대정신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고 말했다. 시대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19세기는 해외 진출의 시대였는데 우리는 쇄국정책을 펼쳤다. 지금, 21세기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시대다. 역행한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외국 인권 단체의 눈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 사람과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에는 오해나 잘못 이해한 것 때문에 생긴 현상은 아닐까. 깊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과 한국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설명을 잘 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진보도 보수도 뚜렷한 입장이 없다”
“그것(상황 설명)을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정부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제3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맡고 있는 단체 이름을 ‘북한인권제3의길’이라 정한 이유기도 하다. 내 기준으로는, 우리나라는 진보도 없고 보수도 없다. 단지 민주 세력과 민주주의 반역 세력이 있을 뿐이다. 반민주 세력, 이들을 우리는 소위 보수 세력이라고 한다. 이 반대편을 진보 세력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보수든 진보든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입장이 엉거주춤한 상황이다. 뚜렷한 입장이 없다.”
뚜렷한 입장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이유를 물었다. 김 대표는 “인권의 중요성을 알겠지만, 명확한 입장이 없는 것은 이론적으로 정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게 필요할까. 이에 대해 그는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에서 손을 떼고 시민들이 국제단체와 연합해서 진행해야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민간단체가 나서는 게 좋고, 이들은 유럽연합(EU) 중심지인 브뤼셀(Brussels), 런던, 베를린, 제네바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북한 인권을 말하는 게 좋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 인권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를 넘어 전 세계가 들고 일어나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람은 가급적 표면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사람은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정도면 된다”며 “이는 북한이 한국 정부를 비판할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북한 인권, 국제단체와 함께 해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민간이 국제 사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요건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제시했다. 다른 방안은 어떤 게 있을까. 김 대표는 △유럽 중심의 새로운 국제회의 개최 및 국제 활동 등을 통한 방향 전환 △중국 정부에 의한 탈북 동포 강제 송환 중단 활동 △UNHCR(유엔난민기구)에 대한 압력 △탈북 동포 이동 경로 국가 대상 보호 방안 모색 △북한 인권 실상 알리기 위한 국내 홍보 및 국제 인권 전문성 확보 △남한 정착 탈북 동포 인권과 민주주의 교육 △북한인권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북한인권제3의길’은 이 같은 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했고 현재도 쉬지 않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2018년 5월 출간한 『무관심』에 대해 물었다. 이 책은 북한 인권을 다룬 책이며 ‘북한생체실험·인간학대실태’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어떤 책인지 소개를 부탁했다.
“책 제목에 ‘무관심’이라는 낱말을 넣었는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북한 인권에 무관심이 커서 『무관심』으로 제목을 지었다. 이 책은 (사)북한인권정보센터가 분석한 10만 건 이상의 사건과 10만 명 이상의 인물 자료, 그리고 ‘북한인권제3의길’이 자체적으로 수집한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북한 인권을 다룬 자료는 많다. 하지만 대부분 장문(長文)이거나 보고서, 학술 논문, 회의 자료 형태가 대부분이다. 일반 시민은 동영상이나 시청각 자료에 익숙하고 일상이 바쁘기 때문에 그림이라는 시각적 자료를 최대한 활용해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을 보고 많은 사람이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김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진 후 문득 떠오른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말, “권력자에게는 국가가 필요하다. 그래야 세상을 지배하고 비용과 위험을 국민에게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 고안한 뛰어난 간계 중 하나가 안보다”는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김상헌
1932년 9월 29일 출생. 1957년 연세대 사학과(53학번)를 졸업했다. 박정희 반란군 통치 시대이던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걸어온 인권 활동가다. 1957년 영국대사관 등 외국 기관에서 약 17년 동안 근무했다. 1976년부터 약 20년 동안 국제연합(UN) 산하 WFP(세계식량계획, 世界食糧計劃, World Food Programme)에서 식량담당관을 맡아 한국,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서 근무하다가 1994년 UN에서 은퇴했다. 1976년 국제앰네스트(Amnesty International) 한국지부 초대 교육 담당 이사를 맡았으며, 교육 이사 직책은 평생 인권 활동을 하는 첫 걸음이 됐다. 1997년부터 중국, 동남아, 구미 등 국제 사회에서 20년 넘게 북한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2003년에는 북한인권정보센터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3년 미국 주간지 TIME이 ‘아시아 영웅’으로 선정했다. 지은 책으로는 『Are They Telling Us the Truth?』(영어·일본어·태국어), 『전거리교화소의 실태』(한국어·영어·일본어), 『북한 지하 교회의 실태』(역서), 『무관심-북한생체실험·인간학대실태』 등이 있다. 현재 시민단체인 ‘북한인권제3의길’ 대표를 맡고 있다. 북한인권제3의길에 대한 문의는 전화(010-6404-1651), e편지(kayajio@hanmail.net, flowerswallow@hanmail.net)로 하면 되며, 후원은 신한은행 계좌(041-951-8815 북한인권제3의길)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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